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문제아! (4) 281 >
우연히 이동 동선을 가로막게 된 소년이 사납게 웃으며 나무 칼을 뽑았다. 곁의 파트너 오토마톤도 두 팔을 벌리고 앞을 가로막았다.
“여기로는 못 가! 으어억?!”
파바바바!
머리 위 천장을 거꾸로 달려가는 자동 인형의 기행을 보고 소년이 분통을 터트렸다.
“망할! 저걸 어떻게 잡아! 벽을 타고 뛰는 게 말이 돼?”
맞은편 수로에서 뛰쳐나온 소년이 외쳤다.
“뭐 해!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어!”
“나한테 명령하지 마! 나는 후작이라고!”
“후작은 너희 당주시겠지! 너는 그분의 처치 곤란 똥 덩어리고!”
“이 자식이!”
얕은 수로에서 엎치락뒤치락 또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그 와중에도 다른 친구들은 발리를 쫓아 수로 탐방을 이어 나갔다.
비슷한 짓을 한 지 3일쯤 되었을 때, 이래 가지곤 안되겠다고 생각한 소년들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통성명을 나눴다.
“비슷한 처지에 일단 나이랑 작위는 빼자. 나는 니케.”
“제이슨, 물론 가명이다.”
우걱우걱 요리를 퍼먹던 녀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후작 영식이, 너 자꾸 그럴래?”
“흥! 너희들도 가명을 대든가. 본명 대 봐야 좋을 게 뭐냐?”
결국 모두는 가명을 댔고, 본명을 댄 니케만 얼빠진 표정을 지어 버렸다.
“하하, 바보 녀석.”
“닥쳐! 후작 영식이.”
“새끼가 자꾸 대드네.”
또 싸우려는데 스파크라는 가명을 댄 소년이 작전을 제시했다. 계획은 지형을 이용해 막다른 길로 몰아넣는 심플 그 자체.
“우리 잠깐만 협력하자고.”
“그래, 집에 갈 때까지만.”
공통된 목적을 위해 5명의 소년은 그렇게 하나로 뭉쳤다.
이튿날 다시 수로 안,
파바바바!
오늘도 자동 인형 발리는 달린다. 하지만 인간들의 학습 능력은 꽤 볼 만한 것이었다.
이번에도 벽을 타고 달려 그들의 추적을 뿌리치려는 찰나 별안간 그네들의 파트너 오토마톤이 휙휙 날아온다.
아래를 보니 소년들이 깍지 낀 팔을 내밀어 뛰어오르는 오토마톤의 발판이 되어 주고 있었다.
“날아올라라!”
“지금이야! 달라붙어!”
날아온 캐롯 시리즈들이 발리의 몸에 찰싹찰싹 달라붙었다.
첨벙-!
거추장스러운 물건을 몸에 잔뜩 붙인 발리는 곧바로 수로로 떨어져 사방에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러곤 다시 발딱 일어나 뒤뚱뒤뚱 도망치기 시작한다.
“좋았어!”
“잡을 수 있겠어!”
니케가 외쳤다.
“긴장 놓지 마! 우회로로 달려! 몰아넣는 거야!”
“알았어!”
“가자! 20호!”
계획대로 수로를 달려간 소년들은 기어코 오토마톤 발리의 퇴로를 막는 데 성공했으며, 팔다리에 5대의 캐롯 시리즈를 매달고 막다른 길에 몰린 발리는 결국 패배 선언을 했다.
“클리어 조건 달성, 패배를 인정합니다.”
“으하하! 됐어! 좋았어!”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지쳐서 숙소로 복귀하니 바로 2번째 퀘스트가 발주되었다.
“이름하여 사인 받아 오기! 아르곤 모험가 길드 소속 모험가를 찾아서 사인을 받아 와! 여기 명단.”
각자 종이 한 장을 받아 든 소년들이 쓴 것을 삼킨 얼굴로 물었다.
“또 도망 다니는 거 아냐?”
“너희 하기 나름일 듯? 하지만 최소 1명은 도망칠 거야. 대인공포증이 있거든?”
바보짓이라며 절규하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슬슬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대인공포증? 누구? 누군데?”
다음 날, 거리에서 난데없는 술래잡기가 이어졌다.
“자, 잠깐만요! 레나!”
“레나아!”
처음 보는 소년들이 자기 이름을 막 부르자 퍼렇게 질린 레나가 전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하는데, 그 뒤로 캐롯 시리즈가 우르르 따라가고, 소년들은 쓰러져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으헉! 헉! 아니, 강화 인간도 사람이잖아? 뭐가 이렇게 빨라?”
