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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82화 (282/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문제아! (5) 282 >

“끄아아악! 이 자식!”

분을 참지 못한 베닐이 자기 파트너 캐롯 시리즈를 들어 올리더니 앞뒤로 마구 흔들어 댔다.

“크르르륵!”

때마침 통로 저편에서 들리는 으르렁거림, 모두가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전부 환상이면 놀이 기분으로 들어오겠는데, 반은 진짜라서 심장이 일그러지는 것 같다.

“야야, 여기 이런 보급 상자 몇 개나 더 있어?”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화살을 활줄에 매기던 후작 영식 제이슨이 말했다.

“4번이라고 했으니까. 최소 3개는 더 있는 거 아니겠냐?”

“좋네. 당분간 돌면서 보급 상자부터 찾아보자. 지리도 파악할 겸.”

“가끔 휴식도 필요해. 이상하게 여기만 들어오면 힘이 빠지네.”

대략적인 공략법을 가늠한 그들은 이제 쓸모없는 전투는 가능한 피하고 아이템 파밍을 겸한 내부 구조 확인을 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쉴 때는 안전 지역인 던전 밖으로 나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장비와 따라다니는 오토마톤들이 늘어난다.

지켜보던 아리에테가 중얼거렸다.

“녀석들, 신중해졌어.”

“이젠 자기들끼리 안 싸우네요. 기특하네.”

번쩍이는 황금팔을 가진 감게일이 턱을 긁는다.

“공통된 난제 앞에서 손을 잡은 게지. 그런데 이런 걸로 되려나? 오히려 못된 놈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되지 않을까?”

감게일이 고개를 돌려보니 훈련소장 아리에테는 뭔가 생각해 둔 것이 있는지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턱을 세우고 거기다 콧김까지 뿜뿜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번 일을 맡기 위해 도서관에서 아동의 정서나 양육, 심리학 관련 책을 잔뜩 빌려다 읽더니 급기야 어떤 진리를 터득했다.

함께 자료를 정리하던 리슐리에가 격렬하게 반박했지만 어쨌든 그녀로서는 이것이야말로 합리적인 진리라고 굳게 믿었다.

“사람의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는 대략 청소년기, 여기에 트라우마를 심어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니아니, 그런 표정 하지 맙시다. 어디까지나 말 안 듣고 제멋대로인 녀석들에게 지독한 트라우마 하나 박아 넣으면!”

나처럼 불면증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겠지.

손가락을 펴 들고 신나게 설명하던 아리에테가 덧붙였다.

“강제도 협박도 없고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제 스스로가 자기 목에 목걸이를 채우게 되는 겁니다.”

그걸 위한 트라우마?

아리에테의 잔인한 계획을 들은 누군가가 물었다.

“그건 그렇다치고, 트라우마는 어떻게······ 아! 크랭크?”

3층 던전 보스의 이름은 추억을 달리는 거인.

말 그대로 투구를 벗은 크랭크가 마구 뛰어다니며 그들의 흑역사를 끄집어내 까발릴 예정이다.

아리에테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모두는 그녀의 지독한 혜안에 정말로 감탄했다.

그러다 감게일의 동료 하나가 물었다.

“그런데 이 수다쟁이 녀석이 안 보이네요? 도망간 녀석들 잡으러 갔습니까?”

아리에테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꼬마도 지금 바쁘지요.”

* * *

밖에서 감독관들의 평가가 이어지는 사이, 안쪽에선 장비와 오토마톤을 찾아내 세를 불린 녀석들이 기어코 1층 던전 보스의 방까지 쳐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이봐! 네가 여기 보스냐?”

롱소드를 세운 니케와 동료들의 외침에 넓은 방 안에서 고고히 빗자루를 쓸고 있던 메이드 복 차림의 오토마톤이 고개를 든다.

“그렇습니다. 나는 1층 던전 보스, 규칙적인 생활을 강요하는 오토마톤 메이드입니다. 클리어 조건은 어느 방법으로든 유효타 1회. 단, 자동 인형의 타격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던전 보스!

발칙한 용사들의 눈에서 광기가 터져 나왔다.

“에라이! 꼬마들아! 가라! 해치워! 협공이다!”

용사의 호기로운 외침에 데리고 다니던 자동 인형들이 우르르 덤벼드는데도 빗자루질 한 방에 다 나가떨어진다.

어쩌다 보니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고 있지만 샤를 역시 경험 많은 베테랑스 오토마톤,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에잇! 후작 영식이! 엄호해!”

“제이슨이라고 몇 번 말하냐! 자식아! 간다!”

빠드득! 퉁!

