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277화 (277/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던전 탐험! 277 >

때마침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크랭크와 아리에테가 모습을 드러냈다.

캐롯이 고개를 돌렸다.

“오! 어떻게 됐어?”

아리에테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마스터가 영주님을 설득해 보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너를 부르던데?”

“이젤리아의 이야기 때문이겠지. 다녀올게!”

캐롯이 도도도 2층으로 뛰어오른다.

그걸 보던 모험가들이 크랭크와 아리에테에게 모여들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거 진짜야? 요 며칠 안 보인다 싶었는데, 드래곤 슬레이어라고?”

“난리 통에는 영웅이 필요해서 살짝 손본 이야기입니다. 실제로는 쫓아낸 정도입니다.”

크랭크의 겸손은 가끔 사람들의 화를 돋우곤 했다.

“이 친구야! 드래곤! 드래곤이라고? 그걸 쫓아내다니!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말 좀 해봐!”

길드 모험가들이 다 몰려온 흥겨운 이야기 한마당, 그 자리에서 슬쩍 빠져나온 아리에테는 게토의 파티와 함께 있는 귀족 자제들에게 다가갔다.

짝꿍을 하나씩 데리고 있는 아이들이 고개를 들었다.

“3일 정도 이분들을 따라다니면 된다. 돌아오는 즉시 마지막 수업을 진행하겠으니 기대하도록.”

“통과하면 집에 가는 건가요?”

항상 무뚝뚝한 아리에테가 드물게 빙긋 웃는다.

“물론이다.”

* * *

아무래도 완전 처음부터 던전을 만드는 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기존의 것을 개조하기로 했다.

눈여겨 봐둔 것은 성 밖 2시간 거리에 초심자가 자주 이용하는 포도 던전.

단, 용의주도한 영주는 판매가 아니라 임대를 제안했다.

그 기간은 3년.

“그 안에 뽕을 뽑으면 된다!”

“뭘 뽑아요? 이상한 말이 자꾸 늘고 있어요!”

던전 안을 울리는 우렁찬 목소리에 신관 비타가 버럭 외쳤지만 아리에테는 신난 표정이었다.

처음엔 내부를 싹 비워 버리고 시작하려 했으나 시간도 너무 걸리고 몬스터 경험치가 아깝다는 생각에 대부분 그대로 유지, 대신 생존 벙커를 설치해 유사시 거기 들어가 숨을 수 있도록 했다.

제작과 설치는 크랭크를 중심으로 남자들이 도맡았다.

먼저 보리스와 친구들이 신들린 듯한 삽질로 맞춤 맞게 벽을 파내면, 거기다가 끌고 온 상자를 그냥 쑤셔 박는 것이다.

아리에테가 그 신속 간편함을 극찬했다.

“대단히 손쉽구나!”

바닥에 주저앉아 헉헉대던 지오와 보리스가 숨을 토했다.

“헉헉! 소, 손쉽기는요!”

이렇게 설치가 끝난 안전 벙커 안에는 각종 보급품과 전투용 오토마톤도 한 대씩 들여놓았다.

“캐롯 21호, 네 사무실은 여기다. 방문하는 손님들을 지키고 보호해라.”

고개를 끄덕인 캐롯 21호가 벙커 안으로 쪼르르 달려가 문을 걸어 잠갔다.

문짝에는 커다란 사자의 얼굴이 양각되어 있고 고약한 유황 냄새를 풍기기까지 했다.

문 앞으로 다가간 크랭크가 말했다.

“잘 보이나?”

착!

사자 문양의 왼쪽 눈이 열리더니 캐롯 21호의 유리 눈알이 드러났다.

“잘 보입니다.”

비타가 물었다.

“그런데 내내 여기 혼자 있어요? 외롭겠다.”

벙커를 만드는 동안 주변을 경계하던 캐롯이 히히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외로움은 사람만 타는 거야. 오토마톤은 외롭지 않아.”

“유지 보수도 있으니 퇴근 시간은 준수할 생각입니다만.”

크랭크가 덧붙이자 다들 하하 웃는다.

라이트 볼을 몸에 붙인 아리에테가 재촉한다.

“몇 개 더 남았다. 오늘 중으로 1층을 전부 개발해 놓자.”

“오우! 가자!”

머리에 수건을 둘러매고 일꾼들을 이끈 십장 캐롯의 힘찬 외침과 함께 던전 내부 공사는 계속 이어졌다.

그들이 사라진 동굴 안, 숨어 있던 붉은 눈동자들이 나타나 방금 만들어 놓고 간 벙커 주변을 어슬렁거리더니 급기야 손에 든 무기로 두들겨 본다.

“크르륵!”

깡깡!

착!

쪽문이 열리고, 사자 얼굴의 왼쪽 눈만 푸른색 유리 눈알이 드러났다가 다시 사라진다.

착!

안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고블린이며 랫맨들이 캭캭 발광했으나 도끼나 철제 무기로 타격을 가해보아도 시커먼 철문의 사자상은 흠집도 나지 않는다.

