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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64화 (264/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입맞춤! 264 >

마력수정폭탄을 던진 무리는 전원 검은 옷을 차려입고 난장판이 된 곳을 뛰어다니며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데려온 오토마톤들은 기사단의 오토마톤과 한참 칼싸움 중이었고.

덤비는 자들을 제압해 가며 진입한 괴한들은 곧 박살 난 마차 아래에서 기절한 시종장에게 안긴 왕자를 찾아냈다.

“목표 생존 상태로 확보, 즉시 퇴로를 확보해라. 이대로 옮긴다.”

그때 검을 든 기사 하나가 절뚝이며 일어서더니 덤벼들었다.

“이놈들!”

챙!

칼을 막아낸 복면이 엉망이 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힘들 텐데 좀 쉬시구려.”

퍽!

가볍게 걷어차자 기사는 힘없이 쓰러져 버렸다.

그제야 다리가 부러져 있는 것을 확인한 복면이 그를 동료에게 소개했다.

“봐라, 이런 게 기사의 표본이다. 다리가 부러지고도 덤비다니 얼마나 존경스럽냐.”

“퇴로 확보, 철수합니다.”

그때 들어온 보고.

“적 오토마톤이 날뛰고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뭔가 팽이 같은 것이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그 회전 반경에 들어온 것은 무엇이든 분쇄되어 버렸다.

특히 복면을 쓴 수상쩍은 것이라면 인간이든 오토마톤이든 가리지 않고 쫓아다녔다.

키이이잉!

촤아악!

“으아악!”

“아악!”

피투성이가 된 복면 괴한이 쓰러지고, 10세 언저리의 작은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뭔가 언짢은 일이라도 있는지 표정이 딱딱하고 어둡다.

그걸 보고 복면단의 두목 역시 찡그린 얼굴로 중얼거린다.

“뭐냐, 소프트 스킨인가? 왕자 주변에 저런 게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때마침 주위를 살피던 캐롯과 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우리를 봤습니다!”

“전원 철수! 남은 오토마톤을 불러서 저걸 막아! 시간을 번다!”

피이이익!

피리 같은 것을 불자 전투 중이던 오토마톤들이 떼로 몰려와 캐롯에게 덤벼들었다.

그 순간, 캐롯에게서 사람의 표정이 떠오른다.

울분에 잔뜩 일그러진 그 얼굴은 악에 받친 소리를 내질렀다.

“내 주인님을 살려내!”

발레 자세고 뭐고 바로 상체를 휙 돌리자 온몸이 팽이처럼 돌기 시작하는데 치마의 칼날이 가공할 위력으로 회전하며 사방으로 흩뿌려지고 있다.

챙! 카가가각! 깡!

“끄아악?!”

칼과 방패를 내밀어도 다 잘라 버리고, 파고드는 칼날에 사람이건 오토마톤이건 다 쓸려 나가 버린다.

캉!

왕자를 업은 부하를 먼저 보낸 복면 남자가 등에 짊어지고 있던 붉은 방패로 날아오는 칼날 회오리바람을 막아냈다.

카가각?!

사방으로 거친 불꽃이 날렸으나 그의 방패는 잘리지 않았다.

회전을 멈추고 뒤로 뛰어오른 캐롯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화려한 색의 방패 너머로 눈만 드러낸 상대가 말했다.

“자식아, 드래곤 스케일이라는 거다. 그런데 너 이 자식, 3원칙 어떻게 했어? 사람 막 죽이고 말이야. 인형이 그러면 안되잖아?”

그가 시간을 끄는 사이 주변으로 남은 복면과 오토마톤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캐롯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 두 개를 펴더니 딴소리를 지껄였다.

“두 번, 나는 두 번이나 주인님을 잃었어.”

“그러냐, 안됐구나. 그래서 고장 난 거구나.”

뿌직!

핏줄은 없지만, 이마에 핏대가 솟아 버린 캐롯이 광기에 휩싸여 덤벼들었다.

“살려내!”

캉!?

그들 사이로 끼어든 노련한 복면남 하나가 캐롯의 얼굴을 향해 정확히 검을 휘둘렀다.

머리를 잘라 버릴 생각이었지만 캐롯은 여신의 가호를 받는 오토마톤, 찰나의 순간 그것을 이빨로 잡아챘다.

빠드득-! 깡!

“칼이?! 으억, 컥!”

쾅-!

부러진 칼을 들고 기겁한 사내의 안면을 박치기로 뭉개 버린 캐롯이 고개를 돌리는데 얼굴이 엉망이다.

