310화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도시 방어전! (2)
퍽퍽! 쾅!
작은 주먹을 들어 버둥거리는 마족의 뒤통수를 깨버린 캐롯이 몸을 일으켰다.
“몰라! 하여간 어서 방어전 준비해! 하늘색은 왜 갑자기 시뻘게? 지오! 신호탄 발사! 아리에테랑 리슐리에를 깨워! 크랭크! 빨리 나와 봐! 동네 사람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문 걸어 잠가! 죽는다고!”
캐롯의 빠른 외침에 모두가 할 일을 찾아 뛰어가고 이어서 쿠르프의 공방에서 작업복 차림의 크랭크가 달려 나왔다.
투구를 들고 붉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의 귓가에 그제야 사방의 비명과 폭음이 들려왔다.
이게 무슨 일이지?
요즘 경제특구다 뭐다 해서 협력과 화해 분위기가 조성 중인데 갑자기 그걸 깡그리 무시한 습격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니 당황할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의문은 뒤로 미루고 현실부터 수습하기로 한 그가 빠르게 외쳤다.
“전원 전투 준비! 신호탄 발사! 도시 방어 시나리오에 따라 이 주변을 엄호한다! 민간인은 전부 대피! 다들 피하시오! 습격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은 캐롯의 목청에 놀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다만 그의 고함 소리를 듣고 뜻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캬캬캬! 캭캭! 저기 있다! 동포를 죽인 놈이다!”
크랭크가 투구를 들자 얼굴이 원숭이처럼 생긴 마족이 등에 날개를 펼치고 날아다니고 있었다.
탕-!
묵직한 굉음, 날개 원숭이는 그대로 하천으로 떨어져 버렸다.
롱보우를 들었다가 내린 코비가 고개를 돌렸다.
“우와! 그거 막 써도 돼요?”
“죽을 판국인데 대수냐? 그런데 결국 이럴 속셈이었나? 이 판국이 되니 그 뿔 처녀도 의심스럽군.”
비타의 치료를 지켜보던 캐롯이 눈을 크게 떴다.
“투나! 투나가 지금 외출했어! 모르핀 만나러 간댔어! 리슐리에랑 아리에테는 어떻게 됐어?”
공방 안에서 무기를 들고 나와 지오에게 던져 주던 보리스가 외쳤다.
“깨우긴 했는데 지금 숙취로 제정신이 아냐!”
어제 저녁, 그들은 오랜만에 공방에서 파티를 벌인 참이었다.
“저기 있다!”
“캬캭캭!”
이어서 동료의 죽음에 분노한 마족들이 공방 부근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도끼와 방패를 받아 든 크랭크가 외쳤다.
“로테는 나와 함께 전선을 유지한다! 보리스! 지오! 코비! 완력으로는 마족을 이길 수 없으니 활을 사용합시다! 캐롯! 그걸 쓰자!”
“그거?”
크랭크가 달려오는 마족들에게 도끼를 집어 던지며 외쳤다.
“8번 창고!”
피 묻은 입가를 손등으로 슥슥 비벼 닦은 캐롯이 몸을 돌렸다.
“이러려고 만든 게 아닌데 말이지!”
호다닥 달려간 캐롯이 8번 창고의 문을 활짝 열었다.
내부에는 캐롯 시리즈가 꽉 채워져 있고, 중앙에 동력선과 신경선이 잔뜩 연결된 의자가 하나 있었다.
마치 왕좌 같은.
캐롯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여러 장치의 묵직한 레버를 올리자 동력이 살아났다.
작업을 마치고 의자에 몸을 던진 캐롯은 서둘러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칭-!
캐롯이 눈을 감는 동시에, 주변 선반에 가지런히 정렬해 있던 오토마톤들이 눈을 떴다.
챙! 캉! 퍽!
“크억!”
싸늘한 시선으로 단숨에 마족을 베어 버린 아리에테는 쏟아진 피를 보고 고개를 숙이더니 토악질을 해댔다.
“오에엑!?”
다시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은 진한 숙취에 시달리고 있었다.
파티의 마법사 리슐리에 역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고.
“보, 볼……! 우에엑! 라, 라이트니이잉!”
주문을 외치다 말고 아리에테가 곳곳에 쏟아 놓은 토사물을 보고 맹렬한 구역감을 느낀 리슐리에도 한바탕 속을 게워낸 다음 필사의 의지로 주문을 완성시켰다.
새파래진 리슐리에는 마족들을 견제하는 볼 라이트닝의 개수에 당혹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 마력 증강 아이템을 2개나 사용 중인데 뭐, 뭔가 이상해요. 이, 이렇게 적을 리가 없는데.”
자동 석궁의 탄통을 장전하던 보리스가 역정을 내 버렸다.
“술이 덜 깨서 그런가 보지! 아! 그러게 작작 좀 마시지 그랬어요!”