뒤를 이어 그녀의 파티 멤버들이 쫓아왔다.
“이 자식들! 너희들 뭐야!”
“아, 아니, 우리는 말이죠!”
사정을 들은 게토는 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소를 만든다더니, 그건가?”
“그래도 훈련이라기엔 애들 장난 같은데. 사인 받아 오라고?”
토스트의 중얼거림에 신관 에리스가 끼어들었다.
“레나 사인은 초면에 힘들지 않을까요? 처음 본 사람은 무서워하는데.”
“아, 그렇네.”
가만히 듣고 있던 애덤이 말했다.
“선물이라도 사 들고 내일 다시 와.”
“선물? 뭐, 뭐 사가야 해요?”
“음, 예를 들면 말이죠.”
마법사 몰리가 레나의 비밀스런 취미 하나를 알려주었다.
그날 저녁, 숙소에서 저녁 밥을 먹으며 소년들은 모아온 정보 교류에 한창이었다.
명단에 올라 있는 모험가들이 자주 목격되는 장소라든가, 만나면 도망가는 사람에 대한 정보라든가.
“다육이? 다육이가 뭐냐?”
“몰라. 꽃집에 가보라던데? 비싼 건 아니겠지? 가진 돈 별로 없는데.”
마침 소년 하나가 홀을 점거하고 있는 사내들을 돌아보았다.
“거기 황금팔 대머리 아저씨. 다육이가 뭔 줄 알아요?”
대머리에 핏대가 솟아난 황금팔 감게일이 신문에서 고개를 들었다.
“너 인마, 어른에게 말하는 꼬락서니가 그게 뭐냐? 하여튼 눈치 볼 거 없이 살아온 애새끼들은 공감 능력이 엉망이라니까. 쯧!”
그의 면박에 후작 영식 제이슨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대머리를 대머리라고 부르는 게 욕인가?”
그러자 모두가 놀란 얼굴로 몸을 뒤로 뺐다.
“우와! 너 괜히 여기 온 게 아니구나.”
“머리 없는 사람한테는 굉장한 모욕이야. 얼른 사과해.”
“왜 내가 사과해야 해? 나는 후작 영식인데!”
기가 찬 소년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었다.
“인마! 빨리 사과 안 하면 너도 저주받아서 대머리가 된다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후작 영식이 뒤를 돌아보았다.
감게일이 콧김을 뿜어내며 투덜거리고 있는데 그의 머리가 유난히도 번쩍인다.
잠시 후, 후작 영식은 절박한 얼굴로 감게일의 다리에 매달려 울부짖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아저씨!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제발!”
“안된다. 너는 전국 4천만 대머리들의 원한을 샀어. 너도 곧 문어 대머리가 되는 거다. 평소 당연하다 여긴 것의 소중함을 깨달아 봐라.”
“으아악!”
신문을 접은 감게일은 재미가 들렸는지 더 음산한 목소리로 버릇없는 후작 영식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요리를 만들어 오던 크랭크가 말했다.
“다육식물을 말하는 겁니다. 볕이 잘 드는 낡은 담벼락에서 많이들 자라지요. 내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오오오!”
그리하여, 예쁜 다육이를 뽑아다 강화 인간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한 친구들은 3일에 걸쳐 그녀를 비롯한 모험가들의 친필 사인을 전부 모으는 데 성공했다.
퀘스트는 비슷한 식으로 5차례 진행되었다.
짧은 건 하루, 긴 건 3일 이상 걸리는 것들도 있었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속에 없는 소리에, 고개도 숙여보고, 감사와 사과의 말도 해본 그들은 드디어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늦가을 풍경의 정취를 물씬 느끼며 마차를 타고 1시간 덜컹덜컹 달린 끝에 도착한 곳은 묘한 기운이 풍기는 동굴 앞.
조금 긴장한 소년들이 그 앞에 나란히 섰다.
“그, 그럼 가볼까?”
“어, 그래.”
“이쪽입니다.”
3명의 소년과 3대의 자동 인형으로 이루어진 파티가 내부로 진입했다.
내부에는 드문드문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
“찍찍! 캬아아악!”
이족 보행하는 커다란 쥐가 직접 만든 창과 돌도끼를 들고 덤벼든다.
지레 겁을 먹은 소년 하나는 주저앉고, 나머지 둘은 선 채로 굳어 버렸는데 오토마톤들이 덤벼들어 도륙을 내놓았다.
피를 뒤집어쓴 인형들이 고개를 돌리자 한때 그걸 못 잡아먹어 아웅다웅하던 소년들이 움찔한다.
“해치웠습니다. 더 진행하시겠습니까?”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자동 인형이 해치워 준다!
