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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80화 (280/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문제아! (3) 280 >

그래서 자연히 거리를 두게 된 모두의 곁으로 각자의 자동 인형이 다가왔다.

“모두 저걸 봐주십시오. 비석의 오른쪽 맨 위.”

일행이 아닌 사람들도 덩달아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설명은 계속되었다.

“이곳 청동문을 발견한 모험가들의 이름입니다. 맨 위의 오토마톤 캐롯에 주목하여 주십시오.”

캐롯?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다.

“헉! 설마 네가?”

눈치 빠른 소년 하나가 곁의 오토마톤을 바라보자 주변 캐롯 시리즈들이 전부 고개를 든다.

“긴장하십시오. 지금부터 본체를 만나러 갑니다.”

본체!?

이런 것들에게 본체가 또 있어?

소년들은 원수 같은 자동 인형을 따라 결국 청동문까지 통과, 드디어 아르곤에 입성했다.

원래라면 입성 심사가 있지만 이야기가 된 것인지 꼬마 오토마톤을 따라온 것으로 통과, 다른 도시 색다른 풍경의 거리를 지나 구석진 곳의 건물 앞에 도착했다.

훈련생의 관리를 위해 공방 근처 여관 하나를 통째로 빌려 기숙사로 삼은 건물로, 그 앞에는 은빛 찬란한 갑옷을 두른 금발의 여기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찾아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본 훈련소장 아리에테다. 뒤쪽은 운영위원들.”

뒤이어 건물 창문이 하나둘 열리더니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번엔 저 녀석들인가?”

“꼴 좀 봐, 하나같이 되다 만 똥 덩어리들이네.”

“자자! 움직여라! 안으로 들어가라.”

여기사의 호령에 소년들이 헐레벌떡 움직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모두 고개를 위로 꺾었다.

키가 어찌나 큰지 낮은 천장에 투구를 기울인 채 선 사내가 그들을 반겼다.

“본 기숙사 주방장입니다.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니군요. 더러우면 병 걸리니 일단 씻습시다. 세면장은 지하에 있습니다.”

“워워! 뭘 꾸물거려! 씻고 올라오는데 10분 준다! 더러운 옷은 거기 던져 놓고 수건으로 아래쪽만 가리고 올라와라! 늦으면 네놈들 팔도 이렇게 만들어 주겠다!”

카닥카닥!

금속으로 된 손가락을 기괴하게 움직이는 대머리 사내의 외침에 겁을 집어먹은 소년들이 후다닥 아래로 내려갔다.

오랜만에 뜨거운 물로 씻는 바람에 영혼이 날아가 버릴 것 같았지만 다들 어떻게든 10분 안에 다시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들은 곧장 방으로 안내되었다.

방 안에는 얄밉지만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17호가 반겼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좁은 방 안에 있는 것은 침대와 식사가 차려진 테이블 하나가 전부.

오랜만에 제대로 된 먹거리라 니케는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 앉자마자 빨간 비프 스튜를 퍼먹고 또 눈물을 글썽였다.

“마, 마시쪄!”

“내일부터 정규 일정이 시작됩니다. 먼저 훈련과 퀘스트를 병행하여 던전 입장 자격을 얻어야 합니다. 그 후 던전까지 클리어하면 모든 가치 증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던전은 모두 3층, 그 3층의 보스를 모두 쓰러뜨려야 한다.

밥 먹다 사레가 들린 니케가 눈을 부릅떴다.

“나 혼자?”

“물론 나도 같이 갑니다. 덧붙여서 제한 시간은 앞으로 한 달, 임시 면허가 발급된 상태라 모험가 의뢰를 처리하여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으며, 그 돈으로 개인 장비를 준비해도 상관없습니다.”

밥 먹다 말고 일어나 옷장을 열어 준비된 장비를 살피던 니케가 고개를 돌렸다.

“제한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데?”

침대에 오도카니 앉아 있던 17호가 그를 바라보았다.

“의뢰한 성과를 달성치 못했기에 훈련소에서는 비용의 절반을 환불해 드리며, 대상자는 즉시 본가로 모셔다드립니다. 이후의 거취는 가문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꿀꺽!

떠나오기 전 집사장이 했던 으름장이 기억나 씹던 빵 대신 마른침이 넘어간다.

하지만 이쪽도 비슷한 교화 수업을 많이 받아 본 베테랑 말썽꾸러기, 니케를 포함한 모두는 이번에도 쓸모없는 근자감에 불타올랐다.

“흥! 까짓 별거야? 멋지게 통과해서 돌아가 주겠어!”

“당신의 그 불굴의 의지만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짝짝짝!

캐롯 17호가 박수를 쳤다.

