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291화 (291/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투기장! (8) 291 >

“가드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저쪽 벤치에서 누군가가 무기를 집어 던졌다.

팔다리에 의수를 찬 것이 꼭 아리에테 같아서 캐롯이 눈여겨보는데 날아오는 무기도 범상치 않았다.

착!

캐롯의 눈이 커진다.

“에? 너 설마!”

착착!

거대한 가위 칼을 든 오토마톤이 도끼눈을 떴다.

말은 하지 않았으나 눈빛에 분노가 서려 있다.

“부유섬의 그 정원사!”

수백 년 동안 유유자적하게 저만의 공중 정원을 가꾸다 웬 침입자의 등장에 유명을 달리했던 고대 엘프들의 오토마톤이 지금, 역설계를 마치고 다시 돌아왔다.

촥! 촤아악!

2미터쯤 되는 커다란 가위를 마치 검처럼 휘두르며, 엘프들의 오토마톤 가드나가 캐롯을 몰아세우기 시작한다.

캉-!

크게 벌어진 가위 사이에 들어간 캐롯이 고릴라 팔로 칼날을 붙잡았으나 그 칼날은 금속제 손바닥을 자르고 들어왔다.

캐롯이 당황했다.

“오요요!?”

서걱!

가위를 접어 버리자 가로로 잘려 버린 고릴라 암즈가 바닥에 나뒹군다.

자켓처럼 만들어 입고 벗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캐롯은 몸만 잽싸게 빼낸 후였다.

가벼운 아동복 상의를 걸친 캐롯이 하얀 두 팔을 내밀고 격투 자세를 잡았으나 저 가위 앞에서는 너무 불리했다.

“아직 한 가지 남았거든!”

회전하는 오르골 인형!

서걱! 서걱!

무지막지한 가위질이 날아오는 통에 멋 부릴 시간도 없다.

키이이이잉!

제자리에서 팽이 같은 모양으로 돌기 시작하자 칼날이 튀어나왔다.

캐롯 팽이는 그 상태로 가위 든 정원사에게 덤벼들어 부딪혔다.

캉캉! 카가가각!

양측의 오토마톤들이 박진감 넘치는 난전을 벌이는 사이, 배팅이 거의 완료되고 시간도 얼추 다되어 간다.

본부석의 한 남자가 대난전 깃발을 올리려는데 침입자가 쏟아져 들어왔다.

쾅!

문을 걷어차고 본부석으로 돌입한 사내들은 하나같이 상의를 벗은 채거나 심하면 속옷만 걸친 기괴한 몰골이었다.

“경비대다! 네놈들을 불법 도박 혐의로 체포한다!”

“뭐야?! 이 무슨 변태들이야!”

“이런 제길! 어떻게 들어온 거야!”

“꼬리가 길면 밟히는 거지! 자식들아! 이리 와!”

투기장 운영자들의 저항이 시작됐다.

“옷이나 처 입고 다시 기어 와라!”

“이놈들 맨몸이나 마찬가지야! 오토마톤을 데려와!”

이윽고 정말로 경호 오토마톤이 몽둥이를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회심의 미소를 머금은 토르페도가 외쳤다.

“정말 아무 준비도 없이 왔을 거로 생각했나? 애들아! 내가 책임질 테니 자동 인형은 다 부숴도 된다! 신시아가 고칠 테니 걱정 마라!”

“어? 저, 정말입니까?”

그러자 속옷만 입은 청년들이 앞으로 나서서 오토마톤과 싸움을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호각의 실력을 선보였다.

자동 인형과 양손을 붙들고 힘겨루기하는 경비대 청년을 보고 모두가 기겁했다.

“말도 안돼! 이놈들은 뭐야?”

“으하하! 강화 인간 용병이다! 사람은 우리가 팰 테니 너희들은 오토마톤의 접근을 막아!”

저마다 목에 묘한 목걸이를 건 사내들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속해서 쏟아져 들어오는 자동 인형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본부석에서 난장판이 벌어지는 사이 소식을 접한 루칸이 급히 외쳤다.

“플랜 B다! 플랜 B! 철수 준비 서둘러!”

루칸은 애초에 지하 투기장을 열 때 이런 상황까지 전부 고려했었다.

“언젠간 들키게 되어 있었어! 각자 할 일 알지? 서둘러라!”

그의 전속 부하들이 바쁘게 뛰어다니며 도주 준비를 서둘렀다.

경비대가 난입한 소식은 전용 객실에서 경기를 관람 중이던 VIP에게도 전해졌으나 그녀는 한참 정신이 팔린 상황이었다.

입고 있는 차림새와는 다르게 그녀는 상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고 있었다.

“좋았어! 가랏! 아차차! 아깝네! 버릇없는 땅콩 녀석을 가위로 잘게 썰어 버리는 거야!”

“빠, 빨리 피하셔야 하는데······!”

소식을 알리러 온 사내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리자 정장에 검은 색안경을 낀 경호원들이 그를 제지했다.

“우리는 알아서 몸을 뺄 테니 당신들부터 피하세요.”

“어, 예. 알겠습니다.”

