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문제아! (1) 278 >
가문의 문제아를 교정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변 시선을 의식하는 그들에게 무려 드래곤 슬레이어가 인정하는 용사 훈련소는 꽤 좋은 선전 효과를 자랑했다.
게다가 1기생으로 다녀온 아이들의 눈부신 발전은, 꼭 문제아가 아니더라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 여겨 각 가문에서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리하여 2기생부터는 상당한 성행이 이어졌다.
접수와 뒷조사는 아리에테의 본가인 아이베크 가문에서 맡고, 인원을 선발하여 보내면 아르곤에서 체험 교육을 진행하는 식이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멀쩡한 아이들에게 부족한 사회 경험을 보충하기 위한 경우, 원래 취지였던 문제아의 교정은 좀 다르게 진행되었다.
리즈넷 수도 어딘가의 귀족 가문, 귀족원의 의석수 확보를 위해 암암리에 그 타이틀이 거래되는 실정인지라 돈과 연줄만 있으면 누구든 될 수 있다. 다만 유지가 힘들 뿐.
“그래서 뭐 어쩌라고!”
와장창!
고가의 꽃병을 내던지자 바닥에 꽃과 도자기 파편이 마구 나뒹군다. 씩씩거리던 소년이 얼굴이 벌게져서는 외쳤다.
“그 백작 녀석이 먼저 날 놀렸단 말이야!”
“저희는 자작이고, 그쪽은 백작 가문입니다. 그 정도의 조롱은 일상입니다. 말로 받아넘길 수 있으셨다면 좋았을 텐데.”
자작 가문의 집사장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부인이 아끼는 꽃병을 내려다보았다.
하인들이 달려와 그것을 치우는데 자작 가문의 영식은 여전히 불같은 성질을 죽이지 못했다.
“흥! 그런 모욕을 참아 넘기라고? 난 못해! 그리고 사내자식이 좀 얻어맞았다고 일러바치기나 하고! 내일 학원에 가서 가만두지 않겠어.”
꽃병을 치우던 늙은 집사장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고개를 돌리고 소년을 보는 시선이 싸늘하다.
때마침 하인 하나가 들어와 외쳤다.
“집사장님! 와이번 라이더의 방문입니다!”
“왔군, 내가 나가지. 도련님을 서재로 모셔라.”
노쇠한 집사장이 창가로 시선을 돌리자 창문 떨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와이번이 저택의 앞마당에 내려앉는다.
그 등에서 투구를 쓴 사내가 미끄러지듯 내려오더니 와이번의 가슴에 매달린 가방에서 묵직한 트렁크를 꺼냈다.
마당으로 나간 집사장이 그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베르란디드 자작 가문의 집사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집사장님. 방주 도시 아르곤에서 항공 특급입니다.”
그러면서 와이번 라이더가 내민 것은 묵직한 가방, 차라도 대접하려 했으나 그는 정중히 거절하고 바로 돌아갔다.
묵직한 가방을 들고 서재로 향한 집사장은, 팔짱을 끼고 소파에 앉아 있던 본 자작 가문의 외동 니케의 앞에 그것을 내려놓았다.
“이게 뭐야? 선물이야?”
“선물은 착한 아이에게 주는 것이고요. 도련님 같은 나쁜 아이에겐 벌을 주려고 합니다.”
내내 인자하기만 하던 집사장이 돌변했다.
심약한 자작 내외에게서 어떻게 이런 포악한 녀석이 나왔는지 그의 인내심도 한계에 도달한 상황.
맞은편에 앉은 집사장은 느긋하게 말했다.
“도련님, 왜 귀족 가문의 아이들은 다들 예쁘고 총명한지 아십니까?”
“뭐? 모르겠는데?”
몸을 느긋하게 소파에 기울인 집사장은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 위치에 어울리지 않는 녀석이 있으면 갈아 치우기 때문입니다.”
가을의 서늘함이 서재를 감돌지만, 범을 앞에 둔 하룻강아지의 얼굴은 뜨겁게 달아오르기만 했다.
“이 영감쟁이가?! 말 다 했어!”
딸깍.
가방의 잠금장치가 해제되고 니케 쪽으로 열렸다.
안에는 10세 언저리의 꼬마 소녀가 웅크린 채 들어가 있었다.
놀란 니케가 반쯤 일어섰는데 그 안의 물건이 고개를 휙 돌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팔을 들었다.
“캐롯 17호,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뭐, 뭐야? 이 땅콩은?”
저택에서 가끔 사용하는 꼬꼬마 사이즈 오토마톤이었다.
특이한 것은 전용 전투복과 방열 가발을 장비하고 있다는 것.
고개를 휙 돌리자 밋밋한 얼굴에 파란색 눈알이 니케를 바라본다.
“대상 확인, 베르란디드 자작 가문의 니케 도련님이십니까?”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집사장이 말했다.
“맞습니다.”
“저희 겨울기사단의 용사 훈련소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교정 작업을 시행하겠습니다.”
손녀를 보는 것 같은 기분에 허허 웃음 지은 집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오.”
“뭐야? 둘이서 무슨 소리냐고?!”
