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300화 (300/329)

300화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마왕성! (1)

쿠핀은 언젠가 겔이 했던 제안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상어 이빨,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은 대체 어떻게 넘어갔을까?”

“응?”

중얼거림을 들은 겔이 고개를 숙이자 문이 벌컥 열리며 옆집 마족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이봐, 겔! 재료 얻어놨는데 우리 집도 좀 봐줘! 어차차! 실례를 해버렸네에~!”

화들짝 놀란 두 사람이 떨어지자 이웃집 마족 여자가 음흉하게 웃었다.

“엇, 계속해도 상관없는데. 둘째 만들 거 아냐? 미노는 내가 보고 있을까?”

“야!”

이때쯤 아리에테도 얼떨결에 마을에서 보수 작업을 거들게 된 동료들을 찾아냈다.

“아, 오셨어요?”

“여긴 무슨 일이지? 머리에 그건 또 뭐냐?”

밀가루 봉투에 구멍을 뚫어 뒤집어쓴 지오와 코비가 허리를 폈다. 비타가 콧김을 뿜뿜 내쉬었다.

“제가 씌웠어요. 다들 휘파람 불고 난리를 부리지 뭐예요? 여자들한테 그러는 걸 봤어도 어딜 내 남자들에게! 흥흥!”

코비가 지오를 가리키며 무어라 말하려다 그만두고 피식피식 웃었다.

아리에테는 주변을 바삐 돌아다니는 마족들을 보고 물었다.

“보리스와 리슐리에는? 특히 보리스가 걱정된다.”

“보리스는 자기 냄새가 어쩌고 하면서 안 왔어요. 리슈 언니는 저기 오네요. 언니! 여기요!”

비타가 손을 흔들자 수레를 끄는 로테의 곁으로 리슐리에가 따라서 손을 들었다.

그녀는 커다란 몸집을 가진 여자 마족에게 다가가 수레를 내밀고 뭐라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에야 로테와 함께 돌아왔다.

“무슨 이야기였어요? 저 수레는 두고 오는 거예요?”

턱을 세운 리슐리에가 주머니에서 큼직한 우윳빛 돌을 끄집어내 얼굴 옆에 세웠다.

비타와 리슐리에가 눈을 크게 떴다.

저 구슬! 본 적이 있다.

“여기 몬스터의 핵석인가? 크군!”

“당분간 저희 집안 가훈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돈으로 해결하자. 입니다.”

핵석을 얻고자 했던 숙원을 그간 저축한 돈으로 이뤄낸 리슐리에는 흐뭇하게 그걸 만져보면서도 새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급한 볼일에 화장실을 찾는 사람의 얼굴.

낌새를 눈치챈 비타가 굳은 표정으로 저지했다.

“이 계절에 이런 곳에서 언니 마법을 쓰면 산불 나요. 조심합시다. 최소한 눈이 오고 난 다음에 해요.”

“으, 음. 어, 어서 빨리 써보고 싶다. 으히히! 자, 자중하자. 리슐리에. 음후후.”

안경을 밀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밀려드는 마력과 호기심에 마법사 리슐리에의 눈빛은 시간이 갈수록 위험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저 말투!

기겁한 비타가 아리에테를 보면서 리슐리에를 가리켰다.

“방금 투나 같지 않았어요?”

“아주 비슷했지.”

그러거나 말거나 리슐리에는 핵석을 마치 소중한 보물처럼 쓰다듬으며 즐거워했다.

그때 또 다른 마족이 그녀를 찾아왔다.

“이봐, 여기 리슈라는 녀석이 누구지?”

“아, 음. 접니다만.”

싹 바뀐 얼굴, 야생의 마족 여자들은 본 적도 없는 도도하고 차가운 도시 안경 마법사로 돌아온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마족 여자가 주섬주섬 가져온 것을 내밀었다.

“너 이거 사지 않을래?”

해, 핵석! 더 커!

눈을 부릅뜬 리슐리에가 그녀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얼마를 원하시죠?”

“시세를 모르는데, 얼마쯤 해? 아까 푸시케 대장에게 준 물건만큼 될까?”

“기꺼이! 내가 맡아놓은 거예요! 다른 사람에게 팔면 안됩니다! 로테! 도와줘!”

후다닥 달려가는 그녀를 보고 당황한 아리에테가 급히 손을 내밀었다.

“아니! 우리는 지금부터 할 일이 있다!”

“휴가! 나는 지금부터 휴가입니다! 이건 한몫 단단히 잡을 기회라고요!”

탕탕탕! 탕!?

근처에서 울리던 망치질 소리가 멈추고 일부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한몫 단단히 잡을 기회?

애초에 마족들의 집수리는 멋대로 규율을 어기고 뛰쳐나가 일을 키운 남자들이 처분을 기다리며 먼저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좀 이상한 친구며 동료들이 돕던 것이었고.

