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던전! (1) 256 >
무장을 풀어놓고 연장 벨트를 맨 그가 몇 시간 뚝딱이자 사이드카를 붙인 로시난테가 완성되었다.
그 멋진 자태는 기계 장치를 별로 본 적이 없는 모르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다시 무장을 챙긴 쿠르프가 사이드카에 몸을 우겨 넣었다.
“여긴 내 자리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가 짧아서 말이야.”
그리하여 사이드카에 쿠르프, 운전은 본인의 강력한 희망으로 모르핀, 그 뒤에 지도를 편 샤를이 올랐다.
키이이이잉!
촤아아악!
엄청난 가속력에 목이 뒤로 꺾이는 것을 느끼며 3인승 로시난테가 대로로 튀어 나갔다.
누르면 달리고, 당기면 멈추며, 핸들을 꺾으면 돈다. 단순한 작동법에도 운전이 힘든 이유는 그 엄청난 출력에 있었다.
아리에테가 자기 전용이랍시고 극단적으로 개조한 결과였다.
“으어억! 이 녀석아! 살살! 살살 몰아!”
겁에 질린 드워프의 목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새로운 장르의 희열에 빠진 뿔 처녀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눈을 커다랗게 뜨고 바람을 가르기 시작한다.
촤아아악!
굽이진 길에서 멋지게 미끄러져 대로로 진입한 모르핀의 로시난테는 퇴근길의 마차와 자동수송차량 사이를 재빠르게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성문을 통과해 버렸다.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언덕 위로 날아오른 3인승 사이드카에서 비명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훌륭해! 이런 게 있을 줄이야! 내 발로 뛰는 것보다 빨라!”
“야 이놈아!”
모르핀의 뒷자리에 얌전히 앉아 펄럭거리는 지도를 편 샤를이 조용히 중얼거린다.
“전방 10㎞ 지점의 갈림길에서 우회전입니다.”
바람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던 모르핀이 외쳤다.
“갖고 싶은 것이 하나 더 늘었어!”
키이이이잉!
촤아악!
푸르른 하늘에 어슴푸레한 달님이 떠올라 있는 동쪽을 향해 사이드카 로시난테가 달린다.
끼이익!
목적지인 초원의 던전 인근, 장갑차량으로 방어진을 구축한 야영지에 난데없이 사이드카가 나타나자 놀란 모험가들이 라이트 불빛을 비췄다.
“누구냐!”
“복장은 모험가 같은데?”
그러다 알아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어머나, 샤를!”
천막에서 나오던 여신관 하나가 소란을 구경하다가 그 특이한 복장을 알아보고 반갑게 달려왔다.
“신관 에리스, 반갑습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밥 걱정부터 하는 걸 보니 오토마톤 샤를이 확실하다고 함박웃음을 띄운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으어어, 주, 죽겠구나.”
이 와중에 부들부들 떨면서 사이드카에서 내린 쿠르프는 그대로 바닥에 누워 버렸다.
주변에 모인 드워프들이 그를 알아보았다.
“아니, 어르신께서 어떻게 여기에!”
“동포를 구하러 와주신 거군요! 이 은혜를 어찌!”
“이놈들아, 소리 지르지 말아라. 지금 속이 울렁거린다.”
감격한 젊은? 드워프들 사이에서 시퍼렇게 변한 얼굴로 구역질을 참고 있는 쿠르프를 보고 샤를이 말했다.
“신관 에리스, 이분을 살펴봐 주십시오. 이동하는 중 극심한 멀미와 허리 통증을 호소하셨습니다.”
에리스의 치료 덕분에 겨우 멀미를 떨쳐내고 자리에서 일어난 쿠르프는 모르핀에게 손가락을 들이대며 화를 냈다.
“이놈아! 사람을 잡을 셈이냐! 너는 노인 공경도 모르느냐!”
“영감 허리보다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하지 않아?”
“뭐야!”
툭탁거리는 그들을 내버려 둔 샤를이 주변을 살피더니 에리스에게 물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의식적으로 밝은 표정을 지으려 애쓰던 에리스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쿠르프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래, 뭐가 어떻게 된 거냐? 내부에서 낙반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다만.”
우거지상이 된 사람들이 설명을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낙반이 아니었다.
쿠르프가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통행료? 길을 막은 채 말이냐?”
던전과 같은 지하 미궁 탐사는 꽤 돈이 된다. 그래서 정말 별일이 다 일어난다.
함께 들어온 모험가들이 강도로 돌변하는 일도 가끔 있는 편인데, 이번 일도 그 비슷한 것이었다.
