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사랑의 국경선! (5)
턱!
머리채를 붙잡은 마왕의 아들이 사나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가 저 괴물의 어미냐? 저걸 낳고 꼴에 머리까지 틀어 올린 거야?”
쾅!
마족은 날 때부터 천부적인 전투 민족, 눈이 돌아간 쿠핀이 팔꿈치를 날리더니 이어서 다리를 쭉 들어 올려 마족 남자를 걷어차 버렸다.
퍽!?
“이익!”
그녀의 다리는 상대의 목을 후려친 상태로 붙들렸다.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은 이 마족 남자는 진심으로 화난 얼굴로 물었다.
“너 신발 좋네, 겨우 이런 거나 얻으려고 그랬던 거야?”
쾅!
주먹 한 방에 코피가 터져 버린 쿠핀이 휘청거린다.
놀란 푸시케가 달려와서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만! 그만해! 여기까지만 하라고! 이런 일 흔하잖아!”
“맞아, 그런데 너무 흔하잖아. 애새끼가 대체 몇이나 되는 거야? 저것들 다 누구 자식이냐고. 엉?”
힐끔 시선을 돌려보니 주변에 미노만 나온 게 아니었다.
아뿔싸!
푸시케가 모두에게 외쳤다.
“애들 데리고 도망쳐! 빨리!”
“가긴 어딜 가!”
쾅! 콰앙!
눈이 돌아간 마왕의 아들 쥬다가 난동을 피우기 시작하자 그에 맞서서 마족 엄마들도 덤벼들었다.
“보급도 제대로 안 보낸 주제에 개소리 지껄이고 있네!”
“마왕의 아들이면 다냐! 내 새끼 건드리지 마!”
누군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쿠핀도 코피를 손등으로 닦으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극적인 전투 상황은 그녀들의 몸에 변화를 일으켰다.
안구가 붉게 물들고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등의 이른바 전투 형태로 바뀐 것이다.
“캬악!”
쾅-!
그런 마족 전사가 여럿이서 덤볐으나 역시나 마왕의 아들, 거기에 더해 마족 남자의 전투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쪽은 전투 형태를 갖추지 않은 평상 상태임에도 그녀들 전부를 압도했다.
퍼퍼퍼퍽!
덤벼들던 마족 엄마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타격을 얻어맞고 나뒹굴어지는데 연이어 발길질이 날아온다.
쾅!
충격에 대비하던 여자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든든한 그녀들의 대장이 앞에 나와 주먹을 내밀고 있었다.
푸시케가 외쳤다.
“애들 데리고 피하라고 병신들아!”
엉망이 된 마족 엄마들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둘러 몸을 일으켜 달려갔다.
난데없는 싸움질에 잠자코 구경하던 보급선 단장 도마뱀 인간이 팔짱을 끼었다.
“오호라, 이번엔 그대가 나서는 건가?”
“그래! 새끼들아! 방해하지 마라! 보급이나 날라!”
“방해는 무슨, 도련님들의 임무에는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마왕군이 어떻게 결속을 유지한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렇게 지껄인 보급선 단장이 부서진 집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서 쥬다가 파편을 치우고 일어섰는데 화가 머리끝까지 난 얼굴이었다.
“너 이 새끼, 네가 경비대장이면 부하들 단속을 제대로 했어야지!”
찡-! 빠드드득!
눈에서 빛을 뿜어낸 마왕군 제3국경선 수비대장 푸시케가 이빨을 드러내고 온몸에 힘을 주자 이마의 뿔과 송곳니가 튀어나오고 팔과 다리의 근육도 평소보다 더 부풀어 올랐다.
“아니, 글쎄! 이것들이! 내 말을 좀처럼 듣질 않더라고!?”
애들이 귀엽기도 하고.
두두두두!
성난 황소처럼 덤벼든 수비대장은 마왕의 아들과 거의 호각의 싸움 실력을 선보였다.
덕분에 주변 움막이 남아나질 않았다.
쾅쾅! 와장창-!
이 틈에 달려간 쿠핀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내동댕이쳐진 미노를 추슬렀다.
망연자실한 마족 엄마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린다.
