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수집품! 249 >
드래곤의 둥지라고 해도 믿을 커다란 동공 안에는 야광 버섯이 잔뜩 매달려서 푸르른 빛을 발하고, 그 아래에 엄청나게 커다란 배를 가진 여왕개미가 꿈틀 꿈틀거리며 연신 알을 낳아대고 있었다.
끔찍한 것은 그 거대한 괴물 개미의 이마에 어떤 처녀의 상반신이 박혀 있더라는 것, 그 웅장함과 기괴함에 분노한 캐롯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린다.
“사람? 사람을 저기다 넣어 놓은 거야? 이런 미친!”
“누구냐?”
“엉?”
고개를 쳐들고 욕설을 중얼거리던 캐롯이 사람 목소리에 놀라 바로 시선을 내렸다.
저쪽 알이 잔뜩 쌓여 있는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인간 소녀가 캐롯을 쳐다보고 있다.
얼굴은 물론 밖으로 드러난 피부가 전부 새하얗다. 이 와중에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은 붉은색, 캐롯보다 조금 더 큰 소녀는 갑자기 나타난 조그만 꼬마를 가만히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너는 심장이 없구나. 인간이 아니로군. 자동 인형인가?”
“워워, 아니, 잠깐만요. 개미굴에서 사람을 만나서 반가운데 그러는 너님은 누구세요?”
붉은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긴 소녀가 고압적인 시선으로 턱을 쳐든다.
“메르카바.”
“나는 캐롯이라고 해요. 메르카바 님.”
두 소녀가 잠시 서로를 마주했다.
개미 여왕과 그녀를 연달아 살피던 캐롯이 먼저 서로 궁금한 것을 질문했다.
“님, 여기서 뭐 하세요?”
무심한 시선으로 캐롯을 보다가 고개를 돌린 그녀는 다시 여왕개미를 올려다보았다.
“감상하고 있었다. 보라, 아름답지 않으냐? 인간들의 욕심은 끝이 없구나. 정말로 하찮고 꼴같잖구나. 하하하!”
두 팔을 살짝 벌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것은 그것들의 안타까운 부분을 잘 표현한 아주 예술적인, 살아 있는 작품이라 해야 옳다. 그래서 내 수집품에 추가할 것이야.”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소리를 들으며 남은 수정폭탄이 든 가방을 멀찍이 던져 놓은 캐롯이 크랭크가 만들어 준 신무기를 뽑아 들었다.
찰칵!
소형 스프링 코킹 건이었다.
일반 병사용으로 쓰려고 크기를 줄여본 것인데 악마적인 장력의 스프링은 작게 만들어도 장전이 힘들었다.
그래서 캐롯 전용이 된 물건.
그 총구를 돌린 캐롯이 도끼눈을 뜨고 으르렁거렸다.
“개소리 집어 쳐, 너 사람 아니지?”
“네 보석 같은 눈에, 이 몸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가엽고 어리석은 것으로 보이더냐?”
매력적인 눈매로 웃기 시작한 붉은 머리칼의 소녀가 고개를 돌리자 캐롯이 방아쇠를 당겼다.
퉁-!
묵직한 납 구슬이 위력적으로 날아갔다.
퍽!
일부러 바닥을 맞춘 캐롯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딘가의 마도사냐? 하여간 인간의 길을 벗어난 것들이 잘도 이런 짓을 해요. 개미 머리의 여자를 뽑아내.”
“호오, 저 상태에서 떼어내면 죽는데도?”
“뭐?”
빙글빙글 웃음 지은 메르카바는 팔짱을 끼면서 캐롯을 지켜보았다. 재미난 장난감을 발견한 얼굴이었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기술이 이토록 발전한 것인가? 놀랍군. 정말 사람 같구나. 좋다. 너도 내 수집품에 넣어주도록 하지.”
“그전에 확실히 하자. 너 사람 아니지? 진짜지?”
두 팔을 벌린 메르카바가 말했다.
“활동하기 편해서 이런 몸을 하고 있을 뿐, 나를 그런 하찮은 것과 비교하지 말······!”
퉁-! 퍽!
“쿨럭!”
가슴에 구멍이 뚫린 메르카바가 입으로 피를 토하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뭔지 모르는 것을 상대로 선수를 친 캐롯은 냅다 몸을 뒤로 돌리고 뛰기 시작했다.
“이 지역의 미친 녀석이야! 어서 도망가야 해!”
와다다다다!
짧은 다리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움직이며 복잡한 개미굴을 주파하기 시작한다.
캐롯의 공간지각능력은 같은 오토마톤 사이에서도 최상위 수준, 복잡한 미로 따위 이미 머릿속에 다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캐롯이 사라진 조용한 여왕의 침실,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가 눈을 번쩍 뜬 메르카바가 프킬킬 웃더니 중얼거렸다.
