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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72화 (272/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용사 후보생! 272 >

“그렇습니다. 용사 훈련소의 1기생들이 도착했습니다.”

요즘 아리에테의 비서관을 자처한 리슐리에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대답했다.

그 말에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도망치듯 돌아온 세 사람이 각자의 심정을 토로했다.

“용사 훈련소! 참 멋진 이름이지 않은가! 마음에 들어!”

“와하하! 다 데리고 감자 캐러 가는 거야!”

아리에테와 캐롯은 몹시 좋아했지만, 팔짱을 낀 채 잠자코 있던 크랭크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공방이 좁아지겠군. 정말로 확장이나 이사를 고려해 봐야겠다.”

곁에 앉은 캐롯이 정말로 비좁아진 공방을 두리번거렸다.

“와! 우리 여기서 얼추 1년 있었구나? 굉장히 오래 살았던 것 같아.”

“으히히, 마, 많은 일이 있었지. 시, 식구도 잔뜩 늘고, 이웃도 생기고.”

“그렇네, 우리들 앞으로도 쭉 이대로 같이 가는 거야?”

“이, 이변이 없는 한, 나, 나는 여기 눌러앉을 생각인데.”

서로 얼굴을 마주한 투나와 캐롯은 이히히 웃더니 손바닥을 마주 부딪쳤다.

저녁 시간, 공방에 모인 파티 멤버들이 조촐한 식사를 나누며 그간의 인사와 무용담을 나눴다.

“아니, 뜬금없이 드래곤 슬레이어?! 정말로요?”

“엣헴!”

허리에 손을 올린 캐롯의 귀여운 잘난 척이 오늘따라 무시무시하다.

그리고 이어진 신나는 모험담은 모두의 입을 딱 벌어지게 했다.

“콜록콜록! 이이입맞춤이라고?! 아리에테가 크랭크에게?”

“엉! 우오오옥!”

천진난만하게 대답하는 캐롯의 머리로 크랭크의 아이언클로가 덮쳐졌다. 버둥거리는 캐롯을 붙잡은 채 크랭크가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인공호흡이다. 인공호흡, 심장이 잠깐 멈췄었거든. 정말로 죽다 살아났다.”

“어, 오오. 어, 어쩔 수 없지. 사, 살아서 다행이야, 진짜로.”

베시시 웃는 투나의 곁으로 훈련 계획을 마무리한 아리에테가 와서 앉았다.

그러자 비타가 두근두근한 표정으로 인공호흡에 관해 물었다.

“어, 어땠어요?”

팔짱을 낀 아리에테가 비타에게 얼굴을 바싹 들이대더니 말했다.

“필요하다면 나는 너와도 입을 맞출 수 있다. 그럼 알 수 있을 거야.”

“엑?”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실실 웃으며 몸을 배배 꼬는 비타를 캐롯이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저거 봐, 비타 고장 났어.”

“음, 그러고 보니 우리 칼잡이 하나도 요즘 상태가 별로예요.”

코비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보리스가 소파에 기댄 채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캐롯이 그걸 보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으와, 쟤는 또 왜 저래? 무슨 죽은 생선 같은 눈을 하고 있네?”

“그게 말이죠.”

모르핀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캐롯과 크랭크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투나를 바라보았다.

“투나! 해냈구나!”

“으히히. 브, 브이! 더, 더 칭찬해 줘.”

기분이 좋아진 투나가 두 손가락으로 V를 만들며 웃는다.

가볍게 손뼉까지 쳐준 크랭크는 이제 의자에 몸을 기대더니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튼 이젤리아에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고, 한동안 좀 쉬었으면 좋겠군.”

“그럴 틈이 어디에 있나! 내일부터 우리는 바쁘다! 용사 훈련소 1기생이라니! 가슴 벅차구나!”

리슐리에가 붙여준 호칭이 퍽 마음에 든 아리에테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캐롯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쿨시크 엘프랑 발명왕 드워프 아저씨는 어디 갔어?”

리슐리에가 대답했다.

“트리스타는 휴가로 고향에, 아까도 말했지만 이번에 던전에서 고생이 많았거든, 쿠르프 아저씨는 철광산 개발 때문에 바쁘시고.”

“오홍, 힘들었나 보네. 던전은 내 전문인데.”

무의식적으로 배에 손을 올린 리슐리에가 곱게 인상을 구겼다.

“선배가 없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라고, 앞으로는 멀리 가지 말아줘.”

벌떡 일어난 캐롯이 양 눈가에 V자 손가락을 들이대며 외쳤다.

“피스메이커! 캐롯!”

하는 짓이 귀엽고 엉뚱해서 모두가 웃음 지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공방이 떠들썩해졌다.

이튿날 아침, 공방이 바쁘다.

