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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36화 (236/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신세계! 236 >

대략적인 궁금증 해소도 끝나고 이어서 저녁 식사까지 해결한 그들은 요 며칠간의 소란을 호소하며 일찍 쉬기로 했다.

대신 지치지 않는 자동 인형만큼은 남아서 쓸쓸한 마법사의 이야기 상대가 되어 주었다.

“호오!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이지? 오토마톤이 마법을 쓰다니, 그건 정말 놀랍군.”

“넴, 음흉한 엘프 장로님이 와서 가져가 버렸지만요. 필림 장로라고 아세요?”

“그 검은 소나무탑의 장로로군. 얼마 전에 만나보았다. 자기들이 공여한 오토마톤 생산 장비의 설계도와 기술자를 요청하더군. 웃긴 사람들이지. 두려움에 차서 내쳐 놓고서는 다시 필요하니 찾으러 다니는 꼴이 가당치도 않아.”

장기판을 앞에 둔 보이드 자작과 캐롯은 두런두런 그간 쌓인 이야기를 나눴다.

옆에서 훈수를 두면서 자작의 성질을 긁던 르클레르는 선장의 부름에 나가 버린 참이었다.

“오! 그러고 보니 엘프도 오토마톤을 재도입한다고 했었어요.”

“그런가 보더군. 오래 산다고 하지만 그만큼 자식을 많이 낳는 것도 아니고, 결국 일은 누군가의 손으로 해야 하니까.”

잠시 입을 다물고 장기판을 살피던 보이드 자작이 생각 없는 이야기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발언 하나하나를 주의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별생각 없는 잡담을 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어떤 인류학자에게 누군가가 물었지. 당신이 보기에 문명의 시작은 무엇이냐고.”

수백 개의 앞 수를 계산하던 캐롯이 연산을 멈추고 보이드 자작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 붉은 선글라스만 떠 있는 정장의 꼿꼿한 늙은이, 그 얼굴에는 그림자가 잔뜩 끼어 있어 여전히 마왕 같았다.

그리고 그 마왕이 장기판의 퀸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누군가의 부러졌다 붙은 다리뼈,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이 바로 문명의 시작이라고 했다지. 그걸 하지 못하면 인류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퀸으로 캐롯의 나이트를 쓰러뜨린 그가 다시 덧붙였다.

“지금 필림 장로는 동족의 그런 상황을 대비하는 것 같더군.”

“와, 그냥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될 텐데.”

보이드 자작은 이 꼬마 인형의 짧은 경험에서 우러난 그저 당연한 발언을 비꼬지 않았다. 대신 피식 웃기만 할 뿐.

“무리도 아니다. 우리는 인류사를 한 번 말아먹을 뻔했거든.”

고개를 앞으로 쑥 내민 캐롯이 말했다.

“그래도 자작님 다리는 걱정 마세요. 부러지면 내가 업어드릴게요.”

선글라스 너머의 시선을 들어 캐롯을 바라본 보이드 자작은 그만 크게 웃어 버렸다.

오랜 시간 요직에 있으면서 별의별 아첨과 입에 발린 소리는 다 들어본 그다.

“그런데 업어 주겠다는 말은 또 처음 들어보는구나. 음, 나쁘지 않아. 오히려 좋구나. 클클.”

그것도 요런 자동 인형에게 말이야.

연신 장기 말을 움직이던 캐롯이 또 말을 걸었다.

“있잖아요, 자작님. 오토마톤이 마법을 사용한 건 그렇게 어려워요? 아는 마녀는 인형은 영혼이 없어서 안된다고 했거든요.”

“오호, 너는 짐작보다 훨씬 거물이로구나. 마녀도 알고 있다니.”

데헷 웃어 버린 캐롯이 장기판의 말을 옮겼다.

그걸 내려다보며 다음 수를 계산하던 보이드 자작이 눈앞의 조그만 꼬마 인형을 바라본다.

