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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71화 (271/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복귀! 271 >

쳐들어간 용사 중의 하나가 기어코 마왕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 구심점을 잃은 마족은 당황했고, 이어서 엘프들이 대륙 전체에 걸쳐 그 붉은 선을 쳐 버렸다.

말이 휴전선이지 더 이상 마족과 그 마기가 밑으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막아놓은 것이다.

“어? 이쪽에선 넘어갈 수 있던데요?”

“오! 넘어가 봤습니까?”

캐롯이 고개를 끄덕이며 올봄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오히려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 된 집사는 조금 아쉬운 표정이 되어 중얼거렸다.

“정말 한번 가보고 싶군요. 보안 정책으로 여행이 금지되어 있어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의 말에서 묘한 부분을 알아챈 크랭크의 눈빛이 번뜩인다. 하지만 입을 다문 그는 용사의 오토마톤을 눈여겨볼 뿐이었다.

캐롯이 놀리듯이 말했다.

“그 설계도는 쓸모없게 되었네?”

“뭐, 상관은 없다.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당주님, 이걸 뭐라고 읽는 겁니까? 이름입니까?”

보이드 자작의 마법으로 소통에 불편함은 없으나 글자까지 보이진 않는다. 당주라고 불린 사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키린, 당시 제작자인 선대께서 붙여주신 이름입니다. 아!”

아차 싶은 얼굴이 그에게서 떠오르자 아리에테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주? 에이그스타 백작 본인이십니까?”

정체를 들켜 버린 현 가문의 당주가 아하하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보통 안 들키는데,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시군요.”

“우리 주인님은 넘겨짚기 대마왕이거든요.”

캐롯이 자랑하자 에이그스타 백작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랭크는 마지막으로 확인 사살까지 시도했다.

그는 키린의 머리 위에 장식된 깃발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문장은?”

“당시 계획의 상징입니다. 용사의 문장이라고도 하지요. 일반 양산품과 구분하려고 새겨놓은 겁니다.”

“어? 오옵!”

캐롯의 감탄, 하지만 크랭크가 눈치를 줬기 때문에 얼른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몸을 돌렸다.

하지만 다른 것을 보고 또 그 입을 놀려대기 시작했다.

“으악! 저걸 봐!”

잔뜩 기대하고 고개를 돌린 크랭크가 움찔해 버렸다.

아리에테의 경우엔 고양이 같이 몸을 움츠리며 사나운 표정을 지었고.

넓은 역사관 저편의 진열장에는 역대 하드 스킨 오토마톤들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몹시 낯이 익었다.

“사이퍼즈의 그 녀석이야!”

도도도 달려간 캐롯이 3배쯤 더 큰 거인을 올려다보았고, 크랭크와 아리에테도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유선형의 하얀 장갑과 묵직한 인상의 투구는 꿈에 볼까 두려운 그 녀석이었다.

에이그스타 백작이 뒤따르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우연히 저것과 싸운 적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에이그스타 가문의 작품이었군요.”

싸워? 중갑 인형과? 그런데도 여기에 서 있다는 것은!

백작이 갑자기 히죽 웃는다.

참 징그럽게 웃는다고 아리에테는 평가했다.

“어, 어떠셨는지요? 적으로 마주한 저희 가문의 작품은?”

진열장 앞에 선 캐롯이 주먹을 휘둘렀다.

“완전 괴물! 드워프 아저씨들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쓰러뜨리지도 못했을 거야!”

“마력수정폭탄의 직격을 버티더군요.”

“돌격창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평가에 백작은 자식의 칭찬이라도 들은 것인 양 몹시 기쁜 표정을 지어 버렸다.

크랭크의 투구가 휙 돌아보기 전까지.

“엘프 장로회의 요청이었습니까?”

“우흡! 쿨럭-! 어흡, 콜록콜록-!”

갑자기 사레가 들린 젊은 백작을 크랭크가 안타까운 듯 바라보았다.

그의 뒤로는 캐롯과 아리에테가 시뻘건 도끼눈을 뜨고 서 있었고.

“어, 음, 실례했습니다. 고객 정보는 비밀이라. 그보다 어떻게 이 녀석을 공략한 것인지 좀 자세히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둘러대는 실력은 형편없군.

투구 속 크랭크의 눈매가 슬쩍 가늘어졌다.

여기까지 보면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크랭크는 그만두기로 했다. 이미 끝난 일, 다시 찾아갈 일은 없을 거다. 이젠 길도 없고.

크랭크는 캐롯에게 손짓했다.

