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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39화 (239/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대화! 239 >

들판에서 방향을 휙 돌린 캐롯은 안개를 헤치고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붉은색 유리 구슬 눈동자를 크게 떴다.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난 상황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난장판이었다.

치르르르!

이상한 소리와 함께 머리에 달린 더듬이를 움직이는 드래곤 킬러 크림슨 앤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 곤충의 압도적인 위용은 캐롯마저 놀라게 했다.

“와, 진짜로 황소만하네? 저게 개미라고?”

검붉은색의 그 개미의 몸에는 지금 여러 갈래의 밧줄과 더불어 쇠말뚝이 박혀서 붉은 체액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 몸을 옭아매는 밧줄의 끝에는 좀 이상하게 생긴 오크들이 잔뜩 매달려서 줄다리를 하고 있었고.

“크어엉!”

문명화가 진행된 것인지 이 오크들은 가죽을 잘라서 만든 자켓에 금속제 무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개미의 몸에 연신 무기를 휘두르는 오크들은 갑옷의 장갑판을 얼기설기 묶은 것을 입고 있기도 했다.

그 숫자 대략 20여 마리.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캐롯은 눈을 비볐다.

안개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건가?

“원래 오크가 저렇게 잘빠지고 잘생겼어?”

리즈넷의 오크가 거의 이족 보행 돼지라고 하면, 이젤리아의 오크는 팔다리가 길고 키가 거의 사람만 했다. 게다가 그 얼굴에 이르러서는 묘한 기시감마저 낳았다.

거의 인간 같아.

촤르륵! 촥!

여러 마리의 오크들이 개미 한 마리와 줄다리기를 하는데, 그들 모두를 끌고 갈 정도로 개미는 힘이 좋았다.

그리고 그 개미가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어떤 동굴.

그 앞에도 방패와 몽둥이로 무장한 오크들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늘어뜨린 긴 금발과 그 외모가 어쩐지 인간 여자 같았다.

뚜둑-! 툭!

기어코 밧줄이 끊어지고 오크들이 나동그라지며 개미가 풀려났다.

고개를 쳐들고 포효한 크림슨 앤트는 무서운 속도로 동굴 앞을 지키는 오크들에게 덤벼들었다.

좌우로 벌려진 집게 이빨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키이이이이잉! 촤아아악!

안개 연기 속에서 갑자기 소용돌이 바람이 일어나더니 쏜살같이 다가와 개미에게 덮쳐 들었다.

카가가가각!

회전 칼날에 갈리면서 사방으로 튀는 불꽃, 그리고 떨어지는 개미의 머리.

쿵-! 촤르륵!

비장한 표정의 여자 오크들 앞으로 돌개바람이 멈추더니 뭔가가 등을 보이고 섰다.

조그만 등, 하지만 그 주변에 흩뿌려진 개미의 체액은 마치 마법사의 마법진 같은 모양이었다.

쿵-! 쿠쿵!

머리가 없어지고 잠시 발버둥 치던 개미는 곧 움직임을 멈추고 절명했다.

어안이 벙벙한 오크들이 안개 속의 작은 인형을 바라보았다.

조그만 키, 산발한 금발에 당근 모양 헤어핀을 꽂은 그 모습은 인간들의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그네들의 자식들 같았다.

그런데 모습만 그렇지 시뻘건 안광이 피어오르는 두 눈과 그가 저질러 놓은 역사는 인간의 규격에서 한참 벗어난 모습이었다.

“크르륵!”

“쿠릇.”

오크들이 새로운 적을 앞에 두고 다시금 비장함을 불태운다.

똑똑한 오크들은 인간의 곁을 따라다니는 어떤 기계 인형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자동 인형 오토마톤, 사람이 만들어 낸 또 다른 그들의 자손.

눈에서 여전히 빛을 뿜어내는 그 조그만 인형은 한참 쓰러뜨린 개미를 이리저리 구경하더니 이번엔 잔뜩 긴장한 오크들 앞으로 뽀작뽀작 다가와 이리저리 올려다본다.

그리고는 떨어뜨린 개미 머리를 주워 들더니 작은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그리고 몸은 오크를 가리켰고.

“디 미메인 투린, 라 데메인 투린.”

갑자기 들려오는 이상한 언어.

하지만 연속적인 저 손짓,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뭘 말하고 싶은 것인지는 대략 알아챘다.

이거 내 거, 저건 너희들 거.

오크 부족 중 가장 큰 오크 하나가 나서더니 손짓했다.

하얀 머리에 주름살이 가득한 오크였다.

“쿠우쿠우. 샤키, 캬라쿠.”

그리고 이 꼬마의 손짓을 따라 했다. 그리고 히죽 웃어 보인다.

드러난 어금니가 멋들어졌지만 약간 비굴하다.