언젠가 보았던 기적은 그에게 자동 인형에 대한 어떤 가능성을 남겼다.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말이다. 그때의 너라면 마법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다른 무언가로 보였거든?

“오오와, 저번에 장기 승부 말이죠. 하지만 그건 다른 캐롯이에요.”

“흐흣, 멋진 표현이구나. 다른 나라고.”

기회를 노린 캐롯이 회심의 장기 말을 움직이며 말했다.

“그때의 나는 나를 인식하지 못하고 나른 누군가에게 움직여지는 기분이었어요. 어쨌든 장군.”

“어엇?”

모든 것은 그의 허점을 찌르기 위한 연막, 거기에 휘말린 보이드 자작은 완전히 당황해 버렸다.

이튿날 아침.

잠꾸러기 주인님들을 내팽개치고 선실에서 뛰쳐나온 캐롯은 넓은 갑판을 가로질러 뱃머리에 뛰어올라서는 두 팔을 번쩍 들었다.

그 밝고 작은 얼굴에는 보이드 자작의 붉은 선글라스가 장식되어 있었다.

“와! 바다다! 바다! 파란색 물이 엄청나게 많아!”

남부에는 매년 겨울에 오는 편이지만, 푸르른 바다를 느긋하게 구경하는 건 아마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앞의 세계는 이제 온통 물뿐인 푸르른 수평선, 그 위에 하얀 구름과 눈 부신 태양, 그리고 고양이 우는 소리를 내는 이상한 새들.

사고 회로에 과열이 생길 정도의 광경에 흥분한 캐롯이 외쳤다.

“우오와아! 간드아! 신세계로!”

뿌우우우움-!

캐롯의 외침에 따라 커다란 기적을 울리며 이젤리아를 향한 군사 원조 물자를 실은 교역선 퀸 엘리자베스호가 출항을 시작했다.

그리고 3일 후, 퀸 엘리자베스호는 이젤리아의 닐보어 항구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이젤리아는 하나의 큰 섬나라다.

독자적인 생태계와 풍족한 광물자원을 가졌지만 외부와 교류 방법이 바다를 통한 길밖에 없어서 곤란하던 상황은 오히려 여러 가지 위기를 벗어나게 해주었다.

이전 세기의 대전이라든가, 마왕을 앞세운 마족의 봉기라든가.

캐롯이 눈을 크게 떴다.

“우와! 그러면 몬스터도 없어요?”

말끔한 제복의 1등 선원들이 가득한 항해실, 붉은 선글라스에 선장의 하얀 모자까지 머리에 눌러쓴 캐롯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돌리자 내기 장기로 모자를 잃은 퀸 엘리자베스의 선장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대답했다.

그는 지금 여분의 모자를 꺼내 쓰고 근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없으면 지상 낙원이었을 거다. 여기 몬스터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륙의 것보다 더 크고 사납지. 그래서 기사단은 타국의 침략보다 자국 내 몬스터의 습격을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 크단다.”

“호오호오.”

고개를 끄덕이던 캐롯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디든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네요? 우리 주인님이 자주 먹는 닭가슴살처럼 퍽퍽한 세상살이에요.”

가만히 캐롯의 말을 듣던 선장이 곁의 1등 항해사를 보면서 말했다.

“저 녀석 오토마톤 맞지?”

“긍정, 마력 엔진의 특이한 작동음을 감지. 다만, 고장이 우려되므로 점검을 추천한다.”

트윈 마력 엔진을 장비한 캐롯이 와하하 웃는다.

“하하! 그건 아냐. 내건 특별한 거거든? 원래 소리야.”

“그렇다면 다행.”

교역선 퀸 엘리자베스호의 일등 항해사는 무려 오토마톤이어서 캐롯을 좀 놀라게 만들었다.

캐롯이 함장을 쳐다보았다.

“와! 그나저나 인형을 일등 항해사로? 이게 말이 됨요?”

