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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88화 (288/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투기장! (5) 288 >

견제구를 던지고 몸을 돌린 스틸레인은 서둘러 스팅과 자리를 바꿨다.

롱소드 하나 달랑 들고 나온 스팅은 돌기둥을 피해 바닥에 안착한 캐롯과 시선을 마주했다.

캐롯이 먼저 손을 들고 인사한다.

“안녕. 나는 캐롯.”

“반갑습니다. 나는 스팅.”

스팅이 그러면서 몸을 숙이더니 롱소드를 뒤로 당겼다.

어디서 많이 본 자세라고 생각하는데 크랭크가 먼저 알아보았다.

“저것은?”

캐롯이 손바닥을 부딪쳤다.

“베누스의 찌르기 같아!”

촤아아악!

발을 디딘 지면이 폭발하며 스팅이 튕겨 나가는데 마치 거대한 창날이 쏘아진 것 같다.

하지만 캐롯은 베누스와의 전투에서 같은 공격기를 겪어보았기 때문에 손쉽게 회피했다.

“이건 바로 앞까지 당겨서 피하면 되는 거야. 이쯤에서, 요렇게!”

휙!

콰쾅-!

찌르기 주제에 돌기둥을 때려 박아 쓰러뜨린 스팅이 먼지구름 속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 박진감에 관중석에서는 환호와 열의가 대단했다.

크랭크와 토르페도, 신시아가 팔짱을 끼었다.

“저거, 우리 애들이라면 하지 말라고 하는데. 관절에 엄청 안 좋다고요.”

“동감입니다. 하지만 위력적이니 한 번 버릇을 들이면 어쩔 수 없지요.”

그때 지나가던 어떤 사내가 말을 걸었다.

“당신들 뭐야? 배팅할 거요?”

서로를 바라보던 신시아와 토르페도는 캐롯에게 걸었지만 크랭크는 걸지 않았다.

“왜요? 질 거 같아요?”

“모르겠습니다. 저 빨간 머리 엘프는 어디서 본 것 같거든요.”

땅땅땅!

별안간 공이 울리더니 흑백 반기가 올라오고 싸움질에 한창이던 오토마톤들이 각자의 벤치로 돌아갔다.

“한참 재미있는데 되게 꼼꼼하게 만들어 놨네! 코비! 공 울리자마자 이쪽으로 달려! 알았지?”

“불리하면요.”

벽에 붙은 규정집을 살펴보는 코비의 말에 캐롯이 어이없다는 듯 외쳤다.

“엉? 저 엘프는 제정신이 아냐!”

“걱정 마세요. 이걸 쓰니까 강해지는 기분이거든요.”

코비가 투구를 돌리는데 어쩐지 크랭크 같다.

다시 공이 울리자 경기장으로 올라온 스틸레인이 마주한 코비를 몰아세우기 시작한다.

무지막지한 주먹질과 발길질이 날아오는데 한 대 한 대가 결정타 수준이었다.

퍼퍼퍽!

“으하하! 네 녀석 굼뜨구나! 이건 어떠냐!”

커다란 몸은 가히 움직이는 샌드백인지라 신나 버린 스틸레인이 뒤돌려 차기를 선보였다.

그 순간, 몸을 숙인 코비가 바닥을 쓸 듯이 움직이더니 그녀의 뒤로 돌아가 허리를 붙잡아 버렸다.

“어억? 와아아악!”

다리를 걸어 함께 바닥에 쓰러진 코비는 그 상태로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그녀의 정신을 흔들어 놓았다.

크랭크에게 배운 것으로, 그다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고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 수 있었다.

마지막엔 그 스틸레인을 내던져 버리고 서둘러 반대편으로 달려가 캐롯과 자리를 바꾸었다.

“대단하잖아! 코비!”

같이 뒹구는 바람에 먼지투성이가 되긴 했지만 긴장했던 코비는 의외로 기술이 먹혀서 신난 표정이었다.