“자동 인형 주제에 선수를 치다니, 앙큼한 짓을 하는구나. 이러면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으냐. 잡아라, 잡아서 내 앞에 데려오라. 부서져도 상관없다.”
칭!
그녀의 주변으로 세뇌가 완료된 병정개미들이 붉은 눈을 뜨고 추적에 나섰다.
“우왁! 미친! 왜 이리 길이 막혀!”
들어올 때만 해도 한가했던 개미굴에서 개미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그것들을 피해 깡충깡충 뛰어오른 캐롯은 들고 있던 코킹 건으로 덤벼드는 개미들을 견제했다.
철컥! 퉁! 퉁!
스칵! 퍽퍽!
번쩍이는 섬광이 몇 차례가 지나자 굴을 막고 있던 개미가 깔끔하게 잘려 나가 버린다.
폭탄 설치반으로 함께 온 오토마톤 중의 하나였다.
“지정된 장소에 설치 완료, 더불어 갑작스러운 활동이 감지되었습니다. 긴급 철수.”
“나도 알아!”
침입자 경고 냄새를 맡고 깨어난 개미들의 공세를 뚫고 기어코 지상으로 뛰쳐나온 캐롯과 오토마톤은 서둘러 성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더불어 신호탄이 솟아오른다.
퉁퉁!
하늘을 올려다보던 캐롯도 자신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퉁-!
“빨리 터트려! 웬 미친놈이 있어! 뭔가 엄청 위험한 냄새가 나는!”
쉬이이익! 번쩍-!
기사단의 본진, 망원경으로 관찰 중이던 병사가 연달아 솟아오르는 신호탄 사이에서 노란색 불빛을 발견했다.
“캐롯의 신호탄 확인! 전원 탈출했습니다!”
“격발-!”
대기하고 있던 크랭크가 기폭 스크롤을 찢어 버리고 손가락을 튕겼다.
딱-!
같은 시간, 여왕의 침실에서 구멍 난 옷을 살펴보던 메르카바는 갑작스러운 고마력 반응을 느끼고 주변을 살피다가 왠 가죽 가방이 돌 틈에 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일그러진 그 새하얀 그녀의 얼굴로 더 하얀 빛무리가 쏟아진다.
“이 꼬마 녀석이.”
화아악! 번쩍!
쿠구구구구구!
지표면 아래에서 일어난 대폭발은 지반을 무너뜨리는 기염과 더불어 일대에 지진을 일으켰다.
쿠르르르릉-!
주변 야생 동물은 물론 산새들과 데려온 말들이 발광했으며 함께 온 오크들도 치를 떨었다.
하지만 인간 기사단들은 오히려 이 진동을 너무도 기쁘게 받아들였다.
지진이 잦아들자 중앙의 방주 도시는 지면 아래로 푹 꺼져 버렸고, 그 주변 일대가 다 내려앉아 버렸다.
그리고 그 와중에, 살아남은 개미 군단이 흙을 파헤치고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이드 기사단장이 체인 소드를 뽑아 들고 외쳤다.
“반격의 시간이다! 전원 전투 준비! 잔존 세력을 토벌하라! 신호탄 발사!”
퉁! 펑-!
기사단 쪽에서 솟아오르는 대형 신호탄을 보고 오크들도 전의를 불태우며 돌진을 시작했다.
훈련받은 정식 군대끼리의 싸움이 아니라 몬스터 퇴치 전이었기에 곧바로 난전이 일어났다.
기이이잉!
“으랴차아아!”
철컥! 퉁! 철컥! 퉁!
기사단원들은 전부 자동 갑옷에 체인 소드나 코킹 건으로 무장하고 덤벼드는 개미를 압도했으며, 오크 전사들은 그들대로 길들인 개미에 올라타 전장을 질주하며 도끼나 창을 휘둘러 댔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난장판이었다.
“우엑! 페페펫! 입에 흙 들어갔어.”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시커먼 얼굴로 복귀한 캐롯을 보고 아리에테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함께 기다리던 왕자도 마찬가지.
이때 시종장은 무슨 생각인지 시종들을 동원해서 캐롯을 데려와 옷을 벗기고 그 몸을 씻겨주었다. 그리고 새로 만든 전투복도 입혔다.
시종들이 비춰주는 거울 앞에서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던 캐롯이 말했다.
“오! 멋진 옷이잖아? 딱 맞네?”
시종장이 말했다.
“캐롯, 그대에게 부탁합니다. 왕자님을 호위하여 전공을 세우도록 해주세요. 모양만이라도 좋습니다.”
“에엥?”
오토마톤에게 무려 존칭, 놀란 캐롯이 시종장인 중년 여성을 올려다보다가 우물쭈물하는 왕자를 바라보았다.