눈에서 빛이 나오는 자동 인형 꼬마는 이제 뭔가 신기한 현상이라도 발견한 것인지 오오! 하는 감탄과 앞으로 나선 오크를 올려다보다가 몇 마디 말을 더 떠들어댄 다음 마지막으로 손까지 흔들어 주고 나서야 개미 머리를 끌어안은 채 연기 속으로 총총 사라졌다.

“푸우-!”

“파하아!”

긴장이 풀린 오크들이 주저앉는다. 하지만 곧 다시 일어나야 했다. 곧 피 냄새를 맡은 것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니 빨리 양식을 옮기고 문을 닫아야 한다.

“캭캭! 바로 쿰! 다란트! 샴!”

“쿠쿠에, 디린.”

이 부족은 인간들의 말을 할 줄 몰라서 다들 오크 말로만 떠들어댔다. 그리고는 서둘러 쓰러뜨린 개미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타!

“으럇차아!”

등에 개미 머리를 짊어진 캐롯이 성벽을 와다다다 기어오르더니 냅다 뛰어올라 성벽 위에 멋지게 착지했다.

하지만 이번엔 경비병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뭐야! 넌 누구냐!”

사방에서 창날과 칼날이 내밀어졌다. 다들 수리받고 왔는지 아까는 없었던 오토마톤들도 끼어 있었다.

캐롯이 배시시 웃으며 반갑게 손을 들었다.

“안녕하세요?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이죠?”

경비대에서 공식적으로 항의가 들어왔다.

“지원 인력의 방문은 고맙소만, 이런 식의 일탈은 곤란합니다!”

“죄송합니다. 주의시키겠습니다.”

작업용 앞치마를 두르고 일어선 크랭크가 송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경비대원을 따라온 오토마톤은 조그만 여자아이를 대롱대롱 들고 있었는데, 그 아이는 또 가슴에 커다란 개미 머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걸 보고 기겁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놀란 사람들도 있었다.

“세상에! 그건 뭐야? 개미야?”

“소문의 그거야? 크림슨 앤트?”

“응! 내가 잡았어요! 으헤헤! 기념품! 기념품!”

신기한 듯이 모여든 리즈넷 기술자들을 보고 거창한 한숨을 내쉰 경비대원이 설명했다.

“이건 일개미요. 병정개미는 이거보다 1.5배는 더 큽니다. 요 녀석! 네 이야기는 들었다. 다음부터는 정문에 대고 말해! 그렇게 망가지고 싶다면 언제든 내보내 줄 테니!”

“오우예-! 역시 성과가 있어야 인정받는 알기 쉬운 세상이라니깐!”

항의하러 왔던 경비병은 캐롯의 말을 듣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미 도시 내에 리즈넷 스팀 레이디, 여신의 인형이 왔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었다.

경비병들이 돌아가고, 자리를 바꾸듯 시민들이 하나둘 찾아왔다.

어른도 있고, 아이도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손에 동화책을 들고 있었다.

“와, 내 팬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아무튼 유명해지고 볼 일이야!”

사인을 부탁하는 책을 받아 든 캐롯은 오와! 하는 소리를 냈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이 무려 번역본이었기 때문이다.

“리즈넷 모험가의 모험담은 실제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라고 하더군. 내내 지어낸 이야기만 보아오던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지.”

반나절 정도의 훈련을 마치고 땀투성이가 된 제이드 기사단장의 말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갑옷 안에 들어가 있었다.

“가능한 빨리 이것에 익숙해지고 싶군. 다른 기사단에게 밀려 버린 전과를 회복하고 싶어.”

그녀는 그 상태로 식사를 마치고 잠시 쉰 다음 또다시 연병장에서 혼자서 칼춤을 추어댔다.

팔짱을 하고 그걸 쳐다보던 크랭크에게 팬 미팅을 마친 캐롯이 도도도 달려왔다.

어느새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두르고 손에는 커다란 대접이 들려 있었다.

“주인님 밥 먹어. 별로 먹을 건 없지만.”

개미의 습격이 시작된 것이 작년, 보통 봄에 성 밖 농지에 밀이나 곡식을 재배하는데 그걸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크랭크는 캐롯이 가져온 개미 머리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저걸 먹을 수는 없을까?”

“잉? 저거? 음, 먹어볼래? 기념품이야 나중에 또 챙기면 되고.”

캐롯이 선선히 허가하자 크랭크는 당장 개미 머리를 깨서 굽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기겁했으나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얼굴에는 말 그대로 철판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가끔 그 안의 얼굴이 보고 싶다.”

작업장 근처에서 멀건 수프를 떠먹던 아리에테의 말이었다.

퍽퍽! 뚜드득! 뜨득!

집게와 망치로 개미 머리를 부숴보니 단단하지만 못 깰 정도는 아니었다.

묵묵히 머리를 깨서 고기를 꺼내 불판에 올리던 크랭크가 중얼거렸다.

“그래서, 뭘 보고 왔어?”

“있지있지! 들어봐라?”

기다렸다는 듯 캐롯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들의 주변에는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놀랍군. 사람처럼 생긴 오크라고?”