“던전 곳곳에 폭탄 스크롤을 매설해 놨습니다. 처음부터 노린 겁니다.”
“이 썩을 놈들이!”
쿠르프가 분기탱천했으나 모르핀은 남의 일이라는 듯 킬킬 웃기 바쁘다.
로시난테에 기대선 그녀가 팔짱을 끼고 중얼거렸다.
“케케케, 어디든 서로 뜯어먹으려는 건 똑같구나.”
“다 그렇지는 않아!”
마족에게 얕보이기 싫었던 어느 뜨거운 드워프의 외침이었다.
에리스가 말을 이었다.
“가져온 장비를 다 내놓으라는 말에 사람들이 반발해서 지금 대치 중이에요.”
하얀 수염을 뻣뻣하게 세운 쿠르프가 던전 입구로 향하려 했으나 모두가 그를 가로막았다.
“이미 협상하러 구조반이 들어갔습니다. 괜히 놈들을 자극하면 우리가 손해입니다. 도적단 주제에 뭔가 훈련받은 놈들이었어요.”
“그래도 가만있으라니!”
던전 그 자체를 무기로 삼은 강도단이라니, 움직일 방법이 없다.
결국 분통을 터트릴 힘마저 빠져 버린 쿠르프가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야기를 엿들으며 이상한 것을 알아챈 모르핀이 물었다.
“그런데 빼앗은 다음 저 안에서 어디로 가려고 그러지? 밖에 이렇게 진을 치고 있는데.”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말을 덧붙였다.
“다른 입구가 또 있나?”
“우리도 그러리라 보고 지금 수색 중이오.”
고개를 끄덕인 모르핀은 혼자서 주변 수색을 돌기 시작했다.
먼저 도착해 있던 자들은 그래도 찾아와 줘서 고맙다는 말로 좌절한 드워프 노인을 달랬다.
“하지만 어르신이 직접 오실 것까지야······.”
“이웃이 난처한 일을 당했는데 가만히 있으란 소리냐? 그런데 귀쟁이는 왜 하나도 없어? 정령에게 물어보면 되잖느냐?”
“다들 수색 나갔습니다. 이 근방에는 비밀 입구가 없다고 좀 떨어진 곳까지 나가보겠다더군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활로가 없어서 답답하다는 듯 쿠르프가 가슴을 두드리는 사이, 샤를은 근처에 세워진 익숙한 장갑차량의 몸체를 쓰다듬으며 시끌벅적한 승객들의 무사 복귀를 기원하고 있었다.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 모르핀이 다가왔다.
“샤를, 소리를 좀 듣고 싶다. 긴 금속 막대기가 있으면 좋겠는데.”
고개를 끄덕인 샤를은 장갑차량에서 숨겨진 레버를 당겨 크랭크의 이동 공방을 작동시켰다.
치이익!
철커덕! 끼릭-!
공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밝은 조명이 켜지고 차량의 벽이 좌우로 벌어지며 각종 무기와 수리 도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에서 노심초사하던 사람들이 그걸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 뭐냐?”
“변신?”
갑작스레 눈 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광경에 뒷짐을 진 모르핀이 감탄에 입을 오므렸다가 다시 킥킥 웃으며 이상한 몸짓의 샤를을 보았다.
공구와 무기가 잔뜩 걸린 선반을 배경으로, 메이드복을 차려입은 오토마톤이 두 팔을 돌리고 그것들을 소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랑스러운 주인님의 훌륭한 취미 생활을 선보입니다. 찾는 것이 있으신지요?”
이동 잡화점의 다채로운 도구와 무기를 이리저리 살피던 모르핀은 그 안에서 청진기와 기다란 철제 투창을 골라 들고서 인근 초원으로 향했다.
뒤를 이어 호기심이 생긴 사람들까지 우르르 따라온다.
“뭘 하려는 거요?”
느긋하게 걷던 모르핀이 중얼거렸다.
“땅속의 던전이잖아? 그러면 지금 우리 발밑을 지날 수도 있겠지. 흡!”
퍽!
기다란 투창을 한 손으로 들어 바닥에 던졌다.
그것은 놀랍게도 반이나 땅속으로 박혀 들었다.
그녀가 하려는 것을 알아챈 모험가들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틀렸소, 엘프들도 그렇게 해봤는데 아무것도 못 들었어.”
“알아서 할 테니 저리 가. 시끄러우니까.”
