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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37화 (237/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휴가! 237 >

환영 행사를 마치고, 다들 이젤리아 정부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숙소나 회담장으로 안내되었다.

항구도시의 고급 숙박 시설에 머물게 된 리즈넷 파견 인력들의 절반은 업무 때문에 새벽에 나가서 저녁에 녹초가 되어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의외로 한가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자동 갑옷에 관련된 기술진들이었다.

이틀이 다 되도록 아무런 부름이 없자 그들은 어떤 확신을 가졌다.

“우리만 따돌리는 건 기사단의 입김 때문이 아닐까요? 종래엔 없던 물건이니까요.”

“듣보잡인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이대로 관광이나 좀 하다가 돌아가는 거야.”

“무슨! 해외까지 나와서 그게 할 소리예요? 안되겠어요! 항의하러 다녀올게요!”

아르곤 길드에서 차출된 정비 기사는 실망이 너무 커서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으면 나는 안 하고 욕먹을 거야. 나중에 욕먹고 하면 되니까.”

“으와-! 그걸 말이라고! 글러 먹었어!”

“음, 벌써 점심시간이네, 밥이나 먹을까?”

“이봐요!”

기술진들이 서로 논쟁을 벌이는 동안 아리에테는 방 안에 있는 게 심심했는지 처음 시연을 선보였던 자동 갑옷을 입은 채 동네 관광을 다녔다.

커다란 어깨에 캐롯을 태운 채로.

쿵쿵-!

“갑옷 엄청 커!”

“멋지다!”

“으와! 저게 뭐야?”

“리즈넷에서 무기 지원하러 온 사람들이래.”

“아니, 그런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개미 때려잡으러 가지 않고?”

2.3미터짜리 갑옷이 어깨에 조그만 소녀를 앉히고 걸어 다니는 모습은 꽤 진풍경이어서 마을 사람들이 신기하게 구경했다.

개중에서는 여기서 뭐 하는 거냐고 따져 묻는 사람도 있었는데, 멋진 선장의 모자와 붉은 선글라스로 멋을 부린 캐롯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이젤리아 기사단에서는 이런 게 필요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놀고 있어요.”

“어휴-! 하여튼 꼰대들 생각이란! 지금 체면이 문제야? 마을 몇 개가 날아갔는데!”

“이봐! 그래도 우리 지켜주는 사람들인데 너무 막말하지 마! 그리고 저런 병기는 움직여 본 적이 없으니 그런 거잖아.”

“뭐가 어째!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는 거야!”

말싸움은 곧 드잡이로 바뀌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구경하거나 말렸다.

“케케케.”

어른들을 싸움 붙여 놓고 이히히 웃고 있는 악동 캐롯을 어깨에 태운 갑옷 덩어리 아리에테는 길가의 노점을 들여다보다가 마치 기지개를 켜는 투나 마냥 맥반석 위에서 온몸을 비틀며 지글지글 구워지는 오징어를 가리켰다.

“이건 뭐지?”

“버, 버터 오징어요만.”

“5마리쯤 줘요.”

노점에서 길거리 음식을 사서 그들이 향한 곳은 가까운 부둣가의 한가로운 낚시꾼이 있는 곳이었다.

어디서 낚싯대를 하나 구해서 바다에 담그고 있던 크랭크를 향해 자동 갑옷이 막대에 꽂은 오징어 구이를 내밀었다.

“자, 버터 오징어라는 거다.”

“음, 맛있다.”

둘이서 사이좋게 우적우적 오징어를 뜯어먹는 꼴을 쳐다보던 캐롯이 질겁했다.

“우에, 괴상하게 생긴 바다 생물인데 잘도 먹네. 그나저나 해외에서 말도 통하고 참 좋은데 아쉽게 됐어. 이제 어떻게 해?”

어제, 기껏 불러놓고 무시한다며 불꽃처럼 화를 내던 아리에테는 르클레르에게 항의하러 갔다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조용해져서 돌아왔었다.

갑옷을 입은 채로 버터 오징어를 우걱우걱 씹어대던 아리에테가 무덤덤하게 수평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음음, 냠냠, 이젤리아 기사단에 군벌과 파벌이라니 믿기지 않지만 말이 안되는 건 아니다. 모험가끼리도 경쟁하고 견제하니까.”

“오호, 그래서그래서?”

팔짱을 한 캐롯이 고개를 기울이자 오징어 한 마리를 순삭해 버린 아리에테가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종이 봉투에서 새로운 버터 오징어를 꺼내 분풀이라도 하려는 듯 거칠게 물어뜯었다.

그 앵두 같은 입술 사이로 꿈틀거리며 사라지는 오징어 다리를 친구이자 전속 메이드인 파이가 보았다면 기절할 모양새였다.

