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수집꾼! 254 >
찰박찰박-!
벌써 익숙해진 발걸음으로 지하 수로를 달린 모르핀은 이제 투나의 공방으로 향했다.
엄연히 집주인이 따로 있는 마당이지만 그가 없는 지금은 온전히 투나의 차지가 되어 버렸다.
와르륵-!
“우효! 오늘도 보물이 번쩍번쩍-!”
배낭을 거꾸로 뒤집어 바닥에 와르르 쏟아진 각종 약초와 광석 덩어리를 보고 투나의 눈이 반짝인다.
더불어 밥을 얻어먹으러 와 있던 이웃 공방의 드워프 쿠르프의 눈도.
“으음?”
뭘 본 것인지 소파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온 그가 잡동사니 속에서 돌덩이 하나를 움켜쥐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경건하게 무릎마저 꿇은 채였다.
“이, 이것은! 미스릴 광석이잖느냐! 이런 것도 있는 건가!?”
순간 눈빛이 가늘어진 그가 요리 중인 샤를에게 외쳤다.
“문! 문부터 닫아라!”
프라이팬을 들고 몸을 돌리는 샤를을 대신해 투나가 호다닥 달려가 낑낑거리며 철문을 닫았다.
고요해진 공방 안, 두근거리는 드워프의 심장 소리만이 요란하다.
“이 빛깔, 믿을 수 없구나. 고순도의 미스릴 광석이다. 이것만 있으면!”
말을 줄인 쿠르프의 눈빛이 사납다.
그는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모르핀을 노려보았다.
“이봐, 뿔 처녀! 이것 내게 주시게.”
“그건 당신 앞의 게으른 마녀에게 물어봐야 해.”
찻잔을 든 모르핀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드워프에게 마저 좀 씻고 꾸며보라는 소리를 듣고 다니는 여성 마도공학자가 있었다.
쿠르프는 참 사랑스러운 손녀를 본다는 듯이 투나를 보며 말했다.
“투나, 이 할애비가 이걸 갖고 싶구나. 내게 양보해 주지 않겠느냐? 아니, 내가 사지. 이 수집꾼을 내가 사겠다.”
소파에 앉아서 뜨끈달콤한 차를 마시던 모르핀은 그만 사레가 들려 캑캑거렸는데 그 소리는 곧 킥킥거리는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요즘 인기가 많아졌는걸?”
“노노! 저, 절대로 안되욤! 모르핀은 내, 내 수집꾼!”
쯧! 하는 혀 차는 소리를 낸 쿠르프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계속 그녀를 회유했다.
이야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샤를은 완성된 저녁 식사를 바닥에 앉은 그들의 앞에 놓아주었다.
“움념념! 여건만 된다면 그 보물의 땅에 직접 들어가고픈 심정이다!”
“옴뇸뇸, 모, 못 들어가요?”
큼직한 바게트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씹고 있던 쿠르프가 여전히 손아귀에 쥐고 있던 미스릴 광석을 들어보며 코를 벌렁거렸다.
반찬 대신인지 빵을 씹을 때마다 한 번씩 보는 중이다.
“그래, 못 들어간다. 마왕령은 마기가 엄청나게 진해서 우리 같은 요정족이 들어가면 마치 고산병에 걸린 상태가 되지. 숨을 쉴 수가 없어.”
투나가 밥 먹다 말고 입을 헤 벌린다.
“요정족? 드, 드워프도요?”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오직 너희 인간, 아니면 마력 포화 상태에 적응한 종족이지.”
마지막은 여전히 소파에 앉은 모르핀에게 한 말이었다.
샤를이 만든 샌드위치를 커다란 상어 이빨로 한껏 베어 물고 우물거리던 그녀가 시선을 돌렸다.
모르핀은 어느새 쿠르프와도 안면을 튼 상태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우연히 불쑥 찾아온 그에게 정체를 들킨 것인데, 나이를 많이 먹은 드워프 어르신의 융통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마족이라고 해서 뭘 어떻게 하진 않았다.
대신 인간계와 마왕령을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그녀의 존재는 신기했던지 그쪽 너머의 반짝이거나 무거운 광석이 있으면 하나 주워 와보라고 했던 것인데 그게······.
“미스릴 광석일 줄이야! 이봐, 뿔 처녀. 거기 이런 게 많은가?”
“음, 안쪽으로 꽤 들어가면 그런 게 굴러다니는 계곡이 있어. 알다시피 우린 그런 돌덩이에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그거 말고 특히 무거운 것도 하나 있을 텐데.”
