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투기장! (3) 286 >
같은 시각, 캐롯은 별천지에 떨어진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지하 콜로세움의 관중석은 도시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환호성을 울리고 있었으며, 그 모두의 얼굴에는 여러 희비가 교차하고 있었다.
“와아아!”
“와아아아아!”
“오, 오, 오오오우오오오오옥!”
볼때기에 두 손을 댄 캐롯이 눈을 뒤집으며 괴상한 소리를 질러댔다.
따라온 코비가 머리에 크랭크의 투구를 쓴 채 걱정스레 쳐다보았다.
“괜찮아요?”
“괜찮지 않아! 이 열기! 세상에! 믿을 수가 없어!”
그들을 여기로 데려온 모험가 슬랭이 실실 웃으며 손짓했다.
“어이, 친구들 이쪽이야.”
사무실로 안내된 그들에게 곧 투기장 보스 루칸이 나타났다.
“여, 꼬맹이. 요즘 잘나간다면서?”
“잉? 아저씨, 나 알아요?”
담배를 입에 문 루칸이 푸흐흐 웃는다.
“아르곤에서 너 모르면 바보지. 안 그래, 크랭크?”
투구만 빌려 썼을 뿐인데 알아보지 못하는 거야?
자리에 앉은 코비는 그저 빤히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행여 들킬까 캐롯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됐고! 이거 하면 얼마 줘요?”
“대전료의 7대3. 우리가 3이고 너희가 7이다. 건당 바로 지급할 거야. 나쁘지 않지?”
캐롯이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룰은? 아까 보니 뭔가 되게 재미있던데.”
말이 좀 통해서 기분이 좋아졌는지 담배를 끄고 마주 앉은 루칸이 경기 방식을 설명했다.
“요즘 편 먹고 싸우는 테그 팀전이 인기야. 그 외에도 이벤트 매치가 여럿 있다.”
“우와! 아저씨 똑똑하다!”
환호하던 캐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목소리를 깔았다. 존칭도 생략.
“그 좋은 머리로 왜 이런 생각을 했어? 님 때문에 여기서 울면서 나가는 사람이 얼만 줄 암?”
“하하! 자식아, 나는 일확천금의 기회를 줬을 뿐이야. 선택을 했으면 책임도 져야지. 그걸 억울하다고 말하는 건 정신적 미숙아인 거다.”
루칸의 사나운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지 캐롯의 입가가 슬그머니 올라간다.
주인님을 닮아 오토마톤도 꽤 음흉해져 버렸다.
“케케, 맞아. 그건 그래.”
“할 거냐?”
“딜! 요즘 사업한다고 전 재산을 때려 박아서 돈이 별로 없거든요.”
잠자코 팔짱을 끼고 있는 투구 머리를 힐끗 쳐다본 루칸은 씩 웃으며 캐롯과 손을 잡았다.
그러다 캐롯이 물었다.
“아니, 그런데 이렇게 대규모로 영업하는데 안 들켜요?”
“그건 걱정 마라. 굉장한 후원자가 계시거든?”
“잉?”
고개를 돌린 루칸은 양철 거인으로 변장한 코비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봐, 드래곤 슬레이어라고 해도 대략적인 실력을 알아야 하니 잠깐 괜찮을까?”
“뭔데요? 뭔데요?”
테이블에 올라와 고개를 쑥 들이미는 캐롯을 보고 루칸이 손가락을 튕겼다.
촥!
커튼을 걷자 당장 밖에서 환호 소리가 울린다.
“와아아아!”
함성이 울려 퍼지는 창가를 뒤로하고 멋지게 다리를 꼰 루칸이 두 팔을 슬쩍 벌리며 말했다.
“지원자가 많아서 추려내려다 보니 생긴 예선전 같은 건데, 이벤트 매치에 나가서 몬스터 하나 잡아봐.”
소파에 작은 몸을 폭 파묻어 버린 캐롯이 손을 흔들었다.
“에엥? 특이한 애들 아니면 어지간한 건 다 잡을 수 있거든요? 그게 우리 일인데.”
“그 특이한 게 상대거든? 봐볼래?”
소파에서 튕겨 일어난 캐롯이 다다다 달려가 창문에 매달려 고개를 내민다.
그러자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우옥! 저게 뭐임?!”
밑으로 보이는 경기장에는 생전 처음 보는 괴물이 여러 대의 오토마톤과 싸우고 있었다.
전신 회색빛에 갑옷 같은 외피는 어지간한 공격은 모조리 방어, 주둥이 끝의 커다란 뿔은 덤벼드는 오토마톤에게 반격을 가하는 데 사용했다.
크기도 웅장했다. 전신이 7미터가 넘었고, 어깨높이는 4미터에 달했다. 이른바 마왕류 대형종.
두두두두두! 쾅-!
그 덩치로 경기장 방호벽을 때려 박으니 관중석이 흔들릴 지경이다.
