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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58화 (258/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던전! (3) 258 >

부목을 댄 팔다리에서 격통을 느낀 그가 앓는 소리를 내자 레나가 주춤거린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혼자 헤매다가 어떤 커다란 검은 그림자 녀석에게 두들겨 맞았어.”

“나도! 제길! 아으, 다리야.”

“아주 반쯤 죽여놓고 도망치더군! 제길,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

주변에 비슷한 처지의 환자가 즐비하다.

이야기를 들은 레나가 몹시 안타까워했으나 뭔가 감을 잡은 드워프들은 다들 볼을 부풀리고 고개를 돌렸다.

쿠르프가 모르핀을 보고 물었다.

“어, 음, 그런데 넌 왜 영향을 받지 않지?”

“이거 결계인가 보군? 당연하지, 이쪽에 사는 것들을 기준으로 설계된 것이 내게 통할 리가 없잖아?”

다들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기울였으나 쿠르프 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 어르신 쿠르프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다들 괜찮으냐? 좀 떨어진 곳에 통로가 있다. 그쪽으로 일단 다 나가자. 그리고 이 골목 안쪽에 무슨 마법이 걸린 것 같으니 다들 정신 바짝 차려라.”

“마법이라고요! 결계요?”

“아무런 낌새도 못 느꼈는데요?”

그럴 리 없다며 마법사들이 버럭버럭 외치자 왈칵 짜증이 난 쿠르프가 냅다 총을 들이댔다.

“시끄러워! 여기서 나가고 나서 따져라!”

“세상에! 화약 병기를! 중요한 협정 위반입니다!”

엘프까지 들고일어나자 쿠르프는 그들에게도 총을 겨눴다.

“닥쳐라! 네놈들이 붙어 있으면서도 이 사단이 났느냐!”

구경하던 모르핀은 하하 웃더니 눈여겨봐 둔 대머리 남자를 바라보았다.

“빨리 정리해. 저 영감이 진짜로 쏘기 전에.”

게토의 중재로 그들은 최소한의 치료만 하고 바로 뚫어놓은 곳을 통해 탈출했다.

신력을 다 써 버려서 실신한 비타는 지오가 업고, 다리를 붙이지 못한 애덤은 레나가 업었다.

여전히 구덩이 안에서 대기하던 아스칸은 구멍 안쪽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모여들자 그의 의식과는 별개로 자동 필터링이 개시되었다.

“강력한 정신계 간섭기를 감지. 최적화 필터링 개시.”

곧 아스칸의 시야로 사람들의 얼굴이 제대로 보인다.

10미터짜리 구덩이를 파내고 말 그대로 던전을 뚫어 버린 아스칸이 인사를 한다.

“참 힘겨운 밤일세, 제군들.”

“웃기는 소리 말고 좀 올려줘!”

“그래!”

“마지막까지 악과 깡을 잃지 않은 그 모습, 아름답도다.”

허리를 숙인 아스칸이 사람들을 건져 올리는 동안 위에서는 던전을 뚫고 올라온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구덩이에 계단을 파거나 밧줄을 엮어 사람들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나왔어! 다행이야!”

“하늘이다! 별이 보여! 망할!”

드디어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환호를 올렸으나 그것도 잠시, 아직 구조대가 나오지 못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다시 던전으로 발길을 돌린 자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모르핀, 그리고 오토마톤 샤를과 로테.

“부탁해!”

세 사람은 대답 대신 어떤 조그만 꼬마 인형이 자주 하던 것처럼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더니 다시 던전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모험가 하나가 쓰게 웃는다.

“거참, 같은 집 애들 아니랄까 봐.”

부상자들이 쏟아지자 사람들은 쟁여둔 포션과 신관들을 동원해 치료를 시작했으며, 그들 대부분이 일시적으로 회복하여 붉은 도끼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무시무시한 위용이었다.

“던전에서 길 막고 통행세를 요구해? 이 자식들!”

입에 대고 기울이던 포션 병을 던진 게토가 외쳤다.

“멀쩡한 녀석들은 이쪽으로 모여라! 안쪽에 갇혀 있는 애들의 빼내야 해! 아스칸! 너도 올라와라! 정문을 돌파한다!”

구덩이에서 큼직한 손이 쑥 올라오더니 중장갑 갑옷 덩어리의 거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투구 속의 눈빛이 붉은색을 내기 시작한 아스칸이 말했다.

“정면 돌파, 이 몸이 활약할 시간이로다. 나를 따르라 전사들이여. 반격의 시간이 왔다.”

