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정찰! 238 >
훈련은 곧바로 시작되었다.
끼릭, 철컥! 척!
나눠 받은 초커를 목에 걸자 연결된 자동 갑옷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목의 신경 신호를 잡아서 전송하기 때문에 움직임을 그대로 전달합니다. 숙달되면 이런 것도 가능합니다.”
기사단의 훈련 교관이 된 아리에테가 눈을 번쩍이며 시연에 사용했던 자동 갑옷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것은 탑승자 없이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움직였다.
“오오-!”
모두가 놀라워하는 모습을 뿌듯하게 마주하던 아리에테는 이제 곁으로 와서 그녀와 똑같이 팔짱을 끼는 자동 갑옷을 슬쩍 올려다보았다가 말했다.
“훈련을 시작합시다. 전원 착용.”
착-! 척!
명색이 기사단인지라 절도 있게 발 뒷굽을 부딪쳐 소리를 내더니 이어서 경례까지 붙인다.
덕분에 감동한 아리에테는 울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근엄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되다니!
무려 기사단장까지 참가한 이번 훈련은 기사단 전술이 아닌 그저 단순한 장비의 사용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
훈련 교관으로 초빙된 아리에테는 전신 의수를 사용하기 위해 겪어온 뼈를 깎는 노력을 최대한 간편하고 단순하게 그 훈련 내용으로 각색했다.
갑옷을 장착하고 일어선 사람들은 저마다 손과 다리, 몸을 움직이며 놀라워했다.
“생각보다 잘 움직여! 마치 내 진짜 팔다리 같지 않은가?”
“여기로 밖을 보는 겁니까? 시야가 나쁘면서도 좋군요. 이상한 기분입니다.”
“키가 커져서 그런 거지.”
기사들이 자기들끼리 평가를 해대는 와중에 아리에테도 갑옷을 장비했는데, 확성기 기능이 있어서 말하는 것이 모두에게 다 들릴 정도로 크게 울렸다.
기사단 소유의 연병장에 50여 기의 자동 갑옷이 줄을 맞춰 선 모습은 꽤 볼 만한 모양이었다.
그들을 마주한 아리에테가 외쳤다.
“준비가 끝났다면 체조를 시작하겠습니다!”
좀 떨어진 곳에서 2.3미터에 달하는 거인들이 단체로 어깨, 무릎, 팔다리를 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어쩐 일인지 리즈넷에서 파견된 기술진에는 금발 꼬꼬마가 포함되어 있었다.
“리즈넷의 기술도 엄청나게 발전했구나. 저런 것을 만들어 내다니.”
“잉? 주인님 말로는 원래 있던 기술의 응용일 뿐이래요. 신기술이라고 해봐야, 아, 그렇구나. 신경계 링크는 신기술이겠다.”
혼자서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리던 꼬꼬마가 마을 사람들에게 고개를 들었다.
“그보다! 그 개미 이야기 좀 더 해주세요. 여기까지 막 쳐들어오고 그래요?”
사람들이 곧 우거지상이 되었다.
도시에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대부분 주변 개척민 마을에서 온 피란민 때문이었다.
“말도 마라, 끔찍했다. 크기는 황소만한 녀석들이 떼로 덤벼드는데 공성전이고 뭐고 없었어.”
“그놈들은 벽도 타고 기어올라!”
캐롯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와, 벽까지 타고 오른다고요?”
“그래, 힘이 좋아서 요런 개미가 하는 짓은 대부분 다 할 수 있다. 대신 엄청나게 크지!”
퍽퍽!
남자는 신경질이 난다는 듯이 바닥을 기어가는 조그만 개미를 짓밟아 버렸다.
마을이 박살 나는 바람에 화가 뻗친 것이다.
그걸 보던 캐롯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상황은요? 여기는 안전해요?”
“유황을 섞은 독한 연기를 뿌려서 겨우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어.”
“하지만 이것도 얼마나 갈지 모르겠구나. 되레 우리가 숨 막혀 죽을 지경이라서.”
“호오호오.”
꼬마를 붙잡고 사람들의 하소연이 시작되었다.
어쩐지 이 꼬마는 말투며 표정 하나하나가 보통 애들 같지 않았다.
훈련하는 기사단을 쳐다보던 젊은 부인 하나가 아기를 안은 채 울상을 지었다.
“식량도 떨어지고 있어요. 근처 숲에 들어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거기 야생 과실수가 꽤 많거든요.”
“쯧, 거기도 오크 떼가 바글거려서.”
중얼거리던 남자 하나가 캐롯을 바라보았다.
