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255화 (255/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진심! 255 >

“와아! 드워프 할아버지다!”

“뭐냐? 꼬마 녀석들도 여기에 있었냐?”

투나네 공방에서 자주 보는 드워프 할아버지라서 애들이 반가워한다.

그를 처음 보는 늙은이들의 수군거림은 투나가 진정시켰다.

물어보지 않아도 신나게 떠들어대는 아이들의 설명을 들으며 연신 지하 정원을 구경하는 드워프를 가리키며 투나가 손을 흔들었다.

“우, 우리 편이에요. 거, 걱정 마세요.”

하지만 투나와는 다르게 모르핀은 씁쓸한 표정이었다.

“내 실수다. 내가 입을 함부로 놀린 탓이야.”

“이 이상의 정보 유출은 막아야 합니다. 이곳은 온전히 여러분과 투나의 장소여야 합니다.”

샤를의 지적을 듣고 투나도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 분위기도 얼마 가지 못했다.

꼬마 소녀가 종이를 깐 바구니에 잔뜩 담아온 고기 튀김을 내밀었다.

“이거 드세요. 모르핀 언니가 잡아온 거 튀겼어요.”

“뭐, 뭐지?”

코카트리스 고기에 밀가루를 발라 기름에 튀긴 것인데, 겉에 양념이 잔뜩 발라져 있었다.

노파들이 허허호호 웃는다.

“솜씨 좀 부려보았소.”

“음! 마, 맛있다!”

구경을 마치고 돌아온 쿠르프 역시 그걸 한입 먹더니 감탄했다.

따로 가져온 맥주통에서 맥주까지 곁들인 그는 즐거운 환호를 내질렀다.

“효오-! 이거 좋아! 너무 좋아!”

뒤늦게 도착한 포비는 난데없이 벌어진 술판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다가 그곳에 끼어 같이 웃어 버렸다.

한참 웃고 떠들던 사람들은 이제 자리를 정리하고 지상의 숙소로 향했다.

그걸 보던 쿠르프가 물었다.

“뭐냐? 여기 사는 게 아니냐? 왔다 가는 거였어?”

자리를 정리하던 포비가 말했다.

“사람들이 다 살기엔 좁거든요. 그리고 가끔은 하늘도 봐야 하니까.”

“음, 그래도 오고 가기 불편하겠군. 수로를 이용하는 걸 누가 볼지도 모르고 말이야. 어디 보자, 이 위에는 뭐가 있지?”

쿠르프가 위를 올려다보며 말하자 뭔가 눈치챈 포비가 재빨리 대답했다.

“성벽 인근의 거주 구역이에요. 무슨 생각이신 줄 알아요. 하지만 돈을 더 모아야 하거든요.”

포비의 인생 계획에는 상회로 번 돈으로 지하 정원 바로 위층의 건물을 매입, 직통 통로를 뚫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터널 공사의 대가 드워프 어르신이 지금 바로 눈앞에 있었다.

고개를 휙 돌린 쿠르프가 닭튀김을 너무 많이 먹어 부른 배를 안고 쌕쌕 숨을 몰아쉬는 투나를 바라보았다.

“이봐, 미스릴 광석으로 나와 협상하지 않겠나?”

“우에에?”

이튿날, 모르핀은 무장한 오토마톤 짐꾼을 이끌고 마족의 숲으로 숨어들었다.

하늘이 잘 보이지 않는 마경을 더듬어 한참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미스릴 광석이 굴러다니는 계곡에서 그것들을 담아오길 여러 차례 반복했다.

분명 혼자서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옮길 수 있었다.

갈 때는 인간계 문명을 잔뜩 가져다 뿌리고, 올 때는 미스릴을 가져오는 것이다.

도중에 강한 마력의 영향으로 거대화한 몬스터에게 쫓기고 전투를 벌이는 등의 불상사를 겪으면서도 그녀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사냥 나온 동료 경비대원들에게 발각당했다.

계곡에서 미스릴 원석을 줍거나 건지고 있는데 갑옷을 차려입은 경비대원이 나타나 이름을 부른다.

“모르핀?”

“제길! 1호! 2호! 연막탄!”

손을 덜 생각에 망을 봐야 할 자신이 작업을 거들었다가 일어난 불상사였다.

함께 작업 중이던 오토마톤들이 전투복에서 연기 나는 막대를 뽑아 던지자 펑펑하는 폭발음과 함께 금세 사방으로 연기가 깔린다.

그걸 보고 당황한 상대가 외쳤다.

“아니야! 잠깐, 잠깐만!”

연기를 틈타 배낭을 챙겨 달아나려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고마워!”

연막 속에서 울려 퍼지는 감사의 인사는 계속되었다.