다다다다! 캉! 챙?!
사방에서 오토마톤이 덤벼들었으나 이 괴물 같은 녀석은 그걸 귀찮은 파리 떼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조그만 눈알이 희번뜩 움직이더니 빈틈을 노리고 덤벼드는 오토마톤에게 정확하게 그 콧잔등의 뿔이 날아든다.
쿵-! 쾅!
뿔에 처박힌 오토마톤은 그대로 으스러져 버렸다.
“안돼-!”
“우와아아아!”
부서진 오토마톤의 마스터가 내지르는 절규는 관중들의 환호에 묻혀 버리기 십상, 성벽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좀처럼 겪을 수 없는 오락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우오와아아! 멋져! 엄청나!”
덩달아 소리를 질러대는 캐롯의 곁으로 루칸이 담배를 입에 물고 고가의 점화 마력석으로 불을 붙이며 말했다.
“마왕령에서 잡아 온 녀석이다. 독 같은 건 없지만 굉장히 단단하고······ 야? 어디 가냐?”
창문을 뛰어넘어 경기장으로 내려가는 캐롯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이제 시작한 모양인데 상관없지? 케헤헤!”
루칸은 피식 웃더니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방호벽을 밟고 휙 뛰어오른 캐롯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의 화려한 조명이 모두 그들을 비추고 있는데 묘한 느낌이다.
캐롯은 두 팔을 들고 마구 흔들어댔다.
“오오! 모두가 날 보고 있어! 내가 세상의 중심이야! 하하하!”
급한 메모를 받은 심판이 확성기를 들었다.
“여러분! 드래곤 슬레이어의 난입입니다!”
관중석이 소란스럽다.
“드래곤 슬레이어?”
“아르곤의 그 꼬마 녀석 말하는 거야?”
“오오오! 캐롯! 캐롯이다! 나 저 녀석 알아!”
심판이 외쳤다.
“전투 속행! 어이! 드래곤 슬레이어! 딱히 쓰러뜨리는 게 목적이 아니야! 개별 채점자들이 보고 있으니 마왕류에게 공격만 맞추면 된다!”
으헤헤 웃어 버린 캐롯이 몸을 숙이더니 중얼거렸다.
“그 말은 때려잡아도 상관없다는 거잖아? 마왕류라니 꼭 한번 보고 싶었더랬어. 여기 몬스터보다 세다며?”
퉁!
지면의 돌가루가 휘날리며 캐롯이 튀어 나간다.
달려가던 캐롯은 품에서 손도끼를 꺼내 마왕류의 갑옷 같은 표피를 죽 그어 버렸다.
촤아악!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몸을 일으키니 도끼날이 갈려 나가 버렸다.
“헷? 금속보다 단단해?”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엄청 질겨! 하하하! 잘해봐라!”
관중석을 올려다보니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다.
캐롯이 눈을 부릅뜨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렇게 화가 난 적은 처음이야!
“레그! 너 레그 맞지! 이 배신자!”
“프흐하하하! 잘 지냈냐! 땅콩!”
낭만 강도단 사건 때 캐롯의 회유에 눈물을 질질 흘리며 전향을 결심했던 바로 그 레그였다.
“야! 네가 왜 여기 있어! 너 때문에 내기에 져서 용돈 다 털렸단 말이야!”
“뭐, 사람 일 알 수 없는 거 아니겠냐? 근데 남의 인생 가지고 내기도 했었어? 못된 녀석이네.”
곁에서 그의 동료 하나도 고개를 내밀었다.
분명 레그의 단짝이었던 친구다.
“헤이! 나도 기억하지? 네 앞에 있는 그거 우리가 잡아다 준 거거든! 요즘 쏠쏠하다! 하하! 으억억!?”
퍽퍽!
분노한 레그가 그에게 주먹질을 날렸다.
“어휴! 얌마! 그걸 저 녀석한테 말하면 어떻게 해!”
“아파! 아프다고! 컥!”
곁에서 일어나는 소란에 다른 관중 하나가 프하하 웃다가 손을 들었다.
“야야! 꼬마야! 봐라! 온다!”
이를 바득바득 갈다가 고개를 휙 내리니 놈이 달려들고 있다.
그야말로 달리는 중장갑차량!
두두두두! 쾅-! 트드드드······!
몸통 박치기만으로도 두꺼운 콘크리트 방호벽에 금이 가고 사방으로 진동이 울린다.
사람들이 기겁하자 심판 겸 해설자가 외쳤다.
“걱정하지들 마! 방호벽 안쪽에는 강력한 마법 방어벽이 있어! 엄청 비쌌다고!”
“이거지!”
“맞아! 이 정도는 되야 돈 때려 박는 기분이 나지!”
어느새 마왕류의 뿔에 달라붙은 캐롯이 거기 매달린 채 관중석과 악담을 나눴다.