“이봐, 꼬마야. 너도 리즈넷 사람들이랑 같이 왔지? 저 갑옷은 어떠냐? 힘이 센 거냐?”
그의 질문에 다들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어쨌든 하드 스킨 못지않은 인상 깊은 외관을 하고 있어서였다.
구구절절한 성능 따위 늘어놔 봤자 알아듣지도 못할 거라 생각한 캐롯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희망, 지금 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병기의 스펙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 낼 희망이다.
눈을 땡그랗게 뜬 꼬꼬마가 의미심장한 소리를 지껄였다.
“진짜 개쩔어요. 개미 따위 그냥 압살이에요.”
뚱딴지같은 말을 중얼거리던 캐롯의 얼굴로 이제 부드러운 웃음꽃이 피어오른다.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이런 표정은 크랭크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여신의 인형이 하는 말은 항상 그분의 가호가 함께하니 콱 믿으셔도 좋아요.”
캐롯의 인정을 듣고서야 마음이 좀 놓이는지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짧은 한숨을 쉬거나 피식피식 웃는다.
그러다 청년 하나가 아는 척을 했다.
“여신의 인형? 혹시 너 그 캐롯이야?”
“오! 나 알아요?”
모두가 청년을 돌아보았다.
그는 밝아진 얼굴로 설명했다.
“나는 작년 겨울에 리즈넷 항구도시 파인만에 있었어. 다들, 들어봐요. 거기는 겨울에 몬스터들이 떼로 몰려오잖소? 어떤 모험가가 데려온 자동 인형의 소문이 있었거든. 스팀 레이디, 여신의 인형.”
“아! 나 그거 잡지 책에서 봤어요! 그 사람들을 구했다는 애가 바로 너니?”
그제야 알아보는 사람이 늘어났다.
기분이 좋아진 캐롯이 잘난 체를 해댔다.
“엣헴! 이 몸의 인기! 해외에서도 유명하구나! 으헤헤!”
허리에 손을 올리고 배를 쑥 내민 씩씩한 꼬꼬마를 보고 어른들이 신기한 표정을 했다.
“어쩐지 전혀 꼬마 같지 않더라니, 그럼 이거 오토마톤이야? 자동 인형? 완전 사람 같은데?”
“이거라니! 여신의 인형께!”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사이 발돋움을 한 캐롯이 젊은 부인의 가슴에 안긴 아기를 올려다보았다.
방긋 미소를 머금은 부인은 몸을 숙여 아기를 보여주었고, 그 해맑게 웃고 있는 아기의 얼굴에 험악한 전투 장갑을 흔들며 잼잼잼을 선보이던 캐롯이 말한다.
“괜찮아요. 겉으로는 사람처럼 보여도 속은 인형이니까. 그래도 아저씨, 아줌마들 참 고생 많으셨어요. 이젠 반격의 시간이에요. 우리가 빼앗긴 집, 땅, 전부 되찾아 줄 거예요.”
어린아이 같은 캐롯의 목소리는 그 억양이 분명하고 또박또박해서 귓가에 오래 머무는 편이었다.
게다가 지금, 그 목소리는 사람의 마음조차 울리게 만드는 능력을 선보였다.
반격의 시간!
잔뜩 굳어진 얼굴의 사람들이 묻는다.
“우리는 뭘 하면 되지?”
“뭐라도 도울 건 없을까?”
약을 쓰지 않고도 식어 버린 의욕과 열정에 다시 불이 붙은 사람들이 나서자 캐롯이 으하하 웃는다.
두 팔을 들어 올린 캐롯은 어찌 됐든 많은 이야기를 원했다.
“정보 수집은 전술 전략의 첫걸음이라고 우리 주인님이 그랬거든요.”
그렇게 한참 사람들의 울분과 하소연이 섞인 여러 이야기를 주워 들은 캐롯은 두 팔을 흔든 채로 기사단이 연습 중인 연병장을 가로질러 임시 정비창으로 향했다.
“주인님아! 정보 모아옴!”
“음, 거기 렌치 좀.”
도착한 캐롯은 크랭크의 공구 가방에서 도구를 집어주며 떠들어댔다.
주변에는 이젤리아 기술자들과 리즈넷 기술진들이 언성을 높여가며 자동 갑옷 하나를 거의 분해해 놓고 있었다.
분명 원제작자도 한자리 끼어들 법한 자리였으나 그 원제작자는 전혀 관심 없다는 듯이 현장의 고장 난 인형들을 고치는데 신경을 쏟았다.