“덕분에 우리 생활이 편해졌어! 다들 고마워하고 있어! 정말이야!”

“우리 애가 네게 안부 전해달래! 비누 고마워! 화로도 고마워! 정말 고마워!”

한참 후 연기가 사그라진 계곡에 더 이상 모르핀과 자동 인형들의 모습은 없었다.

경비병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러면 감동해서 기다려 주리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경계심이 많은 녀석이었거든.”

마족 수비대원들은 그들이 다녀간 물가를 살피다가 검은색 돌덩이가 잔뜩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수일 후, 미스릴 구광지를 찾아 주변을 탐색하다가 포기하고 계곡으로 다시 돌아온 모르핀은 물가에 잔뜩 쌓여 있는 원석 덩이를 보고 키키키 하고 웃어 버렸다.

나의 진심이 통했다!

하지만 그녀의 즐거움도 잠시, 자동 인형 1호가 가져온 석판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곳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다음에는 진통제 좀 가져다줘. 뿔 빠질 애들이 있어.

그 외에도 원하는 물건의 목록이 수두룩, 모르핀의 눈썹이 심하게 꿈틀거린다.

“자식들이 날 쓸모 많은 심부름꾼 취급하는 거 아냐?”

그러던 그녀는 곧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모르핀의 활약은 마족의 마을뿐만 아니라 지하 정원에도 작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먼저 기존에 사용하던 돌문은 폐쇄, 바로 위층의 건물을 통째로 매입하여 내부에 비밀 통로를 만들어서 직통으로 연결되는 계단을 설치했고, 건물은 약초 가공 공장으로 꾸며졌다.

실질적인 운영은 포비가, 가내수공업 느낌으로 심심한 아이들과 노인들에게 작업을 맡길 생각이었는데, 주변에서 취직을 희망하는 젊은 아낙들이 찾아와 버려 본의 아니게 일이 커져 버렸다.

“으어, 그래서 요즘 바빠요. 휴가가 필요해.”

“그런데 잘도 여기에 왔구나. 잠이나 잘 것이지.”

“약초 크는 거 보러 왔죠. 여기 돌아보는 것도 제 업무거든요.”

그리고 세상에 마족과 아는 사이가 되다니! 포비는 요즘 꿈이라도 꾸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지하 정원의 한구석, 휴게소 겸 대피소로 만든 관리실 건물에 방 하나를 얻어 임시 거처로 삼고 있던 모르핀이 테이블에 앉아 한참 편지를 적고 있다.

그 마족 뿔 처녀의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있던 포비가 고개를 돌렸다.

“뭐 하세요?”

“저쪽에도 문명화 제2단계를 구축하려고 하고 있다. 시장 경제의 도입이지.”

잉? 하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는데 웅장한 지하 정원의 벽면에 설치된 철제 계단으로 소년 하나가 달려 내려왔다.

“포비이이!”

정원 전체로 소년의 목소리가 울리자 일하던 사람들이 다들 고개를 든다.

눈썹을 세운 포비도 건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더니 마주 고함을 질렀다.

“소리 크게 지르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관리실 건물에 도착한 소년은 그새 키가 커진 리노였다.

빡빡 깎았던 머리도 많이 자라서 잘생긴 얼굴이 도드라졌다.

“무슨 일이야?”

“상회 길드에서 사람이 찾아왔어. 어, 안녕하세요. 모르핀.”

마을 최고의 미인이었던 엄마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점점 잘생김이 드러나고 있는 소년 리노가 반갑게 인사하자 편지를 적다가 말고 물끄러미 쳐다보던 모르핀이 츄릅! 하는 소리를 내며 입맛을 다시더니 초인적인 자제력을 발휘해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그녀는 그 상태로 손을 휘휘 흔들었다.

“포비, 저 녀석 빨리 내 눈앞에서 치워라. 발정기라서 덮쳐 버릴 것 같으니까.”

포비가 뜨악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정! 리리리리노! 빠, 빨리 가자! 빨리!”

“어, 으응.”

그들을 돌려보내고 편지를 마무리한 모르핀이 자리에서 일어나 슬슬 나갈 준비를 하려는데 잘생긴 리노가 또 찾아왔다.

그것도 혼자서.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리노는 기둥 옆에 슬쩍 숨은 채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저, 저, 모르핀. 급하게 와보시라는데요.”

모르핀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나를? 위쪽 건물에?”

“예, 샤를이 찾아왔어요.”

쿠르프가 수일 만에 완성한 벽면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비밀 통로를 통해 상점 내부로 올라서게 되었다.

번듯하게 차려진 약초 가공 공장의 내부에는 꽤 많은 사람이 일에 열중이었다.

