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회식! 250 >
“크아아아!”
길들인 개미의 등에 올라탄 오크들이 대형 자동 기사를 따라다니며 덤벼드는 개미를 척살했다.
기사단은 승용물이 없어서 직접 뛰어서 그 곁을 쫓았다.
“이놈들아! 우리의 왕이시다! 너희들은 저리 가!”
“우리! 지금! 같은 편!”
커다란 몸을 한 오크 여전사의 외침은 기사단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들 상황과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운 자들이었다.
땅속에서 솟아오르느라 기진맥진한 개미를 사냥하는 것은 손쉬웠지만 끝도 없이 튀어나와서 쉴 틈이 없었다.
그렇게 싸움은 밤을 새운 걸로 모자라 해가 떠오른 상태에서도 계속되었다.
키이이잉! 카가각!
땅속에서 솟아오른 개미를 체인 소드로 급하게 썰어 버린 자동 기사가 외쳤다.
“지긋지긋하구만! 끝도 없이 솟아오르잖······!”
쿠르르르-!
갑작스러운 진동이 일어나더니 여진이 발생했다.
진원지는 기사단과 오크들이 개미를 때려잡고 있는 전장의 정중앙이었다.
높은 곳에서 이변을 감지한 캐롯이 빽 외쳤다.
그 의식에 연결된 자동 갑옷이 멋대로 팔을 휘두른다.
-대피! 뭔가가 솟아오른다! 거기서 피해!
모여 있던 병력이 대피하는 와중에 지면을 뚫고 붉은 거체가 고개를 쳐들고 뛰쳐나왔다.
크라아아아아!
크게 벌어진 입과 전신의 뒤덮은 비늘은 붉은색, 펼쳐진 날개는 4장.
“드, 드래곤!”
놀란 모두가 싸움을 멈추고 그를 우러러보는데 레드 드래곤 메르카바는 분노한 얼굴로 가슴에 끌어안고 있는 것을 땅속에서 잡아당겼다.
그것은 여왕개미의 거대한 몸체였다.
여왕을 강탈당한 병정개미들이 드래곤의 몸에 기어오르거나 이미 달라붙은 채 그 살을 씹어댔다.
놀랍게도 그 턱 힘 앞에서는 드래곤 스케일마저 깨져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는 품에 안은 여왕개미를 놓지 않았다.
“여왕개미를 끌고 나온 건가?!”
“엄청 커!”
“메르카바다! 다시 돌아오다니!”
어디서 들어본 이름에 왕자의 자동 기사가 커다란 투구를 내렸다.
운전석에 함께 탄 왕자는 이미 기절한 상태여서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메르카바? 다시 돌아와? 그럼 혹시 저게 이젤리아를 괴롭혔다는 그 나쁜 드래곤이에요?
“그래! 본부 진영을 사수! 동시에 마력수정폭탄 투척 준비-!”
하늘로 솟아오르는 신호탄을 발견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방어 마법을 펼치고 오토마톤이 마력수정폭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드래곤 메르카바는 지금 바빠서 인간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펄럭-!
펼쳐진 4장의 날개를 퍼덕이며 이내 공중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덤으로 사방으로 병정개미를 흩뿌렸다.
쾅-! 쿠쾅-!
떨어진 개미는 자기 무게에 압살당했다.
때마침 자동 기사에게도 병정개미의 유체가 떨어진다.
방수포 망토를 휘날리며 못 박힌 나무 몽둥이를 양손으로 붙잡은 대형 자동 기사는 그걸 그대로 후려쳐 버렸다.
-핫하! 내가 동네 꼬마 야구단에서 홈런왕이었어! 으랴차!
쾅-!
병정개미가 못 박힌 방망이를 얻어맞고 나가떨어지는 모양을 발견한 드래곤 메르카바가 시선을 돌렸다.
놀랍게도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린다.
-꼬마 인형, 너냐.
-헉! 이 목소리! 안녕하세요?
몽둥이를 어깨에 걸쳐 맨 거대 자동 갑옷이 이제 하늘로 완전히 떠오른 드래곤을 올려다보았다.
캐롯은 시간을 끌어볼 셈으로 아무 말이나 지껄여 댔다.
-우리 야구 하지 않을래요? 당근 타이거즈 대 드래곤 자이언츠! 어때요?
하늘 높이 떠오른 드래곤 메르카바는 대답 대신 몸을 흔들어 달라붙은 개미를 떨어뜨려 주었다.
휘이잉-! 쾅-! 쿵! 퍽!
-으갹! 하늘에서 개미가 떨어진다! 다들 피해!
훙-! 훙!
그리곤 4장의 날개를 번갈아 휘저으며 드래곤은 이제 하늘 저편으로 떠나 버렸다.