남자가 몸을 돌린 직후, 전용 객실의 창밖으로 더 큰 함성이 울려 퍼진다.

별안간 카운트 무시 대난투 깃발이 올라온 데다 더불어 몬스터를 가둬놓은 마수문도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화장을 진하게 하고 머리 모양도 바꿨지만 목소리만은 그대로인 마녀가 신나게 웃고 있다.

“아하하! 싸움 구경은 언제나 신나!”

경기장에서 정신없이 싸우던 모두가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를 보고 완전히 당황해 버렸다.

“꾸에에에에!”

“우어어어엉!”

두두두두!

“뭐냐! 이게 무슨 일이야!?”

“어랍쇼?”

스틸레인과의 겨루기를 중단한 아리에테가 다급히 항의했다.

“어이! 심판! 이게 무슨 일이냐! 앗! 이봐! 어딜 가!”

무슨 바쁜 일인지 심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 버렸다.

스틸레인은 케헤헤 웃더니 마주 오는 몬스터에게 닥돌을 시전하며 외쳤다.

“필림! 좀 거들어라! 엄호해!”

벤치에서 뒷짐을 지고 있던 필림이 팔을 풀더니 경기장으로 올라섰다.

“여전히 사람 부려 먹는 것이 거치십니다.”

칭-!

다시 고개를 든 필림 장로의 눈은 새하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파지지직! 쉭쉭!

스틸레인이 날뛰는 곳으로 푸르른 번개와 바람 칼날이 휙휙 날아드니 몬스터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거꾸러진다.

엘프들의 사회에서 마법사 길드 역할을 하는 검은 소나무 탑의 장로가 실력을 뽐내기 시작하자 아주 제대로 된 난장판이 시작되었고, 여기에 곁들여진 캐롯의 다급한 목소리는 한층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누오오옵-! 이 미친 녀석 좀 말려봐!”

서걱서걱!

고개를 돌린 아리에테의 눈에 비친 것은 햄스터처럼 4발로 부리나케 달리는 캐롯과 커다란 가위를 들고 뒤쫓는 무시무시한 오토마톤의 모습이었다.

쿠오오오오! 크악! 칵!

두두두두두!

경기장에 풀려 버린 괴물들은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싸워댔다. 이유는 크게 뭉뚱그려 하나로 귀결된다.

먹기 위해서건,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건, 모든 것은 생존을 향한 끝없는 투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쾅! 퍼퍼퍽!

몸을 날린 스팅이 과격한 찌르기 공격을 선보이자 덩치가 작은 괴수들은 그대로 몸에 구멍이 나서 쓰러졌다.

로테 역시 아리에테와 함께 몬스터를 때려잡았다.

이 난장판에 일이 어찌 된 것인지 알 리가 없는 관중들은 당황하면서도 그저 환호했다.

“우와아아아!”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경기는?”

“알 게 뭐야! 멋지다! 다 잡아라!”

도끼 창을 휘둘러 몬스터를 사냥하던 아리에테가 쓰러뜨린 괴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몸뚱이는 흔한 멧돼지 같은데 훨씬 크고 얼굴은 두더지 같이 생긴 이상한 녀석이었다.

“이건 뭐냐? 이런 몬스터도 있었어?”

“북쪽 마족의 땅에 있는 괴물이지. 캐롯의 말로는 낭만 강도단 친구들이 공급했다던데 어떻게 잡아온 건지 모르겠군.”

배낭에 무기를 잔뜩 매달고 경기장으로 올라온 크랭크의 설명에 한참 바쁘게 뛰어다니던 캐롯이 버럭 외쳤다.

“야! 빨간 머리 엘프! 빨리 이 자식 멈추게 해! 말리라고!”

다급해진 캐롯이 막말을 해대자 몬스터를 때려잡다 말고 낄낄 웃어대던 스틸레인이 그를 불렀다.

“가드나! 그쯤 해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냐. 여기 좀 도와줘!”

착착착!

가드나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고, 코를 좀 벌렁거린 스틸레인은 곁에서 마법을 쏴대는 필림 장로를 불렀다.

“가드나.”

착!

그제야 멈춰 선 가드나가 고개를 돌린다.

필림이 손짓하자 가위질을 하면서도 캐롯을 번갈아 보던 가드나는 결국 사적인 원한보다 마스터의 부름을 우선시했다.

“어휴! 미친 오토마톤의 가위질에 썰려 나갈 뻔했지 뭐야!”

땀이라도 닦는 듯 이마를 훔치는 시늉을 하며 캐롯이 다가오자 크랭크는 서둘러 여분의 전투복을 꺼내 입혀주었다.

옷을 갈아입는 와중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캐롯이 말했다.

“이거 아무래도 양동작전 같지? 딱 시선 끌기 좋은 이벤트인데.”

치마를 올려주던 크랭크가 다음으로 자켓을 입히며 말했다.

“나라도 이 정도 준비는 해놨을 거다. 적당히 눈에 보이는 녀석들만 처리하고 우리도 철수하자.”