새벽부터 눈을 뜬 아리에테는 바로 기숙사로 달려가 명망 높은 귀족가의 부족한 자제들을 들볶기 시작했고, 캐롯은 캐롯대로 머리를 새로 해달라고 징징거렸다.

“드래곤 브레스에 방열 가발이 타버렸쪙.”

“아깝군. 이것도 얼마 못 썼는데.”

“데헷.”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캐롯을 보고 크랭크는 팬들이 보내주는 가발 중에 적당한 것을 찾으려 했으나 캐롯이 고집을 부렸다.

“금발이나 빨간 거면 좋겠어. 가능한 윤기 나는 걸로.”

“배부른 소리 말고 적당히 골라.”

크랭크가 남은 것 중에서 갈색 머리카락을 꺼내 들자 캐롯이 두 팔을 흔들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에엥! 금발이면 좋겠다는! 아리에테랑 좋은 페어가 된다는! 밤에 창고를 다 뒤져봤지만 없더라는!”

예전 같으면 뭐라도 있는 것에 감사하며 아무거나 썼겠지만 요즘 캐롯도 몸값이 올라 버렸다.

최근엔 무려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위명을 얻은 상태.

최소한 리즈넷에서 이런 거창한 위명을 가진 오토마톤은 아마 캐롯 정도가 유일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크랭크도 생각을 고쳐 먹었다.

“알았다. 플루이드에게 수배령을 내려보자. 금발이나 빨강으로.”

“우왕! 주인님 최고야!”

두 팔을 든 캐롯이 신나 하는데 누군가가 찾아왔다.

요즘 맛 간 눈을 하고 다니는 보리스.

“오오, 보리스 왔어? 무슨 일이야?”

“투나 있어?”

캐롯이 고개를 돌리자 마침 저쪽 구석진 곳에 앉아 있던 투나도 일어나 다가왔다.

“수면제?”

“도통 잠을 못 자서, 어, 아리에테 말로는 투나에게 수면제가 있다고 하던데요.”

“자, 잠시만.”

몸을 돌린 투나가 서랍장을 뒤져 알약 몇 개를 가져왔다.

“식후 30분, 하, 한방이야.”

픽하고 힘없이 웃어 버리는 보리스를 가만히 지켜보던 캐롯이 물었다.

“왜? 그 마족이 계속 쫓아다녀서 그래?”

“꿈에 나올 정도야, 끔찍해.”

이후로 모르핀은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지만, 그날의 기억이 너무 강렬했던 탓인지 신경쇠약을 호소하는 보리스였다.

“창문이랑 문에 못질을 해놔도 불안해.”

“중증이네.”

작업장에서 고대인의 무기를 살펴보던 크랭크가 끼어들었다.

“아마 당신의 외견이 그 마족의 취향에 맞기 때문이겠지요. 그걸 비틀어보면 어떻겠습니까?”

“그래, 변화를 주는 거지. 머리를 자르거나 근육을 키우거나. 그나저나 보리스 머리카락 참 탐스럽네. 새카만 검은색이야.”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캐롯이 음흉하게 웃으며 길게 늘어진 보리스의 머리카락을 만져보고 있었다.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한 보리스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머리를 잘라보자.”

“어? 정말? 진짜야? 심사숙고해! 오래 기른 거잖아.”

보리스는 절박했다.

“누나가 좋아해서 그냥 놔둔 것뿐이야. 이젠 됐어. 그리고 어차피 머리는 또 자라.”

결국 보리스는 그 머리를 잘랐다.

가위와 빗을 잡은 양철 거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예술혼을 불태워 멋진 컷으로 스타일을 마무리했다.

말린 고구마를 씹으며 구경하던 투나가 눈을 반짝였다.

“냠냠쩝쩝, 오, 오히려 더 멋져진 것 아냐? 나, 나는 긴 머리보다 이, 이쪽이 더 좋은데?”

“네 말대로 사람마다 취향은 가지각색, 긴 머리가 좋아서 들이댔을 수도 있지. 어딘가의 여기사처럼 말이다.”

캐롯이 들고 있는 거울 안에는 말끔하고 시원한 인상의 미청년이 퀭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리스는 돈주머니를 받았다.

“이건 뭐야?”

“정식으로 매입하는 거야. 용돈 정도로 생각해.”

“음.”

돈은 언제나 소중했기에 보리스는 사양하지 않았다.

수면제를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그를 안타깝게 쳐다보던 캐롯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돌렸다.

“검은색! 검은색도 좋아! 보리스 블랙!”

“남자 머리로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어떨지 모르겠군. 캐롯, 가넷 부인께 맡겨줘.”

“얏호-!”

신난 캐롯이 봉투를 가지고 호다닥 달려 나가고, 자리를 바꿔 아리에테가 공방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뒤로는 이른 아침을 이기지 못한 귀족가의 의지박약들이 우거지상이 되어 어기적어기적 따라왔다.

크랭크가 샤를을 불렀다.