오히려 고약한 냄새가 더 심해졌다.

얼굴을 찌푸리며 코를 잡고 물러선 그들은 자기들끼리 꽥꽥찍찍 떠들어 대더니 모험가들이 사라진 갈림길로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동굴 저편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더니 겨우 도망친 몇몇이 달아나기 바쁘다.

“캬으캭! 캬악!”

“찌이이익! 찍!”

“와아아!”

기겁한 채 도망치는 소형 몬스터들 뒤로, 온통 똑같이 생긴 캐롯 시리즈가 두 손을 번쩍 들고 놀리는 듯 뒤쫓고 있다.

머릿수건을 두른 십장 캐롯이 삽자루를 들고 선두에 서서 외쳤다.

“케케케! 거기 서! 목만 내놓고 파묻어 줄게!”

곧이어 아리에테의 목소리도 들린다.

“캐롯! 돌아와! 쫓아내기만 해도 된다! 그놈들도 소중한 직원이다!”

끼긱 멈춰 선 캐롯 시리즈가 추적을 멈추고 다시 돌아갔다.

캐롯이 뒤를 돌아보며 윙크했다.

“대표님 말씀 들었지? 조만간 너희들이 나설 차례가 올 거야. 기대하라고.”

숨어 있던 몬스터들은 그저 복수의 이빨만 갈아댈 뿐이었다.

그리고 3일 후, 초보자 던전이 완성되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일행들은 이제 몰리 마법사단에게 맡겨놓았던 귀족 자제들을 불러들였다.

처음인지라 장비는 넉넉히 준비해 주었다.

전술 조끼, 포션, 연막탄, 나이프에 아밍소드, 자동 석궁을 든 소년도 있었다.

“이, 이거 무거운데요?”

묵직한 자동 석궁을 늘어뜨리자 모두가 놀라서 사선에서 물러선다.

아리에테가 소년의 머리를 꿍 쥐어박더니 면박을 주었다.

“장난으로라도 석궁의 총안을 사람에게 향하게 하지 마라! 칼도 마찬가지다.”

“아흑! 예, 예!”

일행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하지만 그래도 17살인 소년이 고개를 돌렸다.

“정말로 여길 통과하면 집에 가는 건가요?”

“그뿐이냐, 모두가 너희를 우러러볼 것이다. 여기 드래곤 슬레이어가 인정하는 용사가 되는 거니까.”

아리에테는 일부러 캐롯을 가리키며 말을 맺었다.

팔짱을 낀 캐롯의 엣헴 소리가 모두를 즐겁게 만들었다.

다음으로 크랭크의 당부가 이어졌다.

“내부의 몬스터는 진짜입니다. 대체로 소형이긴 하지만 요격은 파트너 오토마톤이 담당할 것이니 크게 염려치 않아도 됩니다. 또한 곳곳에 설치한 안전 벙커도 적극 활용하십시오.”

캐롯도 한마디 거들었다.

“이런 세계가 있구나, 정도만 인지하면 충분하니까 섣부르게 나서지들 마. 너희들은 아직 용사가 아니니까. 클리어 조건은 신관을 호위해서 1층 던전 보스를 잡으면 돼.”

침을 꿀꺽 삼키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이 있는가 하면, 겁에 질려 울상을 지은 녀석도 있었다.

“나, 난 못해! 그냥 집에 갈래!”

“나도요! 괴물을 사냥하라니! 미친 거야?”

예상했던 일이기에 아리에테는 두말하지 않았다.

“알겠다. 너희 둘은 포기, 나머지 셋은 어쩔 거지?”

셋은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그리하여 신관 비타를 호위하여 셋만 출발, 잠시 후 오토마톤 로테와 지오, 보리스가 뒤따랐다.

그걸 보던 남은 귀족 소년들이 눈을 끔뻑였다.

“에? 어디 가요?”

“이건 어디까지나 체험 학습이다. 너희들은 앞으로 이보다 더 큰 좌절과 실패를 겪을 거다. 그때 오늘 일은 꽤 도움이 될 거야.”

철컥, 끼릭.

외골격 갑옷이 해제되고 양팔이 뽑혀 뒤로 물러나자 아리에테의 상체만 온전히 드러났다.

그리고 늘어뜨린 팔에는 팔꿈치 아래가 없었다.

사지절단 여기사가 히죽 웃는다.

“손이 없으니 화장실 갈 때가 참 힘들었지 뭐냐.”

모두가 씁쓸해 하는 한편, 그걸 본 소년들의 시선도 흔들린다.

아리에테의 선심은 상당히 충격적이어서 기어코 소년 하나를 일으켜 세우는 데 성공했다.

“그, 그럼 나도 갈래요! 나는 겁쟁이가 아니야!”

이미 던전 입구에는 소년의 파트너 오토마톤 캐롯 4호가 폴짝폴짝 뛰면서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이 달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마지막 남은 뚱보 소년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돌입 후 1시간,

만신창이가 된 친구들이 기어 나왔다.

