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현지 조달! 245 >
와르륵!
운동하던 크랭크가 와서 다리를 잡아 들어 올리자 도끼눈을 뜬 캐롯이 거꾸로 매달려 소리를 꽥 질러댔다.
“결함품이야! 반동이 이렇게 강해서 어디다가 써?”
요즘 철야로 일하느라 눈가에 시커먼 그림자를 매단 여성 기술자가 캐롯을 날려 버린 물건을 가리키며 즐겁게 웃어댔다.
“자동 기사에게 들려줄 거야. 이름하여 스프링 코킹 건! 쇠말뚝을 발사하지. 사거리는 좀 짧지만 아쉬운 대로 쓸 만할 거야.”
흥칫뿡거리는 캐롯을 바닥에 바로 세워준 크랭크가 투구를 끄덕였다.
“완성하셨군요.”
“음후후! 당신의 그 스프링 투창 발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괜찮죠?”
아르곤에서 함께 온 정비 길드 소속의 여성 기술자가 피곤하지만 신난 얼굴로 떠들어댔는데 크랭크가 단점을 지적하며 고춧가루를 뿌렸다.
캐롯이 떨어뜨린 코킹 건을 주워 든 크랭크가 말했다.
“하지만 범용성이 낮은 것도 사실입니다. 마력강화스프링이 들어간 이걸 당기려면 탈인간급이어야 합니다. 흐으읍!”
“아, 아니 그건 사람이 쏘라고 만든 게 아닌데······.”
그녀의 말은 오기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고,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 크랭크는 여러 번의 시도 후 겨우 장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단단히 어깨 견착을 한 다음 방아쇠를 당겼다.
퉁! 빡!
묵직한 쇠말뚝이 창고 밖의 가로수를 관통해 버렸고 크랭크는 어깨를 붙잡고 무릎을 꿇었다.
“으으음, 정말 반동이 어마어마하군요.”
설계자인 여성 기술자는 화낼 힘도 없는지 그저 실없이 웃기만 한다.
게다가 또 어느새 몰려온 도전자들이 그 코킹 건을 장전해 보겠답시고 용을 쓰기 시작하자 그만 웃음보가 터져 버렸다.
“탈인간? 저자가 하는데 내가 못할 리가 없다!”
“다음은 접니다!”
옷의 먼지를 툭툭 털던 캐롯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젤리아엔 무모한 용사들이 참 많구나.”
“뭣들 하는 거냐!”
난데없는 불호령에 스프링을 꺾으며 운동 중이던 기사단의 남자들과 키득거리며 그걸 구경하던 여기사들이 찔끔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씩씩거리는 제이드 기사단장이 화려한 차림새의 사람들을 호위하고 정비창을 찾아와 있었다.
재빨리 고개를 돌린 그녀가 송구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란프라스 왕자님, 못 볼 꼴을 보여드렸습니다. 기사단의 기강을 바로잡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하얀 옷감에 금색 실로 치장된 화려한 차림을 한 꼬마 소년이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오히려 보기 좋지 않으냐. 기사단에 활력이 넘치는구나.”
요즘 잘나가고 있는 동부 연합 검은 백합기사단의 사기 진작과 공적을 치하하기 위해 방문한 귀빈은 다음 아닌 이젤리아 왕가의 그란프라스 왕자였다.
덤으로 나이는 올해 10세, 때문에 외모가 공주인지 왕자인지 헷갈릴 수준이었다.
“전하를 뵙습니다!”
왕자가 올 줄은 몰랐기 때문에 평소와 다름 없이 바보짓에 열중이던 사내들이 급당황하여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리즈넷에서 온 사람들은 예법에 따라 가만히 서서 허리만 좀 숙였다.
뽀작뽀작 걸어간 조그만 왕자가 앞으로 나서서 기사단을 둘러보았다.
“고개를 들어라. 용사들의 얼굴을 보고 싶구나.”
무릎을 꿇고 있던 여기사들과 거친 사내들이 고개를 들자 근엄하게 뒷짐을 지고 서 있던 그란프라스 왕자가 작은 손을 앞으로 돌려 마주 잡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활짝 웃는다.
“용사님들, 우리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귀엽다!
뚜드득, 푸확?!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와 코피 터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피! 코피가!”
“나는 괜찮다.
“아, 안아보고 싶다.”
“참으세욧!”
쑥덕이는 여기사들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했는지 왕자는 이제 정비창 주변에 세워져 있는 커다란 자동 갑옷을 올려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와아! 멋지구나. 엄청 커!”