퉁명스레 말한 모르핀은 그런 식으로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땅울림을 확인하더니 다시 돌아와 병자 수준의 장비 욕구를 자랑하는 크랭크의 컬렉션을 뒤적거렸다.
“너희 주인을 만나보고 싶다. 정말 굉장한데? 이런 것도 가지고 다니는구나.”
모르핀이 끄집어낸 것은 곡괭이와 삽이었다. 그리고 일꾼도 수배했다.
하드 스킨 오토마톤에게 직접 말을 걸기가 무서웠던 모르핀은 샤를에게 대신 부탁했다.
“저 괴물 녀석에게 내가 지정한 부분을 파게 해.”
“알겠습니다.”
샤를이 부탁했지만 단칼에 거절.
“나는 내 동료들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샤를은 에리스를 불렀다.
파티 동료가 같은 부탁을 하자 강철 거인이 움직인다.
“여기를 파면 되나?”
“그래.”
샤를의 뒤에 몸을 숨긴 모르핀의 대답이었다.
에리스가 손짓했다.
“괜찮아요. 아스칸은 우리 편이에요.”
“네 편이지. 내 편은 아직 아니야.”
에리스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뿐, 고개를 돌려 삽을 휘두르는 아스칸을 바라보았다.
2.5미터짜리 거인의 삽질은 거침이 없었다.
푹푹휙휙!
순식간에 10미터쯤 파고 내려가니 인위적인 콘크리트 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놀라운 성과에 구덩이 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토목 공사로 더러워진 푸른 망토의 아스칸은 이제 곡괭이를 힘차게 들어 올렸다.
캉! 캉! 퍽! 퍼석! 캉!
무지막지한 속도로 곡괭이를 휘두르자 콘크리트가 박살 나고 다음으로 묵직한 철판이 드러났다.
겉은 무르고 속은 단단한 이중 구조였는데, 흙더미에 실려 올라온 파편을 살펴본 사람들이 야단법석을 떨었다.
“철판에 납을 코팅해 놓았어!”
“이러니 탐색 마법에 아무것도 안 뜨지!”
“잘한다! 계속 부셔!”
하지만 몇몇은 우려를 표시했다.
“안에서는 협상 중인데 이래도 되는 거요?”
“멍청아! 언제나 플랜 B는 필요해! 뒤통수를 후릴 준비를 하자! 오토마톤 준비시켜!”
이다음부터는 아스칸이 독단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곡괭이를 던진 그는 히트 소드를 뽑아 들었다.
치이이이익!
붉게 물들어가는 검을 든 아스칸이 그걸로 금속 벽을 녹이기 시작한다.
그다지 두껍지 않은 모양인지 몇 번 휘저어 버리자 금세 커다란 구멍이 뚫려 버렸다.
바닥에 엎드려 안쪽을 살펴본 아스칸이 내부 상황을 알렸다.
“아무도 없다. 그리고 좁아서 나는 들어가지 못한다.”
“비켜, 덩치.”
말릴 새도 없이 구덩이를 통통 뛰어 내려간 모르핀이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착!
바닥에 납작 엎드려 착지한 모르핀이 고개를 들자 메케한 연기와 진한 먼지 냄새가 가득하다.
눌러쓴 후드 아래, 날카로운 상어 이빨을 드러낸 그녀가 흐흐 웃는다.
“숨 쉬기 좋은 장소는 아니구나.”
마족 모르핀은 신체 능력이 평균에서 좀 떨어지는 대신 기타 감각 능력의 감도가 좋았다.
수치상 엘프의 두 배.
그래서 빛이 거의 없는 던전 내부를 잘도 뛰어다녔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구조단의 자동 인형들이 따라붙었다.
드워프 몇 명도 포함해서.
“으억! 컥!”
“아이구!”
“야 이놈아!”
후두둑 떨어진 드워프들이 이내 도끼눈을 뜨고 일어섰다.
“흐흐흐! 자, 이놈들아. 던전도 결국 현대식 동굴에 불과하다. 굴 안에서 드워프보다 빠른 것은 없다는 걸 멍청한 것들에게 일러주자꾸나.”
“물론입죠! 어르신!”
같은 시각, 지루하게 끌던 협상은 결국 결렬되고 싸움이 시작되어 버렸다.
채채채채챙!
챠챠챠챵!
데려온 오토마톤들이 상대에게 칼을 휘두르는데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에게 상처가 늘어나고 급기야 몸의 일부가 잘려 나가기 시작한다.
그걸 본 모험가가 피눈물을 쏟으며 외쳤다.
“아직 할부도 다 안 갚은 내 오토마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