칼날을 씹어 깨버린 덕분에 입가가 찢어져 괴물처럼 되어 버렸고, 이빨도 몇 개가 부러지고 덜렁거린다.

“펫!”

거칠게 무언가를 뱉어냈는데 망가진 틀니가 바닥을 뒹굴었다.

휑한 입안에는 숨겨진 새 이빨이 돋아났다.

챵!

입이 찢어진 인형 소녀가 날카로운 톱니를 드러낸 채 괴한들을 향해 외쳤다.

“주인님을 살려내!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 전부 씹어 주주죽기기기거거거! 데데데! 기기기!”

5배쯤 커진 입에 톱니를 단 조그만 괴물의 외침은 참 안타깝게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오토마톤이 인간을 향해 죽이겠다는 외침을 내지르자 듣고 있던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는 여기사도 한 명 있었다.

귀로는 캐롯의 분전을 들으며, 아리에테는 크랭크와 입을 맞추고 있었다.

“후우우웁!”

크게 두 번 숨을 불어넣은 그녀는 다시 심장 압박을 계속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걱정하던 저주는 전혀 없었다.

투구를 뒤집어쓴 모습이 본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다지 관심도 없었던 크랭크의 맨얼굴은 언젠가 공주님의 오토마톤이 그려준 그림의 그것과 판박이였다.

그래서 아리에테는 주저 없이 다시 입을 맞추고 숨을 불어넣었다.

“후우웁! 일어나라! 양철 거인! 네 인형이 지금 사람을 죽이고 있단 말이다!”

하나! 둘! 셋! 크흐읏!!

심장 압박을 하다 말고 울컥한 아리에테가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후려쳤다.

퍽!

“어서 일어나라고-!”

“커으억! 쿨럭쿨럭-!”

크랭크가 가슴을 붙잡고 몸을 들썩이더니 옆으로 돌아누워 기침을 해댄다.

멍청한 얼굴이 된 아리에테는 서서히 울상을 지으며 훌쩍이더니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크랭크! 으아앙!”

기침을 가라앉힌 크랭크가 아리에테를 보았다.

“후욱, 후! 무, 무슨 일이야? 가슴은 또 왜 이렇게 아픈 거냐?”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살폈는데 사방에 믿을 수 없는 난장판이 펼쳐져 있다.

울먹이는 아리에테의 말로는 폭발 때문에 몇 분간 죽어 있던 상태였다고.

“네가 죽은 줄로만 알고 지금 캐롯이!”

놀란 크랭크가 고개를 돌렸다.

바로 저편, 멀지 않았다.

왕자의 마차가 있던 곳에서 캐롯이 날뛰면서, 사람을 물어 죽이려 하고 있었다.

“끄아악!”

운 없는 복면 사내가 팔을 붙잡으며 쓰러진다.

조그만 몸을 십분 활용한 캐롯은 뒤쫓는 오토마톤을 상대하기보다 복면을 쓴 인간들을 처치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펫!”

날아드는 칼날과 화살을 피하면서 고개를 휙 돌리자 입안에 들어 있던 살덩이가 복면을 쓴 괴한들 앞에 툭 떨어진다.

“으으윽!”

인간을 죽이기로 작정한 기계 인형을 앞에 놓고 제정신을 유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물며 약물과 마법으로 신체 능력을 강화한 특수부대도 어쩔 수 없었다.

“제길!”

펑-!

한 사내가 연막탄을 터트리고 도망치기 시작하자 작전이고 뭐고 다들 그를 따라 사방으로 달아난다.

오토마톤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캐롯은 이제 4발로 뛰어 그들의 추적에 나섰다.

“캬으아악! 내내내내주주주사사사내내라라!”

“으악! 오지 마!”

펑펑!

연막탄을 마구 터트리며 달리는 복면단의 뒤를 캐롯이, 그리고 그 뒤를 오토마톤들이 쫓았다.

지옥의 술래잡기가 시작된 것이다.

“하하.”

웃으면 안되는데 아리에테가 그 꼴을 보고 그만 웃어 버렸다.

그네들이 리즈넷에서 자주 하던 짓이라서.

끙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가슴을 부여잡은 크랭크가 커다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주변 파편 사이에 박혀 있는 창을 뽑더니 그걸 들고 다니며 쓰러진 복면을 일일이 찌르고 다녔다.

그의 기괴한 짓거리에 아리에테가 부축에 나섰다.

“너는 안정을 취해야 한다. 무슨 짓이냐?”

곧 비라도 내릴 것 같은 우중충한 하늘 아래, 창을 든 크랭크가 고개를 돌리더니 아리에테를 바라보았다.