그리고 바로 지금, 어떤 마법사 아가씨의 외침에 힘입어 그들의 썩은 동태 눈알 같은 눈동자에 다시금 광채가 피어올랐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먹고살려면 일단 돈이 필요해!”

“까짓 집이야 돈 벌어서 새로 지으면 되는 거지!”

인간 남자가 마족 여자에게 손을 내밀며 외쳤다.

“도와줘! 우리 함께 행복해지자!”

함께 행복해지자.

마족 여자들의 눈도 같이 돌아가 버렸다.

“으, 응! 도울게!”

이제 그들은 집수리는 뒷전이고 휴전선 안쪽에 굴러다니는 물건을 팔아 시세 차익을 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보는 눈이 있는 자들에게나 기회지, 제반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그때 홀연히 나타난 기인이 있었으니, 바로 탈영병 모르핀.

“씁, 곤란에 처했나 보네.”

“모르핀?”

모자를 푹 눌러쓴 상어 이빨이 히죽 웃음 짓는다.

그녀에게 나름 많은 도움을 받았던 여자들이 주위를 살폈다.

“근처에 푸시케 대장 없지?”

“헤리슨 만나러 갔어. 근데 뭐 이제 수비대도 사실상 해체 상태인데 거리낄 것 있겠어?”

허리에 손을 올리고 히죽 웃음 지은 모르핀이 모자를 벗었다. 오랜만에 뿔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도와줄게. 시키는 대로만 해.”

어린아이를 품에 안은 인간 남자가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야?”

“모르핀. 우리 얘기들 머리 아플 때 약이랑 이것저것 많이 도와줬어.”

“아아! 당신이! 감사합니다!”

남자가 반색하며 인사하자 모르핀은 선을 딱 그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지금부터 말하는 것들을 찾아서 가져와.”

침을 꿀꺽 삼킨 그녀들은 커다란 가방을 하나씩 메고 숲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당신은 오지 마! 안쪽은 위험해!”

“그, 그래도!”

“애나 보고 있어!”

거의 오토마톤 수준의 속도로 달려가 버리는 마족 여자들을 보고 아기를 품은 인간 남자들은 그만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모르핀이 왔다는 소식은 쿠핀의 귀에도 전해졌다.

“야! 모르핀!”

“키키키! 요즘 인기 많은걸?”

씩씩거리며 다가온 쿠핀이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너 어떻게 선을 넘을 수 있는 거야?”

“가르쳐 주면 내게 뭐가 생기지?”

하여튼 재수 없는 상어 이빨이라니까.

쿠핀은 주머니에서 언젠가 빼돌려 놓은 핵석을 꺼냈다. 사실 이것도 본국으로 보내야 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이건 어때?”

“흐응, 핵석이네.”

그걸 받아서 만져 보던 모르핀은 다시 돌려줬다.

“필요 없어. 대신 너도 내 밑으로 와. 당분간 안전과 경제적 자립을 보장해 줄게.”

썩 마음에 드는 제안은 아니었으나 고개 정도야 얼마든지 숙여줄 수 있었다.

“처음 가져본 제대로 된 가족이야! 내가 먹여 살려야 해!”

마족들은 대부분 여초 모계사회로서 자유분방한 듯 보이지만 가족이 생기고 무리가 생기면 그걸 어떻게든 유지하고 꾸려 나가려는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게 된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긴 본능의 발현이라고 봐도 좋았다.

사실상 수비대를 그만두고 모르핀에게 합류하여 각자도생을 시작한 마족들의 활약으로 말미암아 휴전선 마을에서 대피했던 마을 상인들이 다시 돌아왔다.

귀한 약초에서부터 마법 금속이나 희소 금속, 사금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무엇이든 쏟아지는 황금 향을 발견한 상인들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더구나 생활 기반이 부족한 탓인지 그들은 돈도 돈이지만 생필품 물물교환도 기꺼이 받아주었다.

“그래! 남은 재고 싹 쓸어와! 마왕성? 언제 올지도 모르는 걸 기다리면서 가슴 졸이기엔 인생은 너무 길어! 일단 이윤을 남기고 보자고! 으하하!”

이런 상황은 헤리슨을 포함한 마왕성 대책반에서도 알아챘지만 별다른 제지는 하지 않았다.

솔직히 물건 좀 사고파는 것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기도 했고.

성내 상황실에 앉아서 머리를 싸매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하여튼 정보! 정보가 필요해! 포로를 심문해서 약간의 정보라도 빼내자! 크랭크랑 땅콩을 불러와!”

집 고치다가 불려온 고문 전문가 크랭크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인원이 너무 많습니다. 불려간 동료가 정신이 피폐해져서 돌아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괜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포로 송환 때도 불리하게 작용될 겁니다.”

밥 하다 불려온 캐롯은 눈을 땡그랗게 떴다.