그와 자리를 바꾼 캐롯이 쓰러진 스틸레인에게 달려가며 외쳤다.

“하하! 방심하니 그런 꼴을 당하는 거야!”

자리에 주저앉은 스틸레인이 코피가 난 얼굴을 들더니 눈을 부릅뜨고 중얼거렸다.

“매직 미사일.”

찡! 찡찡-!

그녀의 주변으로 하얀빛 구슬이 여러 개 떠오르더니 곧이어 은빛 호선을 그리며 캐롯에게 쏟아졌다.

퍼퍼퍼퍽!

“으게겍?!”

캐롯이 두들겨 맞자 관중들이 환호했다.

“우와아아아아!”

“마법! 마법이야! 이런 걸 보게 되다니!”

늘상 보던 것과는 다르게 마법까지 난사되자 관중들은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매직 미사일을 직격으로 전부 얻어맞은 캐롯이 비틀거리자 뒤를 이어 먼지구름을 가르며 번개까지 쏘아진다.

빠자자작!

“기기기데데뎃!”

감전된 캐롯은 선 채로 작동을 멈춰 버렸다.

더불어 관중석은 이제 광란의 도가니, 하지만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심판과 운영자들이 몰려나와 캐롯과 스틸레인을 옮기고 그대로 경기는 일시 중단.

“어이어이! 뭐야!”

“이긴 거 아냐?”

잠시 후 심판이 나와서 확성기를 들었다.

“불법 지하 투기장이 할 소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돈이 걸린 승부만큼은 공정해야 해. 우리도 처음이라서 이런 상황은 고려하지 않았어. 이 건은 따로 논의를 거쳐 봐야겠어. 일단 승부는 무승부야.”

관중석에서 돈을 건 사람들이 난리를 부렸다.

“아니! 그럼 내 돈은!”

“돈 내놔!”

심판이 계속 말했다.

“재시합할 거야! 전표! 전표 잃어버리지 마!”

“안돼! 저 빨강 머리 엘프에게 전 재산을 걸었다고!”

“전 재산도 걸지 마!”

흥분한 관중을 말리기 위해 심판이 목청을 세우는 동안 크랭크는 서둘러 캐롯을 찾아갔다.

선수 대기실, 뻣뻣하게 굳어 버린 캐롯은 이때까지도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투구를 벗은 코비가 울상을 지었다.

“크랭크 아저씨!”

캐롯을 살펴보던 크랭크는 곤란한 소리를 냈다.

“이런!”

“어, 어쩌죠?”

“동력을 강제로 껐다 켜 보겠습니다.”

그러더니 크랭크는 캐롯을 안아 들고 턱 아래와 치마 속의 뭔가를 동시에 눌렀다.

또각.

칭!

곧 커다란 붉은 눈이 끔뻑이기 시작한다.

“으갹!”

괴성을 지르며 깨어난 캐롯은 살쾡이처럼 하악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악! 이 정신 나간 반칙왕 어디 갔어!”

“캐롯! 후아, 다행이에요.”

코비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이 기절했을 동안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캐롯이 툴툴거리며 팔과 몸을 매만졌다.

“어우, 팔다리가 뻐근해. 그 엘프는 미친 전투광 싸움꾼이야.”

요즘 바빠서 마도사 오토마톤에게서 얻은 방어벽 기술을 소홀히 했던 크랭크가 쓴 표정을 지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투기장 스탭이 들어와 전달 사항을 들려주었다.

“재시합?”

“당연히 그래야지!”

“그래서 말인데, 저쪽에서 재시합을 3일 후로 요청했습니다. 인원도 추가해서 3명, 괜찮겠습니까?”

인원 추가에 3일 뒤, 뭔가 이상한 조건임에도 투기장에서 허가한 것은 스틸레인과의 뒷거래와 더불어 이번 사건으로 사람들의 취향이 확고해졌기 때문이다.

퍽퍽한 현실을 잊게 만들어 줄, 어찌 됐든 화려하고 뜨거운 것!