숏보우를 든 금발 소년이 화살을 쏴대며 몰아세웠으나 샤를은 발걸음을 몇 번 옮기는 것으로 그걸 회피했다.

“저걸 피한다고?!”

“제길! 자동 석궁을 찾았어야 했는데! 더 쏴! 계속 쏘라고!”

던전 보스를 자처하는 저 메이드 인형의 움직임은 마치 어디서 뭐가 날아올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니케가 외쳤다.

“이래선 안돼! 반반 나누자! 17호와 19호, 20호는 제이슨과 베닐 쪽! 나머지는 날 엄호해 줘!”

지시를 받은 캐롯 시리즈가 기민하게 움직여 대형을 이뤘다.

이건 흡사 포위진.

활을 들고 연신 견제사를 쏘아대던 베닐이 외쳤다.

퉁퉁!

“도망 못 가게 벽을 뒤에 두게 해!”

감게일에게 얻어맞으며 들은 기초 전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던전 보스의 방에 들어오자마자 평소보다 더 활기와 용기가 넘친다.

마치 그간 괴롭히던 던전의 저주가 축복으로 바뀐 듯하다.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에라! 죽어보자! 꼬마들은 날 따라와! 엄호해!”

캐롯 시리즈를 이끌고 달려 나간 니케를 향해 빗자루가 날아든다.

퍽!

부들부들 떨리는 방패 사이로 희열에 찬 니케의 눈빛이 드러났다.

“흐헤헤! 모양은 좀 빠지지만 역시 들길 잘했어!”

그러곤 방패와 자리를 바꾸듯 롱소드를 휘둘렀다.

그걸 간단히 회피한 메이드 인형은 무기의 필요성을 느끼고 빗자루를 잡아당겼다.

스르릉.

번뜩이는 빛과 함께 긴 칼날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걸 보던 소년들의 긴장이 극에 달했다.

적이지만 멋지다! 여태껏 본 적이 없는 강적!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왜, 왜 이렇게 신나지? 하하!

긴장과 공포, 희열과 광기에 질려 있던 소년들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간다.

숨겨진 롱소드를 뽑아 든 던전 보스가 중얼거린다.

“나는 1층 던전 보스, 규칙적인 생활을 강요하는 메이드 오토마톤 샤를입니다. 잠꾸러기와 세상 모든 게으름에 철퇴를.”

칼을 빼 든 메이드 오토마톤의 눈에서 섬광이 번뜩인다.

퍼퍼퍼퍽!

“으헉!?”

눈을 뜨니 또 낯선 천장.

울화통이 터진 니케가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괴성을 내질렀다.

“으이이이으아아아! 또야! 몇 번째냐고! 아아악!”

의수를 도금해서 번쩍이는 황금팔로 만들어 버린 대머리 감게일이 그 꼴을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이 자식은 기껏 옮겨놨더니 왜 이래? 얌마! 던전에 기 빨려서 정신이라도 나갔냐?”

“으아! 겨우 보스 앞까지 갔는데 하필 거기서 정신을 잃냐고! 이 바보 천치!”

스스로 머리를 쥐어뜯는 그의 곁으로 갑옷을 입은 여기사가 다가왔다.

훈련소장 아리에테였다.

눈을 내리깐 그녀가 금속으로 된 손을 내밀었다.

“주변은 좀 살피게 되었느냐? 일어나라 애송이, 너희들도 아직 할 수 있다.”

이를 빠득 깨문 니케가 거칠게 팔을 휘둘러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여기 와서 만난 동료들도 정신을 차리고 있다.

“반드시 3층까지 돌파하고 말 거다! 모두가 나를, 우리를 인정하게 할 거야!”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긴 삐뚤어진 소년들이 다시 투지를 불태웠다.

* * *

용사 훈련 기숙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크랭크의 공방, 그곳으로 마침 1층 던전 보스가 시장바구니를 가지고 들어섰다.

한가로운 오후의 작업장에는 고대인의 무기를 붙들고 꿈지럭거리는 크랭크와 군것질을 하며 그걸 구경하던 투나가 있었다.

요즘 투나가 뭘 자꾸 주워 먹는 게 신경 쓰인 샤를이 투나의 곁에 바싹 다가가 말했다.

“식사 전에 뭘 자꾸 먹지 마십시오.”

말린 오징어를 우물거리던 투나가 으히히 웃는다.

“이, 이거, 시장에서 산 바, 바다 건어물이라는 건데 그, 머, 멈출 수가 없어서, 으히히. 우오옥?!”

투나가 화들짝 놀란 이유는 샤를이 그녀의 뱃살을 움켜쥐어서.