“움움, 당장은 기다려 보는 거다. 아니면 그냥 돌아가면 그만이야. 나는 내가 요즘 할 일이 많이 생겼다는 걸 잊고 있었어.”

“할 일이 있다는 건 그게 없는 것보다 좋은 일이지.”

또 뚱딴지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며 크랭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낚싯줄에 끌려 올라온 바다 생선을 자랑스레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의뢰비는 나올 테니 나는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 오랜만의 유급휴가다. 놓칠 수 없지.”

“아하하, 기분 좋아 보이네.”

“음, 반강제적으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에서 멀어졌다. 왜 휴가를 멀리 떠나는지 알 것 같아.”

자동 갑옷 안쪽에서 오징어를 씹던 아리에테가 그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자동 2륜차를 만들 수는 없나? 나도 휴가를 즐기고 싶다.”

“무리스러운 소리를 하는군. 미안하지만 나는 바쁘다. 이대로 낚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어.”

“역시 나의 로시난테를 가져왔어야 했는데.”

쭈그려 앉은 채 크랭크가 낚은 물고기를 나무 막대로 건드려 보던 캐롯이 파하하 웃었다.

“생각만 해도 대단한걸? 그거 입고 타면 완전 멋지겠다.”

“오! 좋은 생각이다! 부족한 기동력을 올릴 수 있겠어! 돌아가면 시험해 보자.”

“무게를 버티기 힘들 테니 추천하고 싶지는 않구나.”

그리고 멀쩡한 병기가 항구에서 놀고 있다는 소식은 사람들의 입과 입으로 삽시간에 퍼져서 4일째 되는 날 드디어 누군가가 찾아왔다.

다각다각.

“여기인가?”

말에 오른 기사들은 전부 여자들로 하나같이 꽃미녀들이었는데 다들 몸매를 드러낸 경장갑과 롱소드를 차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긴 망토를 두른 여기사가 멋지게 말에서 내리더니 귀빈 숙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나왔다.

좀 당황한 그녀가 말했다.

“하긴 4일간 내버려 뒀으니 지루했을 것이다. 부둣가에서 낚시 중이라고 했었지.”

그녀들은 다시 말에 올라 가까운 부둣가로 향했다. 곧 모두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대형 갑옷을 껴입은 사람이 큼직한 통나무를 마치 검처럼 붙잡고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훙-! 훙!

이제 크랭크의 근처에는 방치된 기술진 인력들도 찾아와서 아리에테가 입고 있는 자동 갑옷을 미세 조정하거나 낚싯대를 들고 있었다.

다들 자포자기에 물들어 버린 것이다.

“와! 백합기사단이다!”

“제이드 기사단장님!”

꽤 유명한 여기사들이 지나가니 사람들이 환호를 높였다.

하지만 선두의 제이드 기사단장의 얼굴은 그리 편치 못했다. 그녀의 시선은 부둣가에서 통나무를 들고 춤을 추는 갑옷 거인을 뜨거운 눈길로 노려보고 있었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저런 훌륭한 병기를 방치해?! 이 고약한!

쿵-!

휘두르던 통나무를 바닥에 찍자 진동으로 부둣가의 바닷물에 파문이 일어날 정도였다.

물고기 도망간다고 말하려던 크랭크도 뭔가 화려한 차림새의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 나타나자 안타까운 기분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정곡을 캐롯이 찔러댔다.

“하하, 주인님 휴가 끝나 버렸네?”

울컥한 크랭크는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행동을 선보였다. 바로 캐롯을 들어서 마구 흔드는 것.

“으어어어어엇~!”

그걸 보고 여기사들이 얼굴을 찡그렸다.

“아이에게 무슨 짓인가!”

“캐롯은 인간 아이가 아니야. 오토마톤이다. 그러는 당신들은 누구지?”

대답은 앞을 가로막고 선 커다란 기사 갑옷이 했다.

모두가 갑옷을 올려다보았다. 다들 그 눈빛이 흔들리고 있다.

“안에 든 것은 여자인가? 그건 여자도 쓸 수 있는 건가?”

찰칵.

마스크가 열리더니 아리에테의 얼굴이 드러났다.

“당신들은 누구지?”

이젤리아 백합기사단을 알아보지 못하다니, 여기사들이 오히려 당황했다.

그 기사단장 제이드가 자신들을 소개했다.

“우리는 백합기사단, 나는 그 기사단장 제이드라고 한다. 귀하들이 리즈넷에서 왔다는 병기의 운영 인력인가?”

기사단장의 등장에 모두가 예의를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들과 마주 섰다.

인사는 무릎을 꿇은 자동 갑옷에서 나온 아리에테가 했다.

“리즈넷에서 운용 교관으로 파견된 아리에테입니다. 더불어 이것이 이번에 가져온 듣보잡 신병기 자동 갑옷, 그리고 그 운영 인력들입니다.”