눈빛을 번쩍인 쿠르프가 밥을 먹다 말고 잡동사니를 다시 뒤적이더니 이번엔 무슨 검은색 수정 같은 것을 주워 들었다.
이 묵직함, 비중이 장난이 아니다.
“이건 텅스텐 광석이로군. 드물긴 하지만 미스릴이 더 진귀하다.”
돌덩이 두 개를 들고 좋아하던 그가 갑자기 침울한 얼굴이 되더니 중얼거렸다.
“제길, 저 보물의 산을 두고 그냥 손가락만 빨아야 한다니. 안타깝구나.”
얼마 전, 붉은 휴전선을 넘을 수 없는 마족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다가 관련 역사도 조금 알게 된 투나가 끼어들었다.
“저, 저 빨간 선을 그어놓은 게, 에, 엘프들이라면서요? 왜, 왜죠?”
다시 우걱우걱 바게트 샌드위치를 씹던 쿠르프는 맥주까지 한 모금 들이키고 나서야 긴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그의 그윽한 시선은 손아귀의 미스릴 광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같이 살기 힘들었거든.”
그거뿐, 자세한 내막을 기대했으나 쿠르프는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르핀이 나섰다.
“잘 먹었다. 맛있구나, 샤를.”
“감사합니다.”
히죽 웃어준 모르핀이 고개를 돌렸다.
“내가 듣기로는 너희들이 먼저 시작했다고 하던데.”
힐끔 곁눈질로 인간 세계에 앉아 있는 마족을 쳐다본 쿠르프는 대답 대신 딴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는 손아귀에 쥔 원석을 투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내게 팔아라. 광물 시세에 맞게 쳐주마.”
“어, 음, 어, 얼만데요?”
돈 이야기가 나오자 여자들의 눈빛이 살벌해진다.
말을 돌릴 참으로 쿠르프는 약간 세게 불러 주었다.
모르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의 가격이었다.
“100만?! 그 주먹만한 것이 말이냐!”
“소비자 직거래 가격이란 것이다. 이 정도면 상회 매입가는 80만 정도지.”
투나는 으히히 웃으며 말했다.
“그, 그거 돈 대신 아, 아저씨의 기술료로 드, 드릴게요.”
“오! 그래 주는 거냐?”
투나가 아이디어를 짜내면 그 가공을 도와주던 사람이 크랭크나 이웃의 드워프 쿠르프였기 때문이다.
손가락으로 V를 만든 투나가 흐흐 웃는다.
“이, 인풋이 있어야 아, 아웃풋이 있데요.”
“뭔 소린지 모르겠다만 잘됐군! 미스릴을 공짜로 얻었다! 그리고 뿔 처녀! 값을 치를 테니 지도를 그려주시게. 시대는 바뀌고 있으니 언젠가 거기 찾아갈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까부터 불러대는 뿔 처녀라는 호칭이 마음에 드는지 킥킥 웃고 있던 모르핀은 한편으로 상념에 잠겼다.
시대는 바뀌고 있다.
“그거 듣기 좋은 말이네. 우리가 다시 손을 잡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거지?”
원석을 바라보며 나의 보물 어쩌고 하는 소리를 내던 드워프가 흘깃 그녀를 쳐다보더니 피식 웃는다.
“그래.”
쿠르프는 그 외에도 소량이라도 좋으니 광석을 가져오면 바로 현찰로 바꿔주겠다는 소리로 바리바리 마족 보부상 모르핀의 의지에 불을 붙였다.
쿠르프는 기쁜 듯이 웃어댔다.
“도시 인근에서 철광맥도 발견되었고, 앞으로 여긴 크게 발전될 게야.”
“오, 오오!”
같이 즐거워하던 투나였지만 이내 표정이 굳는다.
발전한다는 것은 사람이 많아진다는 뜻.
“너, 너무 많은 건 아, 아직 좀 그런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당신을 보호하고 보살피겠습니다.”
메이드 옷차림으로 자리를 정리하던 샤를의 대답이었다.
그 말에 기분이 좋아진 투나는 금세 히히헤헤 웃어 버렸다.
쿠르프가 말했다.
“음? 넌 그 거인 친구의 자동 인형이 아니었느냐?”
“그렇게 명령받았기 때문입니다. 마이스터 쿠르프, 맥주 한 잔 더 드시겠습니까?”
“어, 좋다.”