“정신들 차려! 그런 걸로 기분 내지 마! 돈에 존칭을 붙이라고! 돈 님이야! 돈 님! 집에 갈 때 맛난 거나 사 들고 들어가란 말이야!”
술병을 든 사내가 외쳤다.
“흐하하! 나는 가족이 없어!”
“어휴! 그럼 만들어! 용기를 내! 요즘 왜 이런 사람이 이렇게 많아졌어?”
“괜찮아! 예쁜 더치와이프가 있으니까! 저기 있네!”
술병 남자가 가리킨 곳에는 어찌나 잘 꾸며놓았는지 흡사 귀족 아가씨 같은 느낌의 오토마톤이 무지막지한 돌격창을 든 채 달려들고 있었다.
쿵-!
배에 달라붙은 더치와이프 오토마톤이 손가락을 당기자 두꺼운 외피를 가진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고안된 돌격창의 관통자가 발사되었다.
푸확!
꾸어어어어!
창날이 3분의 1정도 박히자 마왕류가 뿔을 쳐들더니 포효했다.
덕분에 캐롯은 위로 휙 날아가 그 등에 떨어져 올라앉아 버렸다.
“어, 여기 뭐야? 평평해. 앉기 좋네.”
덕분에 관중석과 거리가 가까워졌다.
캐롯이 이를 드러내고 주위를 휙휙 두리번거린다.
“레그! 레그 이 자식 어딜 갔어!”
“그 친구들은 방금 나갔는데. 히끅!”
다리를 분질러야 했다며 분노하는 캐롯의 뒤로 술병 남자의 오토마톤이 안착했다.
“주인님, 안 보는 사이에 또 음주를.”
“프하하! 오랜만의 술맛! 끝내주는구나!”
“안주는 없습니까? 속을 버리게 됩니다.”
양손에 술병을 든 남자가 환호하는 관중들 속에서 외쳤다.
“보이지 않느냐? 세상이라는 상차림에 올라간 사람의 인생 하나하나가 오늘 술자리의 안주란다! 흐흐하하!”
신념을 가진 바보만큼 안타까운 게 바로 삐뚤어진 지식인이다.
캐롯은 복잡한 심경을 얼굴로 드러냈다.
“그것 참 맛없을 것 같은 상차림이네!”
“프하하하!”
쿠오오오오!
다른 오토마톤의 공격 때문인지 마왕류가 발광하기 시작한다.
들썩임에 놀란 캐롯과 더치와이프 오토마톤이 몸을 바싹 숙였다.
흔들거리는 녀석의 등에 달라붙은 캐롯이 외쳤다.
“우옥! 오옥! 이대론 안되겠어! 아저씨! 그 술병 줘봐!”
“응? 뭣에 쓰게?”
반쯤 남은 술병을 던져 주자 그걸 휙 받아 챈 캐롯은 마왕류의 등줄기를 따라 앞쪽으로 와다다 달려가더니 그 머리를 밟고 폴짝 뛰어올랐다.
탓!
“읏헤헤! 코뿔소 아저씨 안녕?”
콧잔등에 돋아난 코뿔의 꼭대기에 작은 꼬마 인형이 올라섰다. 마치 나비라도 앉은 꼴, 그걸 본 마왕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치 이건 뭐냐? 하는 시선,
관중들도 캐롯의 기행을 보고 실실거렸다.
“하하하! 저게 뭐야! 보기 좋은데?”
“오우! 그림이야, 그림.”
푸우우웃-! 후우우웃!
사람들은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당사자의 기분은 모르겠고 내 감정이 우선인 의미를, 마왕류 무소는 그 발칙함에 분노했다.
시뻘건 도끼눈을 뜬 녀석이 흙을 차대자 캐롯은 재빨리 술병을 꺼내 들었다.
퐁-!
“씩씩거리는 걸 보니 숨도 잘 쉬네! 마왕류도 생물이지? 대체로 생물은 술에 취한다고!”
기이이잉!
마력 엔진 최대 출력, 두 개의 심장이 발열을 시작한다.
야수의 뿔에 올라선 나비 소녀는 냅다 술병을 입에 물더니 병나발을 불었다.
벌컥벌컥!
조그만 꼬마 오토마톤의 호쾌한 목 넘김은 관중 모두에게 신선하고 재미난 모습이었다.
그다음 벌어진 일도 마찬가지.
“우오! 저게 뭐야!”
치이이이이이잇-!
캐롯의 등에서 거대한 증기구름이 쏟아진다. 그것은 마치 천사의 날개처럼 성난 야수를 감싸 안아 버렸다.
이 와중에 냄새를 맡은 관중석의 주당들이 노성을 질렀다.
“흠흠! 으으음! 이, 이 냄새는! 돔페르미 11년산의 풍미다!”
“나 들었어! 안개 속 여신의 인형! 또 다른 이름은 박커스의 화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