하지만 씩씩거리는 친구들의 얼굴은 어느새 사나운 전사가 되어 있었다.

캐롯 1호의 파트너 소년은 짧은 숨을 후 불어내면서도 손에 든 자동 석궁의 탄통을 익숙하게 교체했다.

그들은 약이 오른 듯 외쳤다.

“못 잡았어!”

“재도전! 재도전 되죠?”

팔짱을 낀 아리에테가 흐뭇하게 웃음 지었다.

“물론.”

4명의 소년은 이제 쭈그려 앉아 있는 뚱보 소년에게 다가갔다.

“너무 빨라서 못 잡겠어. 궁수가 하나 더 있어야 해.”

“그래.”

“로마.”

뚱보 귀족 소년 로마가 고개를 들자 4명의 소년이 붉은 도끼눈을 뜨고 중얼거렸다.

“가자, 네가 필요해.”

부들부들 떨면서 울먹이는 그는 결국 고개를 저었고, 4명은 하는 수 없이 그를 내버려 두고 다시 재도전을 반복,

기어코 1층 던전 보스를 쓰러뜨리고 밖으로 끄집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 정체는 공방에서 청소와 요리 등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메이드 오토마톤 샤를.

“1층 던전 보스 샤를입니다. 클리어 조건을 달성, 패배를 시인합니다. 축하합니다.”

“와아아!”

“해냈어!”

화사한 햇살이 내리쬐는 던전 입구에 나란히 선 용사들이 커다란 함성을 내지르며 기뻐했다.

캐롯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음! 너희들에게 용사의 칭호를 하사하노라! 집에 가서 드래곤 슬레이어에게 인정받았다고 자랑하도록 해.”

신이 난 친구들이 말했다.

“재미있었어! 한 번 더 해보고 싶다.”

“어? 던전은 3층까지 있어. 각 층마다 보스가 있고.”

“에에?!”

기겁한 소년들이 놀라움의 비명을 지르더니 곧바로 재돌입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번엔 멱살 캐리가 시전되었다.

“이리 와! 이 돼지야! 가서 또 놀림당할래?”

“싫어! 무서워!”

다들 속이 턱 막히는 기분, 하지만 이해는 한다. 자기들도 다 비슷한 처지였으니까.

“너를 지금 데려가지 않으면 나는 평생 후회할 것 같아!”

로마의 다리를 잡아 질질 끌며 그들은 기어코 던전으로 재돌입했다.

하지만 수 시간 후, 그들은 구조단의 보호를 받아 탈출했다.

“2, 2층은 너무 어려워.”

“지친다.”

머리를 쥐어짜며 그 던전을 설계한 아리에테가 흐뭇하게 웃었다.

“2층부터는 모험가 연습용으로 꾸며본 거라 난이도가 배 이상 오르지. 어쨌든 상기 목적은 완수했으니 여기까지다.”

짝짝짝!

다들 박수를 치면서 그들을 칭찬했다.

“뒤에서 지켜봤지. 잘했어.”

“멋졌어요!”

“잘했습니다.”

저택에서 듣곤 하던 속 빈 칭찬과는 다르다.

소년들은 난생처음 맛본 뿌듯한 고양감과 성취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캐롯이 말했다.

“너희들은 좀 나대도 괜찮아. 봐봐, 너희 또래 어느 누가 고블린과 드잡이를 해봤겠어? 언제나 세상을 기선제압! 잊지 말도록 해.”

작은 소녀형 인형들이 나란히 서서 그들을 바라보며 다 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준다.

그 덕분에 소년들의 감정이 폭발했다.

“으아아아!”

“아아아아!”

“우오오오!”

주변 숲을 향해 마구 자기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와중에 비타는 부상자가 신경 쓰였다.

“마트 도련님, 괜찮아요? 치료해 드린다니까요.”

랫맨의 공격에 눈썹 끝을 긁힌 백작 영식 마트는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남자의 상처는 훈장이래요. 게다가 이거 딱 좋은 곳에 생겼어요. 하하!”

처음 왔을 때는 내내 의기소침했던 소년들이 어쩐지 좀 밝아진 것 같다고 비타는 생각했다.

하지만 버럭 외치며 그 손을 잡아끌었다.

“그래도 소독은 해야 해요. 이리 와요!”

던전 돌파까지 완수한 용사 훈련소 1기생의 수료식은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겨울기사단의 파티 멤버들이 모인 공방 앞에서 캐롯이 소년들의 가슴에 반짝이는 배지를 매달아 주었다.

“에? 한 사람이 비네? 통통이 로마는?”

“로마는 2기생 모집 때 다시 도전하기로 하고 먼저 돌아갔어. 일주일 뒤 또 볼 거야.”

수첩을 펴 든 리슐리에의 대답에 캐롯의 얼굴이 확 밝아지더니 4명의 용사들을 바라보았다.

“오! 멱살 잡고 하드 캐리가 통했어!”

온실 속의 화초로 자라온 아이들이 흐뭇하게 웃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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