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사랑의 국경선! (6)
“크억 컥-!”
-이놈들이!
입을 감싸 쥔 마왕의 아들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그들을 노려보더니 갑자기 몸을 거대화하여 괴수로 모습을 바꾸었다.
그러자 오토마톤을 견제하던 도마뱀 인간들이 반색하며 환호하더니 얼른 자리를 비켰다.
“도련님이 나서신다! 자리를 터라!”
트드드득!
-이놈들! 맛을 보여주마! 으억?! 컥!
쾅! 퍽퍽!
몸이 다 커지기도 전에 덤벼든 팔랑스가 그의 배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뒤로 쓰러진 마왕의 아들은 그 상태로 변이를 마치고 다시 일어나 날뛰기 시작했다.
-내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느냐! 나는! 마왕의! 아들이다!
“우워어어어어!!!”
괴물이 입을 크게 벌리고 고함을 내지르자 그 앞에서 망토를 펄럭이던 기사가 팔을 들어 목 뒤로 넣었다.
스르릉!
팔랑스가 망토에 가려진 거대한 검을 뽑으며 말했다.
“보포스, 시르카에게 교전 수칙 1항에 의거 발검 요청.”
“보포스. 수락, 발검.”
스르릉!
5미터짜리 괴물에 대항하여 보포스가 망토 속에 숨겨진 대검을 뽑았다.
이 대검은 놀랍게도 스스로 날을 진동시키며 윙윙 떨리기 시작했다.
덤벼든 보포스는 팔랑스와 호흡을 맞춰 덩치만 커진 괴물에게 초진동검을 휘둘렀다.
이이이이이잉!
스칵!
“캬아아아악!”
-끄으아아악! 내 팔이!
팔이 잘려 나간 괴물이 비명을 지르는 사이에도 팔랑스와 보포스의 협공은 멈추지 않았다.
다만 남은 한 대는 그저 주위를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시르카, 이의 제기. 적진의 적병을 아군 병사의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것은 모순.”
기절한 여마족을 품에 안은 병사가 외쳤다.
“적병이 아냐! 오늘 전부 그만뒀어! 그러니 적군이 아냐! 이건 사랑하는 내 마누라다!”
“내 딸도 있어! 우린 가족이야!”
초주검이 된 마족 여자를 둘러업은 사내가 외쳤다.
“그러니 싸워! 우릴 지켜다오! 제발!”
절박하게 외치는 그들에게서 투구를 돌린 시르카가 즉시 검을 뽑았다.
“조건부 긍정, 시르카 발검. 가세한다.”
쿵쾅쿵쾅!
하드 스킨 오토마톤 3대와 난전을 벌이던 마왕의 아들이 절박하게 외쳤다.
인간은 손가락 하나로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약한데 그것들이 만들어 낸 것은 괴물이었다.
-이러다 지겠어! 좀 도와줘!
곳곳에서 들리는 마음의 소리,
-아, 난 한참 바빠서.
-우리도.
-네 똥은 네가 닦아.
빡친 마왕의 아들 쥬다가 분통을 터트렸다.
-제길! 다 죽여 버릴 테다!
지이이잉!
거대화한 괴물이 입을 크게 벌리고 에너지 포를 발사할 자세를 잡았으나 모든 전투 상황을 섭렵한 오토마톤의 대응이 더 빨랐다.
검을 지면에 박아 넣은 보포스가 몸을 돌리고 깍지 낀 손을 내밀자 팔랑스가 먼저 그의 손을 밟고 뛰어올랐다.
훙!
그다음 시르카.
훙!
2미터가 넘는 갑옷 덩어리가 망토를 휘날리며 날아오르더니 각자의 검을 휘둘러 괴물의 아가리를 좌우에서 찢어 버렸다.
뒤를 이어 달려간 보포스는 그 다리를 베어 버렸고.
-크으윽?!
무릎을 꿇고 머리가 뒤로 꺾인 쥬다는 그 상태로 에너지 포를 발사, 솟구쳐 오른 빛의 기둥이 상공에 체류 중인 보급선을 그대로 격추시켜 버렸다.
쿠오오오오!
꽈르르릉-!
쿠쾅-!
대폭발을 일으키며 흩어지는 부유섬을 성벽 위에서 감상하던 헤리슨이 망원경을 내리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전군 진군. 저기 있는 놈들을 가능한 산 채로 사로잡아라. 이렇게 된 이상 협상 재료로 사용한다.”
창고에 치장 물자로 보관 중이던 오토마톤까지 전부 끄집어낸 경비대는 갑작스런 대규모 북진을 시작했다.
* * *
아르곤 마왕령 접경지 휴전선 마을에서 벌어진 교전에 대한 소문은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마왕군 접경지야 한두 곳이 아니고, 비공식 교전 역시 가끔 보고되는 상황인지라 다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엘프 쪽 채널로 마왕성의 남하가 확인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 사실은 영주를 비롯한 도시 지도부와 적극적인 대응으로 적 병력을 모조리 사로잡은 헤리슨까지 당황하게 만들었다.
“마왕성이 움직여? 왜? 겨우 저놈들 때문에?”