고개를 휙 돌린 캐롯 17호가 니케를 노려보았다.
“교정이 시작됩니다.”
퍽-!
정권 지르기는 정확히 배를 강타했다.
고꾸라진 도련님을 질질 끌고 나가는 인형을 바라보며 집사장은 오랜만에 고요한 저택을 만끽했다.
“헉?!”
정신을 차린 니케가 얼굴을 찌푸리며 배를 감쌌다. 아프다. 숨쉬기도 어렵고,
“정신이 듭니까?”
고개를 돌리니 따스한 가을 들판에 오도카니 앉은 오토마톤이 꽃송이 화관을 만들고 있다.
그림 같은 모습을 즐길 틈도 없이 니케가 성을 냈다.
“넌 뭐야! 여긴 또 어디야?”
“안내, 당신은 평소 불성실한 행실로 타의 모범이 되지 못하였기에 이에 아르곤 겨울기사단에서 운영하는 용사 훈련소의 제3기 용사로서 추천되었습니다. 퀘스트를 수행하여 당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동시에 올바른 사람의 됨됨이도 익혀봅시다.”
캐롯 17호가 완성된 화관을 그에게 내밀었다.
“퀘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나와 함께 북부 방주 도시 아르곤으로 향하여 그곳의 던전을 돌파합니다.”
“놀고 있네! 내가 뭘 했다고 이러는 거야!”
탁-!
거칠게 팔을 휘둘러 화관을 쳐낸 니케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시야에 잡히는 것은 그저 공허한 초원뿐이다.
“제기! 여긴 어디야? 성벽 밖이야? 언제 여기까지 온 거야?”
“수도 리즈넷과 방주 도시 메인쿤의 중간 지점입니다. 빨리 걸으면 해가 지기 전에 가까운 휴게소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초원 저 멀리 건물 같은 것이 보이긴 하다.
“그런데 왜 하필 이런 곳에 떨궈!”
“당신을 고생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너 이 새끼야!”
분노한 니케가 느닷없이 발길질을 날렸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혼자서 꽃밭을 나뒹굴어 버렸다.
“에잇! 제길! 어디로 도망갔어!”
좀 떨어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캐롯 17호가 그에게 이쪽으로 오라는 듯 손짓했다.
귀여운 모양이었으나 바닥에 쓰러져 있는 니케에겐 충분한 도발로 보였다.
까딱까딱.
“어서 일어나십시오. 이쪽입니다.”
“이 고물 인형아! 돌아가기 전에 너부터 손 봐주마!”
도끼눈을 뜨고 그 나이대 특유의 분통을 터트린 니케가 다시 덤벼들자 캐롯 17호는 이리저리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그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오토마톤을 고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람을 병신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언사입니다. 앞으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너, 인마! 거기 서!”
초원에서 술래잡기로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도무지 잡히질 않는다.
그 후 소년이 제풀에 꺾여 쓰러지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시간 후, 풀밭에 드러누워 씩씩거리는 니케를 보던 캐롯 17호가 서쪽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해가 지고 있습니다. 밤에는 기온이 내려갑니다. 서둘러 이동해야 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 뜻대로 되지 않자 니케는 발광하기 시작했다.
“아아악! 아아악! 그냥 내버려 둬! 내가 죽어 없어지면 다들 편히 살겠지!”
“그걸 바랐다면 당신은 여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퍽!
캐롯의 발길질이 시작되었다.
“아으악! 야! 무슨 짓이야! 미친 인형이!”
화가 나 잡아채려 해도 빨라서 손에 잡히질 않는다.
캐롯 17호는 그렇게 니케를 걷어차 굴리며 해가 떨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몸은 지쳤지만 입은 아직 살아서 고성에 욕설도 곧잘 했으나 수십 미터쯤 그렇게 굴러가자 니케가 서서히 입을 다물었다.
턱!
공을 차듯 하던 캐롯 17호가 그의 어깨에 발을 올리고 묻는다.
“울고 있습니까?”
“흐으읍! 으으으읍!”
난생처음 당해보는 일방적인 폭력에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니케가 흙먼지와 잡풀에 더러워진 몰골로 눈물과 콧물을 흘리고 있다.
고개를 끄덕인 캐롯 17호는 다시 발길질을 시작했다.
퍽! 퍽!
“일어나서 걸어야 합니다. 일어나십시오.”
울분에 차 될 대로 되라는 심정에 가만히 있으니 이 미친 인형은 살이 찢어져 피를 줄줄 흐르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 인형이 인간의 멱살을 쥐고 들어 올리더니 손찌검까지 서슴지 않았다.
작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퍽퍽 두드리자 코피가 터져 버린다.
“일어나야 합니다. 두 발로 서야 합니다. 아니면 얼어 죽습니다.”
얼어 죽기 전에 맞아 죽겠다!
생존 본능이 고집과 아집을 꺾어 버렸다.
부어 오른 눈을 뜬 니케가 터진 입술로 중얼거린다.
“씨발! 그, 그만 때려!”
하지만 캐롯 17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때렸다.
“그런 못된 말은 어디서 배웠습니까?”
퍽퍽!
