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283화 (283/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문제아! (6) 283 >

투나가 일 마치고 돌아온 엄마라도 맞이하는 것처럼 그녀를 반겼다.

“어, 어서 와. 퇴, 퇴근 시간이야?”

“로테에게 검술 교관을 넘기고 잠깐 쉬러 왔다. 요즘 바쁘구나. 샤를, 다음번에 도전하면 쓰러져 줘라. 슬슬 2층으로 넘어가야지.”

소파에 쓰러진 그녀의 말에 투나가 조금 곤란한 얼굴로 실실거렸다.

“드, 드디어 이, 이 몸이 나설 차례인 거야? 싸움은 자, 잘못하는데.”

“걱정 마라. 마법사가 필요해서 그런 거니 그냥 앉아만 있으면 된다. 애들 상대는 보리스 녀석들이 할 거야.”

그들이 만든 던전은 요즘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용사 훈련소 입소자는 물론 초보 모험가들까지 훈련차 찾아오는 덕분에 몸이 남아나지 않게 된 아리에테는 주변 인맥들을 최대한 활용하기 시작했다.

아리에테의 부탁으로 졸지에 2층 던전 보스로 취직한 투나가 말했다.

“그, 그나저나 그분까지 나설 거라고는 새, 생각하지도 못했어.”

고르곤의 던전 사업 참가는 우연이었다. 비밀 공방 근처에 요즘 사람이 자주 돌아다닌다 싶었는데 거기에 아는 얼굴들이 있어서 호기심에 찾아와 사정을 듣게 된 것이었다.

생기가 넘쳐흘러서 곤란하다면 내가 좀 빨아가도 괜찮겠지? 우후후! 우헤헤헤!

몹시 기뻐하던 광기의 마녀를 떠올린 크랭크는 저도 모르게 팔에 소름이 돋아 버렸다.

“대신이라고는 뭣 하지만 그 덕분에 운영이 편해졌어. 다음에 인사하러 다녀와야겠다.”

“흐, 흐흐. 그, 그래. 뭐, 뭘 좋아하시는지 내, 내가 다 알아.”

“음, 믿고 있으마.”

투나와 잡담을 나누던 아리에테가 그제야 누워 있는 캐롯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잠깐, 캐롯은 왜 그러고 있지? 어디 아픈가?”

“전신 과열이라 잠시 냉각 중이다. 별일 아니니까 울지 마라.”

크랭크를 향해 아랫입술을 삐죽 내민 아리에테가 어쨌든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8번 창고의 그것 때문이지? 대체 언제 또 그런 신통한 것을 만들어 둔 거냐?”

젖은 수건으로 캐롯의 몸을 닦던 크랭크와 오징어 다리를 입에 문 투나가 동시에 엄지척을 선보인다.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거다. 투나와 쿠르프 씨, 그리고 지금은 휴가 중인 트리스타가 많은 도움을 주었지.”

“하여간 대단하구나. 그건 정말로 큰 도움이 되었어.”

빙그레 웃어주던 아리에테가 갑자기 무슨 일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눈썹을 세우고 의기양양 호탕하게 웃기 시작한다.

“으하하! 크랭크! 봐라! 봄에 수도에서 했던 이야기 기억나나? 내가 뭔가 한자리 차지하게 된다면 오토마톤 대여업을 해보겠다고 했었지! 지금 그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열심히 캐롯을 닦다 말고 새삼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투구 머리가 손바닥을 주먹으로 두드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랬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됐군. 이뤄져 버렸구나. 놀랍다.”

“와하하하! 뭐냐, 그 바보 같은 얼굴은! 좀 더 기뻐해 봐라!”

얼떨떨한 크랭크를 보고 호쾌하게 웃고 있는데 리슐리에가 급하게 찾아왔다.

“소장님! 찾았어요!”

“응? 뭔가 잃어버렸었나?”

안경 번개 마법사 리슐리에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약 반년을 같이 지내면서 느낀 건데, 이 고고한 여기사는 좀 빙구 같은 면이 있다.

“도망친 훈련생요!”

원래 5명이었는데 던전에는 요즘 3명만 들어가고 있다. 이유는 남은 둘이 도망가서.

아리에테의 얼굴이 단숨에 일그러졌다.

“이 자식들! 어디냐!”

바삐 사라지는 두 여자를 바라보던 크랭크가 투구를 흔들었다.

“깨진 바가지는 어디서나 새는군.”

“흐흐흐, 요, 요즘 신난다.”

“그러냐?”

“응.”

안경을 쓴 투나가 흐뭇하게 웃는데 크랭크가 그녀를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머리 길었구나. 좀 잘라야겠는데?”

“어, 응. 흐흐히히.”

둘만 있으니 밀려드는 어색함에 투나가 몸을 배배 꼬기 시작하는데 크랭크가 진지하게 물었다.