사심 없이 솔직한 감상이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다 보니 근엄과 천진난만한 아이 특유의 그것이 뒤섞여 흘러나온다.
왕자의 수행원으로 뒤따라온 중년 여인이 나지막하게 속삭이자 깜짝 놀란 왕자가 고개를 돌렸다.
“오, 오험!”
조그맣게 헛기침을 한 왕자는 정비창의 기술진들에게도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 2미터짜리 거인을 발견하고는 입을 딱 벌리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땀 때문에 번들번들한 몸으로 서 있던 크랭크도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어 몸을 낮췄다.
하지만 그래도 컸다.
“그, 그대는 정녕 사람인가?”
“푸흡! 키키키!”
곁에 서 있던 캐롯이 두 손으로 입을 막고 킥킥거리다가 왕자와 눈이 맞아 버렸다. 그래서 좀 더 가까이 나와서는 우아하게 전투복의 치맛자락을 들고 몸을 숙였다.
“안녕하세요. 왕자님.”
아,
계절은 이제 가을, 하지만 왕자님의 가슴에 봄이 왔다.
화려한 금발에 붉은 눈을 가진 소녀가 화사하게 웃음 짓고 있는 모습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모습이었다.
“잉? 왕자님 얼굴이 빨개요?”
“어, 아, 으아, 그, 그게 아니라······.”
당황한 소년이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고개를 돌리자 뒷짐을 진 캐롯이 역시 비슷하게 몸을 기울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 어색한 상황을 타파한 것은 제이드 기사단장.
캐롯에게 눈짓으로 물러설 것을 요청한 그녀는 왕자의 곁에서 기사들과 장비들을 소개하며 그들이 올린 전과와 현재 상황을 열렬히 피력했다.
개미성 공량을 앞두고 어떻게든 지원을 얻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을 다 들어준 그란프라스 왕자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친서를 써주겠다. 그걸로 다른 기사단에게 원하는 것을 빌리도록 하라.”
왕자의 대답에 제이드 기사단장은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그의 친서는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주변의 다른 기사단에서 거절 의사를 밝힌 것이다.
빈손으로 돌아온 부하들을 보고 제이드 기사단장은 분통을 터트렸다.
“이것은 반역이다! 감히 왕족의 요청을 무시해?!”
회의실, 기사단의 중요 간부들과 함께 얼떨결에 끌려와 앉아 있던 크랭크가 팔짱을 하고 있다가 투구를 앞으로 쑥 내밀었다.
“그보다 제이드 기사단장님, 저희의 체류 기간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제이드 기사단장은 가슴이 턱 막힌 기분이 되었다.
지금까지의 활약은 시쳇말로 거의 장비빨, 그걸 유지해 주는 인력이 빠지면 곤란한 상황이다.
그녀로서는 어떻게든 이 기세를 살려야 했다.
“무엇을 숨기겠는가, 우리는 지금 그대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좀 더 남아줄 수는 없겠는가? 그 개미성을 함락할 때까지만이라도.”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크랭크가 투구를 들었다.
“그렇다면 모험가로서 고용하십시오. 정당한 보상이 약속된다면 남아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하지!”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여기저기서 짧은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이제 각자의 보고가 시작되었다.
먼저 장비 수급을 도와주고 있는 리즈넷 상회 길드,
“주문하신 스프링 코킹 건을 비롯한 무기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내일 납품됩니다.”
그다음 캐롯,
“오크 용병단 준비 끝이요!”
기사단의 부관,
“기사단을 포함한 전투병 200여 명, 현재 대기 중입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이 아직 준비되지 못했다.
제이드 기사단장은 이제 손톱을 깨물면서 중얼거렸다.
“크림슨 앤트의 드래곤 킬러라는 위명은 그 숫자에서 나온다. 마력수정폭탄이나 대규모 범위 공격이 가능한 마법사가 꼭 필요해.”
요즘 이 사단 때문에 마법사도 구하기가 힘들다.
그때 누군가가 크랭크를 쳐다본다.
“이봐, 자네. 그 산을 무너뜨린 무기는 또 만들 수 없는 건가?”
모두가 그를 쳐다보기 시작하자 크랭크는 조금 쑥스러워져 버렸다.
제이드 기사단장만이 고개를 갸웃한다.
“산을 무너뜨려?”
“이 친구들의 모험담에 그런 이야기가 있더군요.”
“뭐라고? 사실인가?”
자리에 동석한 아리에테와 캐롯이 크랭크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투구를 가로저었다.