“결정타를 날린 녀석에게 들어보시죠.”

“엣헴!”

결정타?

백작의 눈빛이 흔들린다.

한 세대 전 모델이지만 기함급 자동 인형을 정말로 이런 쪼꼬미가?

하지만 자료 수집이 먼저, 냉철하게 정신을 가다듬은 백작은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캐롯이 당시 전투 상황을 신나게 떠들어대기 시작하고, 아리에테도 중간중간 끼어들어 이야기를 더했다.

덕분에 크랭크는 느긋하게 역사관 관람을 즐길 수 있었다.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며 캐롯이 말했다.

“돌아가서 편지해도 되나요?”

“물론이죠! 이런 귀여운 해외 펜팔 친구라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저 사실 친구가 별로 없거든요.”

수다쟁이 백작의 실없는 소리를 들으며 캐롯이 케케케 웃어주자 눈썹을 꿈틀거린 그가 바로 무릎을 꿇더니 캐롯의 입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가 부러졌네요. 드래곤과 싸워서 그런 겁니까?”

“아뇽, 암살자가 휘두른 칼날을 씹어서 그래요.”

“오, 오우!”

박진감 넘치는 대답에 솔직히 감탄한 젊은 백작은 망가진 틀니를 받아 잠시 안으로 들어가더니 가공을 끝낸 새 틀니를 가져다주었다.

“오! 새 이빨!”

“좋은 정보를 들려주신 보답입니다. 그리고 이건 기념으로 제가 가져도 되겠습니까? 드래곤 슬레이어의 틀니라고 전시해 놓고 싶어서요.”

배를 잡고 푸하하거린 캐롯은 크랭크를 보았다.

“물론입니다. 고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소탈한 성격인지 명망 높은 귀족이 손을 내밀자 크랭크는 어색해하며 그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안녕히!”

마차에 오른 캐롯이 손을 흔들자 역사관을 배경으로 젊은 백작 역시 손을 흔들어 그들을 배웅한다.

유서 깊은 자동 인형 제작 가문의 방문을 마치고 느긋하게 마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크랭크가 수첩을 들여다본 채로 중얼거렸다.

“놀랍군, 내 주변에서 용사의 인형이 2대나 목격되다니.”

“봄바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아도 되겠어?”

“거의 확실하지만 기억이 없으니 진짜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어.”

수첩을 닫은 크랭크가 그걸 안주머니에 집어넣자 뒤를 이어 아리에테의 손이 쑥 들어오더니 다시 수첩을 빼냈다.

“평소 궁금했었다. 여기에는 뭘 적어놓는 거냐으아아으아아!”

“최근 예의가 없어진 여기사로군.”

아리에테의 머리를 움켜쥔 크랭크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그녀가 죽는소리를 냈다.

키키키 웃으며 그걸 보던 캐롯은 말리기는커녕 창밖의 이국적인 풍경을 눈에 담는 것에 집중했다.

“시간 빠르다. 완전 가을이네.”

“돌아가면 메크로에 들러보도록 하자. 이참에 봄바도 만나볼 겸.”

“오! 그러고 보니 지금쯤 감자 수확이 한창이겠다! 공방 식구 다 데리고 감자 캐러 가자!”

두 사람의 의기투합 속에 크랭크의 팔뚝에 눌려 있던 아리에테가 버둥거리며 외쳤다.

“으그그극! 자, 잘못했다! 놔줘!”

방문을 마치고 왕궁으로 돌아온 그들은 복귀를 알리기 위해 요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제이드 기사단장을 찾아갔다.

르클레르와의 협상을 마치고 별궁의 상황실에 돌아와 있던 그녀는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모두를 반겼다.

캐롯이 인사를 했다.

“야호! 단장님, 요즘 어때요?”

“돌아온 건가? 솔직히 힘에 부치는구나. 보이드 후작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과로사했을 거야.”

“다행이네요. 그럼 이제 우리 없어도 되죠? 슬슬 돌아가고 싶은데. 겨울이 오기 전에 감자 캐러 가야 해요.”

제이드 단장은 약간 섭섭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원래는 훈련 및 정비를 위해 파견된 자들이었다.

있으면 의지가 되긴 하는데 마냥 붙잡아 둘 수도 없는 노릇이긴 하고.

“고민이군.”

뽀작뽀작 다가온 캐롯이 상황실의 우아한 의자에 기어오르더니 탁자에 두 팔을 척 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이래요.”

피식 웃어 버린 그녀가 중얼거렸다.