“이제 그 금덩이의 출처를 알려줘도 되지 않을까?”

“엉? 금덩이?”

금덩이의 출처, 거의 1년 만에 듣는 소리인 것 같다.

갑작스레 터진 웃음에 투나가 배를 잡고 폭소를 터트렸다.

“하, 하흐하하하!”

그녀가 이렇게 크게 웃는 걸 처음 본 샤를이 가만히 쳐다보다가 캐롯을 불렀다.

“캐롯, 캐롯. 재미있습니다. 일어나 보시길.”

칭-!

주인의 부름도 아닌데 눈을 번쩍 뜬 캐롯이 격하게 웃고 있는 투나를 보고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렸다.

“에에, 뭐야? 무슨 일이야? 어째서 재미있는 일은 항상 내가 없을 때 일어나는 거야?”

수일 후,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3층까지 돌파에 성공한 소년들이 대성통곡하며 밖으로 나왔다.

기쁨의 눈물이 아니라 후회의 눈물을 마구 쏟아내며.

“으아아! 미안해! 미안해에!”

“내가 잘못했어어어! 으흐흑!”

주저앉는 소년들을 바라보며 아리에테는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그들을 추스르던 모험가들은 뒤따라 나온 크랭크를 보고 얼굴이 좀 질려 버렸다.

“소문은 들었지만 정말 끔찍하군. 정말 트라우마로 남는 거 아닌가?”

“그걸 노린 겁니다. 독도 쓰기 나름이지요.”

뒤에 선 크랭크의 가슴을 툭툭 두드린 아리에테의 말에 감게일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미래를 위해서 저주는 해제하는 편이 좋을 것 같군. 아내나 다른 가족에게 보였다간 대참사라고.”

크랭크가 말하기 전에 아리에테가 먼저 허리에 두 손을 올리고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무슨 말씀! 사내자식은 얼굴 따위 필요 없습니다. 하반신만 있으면 충분······ 아아아악!”

“저희 훈련소장이 실언했습니다.”

바닥에 주저앉은 소년들은 여전히 꺽꺽 울고 있고, 훈련소장은 어설픈 섹드립을 쳤다가 붙들려 치도곤을 당하고 있었다.

이 난장판에 감게일을 비롯한 모험가들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세상 재미있어. 나쁘지 않구만.”

던전 돌파에 성공한 소년들은 조촐한 수료식을 마친 다음 각자의 일상으로 복귀했다.

놀랍게도 훈련의 효과가 있는지 가문으로 돌아온 니케는 부쩍 어른스러워져서 그의 부모는 물론 집사장을 기쁘게 만들었다.

학원에서도 마찬가지, 항상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기 바쁘던 녀석이 굉장히 과묵해지자 모두가 이상하게 여겼다.

“니케, 교화소 잡혀갔었다며? 어땠냐?”

“어, 그냥 그랬어.”

“야, 됐고. 오늘은 저 녀석으로 하자. 재미있는 걸 배워왔어.”

패거리가 다가와 오늘도 새로운 장난질을 제안했으나 니케는 오히려 얼굴을 잔뜩 굳혔다.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냐?”

“어, 응?”

니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돌아온 녀석은 키는 그대론데 엄청나게 커진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는 손가락 3개를 폈다.

“3년, 3년만 지나면 너희들도 어른이야. 잘 생각해. 그리고 눈에 거슬리니 애들 건드리지 마.”

“너 왜 그래? 뭐 이상한 거라도 먹었냐?”

갑자기 그간의 고생이 떠오른 니케가 얼굴을 엉망으로 일그러뜨리더니 눈물을 또르르 흘렸다.

“너, 너무 아프고 무서웠어. 너희들도 추천할게. 너희들도 나처럼 만들어 버릴 거야.”

교화 교육을 다녀온 녀석들은 거기서 보고 들은 개똥 철학을 마치 삶의 이정표처럼 한동안 지껄이다가 곧 원래대로 돌아오기 마련인데, 이건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다.

그래서 소년들은 기겁했다.

“야, 야야! 니케 왜 그래!”

“으흐으윽!”

이 녀석이 거기서 뭘 보고 왔는지 모르겠다.

미지의 공포, 소년들은 그제야 뭔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수일 후, 그들도 학원에서 모습을 감춰 버렸다.

그리고 니케는 다시 시큰둥해져 버렸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고, 가끔 먼 산을 바라보며 추억을 곱씹는 표정을 지어 학원 선생들에게 애늙은이라는 별명을 얻어 버렸다.

유일하게 그가 꾸밈없이 밝아지는 날이 있는데, 달에 한 번 편지가 도착했을 때다.

집사가 푸근하게 웃는다.