그리고 그건 돈이 된다!

크랭크의 눈빛이 번뜩인다.

이제 불법 투기장 단속이고 뭐고 상관없어진 그가 말했다.

“좋군요. 동의합니다.”

스탭을 내보낸 크랭크는 캐롯을 안아 들더니 공방 복귀를 선언했다.

“저희가 시간을 끌어보겠습니다. 그동안 개념 결계를 돌파할 수단을 강구 해 주십시오.”

토르페도가 손을 들었다.

“그거라면 이미 준비됐다. 연습만 좀 해보면 될 거야.”

투구를 끄덕인 크랭크는 곧바로 청동문을 통해 아르곤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캐롯의 업그레이드를 개시했다.

* * *

같은 이유로 상대편 스틸레인도 숙소로 묶고 있는 여관에서 누군가에게 통신을 걸고 있었다.

“그래 자식아! 네 성과가 보고 싶으니 냉큼 튀어오라고!”

창가에 서서 뭔가를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던 스틸레인이 콧구멍에 휴지 조각을 쑤셔 넣은 우스꽝스러운 모양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하시는 건데요?”

스틸레인이 히죽 웃더니 코맹맹이 소리로 말한다.

“크엌킁킁! 좀 이르지만 약속했던 걸 주마. 네 누나 어디에 있냐?”

수 시간 후, 트로겐 도시 상공, 엘프들의 연구함 아네모네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젤리아에서 바쁘게 조사단을 이끌고 있다가 상위 장로에게 불려온 필림은 불만은커녕 오히려 즐거워했다.

“오토마톤 투기장이라고요? 요즘 살만 한가 보군요. 멸종할까 싶어 몸을 지킬 것을 나눠줬더니 그걸로 또 싸움질이라니.”

“그러면서 넌 왜 그렇게 신나 보이냐?”

일행을 데리고 함선 안으로 들어온 스틸레인의 지적에 필림은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기계 인형의 격투술을 참고할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지요. 기대되는군요.”

“야! 그럼 이거 수리는 누가 해줘?”

“그건 다른 사람이 해줄 겁니다. 트리스타.”

필림의 부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요양을 마치고 복귀하려던 차에 붙들려온 크랭크 공방의 엘프 트리스타였다.

그녀는 여느 엘프답지 않게 작업용 앞치마에 공구가 주렁주렁 매달린 벨트를 차고 있었다.

팔짱을 한 스틸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야아, 꽤 멋진 모습이 되었구나. 솜씨 좋은 기술자 같은데.”

“고고하게 하프를 튕기는 것보다 저는 이쪽이 적성에 맞는 것 같습니다. 대상은 누구죠?”

엄지손가락을 뒤로 돌린 스틸레인이 엘프 함선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이 녀석하고, 저 녀석. 그리고 상대는 너희 공방 녀석들이야. 그 꼬마 인형 알지?”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남동생과 떠들고 있는 다리 없는 여자를 안타깝게 보고 있던 트리스타가 고개를 돌렸다.

처음엔 눈을 크게 떴다가 곧 그 눈을 가늘게 만들었다.

“좋은 기회입니다. 그들에게 성장한 제 능력을 선보일 기회.”

히죽 웃은 스틸레인이 뒷짐을 지고 있는 필림을 돌아보았다.

“엘프치고는 보기 드물게 호전적인 녀석이네. 거기 잘 꼽아 놓은 것 같지?”

“지원해 주신 덕분이지요.”

당신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필림 장로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 사회에 자동 인형을 도입하자는 그의 안건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밀어준 사람이 바로 장로회의 중역 중의 하나인 스틸레인이었기 때문이다.

“저 녀석 말대로 이대로 하프만 튕기면서 살 수는 없단 말이지. 참, 그 녀석도 데려왔어?”

뒷짐을 지고 있던 필림 장로가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실전 테스트에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을 테지요. 이 역시 기대되는군요.”