바로 곁에서는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이 5미터짜리 거대 자동 갑옷을 덮고 있던 방수포를 벗겨내고 있었다.
오! 다른 건 모르겠고 저걸 탄다는 거지! 신난다!
사심이 듬뿍 담긴 캐롯의 유리구슬 눈동자가 반짝이더니 왕자의 손을 덥석 잡아끌었다.
“가자! 왕자님! 같이 한바탕 날뛰어보자고!”
찰칵.
시종장이 왕자의 목에 초커를 달아주었다. 거기서 나오는 신경계 신호는 캐롯을 한번 거쳐서 자동 갑옷에게 입력되었기에 왕자가 아무리 바보짓을 해도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대부분 캐롯의 그것이었지만.
-으라차!
트드득-!
5미터짜리 자동 갑옷이 몸을 일으키고 걷기 시작한다.
워낙 급하게 만들어져서 장식도 없고 무기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현장에서 바로 해결되었다.
펄럭-!
밖을 내다보는 틈으로 주변을 살피며 캐롯은 방수포를 망토처럼 목에 매달았다.
무기는 정비반을 이끌고 온 스틱스가 준비했다.
그는 근처 나무를 잘라 만든 몽둥이를 가리켰다.
“이 녀석아! 아쉬운 대로 이걸 써!”
듣고 있던 기사 하나가 또 발광한다.
“당신은 자꾸 왕자님께!”
“어허! 아니, 같이 탄 오토마톤에게 한 거라니깐?”
끼긱기긱!
몸을 숙인 대형 자동 기사가 몽둥이를 집어 들더니 캐롯 목소리로 깔깔거린다.
-오우! 못도 박아 놨네? 살벌해, 아주 마음에 들어.
하지만 구경하던 왕자의 호위 기사단은 별로라고 평가했다.
“못 박힌 나무 몽둥이라니, 어딘가의 불량배 같군요.”
“어, 급해서 말요. 나중에 전용 검을 따로 만들어야겠군.”
시종장이 박수를 치며 시선을 모았다.
“다들, 전장으로 나가시는 왕자님을 배웅합시다.”
스틱스를 포함한 정비반은 갑자기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는 서둘러 자리를 비켰다.
곧 꽤 멋스러운 모습이 연출되었다.
시종장과 시종들이 대형 기사의 앞에서 정중히 허리를 숙이고 옆으로 비켜서자 나란히 줄을 맞춰 선 호위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전장으로 나서는 왕자의 승리를 기원해 주었다.
“오우, 멋진걸?”
그들의 응원을 받으며 대형 자동 기사가 망토를 휘날리며 걷기 시작한다.
쿵-! 쿵!
멀찍이 떨어져서 그 모습을 구경하던 크랭크가 안면이 있는 정비반의 청년에게 슬쩍 물었다.
“어린 왕자를 전장에 내보내어 공을 세워야 할 정도로 왕가에 힘이 없습니까?”
주변을 살핀 청년이 낮게 속삭였다.
“그보다는 기사단의 힘이 워낙 크다는 것이 문제일 겁니다. 이런 것도 이른바 기 싸움이지요.”
투구를 끄덕인 크랭크는 못 박힌 나무 몽둥이를 들고 이제 전장을 향해 뛰기 시작하는 자동 기사를 보고 중얼거렸다.
“아쉬운 대로 저걸로 왕가 직속의 근위 기사단을 만들면 위압감 조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시종장의 귀가 확 커졌다가 작아졌다. 곧 그녀가 고개를 돌리더니 스틱스 정비 반장을 불러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하자 그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물끄러미 두 사람의 쑥덕거림을 쳐다보던 크랭크는 괜한 소릴 해 버렸다는 생각에 얼른 시선을 돌려 버렸다.
* * *
쾅-! 쾅! 쿵쾅쿵쾅-!
자동 갑옷의 운전석은 가슴팍에 있었다. 드러난 틈으로 주변을 살피며 캐롯이 독단적으로 그걸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자에게 오는 신호는 겁에 질린 움츠림뿐이어서 일단 전부 커트.
“실전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데! 왕자님은 앞을 봐!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엄청나게 높아진 시선에 기겁한 왕자는 캐롯에게 매달린 채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한참 정신없는 전장에 망토를 두른 갑옷 거인이 나타났다.
그의 등장에 기사단은 환호를 내질렀고, 오크들은 기겁했으며, 개미들은 거인의 다리에 걷어차여 전장을 마구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쾅! 퍽!
성의 기둥 같은 다리가 오크 전사에게 덤벼드는 개미를 걷어차 버리더니 뒤를 이어 못 박힌 나무 몽둥이를 검처럼 휘두르기 시작하자 그걸 본 오크 전사들의 용기가 폭발했다.
저 거인은 우리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