사로잡은 포로들을 현장에 설치한 간이식 결계 감옥에 집어넣고 심문하던 총사령관 헤리슨이 이 충격적인 보고에 가정 먼저 한 것은 성질을 부리는 것이었다.
“이게 다 네놈들 때문이잖아!”
퍽퍽!
철썩철썩!
사고를 친 병사와 모험가들은 본부 귀환 대신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구류 중이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그들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등짝을 후려치자 그때까지 입 다물고 있던 마족 여자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일어섰다.
“야! 내 남편 때리지 마!”
“우리 아빠 때리지 마!”
남편? 아빠?
어지러운 듯 머리를 붙잡고 휘청거린 헤리슨이 가까운 바위에 걸터앉아 킬킬대는 푸시케를 쳐다보았다.
붕대를 감은 그녀는 여전히 유쾌했다.
울화통은 헤리슨만 터져 버렸다.
“야 이 근육 돼지야! 내가 애들 단속하라고 그랬지! 이게 뭐냐고!”
“우휴~! 난 할 만큼 했다고? 저것들이 말은 안 들어 처먹어서 그런 거지. 너야말로 부하들 단속 못한 거 아니냐? 애는 혼자서 생기는 게 아니라구우?”
“끄으아아악!”
속이 타 버린 나머지 하늘에 대고 소리를 질러대는 헤리슨을 보고 목에 구속구를 매단 남자 마족들이 결계 감옥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킥킥댄다.
“역시 인간 여자가 좋아. 저 성깔 좀 봐.”
“귀엽네, 나 저 여자 마음에 들어. 완전 타입.”
“자식들이! 내가 먼저다.”
수군대는 그들을 향해 헤리슨이 도끼눈을 휙 돌렸다.
“이 애새끼들이! 어른을 놀리지 마라!”
곧 마왕의 아들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이래 보여도 우리 전부 당신보다 연상이거든? 하하하!”
“이거 풀고 데이트하자! 3일! 3일만 줘봐! 홀딱 빠지게 만들어 줄게!”
“난 하루면 돼!”
사랑의 큐피트 같은 얼굴의 청년들이 호들갑을 떨자 얼굴에 세로줄이 생긴 헤리슨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쿵-!
묵직한 발걸음과 함께 요즘 신형보다 더 커다란 하드 스킨 오토마톤이 다가왔다. 키만 무려 3미터, 치장 물자로 보관 중이던 전설 속 용사의 오토마톤, 오롤 시리즈였다.
“우와! 마왕성에 장식된 그 녀석이잖아? 아직 움직이는 게 있었어?”
마왕의 아들들이 놀라움과 호기심에 빛나는 눈을 하고 있는 반면, 같이 잡힌 도마뱀 인간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어 버려 그들과 대비를 이루었다.
헤리슨이 콧김을 뿜어내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한 번 더 헛소리하면 저 번데기처럼 만들어 버려.”
번데기는 그들 곁에 누워 있는 전신 붕대, 팔랑스를 비롯한 3총사에게 두들겨 맞아 거의 초주검이 된 쥬다였다.
쿵-! 트드득!
거대한 기사가 흉측한 메이스를 바닥에 세우더니 그 위에 무거운 두 손을 겹쳐 올렸다.
헤리슨은 이제 손톱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항의 사절단 정도가 와서 협상할 거로 생각했는데. 제길!”
하지만 맞이할 준비는 해야 한다.
“메세지 스크롤을 준비해! 영주님께 긴급 연락이다!”
* * *
영주의 집무실, 데오 아르곤 영주의 얼굴에도 세로줄이 그어져 있었다.
모여 있던 사람 중 상회 길드 마스터가 열변을 토했다.
“헤리슨 총책을 경질시켜야 합니다! 애초에 경비대도 아닌 모험단에게 사령관직을 맡긴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말려도 시원찮을 판국에 사태를 더 키우다니! 믿을 수 없군!”
사태 수습을 위해 고민하느라 요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잔 영주가 쏘아붙였다.
“그럼 상회 길드 마스터께서 그곳의 차기 사령관직을 역임하시겠습니까?”
상회 길드 마스터가 어버버거리자 집사가 헛기침을 좀 했다.
고개를 끄덕인 영주도 속이 타는지 다시 말을 이었다.
“실례했군요. 어쨌든 그런 건 나중에라도 충분히 따질 수 있습니다. 지금은 대비를 먼저 해야 합니다.”
이른바 도시 총력전 대비.
“시나리오는 이미 짜여 있습니다. 그대로 실행하십시오. 궁금한 내용과 진행 상황의 보고는 1층 상황실로 오시면 됩니다.”
집사장이 매뉴얼 책자를 나눠주자 각 단체의 장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의자에 기대어 짧은 한숨을 내쉰 영주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버님은?”
“앞서 휴전선 마을로 출발하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그가 말했다.
“준비는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답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놓읍시다. 메이드 케이스를 불러주세요.”
딸깍.
영주와 집사장이 있는 방 안으로 메이드 케이스가 음흉하게 웃으며 들어섰다.
“몇 년 못 버텼네요?”
