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신혼! 234 >
보리스의 질문에 트리스타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괜히 진짜 나이를 이야기했다간 거리감은 둘째치고 또 놀려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슬쩍 말을 돌려 버렸다.
“감사합니다. 우정을 기리기 위한 선물이라 생각하고 받겠습니다.”
“우효! 매수 성공이다제!”
신나 하는 투나를 보고 보리스와 코비, 지오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절절 흔든다.
“진짜로 저러지 않으면 안되는 병이라도 걸린 건가. 못 말리겠네.”
“귀여우니 봐주자.”
“코비 취향 사납네.”
“음, 투나 정도면 꽤 미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좀 이상한 소리를 내서 그렇지. 끼이약, 우효오, 끼에에엑, 호오옥, 이라든가.”
지오의 목소리 흉내에 비타와 당사자 투나가 배를 잡고 와하하 웃어댔다.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어대든 리슐리에의 관심은 트리스타가 가진 핵석에 쏠려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트리스타에게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한번 사용해 보세요!”
써보게 해달라는 말인 줄 알고 그걸 아무 생각 없이 내밀었던 트리스타였지만 리슐리에는 두 손과 고개를 마구 흔들며 다시 말했다.
“당신 거니까, 당신이 써보라고요. 정령 마법이든 뭐든. 핵석의 위력 증강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한번 봐두고 싶거든요.”
거절하면 징징거리며 매달릴 기세의 리슐리에를 보고 트리스타도 호기심이 생겨 버렸다.
그녀는 투나를 슬쩍 바라보더니 상자 속의 진주를 손에 쥐고 눈을 감았다.
“윌 오 위스프.”
포퐁! 퐁!
무난한 빛의 정령을 부르자 등불 정도의 광원을 뿌리는 작은 빛 구슬이 허공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 그런데 원래 이렇게 많이 나와요?”
공방을 가득 채우고도 계속해서 나타나는 빛 구슬을 보면서 코비가 어이없다는 식으로 말하자 열어둔 문으로 이웃 창고의 쿠르프가 들어왔다.
“이봐, 너희들 뭔가 했냐?”
“예?”
그의 손짓에 밖으로 나간 일행들은 어두컴컴한 골목길과 건물 사이사이를 떠다니는 무수히 많은 은은한 빛 덩이를 보게 되었다.
이른 저녁 시간, 다들 집 안에서 저녁을 먹다 말고 창문으로 들어온 빛 덩이를 보고 놀라워했으며, 그것이 무해하다는 것을 알고서는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밤거리에 애들이 뛰어다니기 시작하고 따라 나온 엄마들도 고요하고 아늑한 밤거리에서 이웃들과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게 무슨 일이래?”
“이렇게나 많이 나올 리가 없는데, 평소의 수십 배에 달하는 위력이에요.”
“그, 그만큼 소모하니까 아껴서 쓰도록 해.”
그때 골목길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우루루 찾아왔다.
아직 마도사 오토마톤을 격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요즘 신경이 많이 곤두선 경비대였다.
“당신들인가? 허가 없이 도심에서 광역 마법을 사용한 것은.”
“광역 마법? 이 주변에 다 퍼진 건가요?”
“어, 오, 오우우.”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던 투나는 공방으로 총총 들어갔다.
“어, 나, 나는 모르는 일이에욤.”
“아아! 투나!”
투나의 재빠른 손절과 비타의 안타까운 외침에도 불구, 경비대원들은 거기 있던 사람들을 전부 다 참고인으로 연행해 버렸다.
이른 아침, 파본 제1경비대장은 새로운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가슴에 매달린 훈장과 직함을 알리는 플레이트는 새로 만든 것이라 번쩍번쩍 광이 나고 있다.
“드디어 제1경비대장이다. 후후후흐흐하하하하!”
마왕이 웃는 것처럼 웃어본 그는 책상 뒤로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셀린은 정말로 마도사 인형을 격퇴한 후 제1경비대장직을 반납했다. 늦게나마 결혼에 아이까지 겹경사를 이뤄 버린 그녀를 영주는 차마 붙잡지 못하고 퇴직을 수락했다.
그래서 예정대로 파본 경비대장이 제1경비대장직을 역임하게 되고, 이번 사건으로 공적을 쌓은 바이슨도 한 단계 위로 진급하게 되었다.
더불어 제3경비대장은 현재 공석.
똑똑.
노크가 있은 다음 전속 보좌담당관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내내 셀린을 놀려대던 그녀의 이름은 잔느.