“에? 우리가 몸을 빼면 저것들은 누가 잡아? 놔두면 사람 잡아먹는 거 아냐?”

그러고 보니 아직 관중석에는 멋모르는 구경꾼들이 응원 삼매경에 빠진 채였다.

그들을 잠깐 쳐다본 크랭크는 심판이 던지고 간 확성기를 주워 캐롯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귓가에 뭐라 쑥덕이자 으헤헤 웃음 지은 캐롯이 외쳤다.

-아아! 지금부터 이벤트 매치! 관중 중에 한가락하는 사람은 좀 거들어! 보상은 각자 때려잡은 마왕류의 핵석 소유권!

핵석의 소유권!

말이 끝나자마자 관중석에서 사람들이 마구 일어선다. 다들 잔뼈가 굵은 모험가들이나 오토마톤을 가진 사람들, 게다가 짐 싸서 도망치려던 투기장 전사들도 난입했다.

“핵석은 귀해! 마법사에게 팔면 떼돈을 벌 수 있어! 퇴직금으로 챙겨가자! 가라! 나의 더치와이프!”

“솜입니다. 부디 이름으로 불러주십시오.”

돌격창을 꺼내 든 오토마톤 솜을 선두로 오로지 싸움을 위해 개조된 자동 인형들이 득달같이 덤벼들기 시작했다.

한참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앞에 두고 갑자기 경비대에서도 몰려 들어와 관중들을 유도했으나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생전 처음 보는 화려한 마법과 기계 인형들이 날뛰고 욕심에 물든 모험가들이 괴물과 벌이는 아귀다툼은 두고두고 회자될 구경거리였다.

“경기는 중단되었습니다! 모두! 안전하게 일어나 투기장 밖으로 나가 주시오!”

“단순 관람자에겐 죄를 묻지 않는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라!”

결국 강제로 해산을 유도하려는데 전표 다발을 움켜쥔 사내들이 눈에 불을 켜고 대들었다.

“당신들 누구야!? 이쪽은 전 재산을 걸었다고! 으걱?!”

웃통을 벗고 불끈불끈한 근육을 드러낸 커다란 남자가 항의하는 사내의 얼굴을 한 손으로 붙잡았다.

“사행성 도박은 불법이다. 잠깐 경비대로 따라오실까.”

관중석이 정리되는 동안 경기장에서 한마음 한뜻이 되어 협공을 벌인 모험가들은 기어코 가장 큰 마왕류마저 쓰러뜨렸다.

쿵-!

“좋았어! 이제 시작하자! 각자 잡은 거 말고는 건드리지 말자고!”

하지만 말이 그렇지 곳곳에서 서로 잡은 몬스터라며 시비와 드잡이가 일어났다.

그중 몇몇은 벌써 때려잡은 마왕류 몬스터에서 핵석을 뽑아내 즐거워했다.

심장 부근을 해체하느라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사내가 웃는다.

그는 콩알 같은 진주색 돌멩이를 집어 들고 있었다.

“으하하! 진짜로 핵석이 있어! 이 정도면 얼마지?”

하지만 전부가 핵석을 가진 것은 아니어서 허탕을 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고, 징그럽게도 대형 마왕류의 배를 가위로 서걱서걱 찢으며 들어가 주먹만 한 핵석을 가지고 나온 오토마톤도 있었다.

“와, 엄청 크잖아!?”

“보쇼! 엘프 영감! 다 같이 잡았으니 공평하게 나눠야 하는 거 아뇨?”

“옳소!”

허탕을 친 사내가 억하심정에 그리 외치자 코를 벌렁거리며 동조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

뒷짐을 진 필림 장로는 가드나가 보여주는 핵석을 살피다가 허리를 폈다.

“까놓고 말하면 이건 도시 소유가 아니겠소? 보상금은 도시에 요구해야지. 그렇지 않은가?”

경기장으로 내려온 경비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웃통을 벗은 토르페도가 우람한 대흉근을 의도적으로 움찔거리며 말했다.

“우리는 경비대다! 다들 손에 든 것과 무기를 내려놓아라! 오토마톤은 무장해제! 불법 투기장에 협력한 너희들을 전원 연행하겠다!”

모험가들의 얼굴이 당장 험악해졌다.

“뭐가 어째? 갑자기 나타나서는 무슨 개소리야?”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시던가! 얘들아! 이번 대전 상대는 경비대 놈들이다!”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쓰러뜨린 몬스터에 커다란 엉덩이를 올리고 앉아 쉬고 있던 빨간 머리 대장로가 중얼거렸다.

“귀찮게 됐네. 필림, 구경만 하지 말고 정리 좀 해.”

뒷짐을 지고 흐뭇하게 그들의 대립을 구경하던 필림 장로가 헛기침을 좀 하더니 끼어들었다.

“나는 엘프 장로회 일원이요. 보상금 관련으로 댁의 영주님을 좀 만나 뵙고 싶소만?”

보상금 관련! 이 한마디에 그 자리의 모인 사람들 전부를 자기 편으로 만들어 버린 필림 장로를 보고 캐롯은 캬~! 하는 감탄사를 내놓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