“넌 아무렇지도 않나?”

“뭐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드는데 주변에서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여왕 폐하!”

“폐하!”

“단장님!”

“아버지!”

“어머니!”

“줄리아! 당신이 여기에는 어떻게?”

놀란 아리에테가 주변을 살펴보니 다들 넋을 잃고 그리운 이와의 추억에 잠겨 있다.

도망치던 복면 괴한들도 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군과의 협공으로 뒤따라 붙던 오토마톤을 기어코 다 박살 내고 일어서던 캐롯의 눈에, 어쩐지 익숙한 저주의 피해자들이 보인다.

어어? 어?

쿠르르릉-!

별안간 울려 퍼진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다행스럽게도 천둥소리, 그리고 어두침침해진 하늘에서는 가을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쏴아아아!

빗물은 사람들의 안타까운 추억의 눈물을 가려주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자동 인형에게는 그것을 잠시 빌려주기도 했다.

또르르.

쏟아진 빗물이 캐롯의 볼을 타고 흐른다.

하지만 얼굴은 다시 즐겁다.

자리에서 발딱 일어난 캐롯이 두 팔을 벌리고 와다다 달려간다.

그리고 폴짝 뛰어 크랭크의 가슴에 매달렸다.

“주인님아!”

빗물 범벅이 된 캐롯은 마치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맨얼굴을 드러낸 채 서 있던 크랭크가 한 팔로 캐롯의 몸을 받치며 얼굴을 들이댔다.

감격의 재회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캐롯, 기억해라. 마무리는 전부 내가 했다. 네가 죽인 게 아니야. 내가 죽인 거다. 알겠어?”

길게 찢어져 버리는 바람에 가만히 있어도 웃는 것처럼 보이는 캐롯의 얼굴이 일순 멈췄다가 다시 밝게 웃으며 끄덕인다.

“응! 내가 안 죽였어! 그래, 안 죽였어! 아! 맞다! 왕자님 구하러 가야 해!”

주인님의 생사를 확인한 캐롯은 그의 품에서 뛰어내려 비가 쏟아지는 숲으로 달려갔다.

아니, 그러려다 다시 돌아와서는 주인님의 다리를 철썩 때려보더니 미심쩍다는 듯이 물었다.

“고스트나 좀비 같은 거 아니지?”

빗물에 쫄딱 젖은 크랭크가 씩 웃더니 캐롯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니다. 나는 살아 있다, 너희들 덕분에.”

“응! 그 말이 듣고 싶었어. 우리 모험이 이대로 끝나는 줄 알고 잔뜩 쫄았거든, 우히히.”

앞니가 하나 빠진 얼굴로 활짝 웃으며 본심을 살짝 내비친 캐롯은, 다시 왕자를 되찾으러 숲으로 뛰어들었고, 그걸 지켜보던 크랭크는 이내 가슴을 붙잡은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후욱! 갈비뼈가 나간 것 같다. 숨 쉴 때마다 아프군.”

“이걸 써라.”

아리에테가 투구를 다시 주워 왔다.

하지만 크랭크는 그걸 쓰는 대신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간혹 있었다. 저주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사람들, 안타깝군. 너는 되새길 추억 하나 없나?”

그의 말을 듣고 아랫입술을 삐죽 내민 아리에테가 허리에 손을 올렸다.

난장판인 상황에 비까지 내리고 있지만 다시 일어난 양철 거인과의 대화는 꽤 즐겁게 느껴졌다.

“그리운 자들을 추억한다고? 미련이 남을 정도의 사람은 내게 없었다.”

“너는 사실 쌀쌀맞은 여자로군.”

“네가 할 소리냐!”

푹-!

버럭 외친 아리에테가 그의 머리에 투구를 씌워 넣었다.

그 순간 환상에 빠져 허우적대던 사람들이 끔찍한 현실을 자각했으나 여운이 진하게 남아서 다들 바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 어어?! 어디 갔어! 다 어딜 갔어!”

“여왕님이 안 보인다! 찾아야 해! 그분께 이 충성을 바쳐야 해!”

“나를 두고 떠나가다니! 안돼!”

그 후유증은 빗소리가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자리에 앉은 크랭크가 창대로 목 놓아 울고 있는 사람 중에 복면 괴한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틈에 빨리 저자들을 포박해라.”

몽둥이를 주워 든 아리에테가 서둘러 달려가며 외쳤다.

“맨얼굴도 나쁘지 않지만! 역시 넌 그편이 낫다!”

“얼굴보다 낫다니, 역시 쌀쌀맞은 여자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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