“으, 으음, 하도 오랜만이라서……. 사, 상태 이상 해제로 숙취는 푸, 풀 수 없나?”
보리스의 외침에 아리에테가 헛소리를 지껄이는데 갑자기 마족의 도끼창이 날아들었다.
시온이 먼저 그걸 발견하고 투구를 전개했고, 더불어 작은 무언가가 휙 날아들어 창대를 밀어내고 상대를 제압했다.
퍼퍽!
“크악!”
“캐롯 2호!”
숫자 2와 당근 실루엣이 수 놓인 완장을 찬 작은 인형이 빼앗은 도끼창을 비껴들고 쓰러뜨린 마족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거기서 흘러나온 것은 캐롯의 목소리.
“전 캐롯 시리즈 기동, 공격을 개시합니다.”
뒤를 이어 8번 창고에서 캐롯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인형들로 채워진 파도의 물결 같았다.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다다다다다다! 우다다다!
어찌나 많은지 주변을 가득 채우며 달려가는 조그만 캐롯 인형들을 보고 당황한 보리스와 코비가 주춤거렸다.
“소리 지를 필요 있어?”
“귀여운데 무섭다!”
비타는 이 상황에 갑자기 웃음보를 터트려 버렸다.
“아하하! 행복한 세상의 캐롯이에요!”
“행복하지 않거든! 길이나 터! 지오! 그 바보 신관을 치워!”
지오의 어깨에 들춰 메진 비타는 그 상태로 웃으며 사방으로 쏟아지는 캐롯들을 보고 웃어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크랭크와 쿠르프는 고대하던 캐롯 시리즈의 전체 기동에 몹시 기뻐했으나 사태가 사태인지라 크게 드러내진 않았다.
시퍼런 얼굴의 아리에테가 중얼거렸다.
“이, 이젤리아의 개, 개미 떼 같은…… 오에에엑!”
숙취에 패배한 여기사를 싹 무시한 드워프가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어떤 독재자가 말했지! 양은 그 자체로서 질적 우위를 점한다고! 가거라! 모조리 쓸어버리는 게다! 음하하!”
쏟아진 캐롯들은 양을 이용한 포화 공격으로 마족의 전술 전략을 모조리 압도해 버렸다.
“와아아아아아! 와아아! 와아아아아!”
“우와악! 떼거지로 몰려온다!”
“쬐그만 것들이 그래 봤자지! 우어억?!”
캐롯 웨이브를 가소롭게 여기던 마족들은 동료들이 그 파도에 휩쓸려 버리자 기겁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간, 투나가 모르핀을 데리고 방문했던 상점가에서도 난리가 났다. 마녀 공방에 앉아 차를 마시던 모르핀이 기이한 기척에 놀라 달려 나갔다.
겁에 질린 상점가 사람들과 그걸 쫓는 마수와 마족 무리가 보인다.
“어떻게? 설마!”
고개를 꺾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붉다. 저녁노을이 아니다. 하늘이 선명한 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휴전선에서 싸움질이 한창일 때 잠깐이지만 마족도 선을 넘어 활동할 수 있었다. 방법은 수비대장만 아는 비밀.
“이잇!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다니!”
이를 드러내고 뛰쳐나간 모르핀은 시민을 습격하던 마족을 걷어차 버렸다. 나동그라진 상대가 고개를 돌린다.
뿔 마족, 하지만 아는 얼굴은 아니다. 아마 마왕성을 따라온 녀석이겠지.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 엉망인 머리칼, 숱과 흙을 펴 발라 워 메이크 한 얼굴은 마치 짐승 같다. 차림새에 이르러서는 가죽을 이어 붙인 넝마 조각을 걸치고 있었다.
끔찍하군.
갑자기 피식 웃음이 샌다. 사실 모르핀도 여기에 오기 전에는 저런 몰골이었다.
마주한 괴물 원시인 마족이 이빨을 드러냈다.
“캬아아악! 너!”
빠각!
외출하느라 검을 두고 온 샤를이 주먹질로 일어서려는 마족의 턱을 깨놓았다. 그리고는 떨어진 날붙이를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크르르륵! 캬아악!
주인이 쓰러지자 함께 온 마수가 입을 크게 벌리고 덤벼들었다.
모르핀이 외쳤다.
“샤를 뒤에!”
쉬익-! 퍼석! 퍽!
샤를이 날붙이를 휘두르기 전에 마법 탄이 날아들어 마수의 머리를 부숴 놓았다.
남은 한 녀석은 갑자기 나타난 남자의 솜씨에 목과 등에 긴 칼집이 생겨 버렸고.
턱!
나자빠진 마수의 배에 슬리퍼를 신은 발을 올린 사내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잔뜩 쉰 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건 뭐라는 동물이냐?”
시장 바닥에는 의외로 은퇴한 모험가들이 많았다. 생선 장수 레리도 비슷한 경우였다.