쿠르프와 그의 일족들이 자주 들르는 통에 공방 안에 갖다 놓은 맥주통으로 다가가는 메이드 자동 인형을 바라보며 여전히 바닥에 퍼질러 앉은 채였던 쿠르프는 턱수염을 좀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인형이 똑똑해지니 꽤 괜찮은데? 이봐, 우리 애도 저렇게 만들 수 있나?”
“부부, 추, 추천하지 않슴요. 어, 얼마나 시, 시끄럽다고요.”
맥주잔을 가지고 돌아온 샤를이 그것을 건네주며 투나를 바라보았다.
“연속 활동 시간 12시간이 지났습니다. 3시간 후에 당신은 수면에 들어야 합니다.”
“호오오오옥!”
깜짝 놀란 투나는 바닥에 어질러진 약초 다발이며 잡동사니를 쓸어 담아 서둘러 연구실로 달려갔다.
어떻게 되어 먹은 몸뚱이인지 이불만 덮으면 잠들어 버려서 침대에 던져지기 전에 남은 일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허둥대는 꼴이 웃겼던지 쿠르프가 맥주잔을 든 채 프허허 웃어 버렸다.
가만히 보고 있던 모르핀이 말했다.
“드워프 어르신, 그건 뭐지? 그 황금빛 물은? 뭔가 끓인 물인가? 달콤한 냄새가 난다.”
맥주잔을 입가에 대고 기울이던 쿠르프가 말했다.
“음? 마족은 술도 없느냐?”
“오, 술인가?”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의 종족이라서 모르핀은 당장 샤를에게 부탁해 같은 술잔을 하나 얻었다.
“유리잔이라니, 귀한 것이구나.”
“뭐냐, 마족에겐 유리잔도 없나?”
은근히 놀리는 말투라서 모르핀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진다.
맥주잔을 살펴보던 그녀가 중얼거렸다.
“흥! 좋은 기술자는 다 수도에서 독점하고 있거든. 변방의 마을에 모여 사는 것들의 기술력은 한심한 수준이지.”
그게 내가 여기 나와 있는 이유기도 하고.
씁쓸한 얼굴이 된 그녀는 씁쓸한 맛이 나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크하! 하는 소리를 내 버렸다.
“와! 상당히 맛있구나! 이 쓴맛!”
쿠르프가 큼직한 유리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뿔 처녀, 이건 무더운 여름에 차갑게 식혀서 마시면 진정한 참맛을 느낄 수 있다네. 부디 내년 여름까지 버텨보시게.”
“음! 꼭 그러고 싶다!”
챙-!
약한 취기가 올라 의기투합한 둘은 이젠 맥주잔을 부딪치며 허허케케하고 마주 웃어 버렸다.
벽에 시계가 있음에도 불구, 모르핀은 굳이 주머니에 넣어 놓은 회중시계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이번에 그녀가 저지른 최고의 사치품이었다.
흐뭇하게 시계를 들여다본 뿔 처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기다릴 거다. 난 이만 돌아가야겠다.”
“음? 어딜 가는데.”
“지하 정원, 튀김을 만들고 있을 거다. 어르신도 같이 가겠어?”
“그건 술안주로 좋겠군. 그런데 지하 정원이라니? 어디냐, 거긴?”
“아!”
손을 든 샤를이 뭔가 의미심장한 소리를 냈다.
그걸 듣고 모르핀의 환한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그녀가 쿠르프를 보며 뒤로 물러섰다.
“이런! 모르는 거였냐?”
“뭐냐? 무슨 비밀 이야기냐?”
결국 지하 정원의 비밀을 드워프 쿠르프도 알게 되었다.
정작 투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자동 인형인 샤를은 신신당부했다.
“비밀을 모두가 알게 되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됩니다. 그곳은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의 안식처. 이 이상 소문이 퍼져서는 곤란합니다.”
마저 맥주잔을 비워 버리고 일어선 쿠르프가 프허허 웃었다.
“걱정 마라. 드워프는 입이 무겁다. 그보다 아는 녀석들은 누구누구냐? 그래야 입조심을 하지.”
이야기를 전해 들은 쿠르프는 튀김도 얻어먹을 겸 구경 삼아 그곳에 따라 들어갔다.
미로 같은 수로를 지나 마법이 걸린 돌벽을 열고 들어가자 새하얀 빛이 쏟아진다.
그곳의 개념은 드워프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허어! 지하에 나무를 심어서 숲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참신하잖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