“커피, 6잔. 블랙으로.”

“나는 설탕이 필요한데요.”

5명 중에 약간 뚱뚱한 소년이 손을 들었지만 크랭크는 무시했다.

“무설탕.”

찡그린 뚱보 소년의 손에 블랙커피가 쥐어졌다.

아리에테가 말했다.

“알겠나? 오늘부터 아침 7시에 여기로 모이는 것이다. 잊지 말도록.”

5명의 소년은 듣는 둥 마는 둥 쓰디쓴 커피를 홀짝였다.

항상 바보 취급이지만 아리에테는 의외로 사람을 부리는 수완이 있었다.

짝짝!

“숙련된 조교 앞으로.”

박수를 치자 머리에 양철 투구를 뒤집어쓴 2미터짜리 거인이 속옷 바람으로 공방 안에서 걸어 나온다. 그것도 맨발로.

끔찍한 근육 덩어리를 보고 소년들은 입을 딱 벌렸다.

아리에테가 앞장서서 달리며 외쳤다.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 깃든다! 가자! 늦으면 저 거인에게 먹힐 거다!”

“훅훅! 훅훅!”

소년들의 정신이 번쩍 들어 버렸다.

“어떻게! 어떻게 먹히는 건데! 으아아아!”

“으아! 징그러워!”

“오지 마!”

발광하는 소년들의 뒤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검은 팬티만 걸친 투구 머리가 달리고 있다.

“훅훅! 훅훅!”

“이상해! 무서워!”

“집에 가고 싶어!”

방열 가발을 맡긴 캐롯이 돌아와 보니 공방 앞에는 소년 4명이 엎어져 씩씩거리고 있고, 나머지 한 소년은 크랭크가 어깨에 올리고 도착했다.

“오, 다들 한 바퀴 돌고 온 거야? 기특하네?”

방글방글 웃어준 캐롯이 팔짱을 하고 있는 아리에테를 올려다보았다.

“다들 나쁘지 않은데? 못된 애들만 골라서 보낸다고 하지 않았어?”

“우리도 연습이 필요하니 저쪽에서 신경을 쓴 것 같아. 2기생부터는 다를 거다. 이 녀석들은 그냥 곱게 자란 온실 속의 화초 같은 거지.”

“와오.”

고개를 휙 돌린 금발 소녀가 두 팔을 들고 소리를 빽 지른다.

“용사 후보생! 격하게 환영이야!”

지친 소년들은 숨만 씩씩 몰아댈 뿐이었다.

아리에테가 짠 스케쥴은 조촐했다.

조깅 후 아침 식사, 그다음은 전술 훈련, 점심 식사, 오후에는 간단한 생존술을 포함한 여러 가지 도구 사용 방법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역할극도 시켰다.

“우리는 낭만 강도단! 목숨 빼고 다 내놔라!”

“어, 음, 돈은 별로 없어. 머, 먹을 것은 어때?”

머리에 봉투를 뒤집어쓴 코비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오, 뭐가 있는데요?”

“말고기 말린 것이 있어.”

상황극을 하다 말고 한심하게 느껴졌는지 소년 하나가 고개를 돌렸다.

“이런 게 진짜 통해요?”

가을이라서 해가 떨어지는 시간이 빠르다.

활짝 연 공방 안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상황극을 지켜봐 주던 캐롯이 히히 웃더니 말했다.

“응, 통해. 비슷한 일을 여럿 겪었거든? 그리고 협상 중에는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물건을 꼭 챙겨. 상대에게 나도 가만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게 중요해.”

잠깐 생각하던 캐롯이 말을 덧붙였다.

“음, 말로는 좀 그렇네. 잠깐 기다려 봐.”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린 캐롯이 공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한눈에 봐도 약해 빠진 마도사를 끌고 나왔다.

“으히히, 왜, 왜에?”

“이쪽은 투나야. 우리 공방의 최약체라고 해도 무방하지. 투나, 아까 내가 말한 거 해봐.”

연구하다 말고 붙들려 나온 투나가 처음 보는 소년들에게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 치, 친하게 지내요?”

이제 캐롯은 부엌에서 가져온 식칼을 투나의 손에 쥐여주고 같은 짓을 시켰다.

“이히히, 어, 치, 친하게 지내요. 우리, 으히히.”

부스스한 얼굴의 여자가 식칼을 손에 쥐었을 뿐인데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소름이 쫙 돋아 버린 5명의 소년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응!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정말로!”

“나도, 뭔지 알 것 같아.”

투나를 돌려보낸 캐롯은 이제 소년들에게 식칼을 내밀었다.

“별것 아닌 일에도 연습은 중요해. 훈련이지. 이 상황극은 너희들의 인생에 도움이 될지도 몰라. 차례로 해보자.”

팔짱을 하고 지켜보던 아리에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좋아.”

“뭐가 그리 좋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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