소개를 받고 고개를 끄덕인 그녀들은 어쩐지 익숙한 인상에 아리에테를 다시 바라보았다.

“당신은, 리즈넷의 여기사인가?”

좀 당황한 아리에테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분명 다른 여기사도 있을 테지만 나는 아닙니다. 한때 그런 꿈을 가졌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뤄냈지.”

조그만 꼬꼬마가 팔짱을 하고 말하자 아리에테의 얼굴이 밝아졌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그녀들은 찾아온 용건부터 밝혔다.

기사단장 제이드가 말했다.

“놀고 있는 병기가 있다고 하기에 쓸 사람이 없다면 우리가 수령하기 위해서 찾아왔다. 절차는 어떻게 되지?”

부둣가에서 난데없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캐롯이 히히 웃는다.

“바보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4일간의 일꾼 방치 플레이는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더라고요.”

“이 꼬마가 못하는 말이 없네!”

“호하하! 하지만 좋으면서!”

잔뜩 긴장하고 왔더니 아무것도 시키질 않아서 내심 실망에 차 있던 기술진들이 도끼눈을 뜯고 흐흐히히 웃어댔다.

가져가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자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어차피 수령인이 지정되지 않아 방치된 물건이었기에 누구든 먼저 집어 가는 사람이 임자.

르클레르는 무려 기사단장이나 되는 사람이 방치된 물건을 수령하기 위해 찾아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쌍수를 들고 반가워했다.

간단한 면담 후 망설임 없이 서류에 사인을 마친 제이드 기사단장은 곧바로 병기와 인력의 수송을 지시했다.

르클레르는 짐을 꾸려 떠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원래 체류 기간은 2주, 그중 4일을 그냥 까먹었으니 남은 시간 동안 가능한 교육에 힘써주기를 바랍니다.”

“옙!”

급하게 수배한 수송 차량에 자동 갑옷과 운영 인력을 전부 실어 보낸 르클레르가 슬그머니 웃기 시작한다.

그녀의 곁에서 서류를 넘겨보던 보좌관이 중얼거렸다.

“이젤리아도 꽤 대충 일하네요. 밖에서 보던 거와는 달라요.”

“그런 건 어디든 똑같아. 어쨌든 가져온 물건은 이제 다 넘겼으니 당당히 대금을 요청할 수 있겠어. 흐흐후후!”

르클레르가 즐거워하는 사이, 밤새도록 차 안에서 흔들거리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유황 냄새 가득한 지역의 어느 방주 도시였다.

주변 풍경을 살펴본 캐롯이 말했다.

“예술의 나라라고 치켜세우는 이유가 이거구나, 건물이 하나같이 다 예뻐.”

고개를 돌린 캐롯은 보통 사람들의 집을 보고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소시민이 사는 데는 어디나 비슷하네.”

그러다가 구경 나온 마을 사람을 발견한 캐롯이 그들을 표정과 시선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곁에는 항구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신기하게 쳐다보던 이젤리아 백합기사단의 여기사가 있었다.

“여기는 어디예요? 다들 얼굴이 어두운데.”

“그전에 정말 궁금하구나. 너는 누구냐? 정말 오토마톤인가?”

“데헷!”

양 볼에 손가락을 댄 캐롯이 혀를 내밀고 귀여움을 어필하자 여기사의 얼굴을 달아올랐다.

“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자동인형! 그리고 이거 겉에 소프트 스킨이거든요. 더불어 저기 친절한 거인이 바로 이 몸의 주인님.”

캐롯이 가리킨 곳에는 이젤리아 오토마톤을 구경하고 있는 커다란 남자가 있었다. 우람한 몸에 투구를 뒤집어쓴 특이한 차림이라 다들 그를 힐끔거렸다.

“주인님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데.”

“으히히! 주변 사람들 평가가 밥 먹여주는 게 아니거든요? 기사님은 사람들이 박수 쳐줘서 기사단에 들어온 거예요?”

잠깐 입을 다문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가족들과 주변에서 너는 기사단이 어울린다고 해서 나는 기사가 되었지.”

“허억!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당황한 캐롯을 보고 여기사는 피식 웃는다.

그때 아리에테가 다가오더니 캐롯을 번쩍 들어 올렸다.

“저희 꼬마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사과드립니다.”

“아니, 괜찮아요. 그보다 당신 모험가라지? 그건 되고 싶어서 된 건가요?”

“물론입니다. 나는 지금에 만족합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걸 선택한 것은 나니까.”

캐롯은 두 손으로 입을 가로막았다.

팔다리가 잘려 나간 비참함에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해도 말이야? 라는 말이 튀어나올 거 같았기 때문이다.

고개를 끄덕인 여기사가 캐롯을 보더니 아리에테를 가리켰다.

“저건 내 대답으로도 어울릴 것 같군.”

캐롯은 윙크를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멋진 기사님의 멋진 인생을 위하여.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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