“그건 불발률도 심하고 언제 터질지 알 수 없습니다. 병기로서 신뢰도가 낮은 물건입니다. 대신 저를 모험가로서 고용하신 제이드 기사단장님께 제안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인가?”
크랭크가 투구를 들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희에게 마력수정폭탄을 구해오라고 하십시오.”
모두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곧 그 말의 의미를 알아챈 제이드 기사단장이 고개를 슬쩍 숙이고 큭큭 웃기 시작했다.
어쩐지 그 웃음 속에서 광기가 엿보인다.
그러더니 외쳤다.
“좋아! 구해와라. 가능한 많이!”
드르륵, 크랭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동시에 캐롯과 아리에테도 일어났다.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회의실을 나선 세 사람은 바로 준비를 마치고 성문을 나섰다.
한가롭게 마차를 타고 성을 나선 그들이 한참 달려서 도착한 곳은 이웃 방주 도시였다.
쿠구구구!
요즘 꽤 많이 들어본 소리라서 하늘을 울리는 폭음에도 놀라지 않게 된 아리에테가 주변의 산을 바라보았다.
“이 도시는 영지 바깥까지 몰아세웠나 보군. 소리가 산 너머에서 들린다.”
“그리도 저런 걸 너무 펑펑 터트리는 거 아니야? 봐봐, 산이고 들이고 전부 구덩이 천지야. 비가 오면 완전 호수의 나라가 되겠다.”
마차가 달리는 길가 주변의 초원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짐칸에 앉아서 구경하던 캐롯이 또 말했다.
“그나저나 여기는 도시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네? 이웃까지 금방 왔어.”
“국경선이라는 개념이 없으니. 대신 도시 간 지원과 교류를 위해 일부러 가깝게 만들었다고 하더군.”
크랭크의 말에 캐롯이 고개를 돌렸다.
“호오호오, 하지만 사람 사이에 반목이나 이권이 얽히니까 그런 순기능 전혀 발휘되지 않는걸?”
“음, 그것도 그렇다. 날카롭네.”
주인님의 칭찬에 캐롯은 엣헴 하는 소리를 내면서 팔짱을 끼고 코를 세웠다.
기사단에서 빌려온 오토마톤과 함께 얌전히 짐칸에 실려 가던 아리에테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훔칠 거냐?”
“훔치다니, 듣기 불편한 소리를 하는군. 좀 나눠 가지자는 거다.”
크랭크의 살짝 밝아진 목소리를 들으며 아리에테는 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는 캐롯을 바라본다.
“네 주인님이 어쩐지 신나 보이지 않나?”
“으히히! 삥땅 치려고 그러는 거지.”
삥땅, 지금 구하려는 것은 다름 아닌 수전노 크랭크조차 쟁여두는 실물 자산, 마력수정폭탄이다.
고개를 끄덕인 아리에테도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대신 진지하게 물었다.
“나는 뭘 하면 되지?”
* * *
“개미다! 개미의 습격이다! 대피하라!”
“기사단은 전원 출동! 서둘러라!”
도시 안, 로브에 후드를 뒤집어쓴 아리에테와 골목길에 몸을 숨긴 크랭크가 손나팔을 하고 우렁차게 외쳐댔다.
둘 다 목소리가 큰 편이라서 주변에 그 고함 소리가 잘 퍼져 나갔다.
무장한 기사단과 오토마톤들이 시민들의 손짓을 보고 현장으로 급히 뛰어갔다.
“이런 제길!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저쪽 동네로 몰려간 것 아니었어?”
“다들 집 안에 숨어요! 밖으로 나오지 말고!”
“오토마톤을 먼저 보내자! 너희들! 먼저 가서 개미를 잡아! 가라!”
칭! 투타다다다다다!
한 기사의 외침에 뒤따르던 오토마톤들이 눈을 번쩍이더니 골목길 좌우의 벽을 타고 앞서 달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시민들이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응원을 해댔다.
“부탁해!”
“힘내라!”
“어이! 믿고 있다구!”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자동 인형들은 평소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살갑게 대해 주라고 사용 설명서에 친절하게 적혀 있기 때문인데, 그럴수록 신기하게도 그 가짜 관심과 사랑에 어느 순간 진심이 묻어나고 있었다.
“우릴 지켜줘!”
입가에 손나팔을 한 어느 처녀의 외침.
분기탱천한 기사단의 오토마톤들은 이제 달리면서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다른 누군가가 먼저 개미들의 앞에 나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