“응! 아리에테의 전신에 초록색 페인트를 칠하고 입에 어금니를 달아놓은 것처럼 생겼더라고요. 완전 인간 같았어.”

졸지에 오크녀 취급을 받은 아리에테가 울상을 지었다.

“끔찍하군. 그건 정말 오크냐? 이젤리아의 몬스터는 종을 달리하나?”

“하프 오크.”

다들 눈치챘지만, 섣불리 입 밖에 꺼내지 않은 단어가 나왔다.

개미 머리를 뜯어 먹던 크랭크가 기분 나쁘다는 듯 중얼거린다.

“구역질 나는군. 그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들은 대로라면 거의 품종 개량 수준인걸. 한 번 보고 싶다.”

캐롯이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쑥 내밀었다.

“먹을 수 있나 보게?”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을 놓칠 수 없지. 그런데 이 개미 고기는 좀 시큼한데.”

“그건 개미산 때문입니다. 바싹 익히면 좀 덜한 편이지요.”

근처에서 구경하던 어떤 여기사가 끼어들었다.

여기사는 계속 말했다.

“고립됐을 때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생살을 먹으면 복통과 설사에 시달리니 꼭 익혀 먹길 바랍니다.”

“생활의 지식 감사합니다.”

이 투구를 뒤집어쓴 커다란 거인은 보기보다 예의 바르고 친절해서 몇몇 여기사들이 꽤 눈여겨보는 편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여기사는 이제 아리에테를 바라보았다.

“서 아리에테. 제이드 기사단장으로부터의 전달 사항입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공세를 개시하여 전선을 넓히려 합니다.”

서, 기사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하지만 아리에테는 그 호칭보다 너무 갑작스러운 작전에 우려를 표시했다.

“지금? 지금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밤에는 개미들이 나오지 않습니다. 저것들은 낮에만 움직이거든요. 이대로 밖으로 나가서 성 밖의 숲을 탈환합니다. 거기서 나오는 임산물은 도시민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후르릅 그릇의 스프를 전부 마셔 버린 아리에테는 입가를 손등으로 닦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손짓하자 현재 그녀 전용의 자동 갑옷이 몸을 일으키더니 다가왔다.

서 아리에테의 눈빛이 빛난다.

“돕겠습니다. 갑시다.”

* * *

쿠구구구!

굳게 닫힌 성문이 열리고 기사단의 자동 갑옷 50여 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최선두는 제이드 기사단장, 맨 뒤는 아리에테가 맡았다.

전용 무기가 없어서 대형 도끼나 모닝스타, 튼튼한 나무 몽둥이를 준비했다.

백합기사단이 수호하는 방주 도시의 이름은 샤인, 오늘 근처의 숲속에서 요란한 밤 산책이 시작되고 있었다.

일렬로 늘어선 자동 갑옷과 오토마톤들이 숲속을 거닐며 숨어 있는 개미 사냥을 시작했다.

“치리리리-!”

“있다!”

쿵쾅쿵쾅-!

자다가 난데없이 습격당한 개미가 고개를 쳐들고 포효하자 주변 자동 기사들이 지원을 위해서 달려온다.

확성기를 손에 든 캐롯이 그걸 말렸다.

“전부 오지 마! 전열 흩트리지 마! 셋만 달라붙어도 이겨! 원래 자리로 돌아가!”

캐롯이 흥분한 기사단을 진정시키는 동안 정말 3대의 자동 기사들이 협공으로 개미를 쓰러뜨렸다.

쾅-! 콰직! 퍽!

“헉, 헉! 이, 이렇게 손쉽게!”

도끼와 메이스 같은 중질량 병기에 흠씬 두들겨 맞아 명이 끊어진 개미를 보고 다들 놀라워한다.

거인들의 다리 사이로 조그만 인형 소녀가 뽀작뽀작 걸어 나오더니 말했다.

“다들 어때요들? 밑에서 내내 올려다보다가 이제 비슷하게 마주 보는 느낌은? 전술적 이점의 차이가 느껴짐?”

종전까지의 전술은 오토마톤을 앞세워 몬스터를 몰아세우고 말에 오른 기사단이 마무리를 가하는 식이었다.

그것을 두고 마치 둥지에서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 새와 다름없다는 식의 조롱을 내내 마음에 담아두었던 제이드 기사단장이 잔뜩 충혈된 눈으로 외쳤다.

“하지만 지금은 선봉이다! 우리 기사단을 그저 보기 좋은 장식품쯤으로 여기던 것들과 오늘부터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다!”

“으라아아아아!”

기사단장의 외침에 나를 지켜줄 묵직한 갑옷을 몸과 마음에 두른 여기사들이 저마다 날카로운 괴성을 질러댔다.

타고난 태생적인 한계를 기술로 극복한 백합기사단은 그 상태로 분기탱천하여 밤새도록 숲과 들판을 누비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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