“인간은 운동량 대비 식사량이 많은 경우 몸이 불어난다고 합니다. 살이 찐다고 하던데, 이것이 그 살이 아닙니까?”

“끼이요옵!”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샤를의 손을 쳐내고 호다닥 물러선 투나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했다.

게다가 어쩐지 땀도 좀 흘리는 것 같다.

“흐, 흐흐히히. 이, 이건 말이야. 그, 겨, 겨울이 다가오고 있으니 야, 양분을 비축해 놓은 거야. 그, 그래, 으흐히히. 야, 양분!”

“양분이군요. 그럼 위쪽의 가슴에도 양분이 들었습니까? 전보다 더 커졌습니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질문은 가끔 사람을 죽이곤 한다. 그것은 오토마톤일지라도 비슷하다.

아무도 없을 때는 속옷 바람으로 돌아다니는 그녀라도 부끄러움은 있었다. 게다가 크랭크도 듣고 있는 마당인지라 결과적으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버렸다.

“으어더더더크커어어?!”

새빨개진 얼굴로 가슴을 감싸 안은 투나가 말을 버벅이는 사이, 샤를이 몸을 돌리더니 그 손에 든 물건을 흔들었다.

“이것은 당신의 건강한 식생활에 불필요합니다. 압수입니다.”

“으허억! 내 오, 오징어어! 돌려줘! 이, 이제 몸통 먹을 차례란 말이야아.”

간신히 제정신을 차린 투나가 맛깔나게 구워 놓은 오징어의 뒤를 쫓는다.

자리를 옮겨 부엌에서 다시 벌어지는 둘의 재미있는 실랑이에 크랭크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저속하지만 대단히 수준 높은 회화 능력, 샤를의 자아 레벨이 저렇게 높았던가?

양철 거인의 시선을 알아챘는지 투나의 뱃살을 잡아 늘이던 샤를은 다시 딱딱한 오토마톤 흉내를 내어 그를 혼란에 빠트렸다.

“이제 식사를 준비, 오늘도 투나가 좋아하는 비프 스튜입니다.”

“내, 내 오징어부터 돌려줘어! 제, 제일 잘 구운 거라고!”

“아이 시시시끄러워라라르라라.”

밖에서 들리는 이상하게 늘어지는 목소리, 이윽고 공방 입구로 요 며칠 보이지 않던 캐롯이 어슬렁어슬렁 들어섰다.

항상 밝은 그 얼굴은 오늘따라 사람처럼 피곤한 모습이었다.

“8번 창고에 있는 거 말야. 확실히 신기한 물건이긴 한데. 여, 여여여연산장치에 과과과과부부부하하가 걸릴 것 같아.”

“역시 자원을 많이 소모하는 모양이군. 캐롯, 이쪽으로 와서 동력을 꺼. 열 좀 식히자.”

“응. 나나나나 지금 후끈따끈해해해해.”

호기심이 생긴 투나가 늘어지게 말하는 캐롯을 만져보고 조금 놀라 버렸다.

“엇, 저, 정말로 뜨, 뜨끈뜨끈해.”

“지지지금이이라라면 찻물도 데울 수 있을 드드드듯? 주주전자 머머리리에 올려 보보보···?”

과열 상태임에도 캐롯의 장난기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머리에 주전자를 올리진 못했는데, 크랭크가 캐롯을 번쩍 들어 작업대에 앉혔기 때문이다.

“에효~! 자자잠깐시시실까까까.”

그대로 발라당 누워 버린 캐롯은 곧 잠자듯 동력을 꺼 버렸다.

여름에 사용하던 냉각 장치를 꺼내던 크랭크가 중얼거렸다.

“혼자서 그 많은 정보량을 처리하기엔 역시 힘에 부치겠지.”

“여, 연산 수정을 추가하면 어, 어때? 음냠냠쩝쩝.”

8번 창고의 최대 기여자이며 동시에 말린 오징어 구이의 탐구자가 되어 버린 투나의 제안에 찬바람으로 캐롯의 따끈따끈한 몸을 식히던 크랭크가 투구를 저었다.

“그렇게 하면 캐롯이, 캐롯이 아니게 돼. 보조 연산 장치를 생각해 봐야겠다.”

“움움, 보, 보조 연솬좡취이! 우적우적!”

“그거 맛있나?”

“음?”

검은 머리에 안경을 쓴, 하얀 얼굴의 여자가 구운 오징어를 북 찢어 내밀었으나 크랭크는 사양했다.

대신 참 맛있게도 씹어대는 그녀의 먹방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데 때마침 아리에테가 공방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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