“미, 미노.”
마족은 그 강함 때문에 항상 유쾌하다. 그래서 화는 잘 낼지언정 잘 울지는 않는다.
다만, 아이 잃은 엄마가 되었을 때는 예외.
게다가 이 아이는 저 혼자 길러낸 것이 아니었다.
축 늘어진 미노를 품에 안고 훌쩍이는 그녀 주변으로 쿵쾅거리는 소음이 잦아들더니 거친 숨소리가 가까워졌다.
흐릿해진 시선을 돌려보니 피투성이가 된 푸시케의 머리채를 움켜쥔 마왕의 아들이 보인다.
남자 마족의 강력함이 여실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목에 핏대가 솟아난 쥬다가 외쳤다.
“적국의 병사들과 놀아나? 전부 즉결 심판이다. 병신 같은 것들!”
무릎을 꿇고 앉은 쿠핀이 눈을 질끈 감고 미노를 끌어안았다.
그때 그녀의 코끝을 자극하는 익숙한 냄새.
정찰병 코트에 투구를 눌러쓴 누군가가 그녀들을 가리고 섰다.
검은색으로 비 반사 처리된 롱소드는 그 칼날만 매섭게 번뜩인다.
같은 색의 투구 아래, 마스크 사이에서 빛나는 눈동자처럼.
고개를 쳐든 쿠핀이 울먹였다.
“왜, 왜 왔어? 죽는다고!”
경비대 소속의 정찰병 겔은 5년 전 쿠핀이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냄새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가린 그는 눈이 잔뜩 충혈된 채 중얼거렸다.
“내 마누라랑 애를 이렇게 만든 게, 너냐?”
손에 쥔 푸시케를 내던진 쥬다가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짧은 한숨을 쉬었다.
“갈수록! 넌 또 뭐야?”
챙-!
어랍쇼?
순식간에 얼굴 앞으로 날아오는 롱소드에 쥬다가 조금 놀랐다.
인간 병사치고는 꽤 빠르다. 게다가 혼자가 아니야.
이 인간 병사 놈의 곁에는 검은색 방열 가발을 늘어뜨린 자동 인형이 함께 있었다.
둘은 거의 완벽하게 호흡을 맞춰 동시에 움직이는 검술을 선보였는데, 칼날 두 개가 양쪽에서 같이 날아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왕의 아들을 뒤로 몇 걸음 물러서게 만들 정도였다.
챠챠챠챵! 챙!
손등에서 급히 뽑아낸 뿔 칼로 그들의 검을 견제했는데 검술 솜씨만은 저쪽이 우월했다. 그렇다, 검술 솜씨만.
쾅!
주먹질 한 방에 오토마톤이 날아가고 거기에 휘말린 겔은 뒤로 구르더니 쿠핀 쪽으로 쓰러졌다.
쿠핀은 울상을 지으며 화를 냈다.
“멍청아! 그런 건 나한테나 통해! 어서 돌아가! 너까지 죽어!”
바닥에 드러누워 씩씩대던 그가 손가락으로 마스크를 끌어내리더니 까끌까끌한 턱수염이 돋아난 얼굴로 처음으로 불같이 화를 냈다.
“제길! 헛소리 지껄이지 마! 이 멍청한 여편네야! 자기 처자식을 버리고 도망가는 놈이 사람이냐고! 짐승도 그렇게는 안 해!”
입을 꾹 다문 쿠핀이 글썽이는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겔은 롱소드를 꼬나들고 그에게 맞섰다.
그 모습에 쿠핀은 눈물이 핑 돌아 버렸다. 그리고 웃었다.
분명히 나보다 약한 놈인데.
“머, 멋진 척이나 하고!”
마왕을 앞에 둔 용사처럼 쿠핀과 미노에게 등을 보이고 선 겔이 실실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봐,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데.”
찢어진 겉옷을 벗어 던진 마왕의 아들 쥬다는 멈추지 않고 그들에게 다가서며 대답했다.
“죽기 전에 뭐라 떠들던지 그건 네 자유다. 재수 없는 인간 놈아.”
땡그랑.