“아침 회의 전에 알아두셔야 할 내용을 추려왔습니다.”
“음.”
책상에 앉은 채 서류를 받아 든 그의 앞에서 잔느가 보고를 시작했다.
성 밖 복구, 정리 작업의 진척 내용, 드워프 연합의 지질 조사단 방문 예정에 주변 방주 도시에서의 협조 공문 요청.
“협조 공문?”
“이번 사건의 개요서를 요청하는 거죠. 도시 간 협약으로 이런 대형 사건은 공유하기로 했으니까. 참고로 개요서는 현재 작성 중에 있습니다.”
힐끔 시선을 드니 새로운 경비대장의 번쩍이는 대머리가 눈부시다.
그는 여전히 보고서를 탐독하고 있었다.
잔느의 보고는 계속되었다.
“전날 야간, 8번가에서 빛의 정령 윌 오 위스프가 대량 발생하는 소동이 있었습니다. 모험가 크랭크의 공방에서 일어난 일이라 해당 초소에서는 간단한 주의만 주고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그 친구들은 여전하군, 그 외에는?”
“기타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그리고······.”
딱-!
손가락을 튕기자 문이 벌컥 열리더니 묵직한 서류 더미를 든 여성 대원들이 들어왔다.
“제1경비대장 보좌실 구성원입니다. 피지, 리나. 그리고 저, 잔느.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파본 제1경비대장님.”
턱-! 터턱!
제1경비대장실의 책상은 이상스럽게 크고 넓었다.
파본은 그게 셀린의 취향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대량의 결재 서류를 올려두기 위함이라는 것을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뭐, 뭐냐? 이건?”
“밀린 서류입니다. 이쪽은 각종 예산안 집행 관련이고요. 그리고 이쪽은 경비대 운영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대량의 문서 작업, 인수인계 때 분명 그런 내용도 들었다.
어쨌든 이것이 제1경비대장의 일이다.
입을 꾹 다물고 호기롭게 고개를 끄덕인 파본은 곧바로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일 후,
도시 4번가에 위치한 단독주택, 부엌에 선 셀린은 요즘 한참 요리를 배우고 있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전투형 자동 인형 울파에게.
작업에 방해가 되어 방열 가발을 틀어 올린 울파는 머리에 비녀는 물론 머릿수건까지 한 채로 요리 강습을 해주었다.
“생선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제거한 다음, 지느러미, 머리, 꼬리를 손질합니다. 이렇게.”
전투복에 앞치마를 걸친 울파가 나이프를 손에 쥐고 생선의 손질 방법을 천천히 보여주면, 발판에 올라간 셀린이 그것을 따라 했다.
소파에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던 로마니가 웃는다.
“내가 도와드릴까요?”
“아니, 거기 있어요. 당신이 오면 긴장이 되어서 칼을 못 쓰니까.”
생선 손질에 집중한 셀린의 대답에 로마니는 어쩐지 진한 행복감을 느껴 버렸다.
우리 집 부엌에 여자가 서 있는 모습을 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탕탕-!
문 두드리는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리자 로마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나가지.”
로마니는 문으로 향한 것이 아니라 창가로 가서 밖을 먼저 살폈다.
그 눈빛이 방금 전과는 사뭇 다르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아는 사람이었다. 그를 안으로 들이는 대신 로마니가 밖으로 나갔다.
후드를 썼지만 엘프 특유의 하얀 피부와 잘생긴 얼굴은 어디로 가지 않았다.
젊은 엘프 남자가 밝게 웃고 있다.
“섭섭한걸? 재혼했다고 이제 안에 들여보내 주지도 않는 건가?”
“당신을 안사람에게 보여주는 건 아직 이른 것 같거든요.”
엘프 남자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간 보아온 자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데 안타깝군.”
헛기침을 조금 하던 로마니가 물었다.
“그보다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이긴, 이번 일에 대한 보수를 주려고 왔지. 울파 수리비에 보태쓰라고.”
돈 대신 받은 것은 계좌인식용 마력석, 그것을 손에 쥔 로마니가 고개를 들었다.
“허, 그걸 의뢰 성공으로 봐주시는 겁니까?”
“과정이야 어찌 됐든 실물은 손에 넣었으니까. 더불어서 그 마법사 인형이 제조된 장소도 찾았으면 좋겠군. 지금 필림 장로의 눈이 돌아갔거든?”
잠깐 입을 다물고 계산을 해보던 로마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참, 그 강도단 친구들을 다시 한번 만나러 가봐야겠군요.”