* * *

같은 시각, 결계가 작동 중인 미궁 안에서 지쳐 쓰러진 모험가의 장비를 벗겨 약탈하던 도적들은 그다지 수확이 좋지 않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 부근에는 별로 안 보이네.”

“곳곳에 쓰러져 있겠지. 한 바퀴 돌아보자. 와, 이 자식 스크롤 엄청 많이 가지고 있네?”

“으으윽······.”

탈수 증상을 일으킨 모험가의 눈에는 여전히 검은색 그림자가 자기 몸을 뒤적이는 걸로 보였을 뿐이었다.

“참 힘겨운 밤이야. 그렇지?”

문득 어둠 속에서 들리는 앳된 목소리, 그림자들이 고개를 들자 통로 저편에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보인다.

그리고 들리는 소리.

퍽퍽퍽!

어둠 속에서 난데없이 날아온 주먹질에 도적들이 바로 기절해 버렸다.

따라온 오토마톤들이 칼을 뽑자 늘어진 남자의 멱살을 붙잡고 있던 모르핀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어둠 속에서 그녀의 자동 인형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샤를과 로테, 크랭크가 캐롯을 손보면서 쌓은 기술을 동원해 만든 커스텀 기체로서 당연하게도 고성능을 자랑했다.

챠챠챠챠챠챵! 카카캉!

좁은 통로에서 오토마톤들이 칼싸움을 벌이는데 섬광이 끊이질 않는다.

물러선 모르핀이 휘파람을 불었다.

“아주 잘 싸우는 걸, 보통 이상인데?”

그때 섬광을 보고 찾아온 자들이 있었으니 주변 탐색을 나섰던 엘프들이었다.

모험을 나서는 엘프들은 대부분 고령으로 놀라운 능력치를 자랑한다.

다만, 고집이 세고 사고가 한쪽으로 편중된 경향을 보인다는 단점이 있을 뿐.

“제기랄! 왜 나는 땅을 파고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했지?”

붉은 포니테일의 엘프 여자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악을 써댔다.

뒤따라온 남자 엘프들은 바닥에 분필로 마법진을 그리며 개념 결계의 해석을 시작했고.

“숲의 요정들이구나. 이봐, 내가 어떻게 보이지?”

화려한 빨간 머리 엘프의 이름은 스틸레인, 그녀가 분노하여 외쳤다.

“재수 없는 상어 이빨로 보인다! 짜식아! 이 결계는 강력하지만 한번 서로를 인식하면 더는 작용하지 않아! 너야말로 왜 통하지 않냐? 덕분에 살았다만!”

도무지 엘프인 것 같지 않은 화통한 목소리에 모르핀은 킥킥 웃기만 한다.

그녀의 뒤로 머리 하나 더 큰 오토마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형제기 샤를과 로테였다.

“관절 이상 발생. 원점을 잡을 수 없습니다.”

“좌우 어깨 인대 이상, 가동 근육 이상.”

서로 피해 상황을 중얼거리더니 동시에 고개를 든다.

“하지만 우리는 승리를 쟁취하였습니다.”

그들의 뒤, 통로 바닥에는 도적단 오토마톤들의 파편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팔짱을 끼고 샤를과 로테를 슬쩍 올려다보던 모르핀이 중얼거렸다.

“자동 인형이랑 편 먹으면 이런 느낌이었군? 나쁘지 않구나.”

칭-!

마법진 앞에 무릎을 꿇고 주문을 외우던 엘프들 사이에서 갑자기 빛이 번쩍이더니 통로를 가득 채우고 있던 안개 같은 어둠이 사라지고 천장의 조명이 제 역할을 시작했다.

밝아진 던전 내부를 살피던 모르핀의 얼굴로 근심이 피어오른다.

미궁의 통로 저편에서 바글거리는 것을 발견한 그녀가 곧 후드에 반쯤 가려진 눈을 크게 뜨더니 말했다.

“몬스터다. 많아.”

자리에서 일어난 엘프들도 그걸 보고 혀를 찼다.

샤를과 로테가 앞으로 나서려는데 모르핀과 엘프들이 이번엔 반대로 고개를 돌린다.

“뒤에서도?”

“제기럴! 어?”

스틸레인의 우거지상이 사나운 웃음으로 바뀌었다.

상처와 체력을 회복한 모험가들이 던전 안으로 다시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엘프 격투가 스틸레인이 으하하 웃으며 강철 장갑을 낀 주먹을 두들기더니 몸을 돌리고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이 맛에 모험을 나선 거다! 내가 먼저다!”

“아아! 장로님! 제발! 방어 마법이라도 좀 걸고 가세요!”