킥킥대는 고르곤의 중얼거림에 영주는 굳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협정은 유효합니까?”
“그래도 마왕성은 좀 예외인데, 추가금 붙어요?”
얼굴이 확 펴진 영주가 물었다.
“오! 얼마입니까? 뭘 원합니까?”
현자의 마녀 고르곤은 대답 대신 씩 웃기만 했다.
영주와 마녀가 추가금 협상을 벌이는 사이, 각 길드 마스터는 관리 중인 상회와 공방에서 생산하는 공산품을 전부 전쟁 대비 물자로의 전환을 지시했다.
경비대는 비상 근무 체제에 돌입, 도시 내에서의 시가전까지 고려하여 곳곳에 무기와 병기를 준비했다.
이 소식은 상비약 가공 공장을 운영하면서 요즘 탄탄대로를 다지고 있는 포비에게도 들려왔다.
“엑? 전쟁 대비요? 누가 쳐들어와요?”
“마왕성이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대! 하여튼 그렇게 준비해 줘! 나중에 따로 정산할 테니까!”
상회 길드에서 찾아온 남자는 그렇게만 말하고 뛰어가 버렸다.
포비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마왕성이 내려온다고?”
종이 한 장을 받아 든 포비가 머리를 긁적이며 건물 안 작업장으로 들어섰다.
각자 자리에 앉아 약초를 가공하여 알약으로 만들어 포장하던 사람들이 몰려왔다.
“포비, 무슨 일이니?”
“마왕군이랑 한바탕 싸움 날지도 모르니 대비 물자를 만들라는데요? 이건 사장님하고 의논 좀 해봐야겠네. 잠깐 쉬고들 계세요.”
직원들은 대부분 인근에 사는 여자들로 그중에는 경비병 아내도 있었다.
“그거 말인데, 우리 바깥양반 말로는…….”
엄마들의 소문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숨겨진 뒷이야기를 전해 들은 포비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 피식 웃었다.
“푸후후! 사랑의 국경선이네요.”
“얘가 참, 웃을 때가 아니라고? 좋은 남자들 다 마족 여자에게 뺏긴다니까?”
허리에 손을 올린 포비는 가슴을 쑥 내밀었다.
“난 괜찮아요! 이미 신랑감을 키우고 있으니까!”
어리둥절한 아낙들의 얼굴로 짓궂은 웃음꽃이 피어 버렸다.
비밀 통로로 후다닥 밑으로 내려간 포비는 지하 정원에서 온실을 가꾸고 있는 노인들과 수다를 떠는 검은 머리 마녀를 찾았다.
“사장님!”
커다란 엉덩이를 치켜세우고 약초의 생육 상태를 살피던 투나가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린다.
“어, 응? 사장님? 누구?”
“허허, 마녀님을 말하는 것이구먼.”
김을 매던 늙은이들이 웃어대자 투나도 헤벌쭉 웃음 지었다.
“사, 사장님. 듣기 좋다. 흐흐히히.”
그녀는 곧 치마를 휘날리며 총총 달려온 포비와 마주했다.
여차저차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상회 길드의 안내서까지 받아 본 투나였지만 별로 놀라진 않았다.
“아, 이, 이거. 그렇지 않아도, 우, 우리 공방 사람들도 전부 여기로 갔어.”
“그래서 피난 온 거로군?”
지하 정원에는 마침 수집꾼으로 활약 중인 모르핀도 와 있었다.
포비가 그녀를 보더니 안내서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글이 맞아요? 마왕성이 온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성이 움직여요?”
“말 그대로야. 마왕성은 커다란 부유섬에 올려져 있거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편이지.”
“호오옥!”
모두가 놀라 버렸다.
모르핀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100년쯤 전에 여기에도 몇 번 왔었는데 그걸 다 잊어버렸나?”
“100년 전에 있던 사람은 여기에 없거든요?”
지하 정원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던 모르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새삼 아쉬운데.”
“마족은 몇 살까지 살기에 그래요?”
마침 외출 준비를 하고 나타난 모르핀은 쭈글쭈글한 늙은이들을 힐끗 보더니 대답을 회피했다.
“뭐, 엘프랑 비슷한 정도다. 그보다 나 잠깐 나갔다 오마.”
“아, 안돼! 카, 카드 게임 마저 해야지! 이기고 도망가는 건 용서할 수 없어.”
늙은이들의 놀음판에 끼어들었다가 가진 돈을 몽땅 모르핀에게 털린 투나가 버럭 화를 내자 모르핀이 킬킬거렸다.
“사실은 나도 신랑감을 키우는 참이었다. 다들 그쪽으로 몰려갔다니 잠깐 가서 상황이나 살펴보기로 할까.”
귀가 좋은 모르핀은 위쪽에서 나는 소리조차 듣고 있었다.
짐을 챙긴 그녀는 뒷문으로 사라졌다.
망연하게 그걸 보던 포비가 중얼거렸다.
“크게 번지지는 않겠죠?”
“괘, 괜찮아. 여기 숨어 있으면 되니까.”
고개를 끄덕인 포비는 이제 전쟁 대비 약품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 그녀를 정신없이 만들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