샤를이 고개를 까딱였다.
“그렇지 않아도 돌아가는 길에 들를 참이었습니다. 오늘의 추천은 무엇입니까?”
좀처럼 웃지 않는 레리가 입꼬리를 씩 올리며 역시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은 정기 휴일이다.”
캬아아악! 카닥카닥!
“허억! 해, 해골! 해골이 움직여!”
“꺄아악!”
맞은편 대로로 이번엔 해골 병사들이 몰려들었다. 모르핀이 손을 휘두르며 외쳤다.
“스켈레톤이다! 전부 안으로 들어가! 투나! 계속 엄호해!”
“어? 에, 아, 아냐. 나, 나는 마법이 발동되질 않는데? 왜, 왜지?”
마법은 당황한 투나 곁의 메이드 케이스가 사용한 것이었다. 잔을 들고 일어선 케이스가 눈을 올려 떴다.
고르곤이 중얼거렸다.
“이거 참 갑작스럽네. 여기는 내가 먼저 찜한 곳이라고. 너희들, 좀 거들어주렴.”
터터터터텅!
그녀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마을 곳곳에 배치된 상자의 뚜껑이 열리고 각양각색의 머리 색을 가진 오토마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퍼퍽-!
“컥!?”
“어우! 코야! 어떤 자식이!”
난데없이 날아온 빛 구슬에 얻어맞은 마족들이 코와 배를 붙잡고 물러섰다.
“어디서 날아온 거야?”
“마법은 못 쓰게 된 거 아니었어?”
“저쪽이다! 저놈들이야!”
마족과 전투 중이던 경비병들도 슬쩍 고개를 돌렸다.
건물이나 우물가, 혹은 가로수 아래, 가능한 눈에 잘 띄는 곳에 설치한 큼직한 나무 상자가 열리고 있었다.
얼마 전 아무것도 모르고 저걸 설치한 경비병이 어이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무기 상자가 아니었어?”
거기서 걸어 나온 오토마톤은 품을 뒤지더니 마법사의 뾰족 모자를 펼쳐 머리에 썼다.
그걸 알아본 경비병들의 얼굴에 세로줄이 생겼다.
“저, 저것은!”
“그때 그 마법사 인형!”
투타타타타! 파파파파팟!
사레나를 본떠 만들어진 마법사 인형들이 두 팔에서 매직 미사일을 마구 쏴대며 걷기 시작한다.
발사된 마법탄은 목표를 추적하는 호밍 기능마저 선보였다.
“으아악! 쫓아온다!”
퍼퍼퍼퍽! 퍼퍽!
“캬악!”
“크윽! 버, 버틸만해! 으악! 컥!”
위력 자체는 그리 치명적이지 않아 상대를 비틀거리게 만드는 정도였으나 탐색과 후방 지원 능력만큼은 탁월하여 난전 펼치던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마법탄을 얻어맞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마족을 손쉽게 제압하던 경비병들이 외쳤다.
“아주 걸어 다니는 마법 포대구나! 계속 쏴라! 따라다니면서 마무리를 가하자!”
마녀의 뾰족 모자를 눌러쓴 오토마톤이 나타나자 마족들이 급격하게 밀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8번가 쪽에선 조그만 인형의 파도까지 휘몰아치고 있었다.
“우아악!”
“으억!”
“안되겠어! 밀린다! 밀려!”
마족 병사들이 생각했던 것은 힘없는 것을 향한 일방적인 폭력과 학살이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리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다.
팔이 부러진 오토마톤과 페어를 맞춘 모험가가 정체 모를 포션을 마시더니 눈이 시뻘게져서는 키득거리고 있다.
“왜 그러냐! 어서 덤벼봐라! 이쪽은 아직 멀쩡하다고!”
“그렇습니다. 나도 아직 팔 하나가 남았습니다.”
광기에 찬 인간과 인형의 중얼거림에 마족들은 당황해 버렸다.
“이, 이 자식들이!”
난전 중에 병사들은 항상 지휘관을 찾는다.
마족도 마찬가지.
“에탕다르 님!”
“에탕다르! 어디에 있냐! 밀리고 있어! 밀린다고!”
도시에 마족을 풀어 버린 에탕다르는 느긋하게 동네 마실 중이었다.
“놀랍군. 인간들의 도시가 이렇게나 발전하다니.”
한적한 거리를 거닐던 그는 문득 고개를 돌려 성벽 너머로 보이는 엘프들의 함대를 살폈다.
왜 안 쏘지? 이걸로는 부족한가?
조금 불만스러운 듯 다음 계획을 어찌할까 생각해 보는데 시민들이 모두 대피한 거리, 작고 귀여운 뭔가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쇠창살 대문 사이로 고개만 빼꼼 내민 꼬마 아이는 반짝이는 눈으로 이리 소리쳤다.
“멍멍이! 멍멍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