경영에 소질이 있는 것인지 포비는 모험가 길드에 협력을 요청해서 가능한 지속적인 약초의 공급을 약속받았다.

이 협의는 초보 모험가들에게 꽤 괜찮은 벌이가 되었다.

일단 가져가면 바로 돈으로 바꿔주기 때문이다.

그 모험가 약초꾼 중의 하나가 사색이 되어 주변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만 겨우 빠져나왔어요. 지금 길드에서도 구출대를 조직하고 있고요.”

후드를 쓴 모르핀이 모습을 드러내자 바로 샤를이 다가왔다.

그러더니 뜻밖의 소리를 내놓는다.

“긴급 구출 퀘스트가 발주되었습니다. 함께해 주십시오.”

“엉?”

메이드 옷을 입은 자동 인형 덧붙였다.

“던전에 고립된 파티 중에는 우리 겨울 기사단도 있습니다.”

수다쟁이 신관에게 새 파티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던 모르핀이 이맛살을 좁혔다.

“어쩐지 요즘 안 보인다 싶었다.”

이 세계에서는 마왕군과의 분쟁 이전에 세기의 문명을 다 말아먹은 커다란 싸움이 있었다.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간간이 발굴되는 유적으로 후손들이 그 존재를 가늠했는데, 가끔 몬스터들이 파고들어 던전을 이룬 곳이 발견되기도 했다.

사고가 일어난 곳은 모험가 사이에서 몬스터 서식지로 유명한 천연 동굴로, 그 안쪽에서 최근 또 다른 입구가 발견되어 대규모 탐사대가 파견된 곳이다.

가까운 곳인지라 겨울 기사단의 잔여 멤버들이 좋아라 달려간 곳이기도 했고.

“조심하라고 했거늘.”

요즘 창고에서 뭔가 한참 만들고 있던 쿠르프가 소식을 전해 듣고 찡그린 얼굴이 되었다.

그러다가 채비를 위해 자기 공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도 가겠다.”

팔짱을 낀 모르핀이 투나를 보았다.

“도와줘도 상관은 없다. 아니, 오히려 돕고 싶어. 하지만 내 활동 반경은 좁아. 그건 어떻게 하지?”

그렇지 않아도 레나에게 준 것과 같은 파워뱅크를 만들어 보려 했으나 마족용은 마력의 질이 달라서 번번이 실패하는 중이었던 투나는 하는 수 없이 기존의 중계기를 더 많이 뽑아놓았다.

“이, 이런 일도 있을까 싶어서.”

투나는 손가락으로 V를 만들었지만 어쩐지 즐겁지 않은 얼굴이었다.

활동 반경이 해결되자 고개를 끄덕인 모르핀은 자리를 비운 어떤 여기사의 무기고에서 무장을 충당했다.

롱소드 하나를 뽑아본 모르핀 중얼거린다.

“잘 갈아놓았군. 그 여기사의 것이지? 좀 빌리겠어.”

“으, 응.”

투나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모르핀이 물었다.

“샤를까지 데려가면 넌 누가 지켜주지?”

“포, 포비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우, 우리 애들부터 구해줘.”

모르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메이드 옷차림의 샤를이 있었다.

“넌 그대로 나가는 거냐?”

“옷차림은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주목을 끌기에 좋습니다.”

전술 조끼에 벨트로 꽉 조여진 몸에는 각종 병장기가 잔뜩 매달렸다.

오랜만의 드워프 어르신도 함께 파티를 이룬 3인조가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쿠르프가 분통을 터트렸다.

“그새를 못 참고 떠나 버릴 것은 뭐냐!”

“우리가 늦은 탓이다. 좋게 생각하면 대응이 빠른 거지.”

이미 구조 임무를 받은 자들이 출발한 상태, 팔짱을 낀 모르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빠른 대응을 칭찬했다.

따로 마차를 빌려보려고 했으나 모험가 면허가 없어서 불가한 상태라 그냥 돌아와 버렸다.

“모, 못 가는 거야?”

투나가 안전부절못하는 사이 샤를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상단에서도 마차를 빌릴 수 있다고 주인님께 들었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러는 샤를을 쿠르프가 불러세웠다.

“됐다. 길은 아느냐?

“지도를 받아왔습니다.”

까닥까닥, 손짓으로 그들을 부르고 몸을 돌린 쿠르프가 향한 곳은 갖은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8번 창고.

그곳에는 운전이 어렵고 자리를 차지한다는 이유로 방치된 아리에테의 자동 2륜 차가 있었다.

이름은 어떤 전설 속 기사의 애마, 로시난테.

늙다리 드워프가 잔인하게 웃으며 그걸 바라보았다.

“이것도 훌륭한 탈것이잖느냐? 여기사에게 미안하게 됐다만 3인승으로 개조해 주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