“이름만이다. 사람은 술에 취하거나 잠을 못 자면 착각하고 잊어버리지만, 자동인형은 그러지 않으니까 사용하는 거야. 각종 규칙과 업무를 외우고 다니지, 걸어 다니는 규정집이다.”

“오우오오! 출세했다! 모미지! 사람들이 원하는 거잖아. 벼락출세!”

선장의 곁을 지키고 선 오토마톤 모미지가 대답했다.

“그런 것은 관심 없다. 내 임무는 이 배의 안전과 순항, 퀸 엘리자베스는 곧 이젤리아 항구에 정박한다. 선원들은 절차에 따라 정박을 준비하라.”

선원 제복을 빼입은 오토마톤 모미지가 중얼거리자 같은 1등 항해사가 통신관 앞에서 고개를 돌렸다.

“이미 하고 있다.”

“긍정.”

모미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늘어뜨린 긴 방열 가발도 무려 바다색, 똑똑하게 만들려고 연산 능력과 마력석을 증설하면서 필요하게 되었다고 한다.

“더불어 근력도 올려놨다. 스펙만 놓고 보면 모험가들의 전투용이야. 우리는 해적 놈들이랑도 가끔 싸우거든?”

작년 겨울, 해적선과 거기 전투용 오토마톤 메라를 떠올린 캐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더니 모미지에게 이상한 짓을 가르쳤다.

“그 긍정의 의미로 엄지손가락을 이렇게 들어주는 거야. 훨씬 좋아한다?”

“그런가?”

엄지를 든 캐롯이 윙크를 하면서 말한다.

“그럼! 그리고 더불어 욕은 가운데 손가락을 이렇게 세워서······.”

항해실의 선원을 포함한 선장이 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이! 뭘 가르쳐 주는 거냐! 우리 모미지에게!”

“그래! 모미지 님은 우리 배의 아이돌이시다!”

아무래도 배에 여자를 태우지 않다 보니 그 비슷하게 생긴 인형에게 욕정을 품은 가여운 인간들을 딱하게 여긴 캐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신관 정도는 태우고 다니는 편이 여러 가지로 편하지 않겠어요?”

“상시 모집 중이다. 그런데 미친 녀석들이 장난질을 많이 쳐서 잘 오려고 하지 않아. 어차피 3일 동안만 배에 있으면 되니까 상관은 없다만.”

“장난질?”

선장이 눈썹 사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최근 가장 기억나는 건 관심 좀 끌어보겠답시고 갑판에서 알몸으로 달리기를 하던 녀석이 있었지.”

“아, 저렇게요?”

창문으로 고개를 돌린 캐롯이 손을 들자 도착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불구, 속옷 하나만 입고 갑판 위를 알몸 구보 중인 양철 거인의 모습이 있었다.

그날의 끔찍함이 떠오른 선장이 관자놀이를 짚으며 인상을 찌푸렸고, 해당 알몸 활보 사건을 일으켰던 조타수는 잔뜩 충혈된 눈으로 그걸 쳐다보았다.

“그렇군! 속옷을 입고 얼굴을 가리면 되는구나!”

“되긴 뭐가 돼! 방향타나 제대로 잡아! 그리고 저 변태는 누구냐? 당장 그만두게 해!”

“어오우, 내가 말리고 올게요.”

시치미를 뚝 뗀 캐롯이 와다다 달려 나가더니 근육변태양동이의 뒤를 쫓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발 여기사도 동참하여 갑판 위에서 난데없는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밖에서는 좀 참아보셈!”

“너는 수치심을 좀 가져봐라!”

“훅훅! 훅훅!”

몇 시간 후, 교역선이 이젤리아의 항구에 무사히 정박했다. 그리고 곧바로 배에서 각종 화물의 하역이 시작되었다.

기다리고 있던 군 관계들과 정부 요인들이 화려한 행사로 그들을 맞이했다. 그들은 과거의 기술 원조에 화답한 리즈넷의 정부 인사들에게 대단히 고마워했다.