캐롯이 시간을 끌어주는 사이 드래곤을 요격을 할 것인지 두고 한참 망설이던 제이드 기사단장은 겨우 들고 있던 손을 치우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물러가서 다행이다!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 때문에 전의가 좀 사그라들긴 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그들은 여왕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개미 떼의 척살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그리하여 해가 떨어질 무렵, 주저앉은 들판 부근에 굴러다니는 것은 개미들의 시체뿐인 상황이 되었다.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거기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방수포 망토를 펄럭이던 거대 자동 기사가 두 팔을 번쩍 들었다.
평소 캐롯이 자주 하던 짓이라서 다들 웃어 버렸다.
-개미성 퇴치 성공! 해냈다! 만세! 오늘은 회식이야!
개미와 싸우느라 하루 종일 뛰어다닌 덕분에 다들 함성을 지를 힘도 없었지만 그래도 다들 기뻐했다.
거대 자동 갑옷은 수리와 점검을 위해서 본진의 야영지로 돌아갔고, 거기서 왕자는 실신한 상태로 시종장에게 안겨서 사라졌다.
“이제 저놈들이 문제인데.”
천막 앞에 나와 있던 제이드 기사단장이 밥이라도 하는 것인지 맞은편 숲속에서 연기를 피워 올리는 오크 군단을 쳐다보았다.
아리에테와 크랭크에게 선물 받은 새 전투복을 자랑하던 캐롯이 그녀의 중얼거림을 듣고는 호다닥 달려왔다.
“왜요? 이대로 좀 더 부려 먹지. 아직 개미라면 잔뜩 있잖아요?”
“음, 그럴까?”
“물론이죠. 내가 쟤네들한테 가서 몇 번 더 뛰자고 이야기해 볼게요.”
와다다다 밤의 숲으로 사라진 캐롯은 한 시간쯤 지나서 돌아왔다.
“재들도 좋데요. 대신 잡은 개미는 자기네들이 가져가고 싶다는데요?”
“개미 시체를? 상관없다만, 뭣에 쓰게?”
캐롯이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음, 쓸데가 많데요. 껍질로는 집도 짓고, 고기는 먹고.”
개미 고기를 뜯어 먹고 배탈이 났던 기억을 떠올린 제이드 기사단장은 기분이 나빠진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만 됐다. 개미 고기가 좋다면 얼마든지 가져가라고 해라. 그보다, 이번 토벌에는 귀공들의 덕이 컸다. 진심으로 감사하지. 정말 훈장이라도 주고 싶은 정도야.”
마력수정폭탄을 수배해 줬기 때문에 이렇게 수월하게 끝난 것이지, 그게 없었다면 상황은 매우 달라졌을 거라고 다들 인정하는 바였다.
칭찬받은 캐롯은 오랜만에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잘난 척을 했다.
“엣헴!”
진지 주변을 오고 가던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그만 웃어 버렸다.
개미성 토벌을 성공리에 마친 기사단은 이제 방주 도시 샤인으로의 복귀를 서둘렀다. 약간 껄적지근한 사항이 남았지만 그건 돌아가서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무사히 방주 도시 샤인에 도착, 승전보를 알리기 위한 대로 행진 같은 부끄러운 행사 등을 전부 마친 일행들은 오랜만의 휴식을 가졌다.
원정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전부 술집이며 여기저기에 모여 복귀자들이 풀어주는 무용담을 들으며 당시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다가 어이없는 소리도 듣게 되었다.
“드래곤이 여왕개미를 물어가? 왜?”
“그게 나도 모르겠거든요? 그런데 내가 이 두 눈으로 목격한 여왕개미는 사람이랑 합체된 상태였는데, 왜 그런 건지 아시는 분?”
도리도리.
“사악한 드래곤의 끔찍한 실험이 아닐까?”
캐롯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내가 들었거든요? 인간들의 욕심이 빚어낸 예술 작품이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자기 수집품에 추가할 거래요.”
“거 참, 취향 특이한 용님일세.”
고개를 돌린 캐롯은 자기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크랭크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네들이 모인 곳은 정비창 내부의 크랭크의 작업대 주변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용님이 나도 관심 있데. 수집품에 추가해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던걸?”
작업대에서 캐롯의 스프링 코킹 건을 손질하던 크랭크가 말했다.
“욕심꾸러기 용님이시군. 나를 드래곤 슬레이어로 만들어 주실 셈인가.”
멋쟁이 주인님의 발언을 캐롯은 퍽 마음에 들어 했다. 이어서 삼삼오오 모인 기술진들의 토론이 시작되었다.
“여왕개미에 사람을 섞어놨단 말이지? 일종의 키메라인가? 그 마도사 녀석들 기억해?”
“음, 그 정신병자들이 바다 건너까지 와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아. 키메라 합성 기술도 어엿한 정식 학문이라고? 미친놈들이 선을 넘어서 그렇지.”
그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주워 듣던 캐롯이 팔짱을 끼고 호오호오 고개를 끄덕이는데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라더니 갈라졌다.
“어엇! 왕자님?”
“잉? 오오! 왕자님 오셨떠요?”
호위 기사들과 시종장, 그리고 시종들을 대동한 왕자가 잡동사니 가득한 정비창에 행차하자 다들 물러서기 바쁘다.