“상황은 정리되어 가고 있다. 드래곤 메르카바에 대한 방비도 엘프들이 부분 방위 조약을 제시했고, 무엇보다 이지스 님의 그 부탁으로 우리는 다시금 하나가 되었지.”

부디 그를 보좌하여 살기 좋은 나라를 이끌어 주십시오.

“잘됐네요.”

혼자서 그날의 감격에 젖어 있던 제이드가 반짝이는 눈으로 되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 나라에 남아서 우리를 도울 생각은 없는가? 작위와 영지를 보장하겠다.”

“싫습니다.”

“싫데요.”

“그렇습니다.”

단칼에 거절당한 제이드는 안타까운 표정이 되어 버렸지만 두 번은 붙잡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튿날, 마침 리즈넷으로 향하는 엘프들의 수송선을 얻어타고 방주 도시 아르곤으로 돌아갔다.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사라진 그들 때문에 섭섭함을 드러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특히 왕자의 충격이 심했는데, 시녀 하나가 편지를 가져다주기 전까지 자폐아 흉내를 내고 있던 그는, 편지를 읽고선 대성통곡해 버렸다.

친절하게 이젤리아 글자로 편지에 쓰인 글귀는 단 한 줄.

멋진 어른이 되어서 다시 만나자고!

“으아아앙!”

* * *

이젤리아 제30대 국왕이 실연이라도 당한 듯 정원 바닥에 드러누워 누구도 말리지 못하는 땡깡을 부리는 사이, 캐롯은 집에 도착했다.

방주 도시 아르곤의 상공, 엘프들의 커뮤니티가 있다 보니 그네들의 비행선도 심심찮게 목격되곤 하는데 이번에 찾아온 것은 엘프가 아니라 도시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들이었다.

두 팔을 번쩍 든 캐롯이 광장에 내려 소리를 마구 질러댔다.

“우효-! 겨우 반나절 만에! 반나절 만에 이젤리아에서 여기까지! 세상에!”

곁에 선 크랭크도 한숨 놓은 표정을 지었다.

얼굴이 보일 리는 없겠지만.

“비, 비켜라.”

수송선에서 묵직한 무언가를 끌고 내리는 아리에테의 목소리, 그녀는 돌아가기 전에 억지를 부려 거의 강탈하듯이 자동 2륜 차를 가져왔다.

“의뢰비 대신이다!”

“그거라면 따로 챙겨 온 게 있는데.”

“나도다.”

정신도 없을 텐데 의뢰비 내놓으라고 해봐야 차일피일 미룰 것 같았기에 크랭크와 캐롯은 적당히 현장에서 물건을 빼돌려 놓았다.

아리에테가 혀를 내둘렀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너희들 생활력이 강한 것 같다.”

“몇 번 의뢰비를 떼이게 되면 너도 우리처럼 된다.”

“케케케! 돈 앞에서 낭만은 항상 뒷전이거든. 어어! 돌아가나 봐! 안녕! 잘 가요! 태워줘서 고마워요!”

떠나는 수송선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캐롯을, 지나가는 사람이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다들 오랜만이네. 일하고 돌아오는 길이니?”

“예! 방금 돌아왔어요. 와! 여기는 완전 가을이야. 남쪽은 그래도 좀 파릇파릇했는데.”

무리의 일행 하나가 크랭크를 보고 말했다.

“어이! 크랭크. 자네들 공방에 요즘 사람들이 꽤 많이 드나들던데. 어서 가봐.”

“잉? 사람요? 오오옥?!”

기이이잉!

뭔가를 눈치챈 아리에테가 캐롯의 목덜미를 잡아채고는 2륜 차에 올라 달려가 버렸다.

홀로 남은 크랭크는 멍청히 그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훅훅하는 소리를 내면서 조깅을 시작하여 마주 보던 사람들을 웃겨 버렸다.

이이잉! 끼이익!

쏜살같이 달려 공방으로 돌아가 보니 정말로 처음 보는 얼굴들이 나무 막대기를 들고 칼춤을 춰대고 있다.

교관처럼 그들을 살피던 사람들이 반갑게 달려왔다.

지오와 코비였다.

“캐롯!”

“아리에테!”

코비가 캐롯을 번쩍 들고 기뻐하는 모습은 나무 칼을 휘두르던 소년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캐롯이 데면데면한 소년들을 보더니 물었다.

“쟤들은 누구야? 내 팬이야?”

긴 다리를 쭉 뻗으며 자동 2륜 차에서 내린 아리에테가 새하얀 얼굴의 소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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