양측에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트리스타를 선두로 한 개수 작업은 거침없이 진행되었으나 아르곤 크랭크의 공방에선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작업대에 올려진 캐롯의 몸을 살피던 크랭크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이게 뭐지?”

그의 커다란 어깨의 좌우로 투나와 아리에테, 샤를과 로테의 머리가 쑥쑥 올라와 캐롯을 내려다보았다.

내부 장갑판이 열린 캐롯의 몸 안쪽에는 뜻하지 않은 기관이 형성되어 있었다.

투나가 말했다.

“이, 이건 생물의 그것 같은데.”

“술에 취했다고 했었어. 이게 그 이유인가?”

“뭐냐? 이게 뭐냐?”

마력 엔진 옆에 자리 잡은 이상한 기관에서 뻗어 나온 섬유들이 캐롯의 인공 근육 곳곳에 퍼져 있었다.

투나가 호기심을 드러내고 한참 살피고 만지더니 말했다.

“오오, 여, 여길 봐. 찢어진 부분을 수, 수복시키고 있어!”

투나의 호들갑에 작업 등을 비추고 들여다보니 정말로 찢어진 근섬유가 서서히 달라붙고 있다.

근육은 심하게 사용하면 근섬유가 찢어지고 끊어진다. 사람의 경우 이것이 자연 수복되어 더 강해지지만, 오토마톤은 소모품이라 찢어지고 끝, 그래서 정기적인 보수 작업이 필요하다.

투나는 얼굴을 거의 캐롯의 배 안에 집어넣을 듯이 들이대고 그것들의 수복 과정을 관찰했고, 크랭크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난 이런 걸 한 적이 없다. 잠깐 맡겨둔 사이에 그 사람이 뭔가 했나 보군.”

그 사람.

아리에테가 눈썹을 곧추세웠다.

“마녀 고르곤! 우리 캐롯에게 무슨! 아야야!”

따지러 나가려는 아리에테의 꽁지 머리를 붙잡자 그녀가 머리를 붙들고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벌컥 화를 내며 외쳤다.

“무슨 짓이냐!”

“별문제 없는 상황이다. 따지고 있을 시간이 없으니 바로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자.”

“이런 중대한 일이 별문제가 아니라니!”

아리에테가 소리를 질렀으나 크랭크는 무시, 투나를 떼어내고 바로 장갑판을 덮었다.

소프트 스킨의 회복 속도도 범상치 않아 캐롯은 금세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야기를 들은 캐롯이 눈을 땡그랗게 떴다.

“헤, 내 몸에?”

“자동 수복 기능이라고 불러야 하나? 생체 기반이다 보니 알콜에 반응했던 것 같아. 그래서 앞으로는 너도 금주다.”

도끼눈을 뜬 캐롯이 버럭 외쳤다.

“내 이 마녀를 당장에!”

“그래! 그것이 정당한 반응이다! 가자!”

옷을 챙겨 입은 캐롯이 공방을 뛰쳐나가자 아리에테도 그 뒤를 따랐다.

투나 역시 학술적 탐구심에 그 외출에 동참했다.

“뭐, 뭔지 들어보고 올게!”

샤를이 호위로 따라나서고, 크랭크는 팔짱을 하고 있다가 로테를 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외부 무장이라도 만들어 놓을까 싶군. 출전자는 캐롯과 아리에테, 그리고 너다.”

로테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요청 사항이 있습니다.”

“뭐지?”

로테가 크랭크를 보며 말했다.

“연산 수정의 증설을 요청합니다. 최근 논리연산의 부하가 감지됩니다.”

처음 샤를과 로테를 만들었을 때는 그 정도면 충분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마치 텅 비었던 이 공방이, 이제 갖은 보물들로 가득 채워진 것처럼.

슬슬 비좁게 느껴질 만도 하지.

공방을 두루 감상하던 크랭크가 마지막으로 로테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이리 와라, 너부터 시작하자.”

그렇게 로테의 2차 개수 작업이 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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