빛바랜 회색 머리를 틀어 올린 시종장이 말했다.
“자동 인형 캐롯, 그대를 이젤리아 왕성에 초대하고 싶군요.”
“옝?”
무려 이번 사건의 시작, 모든 악의 축 레드 드래곤 메르카바와 조우하고 그를 쫓아낸 왕자의 위업을 수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려면 저 거대 자동 갑옷으로 시가행진이 필수인데, 당신 외엔 저걸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옹, 저기, 나 오토마톤이라서 우리 주인님한테 물어봐야 해요.”
그러고 눈을 감은 캐롯은 손바닥으로 박수를 짝짝하고 쳤다.
마치 집사라도 부르는 모양새였고, 기다렸다는 듯 대답하는 크랭크의 타이밍도 그들의 웃음보를 자극했다.
여전히 작업대에 서서 꿈지럭거리던 크랭크가 투구를 들었다.
“물론 참가하겠습니다. 이젤리아 왕국 관계자와 얼굴을 터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나도 간다.”
여기사 아리에테가 나서자 캐롯이 그녀를 소개했다.
“아, 우리 딸이에요. 세상이랑 싸우고 등졌을 때 내가 어르고 달래서 먹여 살렸거든요.”
모두가 모르겠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자 아리에테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녀는 캐롯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우부부하는 배방구를 선보였다.
“으아악하하하! 간지러워!”
아리에테에게 풀려난 캐롯은 내내 아무 말 없는 왕자의 앞에 가서 또 신나게 떠들어댔다.
“와, 나 왕궁은 처음 가봐. 거기 어때? 뭔가 자랑할 만한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있어?”
반쯤 졸린 얼굴이 된 왕자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성이 아주 크고 멋져. 그리고, 어, 음, 고양이, 우리 고양이 보여줄게.”
“와! 고양이? 좋아! 대의명분은 모르겠고 왕자님네 고양이는 궁금해! 와하하!”
왕자도 기쁜지 캐롯을 따라 슬쩍 웃는다.
하지만 몹시 피곤한 얼굴, 사실 왕자는 캐롯이 조종하는 거대 병기에 들어가서 10시간 넘게 시달리는 바람에 몸살이 나 버린 상황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캐롯이 왕자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더니 딱딱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정신없는 활발함이 싹 사라진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연산 장치에 과열의 조짐, 오버히트 가능성이 있습니다. 충분한 휴식과 에너지 충전이 필요합니다.”
시종장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들이 떠날지도 모른다고 급하게 나왔답니다. 왕자님, 이제 이야기는 마쳤으니 어서 돌아가셔서 쉬셔야 합니다.”
돌아가는 그들을 배웅하러 정비창 입구 앞에 선 캐롯이 손을 크게 흔들었다.
“어디 안 갈 테니 맘 놓고 쉬어! 고양이! 기대할게!”
“어, 응.”
골골대는 왕자였지만 그래도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었다.
왕자에겐 또래 친구가 없었기에 시종장도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코킹 건의 조립을 마치고 그 장전 손잡이를 잡아당기려고 용을 쓰는 크랭크에게 캐롯이 달려와 물었다.
“복귀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흐으으읍!”
끼긱, 끽, 반 이상 당겨지지 않는 코킹 건을 결국 캐롯에게 내민 크랭크가 투구를 끄덕였다.
“아까 회의에서 나온 말이다. 거래 중인 리즈넷 상회를 통해서 남아 있는 리즈넷 기술진의 복귀 권고가 떨어졌다더군. 그래서 이제 다들 돌아갈 거다.”
계약 기간을 넘기고도 계속 남은 채 도움을 주던 리즈넷 기술진들이 다들 시원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절박한 스폰서를 만나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본 그들도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아, 그래서 안달 나서 온 거구나. 불러도 될 텐데.”
“비슷한 또래로 보이니 왕자님이 너를 친구로 생각하나 보지.”
“호우오오오! 친구! 무려 왕자님이 내 친구?”
게다가 시종장 공인, 이유는 캐롯이 오토마톤이기 때문이었다. 사람이라면 뭔가 지위상의 거리감이 생기기 마련인데, 자동 인형인 캐롯은 그런 것 아무 상관하지 않으니.
가만히 듣고 있던 아리에테가 이채로운 눈빛으로 아주 대견하다는 듯이 캐롯을 바라보았다.
“아니다, 그저 친구라고 하기엔 그 몸짓, 표정이 거슬린다. 왕자님은 캐롯을 마음에 둔 것 같이 보였어. 놀랍군. 일국의 왕자의 마음을 훔친 거지 않나. 마성의 꽃소녀다.”
찰칵! 퉁-!
크랭크도 당기지 못한 장전 손잡이를 간단하게 당기고 빈총을 쏴보던 캐롯이 아리에테의 주장에 폭소를 터트렸다.
“우와! 그거 마음에 들어! 새로운 위명이야! 마성의 꽃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