“소, 손쉽잖아? 계, 계속 가자!”
“그래!”
니케, 제이슨, 베닐 3인 파티는 그렇게 안으로 더 들어갔다가 썩은 몸뚱이를 가지고 뒤뚱거리는 수십 마리의 좀비와 맞닥뜨렸다.
베닐은 그걸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고, 전투 중인 자동 인형에게서 떨어진 니케와 제이슨은 사방에서 몰려드는 좀비에게 맛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으아악! 저리 가! 저리!”
“베닐을 챙겨야 해! 야! 너희들 돌아와!”
하지만 대답은 좀비가 했다.
“우어어! 어어어!”
남은 두 명이 무거운 롱소드를 힘겹게 휘둘러 보았으나 수로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그들의 저항은 무의미.
결국 소년들의 이번 도전은 쏟아지는 괴물의 이빨에 심심찮게 끝나 버렸다.
“으헉!”
“정신이 드나?”
“어, 여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니케가 파란 하늘을 보고서야 짧은 한숨을 돌리는데, 훈련소장의 호통이 쏟아졌다.
“멍청하긴! 아무런 계획도 없이 덤벼드니 그런 꼴을 당하는 거다! 좀 더 주변을 살피고 유기적으로 생각해라!”
와, 저 사람은 화내는 것도 예쁘네?
진이 빠진 니케는 스르륵 눈을 감고 다시 졸도했다.
기절해서 돌아온 그들을 기숙사에 죽치고 앉은 모험가들이 낄낄거리며 반겼다.
“어이쿠, 이 녀석은 소변을 지렸네?”
“하하! 자식들아! 그 안에서 본 것의 반은 환상이야.”
절반이 환상?
로비에 누워 있던 니케가 그 소리에 도끼눈을 뜨더니 벌떡 일어나 외쳤다.
“으악! 알면 좀 가르쳐 주던가!”
“바보 녀석, 물어보지 않았잖아? 큰일을 앞두고 정보 수집은 필수야.”
“이놈들 질질 짜던 걸 영상기록장치로 찍어서 남겼으면 좋은 가격에 팔렸을 텐데. 하하!”
그들의 비아냥에 울화통이 터진 니케는 캐롯 17호를 바라보았다.
“너도 알고 있었어?”
“모든 비밀은 여러분을 고생시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끄아아악!”
진한 배신감을 느낀 소년들은 마구 소리를 지르거나 훌쩍거리는 등의 난동을 벌였다.
한 차례 실패를 겪은 후, 그들은 다시 머리를 맞대어 작전을 짜고 재도전을 반복했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
“제길, 이 롱소드 너무 무거워! 근력! 근력이 필요해!”
“체력도!”
“어떻게 하면 주방장처럼 될 수 있어요?”
기숙사 주방장으로 취직한 크랭크가 그들의 근육 열의에 감복하여 투구 속의 눈을 번뜩였다.
“일단 팔굽혀 펴기와 스쿼트를 추천합니다. 20살 이전에 고중량은 다루지 맙시다. 성장에 무리를 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기초 검술과 전술 공부는 덤, 검술은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훈련소장 여기사나 검은 머리 오토마톤이 상대해 주었고, 전술 전략은 감게일이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나름의 준비와 경험치를 쌓으며 도전을 반복하던 중, 던전을 헤매던 그들의 앞에 사자상이 그려진 안전 벙커라는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면서 벌써 몇 차례 야단법석을 떤 그들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이게 뭐야? 상자야?”
“아닙니다. 안전 벙커입니다.”
캐롯 시리즈가 앞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리자 착! 하는 소리와 함께 사자상의 눈이 열리더니 다시 닫혔다.
끼이익.
커다란 상자의 문이 열리고 조그만 인형이 또 모습을 드러냈다.
눈썹을 꿈틀거린 니케가 손가락을 들었다.
“전에 누가 물었던 건데, 너희들 대체 몇 명이나 있는 거야?”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나는 캐롯 28호. 4번 안전 벙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다치신 분은?”
다들 지치긴 했지만 다친 사람은 없었다.
안을 살펴보던 니케가 외쳤다.
“어! 이거 봐! 이거 완전 무기고야! 별 게 다 있어!”
니케가 활과 화살통을 꺼냈다. 그 밖에 다른 무기며 보급품도 있었다.
“보급 상자네. 이런 게 있으면 진작 알려줘야 할 거 아냐? 왜 말 안 해줬어?”
4대로 불어난 똘망똘망한 캐롯 시리즈가 임시 파트너를 올려다보았다.
“그건 여러분을 좀 더 고생시키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