기절 직전까지 두들겨 맞은 니케가 캐롯 17호의 말을 듣게 된 것은 50미터 정도 굴러간 직후의 일이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몸을 일으키며 니케가 부들부들 떨어댔다.
“이, 일어섰어, 그, 그만 때려!”
고개를 끄덕인 캐롯 17호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해를 향해 손바닥을 들이대며 일몰 소요 시간을 계산했다.
“약 15분 후, 해가 완전히 떨어집니다. 휴게소까지 3㎞,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흐우우! 우우우! 훌쩍, 크흡!”
이렇게 잔인한 패배와 굴욕도 난생처음 겪어본 소년 니케는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리며 걷고 또 걸었다.
여기에 처량한 울음소리는 덤.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어둠이 깔리자 캐롯 17호가 분주해졌다.
슬링을 꺼내 휭휭 돌리더니 어디론가로 쏴대며 상황을 설명했다.
“늑대입니다.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동 속도를 높여야 합니다.”
“흐읏! 느, 늑대?”
질겁하여 고개를 돌리니 정말 달빛도 없는 초원 저편에 빛 구슬이 어슬렁거린다.
겁을 집어먹은 니케는 서둘러 다리를 놀려 기어코 초원의 휴게소에 도착했다.
쾅쾅!
“무, 문 좀 열어줘요!”
“뭐야? 누구야?”
콘크리트 방어벽 위에서 고개를 내민 사내가 아래의 꼬마들을 보고 놀라더니 서둘러 사람을 불렀다.
“뭐야? 습격이라도 당했느냐? 너희들뿐이야?”
“흐으윽, 으아아앙!”
몰려나온 휴게소 경비병들의 걱정에 안도감을 느낀 니케가 울음을 터트렸지만 곁의 캐롯 17호는 담담했다.
“현재 절찬 사람 만들기 행사 중입니다. 이 소개장을 참고하여 주십시오.”
싹싹한 작은 오토마톤이 편지 한 장을 내밀자 모여들어 그걸 살피던 사람들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애를 이런 밤중까지! 너무하는 거 아냐?”
“도적 떼에는 의외로 귀족 출신이 많다는 것을 아십니까? 사전에 예방해야 합니다.”
꼬마 인형에게서 흘러나오는 실감 나는 증언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엉망이 된 소년을 쳐다보았다.
주위에서 보는 시선이 남달라지자 니케가 주눅이 들어 버렸다.
경비대장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소개장을 돌려주며 물었다.
“뭐, 됐다. 숙식이 필요하지? 돈은 있냐?”
캐롯 17호가 손을 번쩍 들었다.
“없습니다. 무일푼 부랑아를 위한 마구간을 빌려주십시오.”
경비대장이 오들오들 떨어대는 소년을 힐끗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높으신 분들 자식 교육 한번 별나게 하시네. 지미, 안내해 줘.”
“예, 이쪽이다. 따라와.”
그를 따라 마구간으로 찾아가니 쉬고 있던 말들이 놀라서 쳐다본다.
건초 더미에 주저앉은 니케는 무릎을 오그리고 가여운 모습으로 또 훌쩍이기 시작했다.
그들을 데려온 경비병이 씁쓸한 얼굴을 하고 소년을 바라보자 캐롯 17호가 또 끼어들었다.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습니까?”
“왜긴? 불쌍하잖아.”
고개를 돌린 캐롯 17호가 니케를 보더니 다시 그를 올려다보았다.
“대상자가 저지른 만행을 들으면 당신의 생각도 바뀔 겁니다.”
입을 딱 벌린 경비병을 내보내고 마구간의 문을 닫은 캐롯 17호는 니케에게 빵과 수통을 내밀었다.
“오늘의 보상입니다. 당신들은 먹어야 내일도 걸을 수 있습니다.”
부어 오른 눈두덩이 사이의 눈동자가 괴물 인형을 힐끗 쳐다보더니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그걸 받았다.
“후우우, 우우웁! 훌쩍!”
그리곤 또 울면서 빵과 물을 마셨다. 찬물과 딱딱한 빵인데 어찌 이리도 맛있는지 모르겠다.
식사를 마치고 부른 배를 안은 소년은 추위를 느끼면서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여기서 캐롯 17호가 나서더니 그의 앞에 주저앉는다.
“나를 안으십시오. 난방을 시작합니다.”
“어, 으?”
조그만 인형의 등에 늘어진 갈색 머리카락에서 묘한 온기가 느껴진다.
저도 모르게 팔을 내민 니케는 그 머리카락에 얼굴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곧 도끼눈을 떴다.
“이 썅!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배가 부르고 추위가 해결되니 다시 화가 치민다.
하지만 목을 졸라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바닥에 다리를 쭉 펴고 앉은 자동 인형은 목을 조르는 소년을 뒤에 놓고 중얼거렸다.
“오토마톤은 숨을 쉬지 않습니다. 오늘 일과는 끝, 내일도 걸어야 하니 자야 합니다.”
쾅!
머리를 휘둘러 뒤에 앉은 니케의 이마를 찍어 버리자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그제야 고요해진 마구간, 말들도 다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