“정보요? 뭐든 상관없어요? 시시콜콜한 것도?”

“그래!”

“오올, 그럼 내가 먼저 해볼게요. 마침 거기 수다쟁이가 꽤 보이더라고요.”

* * *

쿵!

커다란 무쇠 냄비를 포로들 앞에 내려놓은 캐롯이 소리를 꽥 질렀다.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오늘의 요리 시간!”

당장 열화 같은 환호가 빗발친다.

먼저 추위에 모포를 뒤집어쓴 도마뱀 인간 드라고니안.

“시끄럽다! 재수 없는 꼬마 인형!”

“제길! 불이라도 피우게 해줘! 얼려 죽일 작정이냐!”

“으어덜덜, 어, 어제부터 갑자기 추워졌어.”

그도 그럴 것이 도마뱀은 냉혈 동물이다.

취사장을 꾸미던 캐롯이 또 꽥하고 소리를 질렀다.

“날씨가 추워지고 있으니 몸이 따끈따끈하게 달아오르는 생강 구이와 당근 스튜를 만들어 봅시다! 먼저 생강을 다듬어서 껍질을 벗기고 잘 다진 다음 양념장을 만들어요! 그다음 저쪽 숲에서 잡아온 뭔지 모를 괴물의 고기에 듬뿍 발라서 절여둡니다!”

드라고니안들이 항의를 쏟아냈다.

“뭔지 모를 괴물이라니! 뭘 먹일 참이냐!”

“난 절대로 안 먹을 거다!”

이윽고 식사 시간, 커다란 그릇에 담겨진 스튜를 떠먹으며 생강 고기 구이를 씹던 드라고니안들은 숨도 쉬지 않고 그걸 다 먹어 버렸다.

“맛있다! 맛있어!”

“어? 몸이 달아오른다?”

“무, 무슨 조화냐?”

앞치마를 두른 캐롯이 두 팔을 들고 외쳤다.

“이것이야말로 대자연의 버프! 는 사실 생강이라는 약초인데 먹으면 몸에서 열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설탕에 절여서 먹으면 감기에도 좋답디다. 후식으로 달콤한 생강차 드실 분?”

“오, 오오!”

캐롯은 즉시 냄비에 생강을 깎아 넣고 설탕을 들이부어 국물을 우려내 그들에게 돌렸다.

마왕의 아들들도 그걸 받아먹고는 감탄했다.

“오욱, 이거 냄새는 적응이 안되네. 코가 뻥 뚫리는걸.”

“웩! 달아, 너무 달아.”

그러면서 잘도 후릅후릅 마셔댄다.

그에 반해 드라고니안들은 커다란 입을 쩍 벌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으어, 달다. 고향에서 씹던 사탕수수 맛이다.”

“크흡! 맵고 달구나.”

“이런 고급 기호품을.”

캐롯이 고개를 갸웃했다.

“으잉? 왜 울지? 마족은 설탕이 없어?”

“설탕 같은 감미료는 고급이지.”

“보통 단맛은 나무 열매로만 얻는다.”

오리입처럼 입술을 쭉 내민 캐롯이 취사장에서 설탕 봉지를 가져다주었다.

드라고니안들은 야단법석을 부렸다.

“우효옷! 서, 설탕을 이렇게까지 하얗게 만들 수 있다니!”

“킁킁! 내가 좋은 걸 보여주지! 잘 봐라!”

한 녀석이 설탕 봉지를 빼앗더니 손바닥에 뿌린 다음 그걸 코로 들이켰다.

“크흐어업! 크으억! 다, 달아! 달아! 처, 천국이로구나!”

눈자위가 위로 휙 들린 그가 혀를 빼물고 절정을 맞이한 표정을 지었다.

마족들은 잔인하고 포악하지만 유쾌하다. 드라고니안도 마찬가지로, 설탕을 코로 들이킨 꼴을 보고 다들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캐롯도 박수를 치며 하하 웃다가 물었다.

“와하하! 재미있게들 사네! 드라고니안 아저씨들은 평소에도 이래요?”

“무슨, 설탕이 귀하니까 그러는 거지. 여긴 짠 것은 많지만 단 것은 별로 없어.”

“오오오, 그리고요그리고요?”

치마를 여미고 결계선 앞에 쭈그려 앉은 꼬마 인형이 슬금슬금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식습관으로 시작해서 고향 이야기로 넘어가 풍습, 마족의 종족 분포, 마왕군 입대 조건, 군 생활, 명령 체계, 계급 체계, 그네들이 떠들어도 상관없는 정도의 정보를 모조리 캐내 버렸다.

그걸 그대로 헤리슨에게 보고하자 무척 기뻐했다.

“좋아, 앞으로 포로 식사 담당으로 널 임명할 테니 잘 구슬려서 이것저것 캐내 봐.”

“넵!”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