캐롯은 그 옆에서 듣고 온 이야기를 한참 동안 떠들어 댔고.
도시 주변을 가득 채운 독 연기의 정체와 바깥 숲을 차지한 오크 부족, 개미들에 대한 특성을 전해 들은 크랭크는 손을 멈추더니 투구를 들었다.
“투나와 쿠르프 씨를 데려올 걸 그랬군. 재미있는 걸 많이 해볼 수 있었을 텐데.”
“없는 걸 아쉬워하진 말자며?”
“그랬지. 하지만 그래도 생각나는걸.”
주변을 좀 두리번거리던 크랭크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리고 기사단이 전부 여자들 뿐이라서 물어봤더니, 백합기사단은 대대로 여기사만으로 이루어진 곳이라더군.”
새삼 주변을 다니는 여기사들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전부 여자들 뿐이다.
그것도 쭉쭉빵빵한 이젤리아 미인들 뿐.
“오와! 그러고 보니 정말 예쁜 언니들이 엄청 많아! 크랭크! 여기서 신붓감을 구하는 거야! 취향껏 고를 수 있겠어!”
크랭크는 주인님 장가보내려고 닦달하는 인형의 농담에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적절하게 받아넘겼다.
“음, 나쁘지 않겠군.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부인은 사양이야. 더구나 여기사는 질색이다. 주변에 비슷한 게 있어서.”
“푸으악하하!”
캐롯이 고개를 꺾으며 웃기 시작했다.
크랭크는 오토마톤의 부러진 팔을 손보면서 계속 말했다.
“온통 여자들 뿐이라서 기사단장이 부족한 무력을 보완하려고 애를 많이 쓴 모양이야. 기사단 소속의 전투형 자동 인형만 거의 100대가 넘는다. 우리가 가져온 자동 갑옷도 100여 기, 50명 남짓한 기사단을 무장시키고도 남는군. 완전 기계화 기사단이야.”
“오, 자동 인형이 100기나 돼? 모험가들 것까지 합치면 엄청나겠네?”
다시 수리에 집중한 크랭크가 대답했다.
“아니, 이젤리아에는 대형 무력을 갖춘 모험가가 별로 없다는군. 대게 기사단으로 처리하는 편이라던데.”
“그건 뭔가 비효율적이네. 민간에 어느 정도는 맡겨줘야 먹고살지.”
“여긴 국경선도 없고, 마주할 적이 몬스터 말고는 없으니까. 문화나 전통, 규율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지만, 당연하게도 거기엔 그 사람의 상황 역시 반영되기 마련이거든.”
“오호, 그건 전에 리슐리에가 한 말이네.”
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던 캐롯이 그 위에 발딱 일어서서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래서! 주인님! 나는 이제 뭘 할까? 바깥의 정찰이라도 하고 올까?”
문득 투구를 든 크랭크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주변 상황을 살펴봐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저녁까지는 돌아와, 조심하고.”
“예압!”
기사단처럼 경례를 척 붙인 캐롯은 도시를 와다다 가로질러 성벽으로 뛰어 올라가더니 경비병이 고개를 돌린 틈을 타서 담장이라도 넘는 것처럼 성 밖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착-!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재빠르게 나무 그늘 아래로 몸을 숨긴 캐롯은 으히히 웃으며 성벽 위에서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는 경비병들을 올려다보고는 숲속의 그림자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낮이지만 메케한 연기가 가득해서 도시 주변에는 마치 안개가 깔린 것 같다. 연기는 도시 쪽에서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꽤 멀리까지 나오자 안개가 흐릿해지고 주변의 풍경이 자세히 보인다.
이국적인 언덕과 숲과 나무가 돋아난 초원이 캐롯의 눈앞에 펼쳐져 있다.
“외국까지 나와보고 나도 출세했네.”
허리에 두 손을 올리고 삐딱한 자세를 잡은 캐롯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서산으로 기울어지는 석양을 바라본다.
주변에 그다지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 황소만한 개미 시체라도 봐두려고 밖에 나온 건데. 이상하리만큼 깨끗하잖아?”
몸을 돌린 캐롯은 다시 안개 속으로 뛰어들어 도시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늦게 가면 아리에테가 극성일 테니까.
“치르르르륵!”
“캬으아악!”
쾅! 콰지직!
한참 달리는데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뭔가가 박살 나는 이런 소리, 주인님과 모험을 다니면서 질리도록 들었다.
캐롯의 입이 길게 찢어지며 이빨이 드러났다.
“으히히! 뭔가가 싸우나 봐! 오우예! 싸움 구경은 돈 주고도 못하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