어쨌든 이튿날부터 훈련소의 일과가 시작되었다.

얄밉지만 따뜻한 인형에게 두들겨 맞아가며 겨우 도착한 용사 훈련소에는 정말이지 평소에는 보지 못한 이상한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홀에는 항상 신문이나 잡지를 펴 든 험상궂은 사내들이 앉아 그들을 감시했는데, 말을 걸어보면 툴툴거리면서도 이런저런 정보를 잘 알려주었다.

훈훈하게 덕담도 좀 해주고.

“벌벌 떨지 마, 병신들아. 별로 어려운 거 아냐. 다 너희 고블린 새끼를 사람 새끼로 만들려고 그러는 거야.”

“어어, 그래도 우리들 귀족인데요? 말 좀 신경 써 주시죠?”

“어쭈? 이거 봐라?”

얼굴에 괴물의 발톱 자국이 북 그어진 사내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노려본다.

흐, 흥!

안 그런 듯 턱을 세우긴 했으나 그 포스에 오금이 마구 저릴 정도다.

저, 저게 사람 눈빛이야?

“나는 눈빛으로 사람을 임신시켜 버릴 수 있어. 너 각오는 됐냐? 어엉?”

?!?!?!

이건 누가 봐도 분명히 놀리는 거다.

하지만 그걸 사실로 믿게 만드는 이 압박감은 무엇인가?

이상해! 무서워!

신문을 넘기던 대머리 사내가 중얼거린다.

“귀족은 세습이지? 그런데 너희들이 그걸 받을 자격이 있다고 보냐?”

“하! 좁아 터진 성벽 안에서 으스대는 꼴이란!”

나이를 먹어가며 어느 순간 세계의 이치를 깨달아 버린 사람은 무섭다. 틀에서 벗어난 짓거리도 잘하기 때문에.

“귀족이니 어쩌니 그런 건 여기선 안 통해. 그 점 숙지해라. 사실상 너희들은 맨몸이야.”

자기들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어떤 벽을 느낀 소년들이 주춤거렸다.

이어서 주방장은 투구를 쓴 거인, 그는 제대로 된 식사를 제공하는 대신 괴상한 조건을 내걸었다.

그것은 아침 구보와 오후 근육 단련에 동참하는 것인데 여기서 거인은 항상 팬티 한 장에 투구만 쓴 기괴한 꼴로 뒤를 쫓아온다.

“훅훅! 훅훅!”

“끄아아악!”

“주방장은 왜 나만 쫓아와요!”

“훅훅! 훅훅!”

가장 후미에게 바싹 따라붙은 알몸의 투구 거인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소년, 그대는 군살 없는 엉덩이를 가지고 있군요.”

“으아아아!”

미지, 모르는 것, 정체불명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나 공평하다. 얼굴에 세로 줄이 생긴 소년은 죽을힘을 다해 속도를 올렸다.

그렇게 도시 한 바퀴를 돌고, 지쳐서 도착하면 어느새 식당에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

외향적인 성향이 강한 소년들은 여기서 자기들끼리 기선 제압을 시도했다.

쿡!

멋대로 접시의 햄 덩이를 빼앗기자 소년 하나가 눈이 돌아가더니 곧장 접시를 집어던지고 싸움을 일으켰다.

“이 새끼가!”

“겨우 햄 하나에 덤비는 거냐! 나는 후작 영식이다!”

조금 주춤거린 소년은 눈을 크게 뜨더니 주먹을 당겼다.

퍽!

“나는 자작 영식이다!”

“자, 자작? 자작 주제에 후작을 쳐!”

우당탕! 쿵!

주먹을 쥐고 도끼눈을 뜬 니케가 외쳤다.

“똥 통에 들어찬 똥 덩어리가 작위 타령이라니, 너야말로 정신 차려! 여기선 다 맨몸이야!”

도끼눈을 뜬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테이블이 엎어지는 바람에 음식이 다 쏟아져서 다들 이성을 상실해 버렸다.

“너 인마! 내 계란 후라이와 베이컨을 살려내라!”

“스튜도 살려내! 이 자식아!”

모처럼 제대로 된 아침 식사를 잃은 소년들이 가세, 곧 식당에서 패싸움을 일으켰다.

하지만 호위 겸 감시로 와 있던 모험가들은 그걸 말리기는커녕 구경하기 바쁘다.

“하하! 도련님들, 생각보다 잘 싸우는데? 누가 마지막에 남는지 내기할까? 나는 저 검은 머리.”

“저는 저쪽 금발요. 위치 선점이 좋네요.”

시시덕거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거 무슨 동물들 서열 정리라도 하는 건가? 매 기수가 이러네. 슬슬 말려야 하지 않아요?”