“도련님 유난히 기뻐하시는군요. 친우께서 보내신 겁니까?”

니케가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니요. 전우가 보낸 겁니다.”

집사장의 눈빛이 흔들린다.

저, 전우?

꼬리에 꼬리를 문 용사 훈련소 입소자와 길드의 주선을 받은 초보 모험가까지 밀려들어 즐거운 비명이 솟아나는 매일매일, 캐롯이 모두가 생각은 해두고 있지만 아직 입 밖에 꺼내지 않던 것을 입에 담았다.

“장사 잘돼서 좋긴 한데, 남부 겨울 출장은 어떻게 할 거야?”

샤를이 튀겨주는 튀김 과자를 주워 먹던 코비가 흐흐 웃으며 말했다.

“작년에 못 가서 올해는 가고 싶은데요. 남부 출장.”

“어, 나도.”

보리스도 손을 들고, 비타와 지오도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겨울 한철 단단히 벌 수 있다는 이야기는 매력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공방에 모여 티 타임을 즐기던 파티 멤버들 사이, 리슐리에가 안경 너머로 장부를 들여다보았다.

“이번 팀이 끝나면 임시 휴업을 걸도록 하시죠. 겨울 남부 출장, 저도 가고 싶습니다. 갖고 싶은 마도구가 있어요.”

“좋구나! 나는 인복이 있다! 이렇게 유능한 보좌관이라니! 음냠냠!”

바삭바삭한 튀김 과자를 씹으며 외치는 아리에테를 보고 리슐리에가 칠칠치 못한 여동생을 보는 언니 같은 표정을 지어 버렸다.

캐롯이 또 그걸 간파했고.

“와! 와! 샤를! 저거 봐! 리슈의 저 표정! 메이드 파이가 아리에테를 보는 거랑 똑같아!”

“파이, 언젠가 찾아오셨던 본가의 메이드셨지요. 기억합니다. 그렇군요. 똑같습니다.”

“으음! 음음!”

차를 마시던 크랭크가 잔을 내리고 두 손으로 투구를 덮었다.

“끔찍하군. 턱이 없는 거냐. 뭘 이리도 흘려대는 거지?”

“흡! 쿨럭쿨럭!”

보리스가 사레에 들렸다.

크랭크의 한숨 소리는 농담이 되어 모두에게 폭소를 선사했다.

아리에테만 빼고.

“무무무!”

“에잇! 좀 다 먹고 말해! 버릇없이!”

아리에테에게 주의를 준 캐롯이 고개를 돌렸다.

“이따가 길드에 좀 다녀올게. 출장 예상 날짜랑, 우리 수도에서 상장 수여식 할 건데 가도 되는지 물어보러.”

“세운 공은 사라지지 않지만 이번 겨울은 올해가 지나면 돌아오지 않는다. 겨울 출장, 준비합시다.”

다시 수첩을 펴 든 리슐리에가 보고했다.

“캐롯, 크랭크. 내일 3층 던전에 도전하는 파티가 있어요. 준비해 줘요.”

“알았어, 적당히 약 올렸으니 이번엔 져 줄게.”

“음, 내일도 기분 좋은 땀을 흘릴 수 있겠구나.”

가공할 3층 던전은 보스가 둘이다.

바로 캐롯과 크랭크.

클리어 조건은 뒤쫓는 과거를 마주하고 드래곤 슬레이어에게 유효타 1회.

이 3층은 악명 높다.

전투력이나 전술 능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과거의 트라우마와 마주해야 하니까.

여기에 드래곤 슬레이어의 무자비한 독설, 울음을 터트리지 않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언변의 달인,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그것이 가능할 지경에 오른 욕쟁이 캐롯이 으헤헤 웃다가 표정을 바꿔 눈을 동그랗게 떠가며 말했다.

“애들이야 아직 덜 익어서 이게 통하는데, 저번 초보 모험가 파티의 그 털보 모험가 기억나? 와, 말싸움에서 밀려본 적은 나 처음이었어.”

“정신력을 단련시키기 위한 목적이니 상관없다. 우리의 협공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나름의 의지와 줏대가 있다는 거니까. 좋게 생각하자.”

잠깐 입을 다물었던 크랭크가 투구를 돌렸다.

샤를의 튀김이 맛났던지 코비와 함께 우걱우걱 주워 먹기 바쁘던 아리에테가 보인다.

“이 저주를 돈벌이에 사용할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대답은 관련 계통 전문가인 투나가 했다.

“으히히, 도, 독도 잘 쓰면 약이거든?”

“냠냠쩝쩝, 네 저주에 당한 사람을 실제로 보니 다들 과거 일을 반성하고 후회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 나는 돌아가면 용사 녀석들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고.”

캐롯이 고개를 쑥 내민다.

“이거다! 싶은 거야?”

“후후, 맞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