마족 여전사들에게도 단독으로는 밀리는데 맘먹고 덤비는 남자 마족에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검을 던진 겔이 허리를 숙이며 정중히 부탁했다.
남자라면 언젠가 한 번쯤 하게 될 말이기도 했다. 상대가 이런 게 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마왕님,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다음 순간,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마왕의 아들은 핏줄이 돋아난 커다란 주먹을 그들에게 내리꽂았다.
쾅-!
훙-!
무지막지한 주먹질에서 일어난 풍압은 바람이 되어 방열 망토를 펄럭이게 했다.
쥬다의 주먹은 커다란 기계 팔에 붙들려 있었다.
팔을 내밀고 있던 쥬다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주먹을 붙잡아? 뭐야 이놈?
눈을 질끈 감고 있던 겔이 고개를 들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팔랑스!”
왁스 광이 번쩍이는 장갑판을 드러낸 갑옷 거인이 팔을 내민 채 마왕의 아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교전 지역에서 즉시 대피하라.”
“이봐! 겔! 서둘러!”
고개를 돌려 보니 이쪽에 처자식을 둔 병사와 모험가들이 달려와 있었다. 그들은 서둘러 쓰러진 가족들을 부축하더니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거리를 벌려! 오토마톤이 싸운다!”
겔 역시 몸을 돌려 두 사람을 번쩍 안아 들고 자리를 피했다.
달아나는 자들을 보고 눈썹을 곧추세운 쥬다가 팔을 빼려고 했으나 풀리지 않는다.
마왕의 아들은 자기 주먹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기계 거인을 올려다보며 눈을 부릅떴다.
“이거 안 놔? 이 괘종시계 사촌 같은 놈아.”
괘종시계 사촌이 대답했다.
“본 전술 병기에 대한 모욕과 자국민의 피해를 확인, 교전 수칙 1항에 의거. 국지전을 개시한다.”
콰아앙-!
하드 스킨 오토마톤의 번개 같은 주먹질을 얻어맞은 마왕의 아들이 냅다 뒤로 날아가 집을 박살 내 버렸다.
팔랑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뒤쫓아 달렸다.
쿵쾅쿵쾅-!
“으, 으악! 괴물! 괴물이 온다!”
“오지 마! 오지 마!”
“진정해! 우리 편이야! 우리 편이라고!”
망토를 휘날리며 달리는 갑옷 거인을 보고 옛 기억을 떠올린 마족 병사들이 기겁했다.
발광하는 그녀들을 지나친 팔랑스는 역정을 내며 일어서려는 마왕의 아들을 무지막지한 다리로 걷어차더니 다시 쓰러진 그를 이제 밟아대기 시작했다.
쾅쾅쿵쾅-!
쿵쾅쿵쾅!
뒤를 이어 달려온 하드 스킨 오토마톤 두 대가 더 현장에 난입, 팔랑스와 함께 마왕의 아들을 아주 짓이길 생각으로 밟아댔다.
쾅쾅쿵쾅!
마왕의 아들 쥬다는 소리를 지를 틈이 없게 되자 정신파로 비명을 질러댔다.
-으어억! 이, 이놈들이!
번쩍! 파지직! 빠자작!
갑자기 그들 사이에서 파란 번개가 터져 오르자 하드 스킨들이 재빠르게 물러섰다.
피투성이가 된 쥬다가 부들부들 일어서는데 상처가 급속 재생하고 있었다.
“쿨럭! 이, 이 자식들이?!”
찌이잉!
분노한 그의 눈이 번쩍이며 별안간 머리 위로 마법진이 떠올랐다.
얻어맞고 쓰러져 있던 푸시케가 힘겹게 고개를 돌리고 외쳤다.
“피, 피해! 다들 피해! 고유 마법을 쓴다!”
피투성이가 된 쥬다가 케헤헤 웃으며 외쳤다.
“크하하! 늦었다! 자식들아! 통째로 날려주마! 디스인터그레…… 우어업-?! 커헉! 아오아아!”
쾅! 뿌드득! 찌이익!
시뻘건 도끼눈을 뜬 기계 인형이 그의 멱살을 붙잡고 입에 주먹을 박아 넣더니 뭔가를 잡아당겼는데, 끔찍하게도 혀가 뽑혀 나왔다.