“너희들! 장로님을 지켜다오!”

호위로 따라나선 엘프 남자들의 외침에 샤를과 로테는 두말하지 않고 무모한 엘프 격투가의 좌우로 따라붙었다.

뒤를 이어 험악해진 모험가 무리가 통로로 쏟아져 달린다.

“와아아아아!”

“다 때려잡아!”

“나머지 애들도 찾아야 해! 가자!”

길을 터주고 있던 모르핀은 우루루 달려가는 모험가 중에는 아는 얼굴을 발견했다.

역시 포니테일의 훈남, 보리스.

모르핀이 지나치는 그를 붙잡고 물었다.

“넌 애써서 건져줬더니 왜 들어왔어? 그리고 뭘 먹은 거냐? 눈빛이 장난이 아닌데?”

“물약. 이것저것 섞은 거요. 코비만 없어요. 찾아야 해. 좀 도와줘요!”

아, 그 덩치 큰 녀석.

약빨 때문에 거친 숨을 씩씩거리는 보리스에겐 야생미가 곁들어져 있었다.

음흉한 시선으로 그걸 살피던 모르핀이 히죽 웃는다.

“보리스, 네 친구를 찾아주면 넌 나한테 뭘 줄 수 있지?”

“당신은 이 상황에 그런 말이 나와요? 뭐든 들어줄 테니 일단 찾아만 줘봐요!”

모르핀이 키키 웃더니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면 데이트하자. 도시 관광 안내를 해주는 거야.”

“나쁘지 않네!”

먼저 달려가 버린 보리스의 뒤를 따라 모르핀도 뛰기 시작한다.

맞은편에서 몰려오던 괴물들이 괴성을 지르면, 달려오던 모험가들도 노성으로 답신을 보냈다.

“캬아아아악!”

“으아아아아! 거기서 비켜라!”

쾅-! 와자작!

미궁의 양방향에서 덤벼든 두 집단의 무자비한 격돌이 시작되었다.

“으랴차!”

쾅!

오크의 머리를 쪼개 놓은 드워프가 고개를 들자 두건을 뒤집어쓴 괴한이 나이프를 던지려고 자세를 잡고 있다.

“당신은 위험합니다.”

“으억?!”

어느 친절한 오토마톤 외침, 드워프의 목덜미를 잡아당긴 덕분에 칼은 빗나가고 그들을 향해 난전 중인 다른 모험가들이 덤벼들었다.

챙!

“길 막기하던 날강도들이로구나!”

자세히 보니 흉측한 몬스터 사이사이에 인간형 괴한들이 꽤나 섞여 함께 싸우고 있었다.

“끼리끼리 논다더니! 이놈아! 어머님은 안녕하시냐!?”

깡! 땡강-!

“제길! 이 영감이!”

투투투투퉁!

드워프의 도끼질에 칼이 부러진 강도가 자동 석궁을 들고 쏴대자 방패를 든 자동 인형이 튀어나와 그것을 전부 막아냈다.

“어어?”

당황한 괴한이 얼굴을 들자 방패를 든 오토마톤의 어깨에 손을 올린 자들이 각종 투사체를 들고 그를 겨눴다.

앞과 뒤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모험가들 때문에 전투에 밀려 옆 통로로 대피한 커스는 쓴 표정을 지어 버렸다.

“이거 모험가 등쳐 먹으려 했다가 역으로 털리게 생겼는데?”

통로 앞에서 교전을 벌이던 부하들이 갑자기 휘청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더니 다시 자동 석궁으로 견제사를 쏴댄다.

샌드맨을 부른 엘프들은 기가 찰 지경이었다.

“정령 마법이 안 통해! 왜 잠들지 않지?”

교전 거리가 멀지 않아 엘프들의 당황한 목소리가 잘 들린다.

커스는 이 상황에서도 담배를 끄지 않았다.

“내가 거기에 당해서 이 망할 우울병을 앓고 있거든? 방비는 충분히 해놓았지.”

존슨이 힐끔 고개를 내미니 몬스터는 거의 궤멸 상태, 이어서 강도단의 자취를 추적해 온 자들이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보스, 털리겠어!”

“인정하지. 욕심이 컸어. 파티 하나씩만 털어 먹는 게 좋을 것 같다. 전원 철수, 오토마톤은 후미에 남아서 시간을 끌어라.”

부하 하나가 당황한 얼굴을 했다.

“예? 이거 대당 5천이 넘는데요?”

“그럼 네가 남을 테냐?”

커스의 물음에 남자가 찔끔한다.

“그리고 가기 전에 마지막 선물은 주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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