“서로 부딪혀서 모난 부분이 좀 깎이도록 내버려 둬. 발리!”

느긋하게 홀을 차지하고 잡지를 펴 든 대머리 사내의 부름에, 보기 드문 사이즈의 오토마톤이 고개를 돌린다.

마침 홀에서 난전을 펼치는 소년들과 비슷한 키를 가진 오토마톤이었다.

자동 의수를 달고 복귀한 모험가 파티, 리빙 데드의 리더 황금팔 감게일이 말했다.

“발리, 무기를 들거나 위험할 것 같으면 개입해라.”

“예.”

하지만 싸움을 말린 것은 누구도 아닌 주방장이었다.

사실 말릴 생각도 없이 그저 부엌 앞에서 쳐다보기만 했는데도 모두가 주먹 다툼을 멈췄다.

터질 것 같은 근육에 속옷 한 장 걸치긴 했지만 사실상 알몸에 앞치마, 그리고 머리에는 투구.

이런 걸 생전 처음 본 소년들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진다.

기괴, 어딘가 정도를 벗어난 기이하고 괴이한 포스가 그에게서 흘러넘친다.

이윽고 그가 굵은 팔을 들더니 바닥을 가리켰다. 바닥은 쏟아진 음식물과 깨진 접시로 엉망이었다.

“식사를 새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동안 그걸 전부 치우시오.”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은 소년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결국 주섬주섬 깨진 접시를 치우고 바닥을 정리했다.

요란한 아침 식사가 끝나자 대머리 황금팔 감게일이 그들을 불러놓고 누군가를 소개했다.

“이분이 드래곤 슬레이어, 캐롯 님이시다.”

“으엣헴!”

테이블에 올라선 아동복 차림의 꼬마 하나가 허리에 손을 얹고 턱을 세우는데 소년들의 눈빛이 흔들린다.

캐롯? 우릴 여기까지 끌고 온 그 인형의 오리지날? 본체?

“저게 그 캐롯이라고? 사람 아냐?”

“소프트 스킨도 모르냐? 이래서 지방 귀족들은.”

“이 새끼가!”

또 서로 으르렁거리는 소년들을 살펴보던 캐롯이 히죽 웃더니 두 팔을 벌렸다.

“대단해! 너희들은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충분히 갱생의 여지가 있다는 거라고?”

듣던 소년 하나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갱생은 무슨! 범죄자인 줄 아냐?”

“장난이 선을 넘으면 그게 범죄지. 여러 가지 의미로, 너희들 정말로 가능성이 있어.”

이 무슨 저세상 화법이야. 그래서 어떻다는 건데?

소년들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구경하던 캐롯은 킥킥 웃기 바쁘다.

그게 참 얄밉게 보이던 니케가 중얼거렸다.

“야, 확인차 물어보고 싶은데, 너희도 오면서 두들겨 맞았어?”

“크윽! 치욕이야. 아버님에게도 그렇게 맞은 적 없는데. 돌아가면 전부 가만 안 둔다.”

이를 부득부득 갈아대는 그들을 보고 캐롯은 이제 파하하 웃었다.

“됐고! 설명 들어간다! 잘 들어! 너희들은 지금부터 퀘스트를 해결해야 해.”

“퀘스트?”

“바로 던전 닥돌 하는 게 아니라?”

팔짱을 끼고 구경하던 사내들이 웃는다.

“아이들 놀이터가 아니니까. 네 말대로 준비도 없이 닥돌하면 이렇게 된단다.”

감게일과 동료들이 의수와 의족을 떼어내자 잘린 팔다리가 뭉툭한 절단면을 드러냈다.

소년들의 눈이 커다랗게 변하는 것을 보던 캐롯이 빽 소리를 질렀다.

“왜 애들 기를 죽이고 그래요!”

의수를 다시 끼워 넣은 감게일이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퀘스트라고 해봐야 별거 없어. 그냥 훈련이다. 시작하자.”

첫 번째 퀘스트, 지하 수로에 숨겨진 깃발을 찾아라!

도시 지하 수로, 강에서 물을 끌어와 생활용수나 식수로 사용하는데 그 구조는 가히 던전의 미로를 방불케 한다.

“저기로 간다! 잡아!”

램프를 든 소년이 소리를 지르며 가리키자 동행 중이던 캐롯 시리즈가 그 뒤를 쫓는다.

앞서서 벽을 타고 뛰어다니는 것은 다름 아닌 감게일의 오토마톤 발리, 경량 오토마톤으로 상당한 움직임을 자랑한다.

그리고 깃발은 발리의 팔에 묶인 리본, 그러니까 이것은 사실 술래잡기였다.

“앞에!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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