고개를 숙이고 비명과 피거품을 게워내는 마왕의 아들을 내려다보며 뽑아낸 혀를 휙 던진 팔랑스가 붉은 눈으로 중얼거렸다.
“마법사 대응 원칙 실행.”
캉-!
뭔가가 그의 등에 맞고 떨어졌다.
팔랑스가 뒤를 돌아보니 용맹한 도마뱀 인간들이 삼지창을 꼬나들고 서 있었다.
“감히 도련님께 무슨 짓을!”
쿠쿵-! 척!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 갑작스러운 그림자가 생겨났다.
같은 모델의 형제기 보포스가 막아선 것이다.
그를 올려다보는 도마뱀 인간들의 눈빛이 흔들린다.
장수하는 마족들은 대부분 과거 전쟁의 참전자, 망토를 두른 이 갑옷 덩어리만 보면 빛의 검을 쥐고 끝도 없이 밀려드는 용사의 오토마톤이 떠오른다.
분노한 보급단장이 외쳤다.
“오, 오롤이, 이놈들은 그 오롤이 아니다! 겁먹지 마라! 게다가 셋밖에 없잖느냐!”
“단장님! 오롤이 맞습니다! 도망쳐야 합니다! 이놈들에게 날개를 찢긴 동족을 잊으셨습니까?”
착란을 일으킨 녀석들이 저마다 날개를 쫙 펼치더니 서둘러 날아올랐다.
“모두 날아! 날아올라! 저놈들은 높이 뛰질 못-! 우왁?!”
아래로 쑥 떨어지는 도마뱀 인간의 등에는 웬 사람이 올라타고 있었다.
그 말고도 날아온 무언가에게 붙들려 떨어지는 자들이 부지기수.
“저건 또 뭐냐? 인간은 날 수가 없는데?”
“인간이 아니다!”
아래에서 동료를 짓밟고 고개를 드는 것은 이목구비가 단순했다.
단정한 앞머리 사이로 드러난 것은 눈 말고는 없는 하얀 얼굴.
투투퉁-!
때마침 울리는 묵직한 소리, 공중에서 날개를 퍼덕이던 도마뱀 인간들이 고개를 돌리자 저편 성벽 쪽에 세워진 투석기가 무언가를 던지고 있었다.
“미친놈들이 자동 인형을 쏴대고 있다!”
“인간들의 자동 인형이다! 피해! 붙잡힌다!”
“도망치지 마라! 우리는 드라고니안! 용의 후예다! 그리고 이 작은 놈들은 약해! 충분히 해볼 만하다! 도련님이 큰 놈들을 상대하시는 동안 우리는 이놈들을 해치우자! 캬아악!”
캉! 채챙!
용맹한 도마뱀 인간 하나가 숏소드를 뽑아 들고 오토마톤을 몰아세우자, 그 모습에 용기를 얻은 자들이 진지로 공수 낙하하는 적 자동 인형들과의 싸움에 동참했다.
챠챠챵! 챙!
사방에서 싸움질이 끊이질 않는다.
갑작스러운 양측의 적극적인 대립에 상황을 지켜보던 보급단장은 완전히 당황해 버렸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우리는 그저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으려 했을 뿐인데, 왜 저쪽 놈들이 쳐들어오고 난리지?
“이럴 때가 아니다.”
펄럭!
날개를 펼친 보급단장은 급히 연락을 위해 상공에 대기 중인 보급선으로 날아올랐다.
* * *
한편 성벽 위에선 소식을 접한 헤리슨은 아예 그들을 돌려보내지 않을 생각으로 경비대에 총동원령을 지시했다.
망원경을 내린 그녀가 잔뜩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르곤 경비대에 긴급 연락, 휴전선에서 마왕군과 현재 시나리오 3번에 준하는 교전 상황이 발생했으니 절차에 따라 행동할 것, 그리고 저쪽으로 넘어간 바보천치들의 명단도 작성해라.”
짧은 한숨을 내쉰 그녀가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두통약과 위장약을 준비해 줘. 지금 머리와 속이 동시에 쓰리고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