사실은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흑심이 섞인 상황이지만 일단 오긴 왔으니까.

“이메미드 샤라노 데미라드 하라크이엔 롤! 보이드!”

여기저기서 울리는 이젤리아 말에 아리에테와 캐롯이 당황했다.

크랭크는 투구를 쓰고 있어서 무슨 표정인지 알기 힘들었지만.

“뭐, 뭐라고 하는 거지?”

“와, 잊고 있었어. 여긴 해외지. 외국어는 당연한 거야. 통역 없나?”

그때 캐롯에게 선글라스를 빼앗기고 투명한 안경으로 바꿔 쓴 보이드 자작이 지팡이를 탁하고 짚더니 함께 온 리즈넷의 운영 인력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잠시 후, 모두들 놀라움이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드, 들려! 뭐라고 하는지!”

“어엇?!”

투명한 안경이지만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운 보이드 자작이 말했다. 유창한 이젤리아 말로, 그런데 들리고 있다.

“요즘은 다들 펑펑 터지는 것으로 실력을 자랑하지만 말이야. 사실 마법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네.”

“오오오! 역시 궁정 마법사님이셔!”

“감사합니다!”

옆집에 사는 익살스러운 어르신의 표정을 지은 보이드 자작은 역시 푸근하게 웃고 있는 이젤리아 정부 관계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몇 마디 나눈 다음 자리를 옮겼다.

정부 인사들과 이야기 중이던 르클레르가 손짓했다. 그녀는 아리에테에게 자동 갑옷을 입어볼 것을 부탁했다.

“시범을 보여줘.”

“음, 알았다.”

행사장에 모인 사람들 앞으로 커다란 크레인이 하역 중인 컨테이너 상자를 내려놓았다.

문을 좌우로 열자 무릎을 꿇은 커다란 갑옷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오!”

“이것이!”

맨 앞에 앉아 있는 갑옷에게 다가간 아리에테는 동봉된 초커를 목에 걸고는 뒤로 탑승했다. 오면서 미리 연습을 해뒀기 때문에 익숙한 몸짓이었다.

트드득!

“이, 일어섰어!”

“크군!”

멋모르는 정부 관계자는 그 위용에 놀라워했으나 기사단 관계자는 시큰둥했다.

기존의 무기 체계에 속하지 않은 전혀 색다른 병기였기 때문이다.

르클레르가 소개했다.

“근력보조갑옷입니다. 사람의 힘을 오토마톤 수준으로 올리고 거기에 방어력을 더하는 것입니다. 병사의 생존력이 올라갑니다.”

이젤리아 기사단원 하나가 손을 들고 물었다.

“무거워 보이는데, 기동력은 어떻소?”

르클레르의 손짓에 아리에테가 그걸 입은 채로 달리기 시작한다.

쿵쾅쿵쾅-!

좀 떨어진 크레인을 찍고 돌아온 그를 보고 사람들은 다채로운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감탄하는 자, 그저 시큰둥해하는 자.

그중 약삭빨라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오토마톤보다 느리군요. 좀 어정쩡한데요?”

“예, 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면 탑승자의 가랑이가 찢어지거든요. 전투력이 아니라 생존성에 초점을 맞춰주셨으면 좋겠군요.”

르클레르도 그걸 웃으면서 쏘아붙였다.

한편 묘한 시선으로 자동 갑옷을 바라보던 이젤리아 기사단 소속의 장교는 얼굴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기분이 별로 좋지 못했다.

무기 원조는 참 고마운데 그 중간에 이상한 물건을 끼워 파는 행태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었다.

같은 값이면 차라리 전투용 오토마톤을 보내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기사단의 장교가 르클레르를 바라보며 고개를 꾸벅였다.

“귀국의 도움 잊지 않겠습니다.”

“별말씀을, 어려울 때이니만큼 서로 도와야죠.”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하지만 속은 달랐다.

제길! 결국 돈 때문이지.

흐흣! 결국 돈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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