씩 웃음 지은 그는 손을 흔들더니 그만 몸을 돌렸다.
“자네 말고도 요즘 일 맡기기 괜찮은 친구들을 확보했거든? 조만간 편해질 거야.”
“그거 반가운 소식이군요.”
저 엘프들이 맡기는 일은 하나같이 난해하고 위험한 일투성이라서 하는 소리였다.
돌아가는 의뢰인을 바라보던 로마니는 손에 든 인식용 마력석을 동전처럼 튕겼다가 받으며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부엌에서 고개를 내민 셀린이 묻는다.
“누구예요?”
“혼자 있을 때 같이 술 마셔 주던 사람입니다.”
“음, 이젠 혼자가 아니니까, 술 고프면 말해요. 내가 같이 마셔 줄 테니.”
새치가 좀 섞인 머리를 멋지게 빗어넘긴 로마니가 인자하게 웃는다.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그럽시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울파가 난입하기 전까지는.
“셀린 부인, 생선이 타고 있다.”
“오마나!”
손에 든 큼직한 프라이팬에는 한쪽이 좀 심하게 노릇해진 생선구이가 만들어졌다.
“쯧, 아깝게스리.”
온갖 사건, 사고를 수습해야 하는 경비대장직에 오래 있으면서 성격이 조금 모나 버린 셀린이 찡그린 얼굴로 혀를 찼다.
로마니의 눈에는 그것마저 멋지게 보일 정도였지만.
“이 정도면 준수한 편입니다. 내가 먹지요.”
“남편에게 탄 걸 먹일 수는 없거든요?”
남편, 난생처음 내뱉어 본 단어라서 입에 좀처럼 달라붙지 않는 단어다. 그래서 셀린의 얼굴이 또 빨갛게 달아올랐다.
손가락을 든 울파가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가리켰다.
“셀린 부인에게 과열의 조짐, 이대로 두면 오버 히트합니다.”
“으, 음! 아니, 괜찮거든?”
“하하하!”
오렌지색 방열 가발의 커다란 자동 인형과 붉은 단발머리를 질끈 묶은 집사람의 대화는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것이어서 로마니는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어 버렸다.
탕탕탕!
다시 한번 들리는 문 두드리는 소리, 가까스로 웃음을 멈춘 로마니가 눈가를 닦으며 다시 창가로 향했다.
문 앞에 서 있는 저 싱글벙글한 여자는 아는 얼굴이다.
“보좌담당관?”
문을 열어주자 보좌담당관 잔느가 공손히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로마니 씨.”
“어서 오시오, 보좌담당관. 이름이······ 그렇지, 잔느.”
베시시 웃음 지은 잔느를 보고 프라이팬을 들고 있던 셀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여긴 왜 왔어?”
“니에니에, 잡아먹으러 온 거 아니니 긴장 푸시고요.”
화려한 과일 바구니를 들고 찾아온 그녀는 울파를 불러서 그것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프라이팬을 들고 있는 셀린을 보았다.
“와! 경비대장님이 이제 주부라니, 전 지금도 믿을 수가 없어요.”
“흥! 그 말하려고 온 거야?”
히히 웃음 짓고 있는데 로마니가 그녀들을 안으로 들이고 차를 대접했다.
푹신한 고급 소파의 중앙에 셀린, 오른쪽에 로마니, 왼쪽에는 울파가 앉았다.
단란한 가족을 보던 잔느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리켰다.
“홍차에 안 어울리는 이 생선구이는 뭐예요?”
“마침 잘 왔어. 그거 먹어.”
잔느가 고개를 쑥 내민다.
“현역 때 좀 놀렸다고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저는 어딘가의 고양이 남작이 아니거든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셀린이 도끼눈에 삿대질하며 외쳤다.
“너! 방금 인정했지! 놀린 거라고! 꼬마일 때 사탕 사주면서 귀여워해 줬더니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아?!”
“셀린 부인에게서 오버 히트를 감지.”
“푸흐흐흣-!”
울파의 해설에 로마니가 또 웃음을 터트렸다.
이마에 손을 올리고 큭큭거리는 그를 흐뭇하게 보던 잔느가 다리를 꼬더니 무릎에 깍지 낀 손을 올렸다.
“보기 좋네요. 요즘 어떠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질문을 바꿔야겠어요. 요즘 뭐 하세요?”
“뭐, 좋지. 늦잠도 마음껏 자고, 요리 연습도 하고. 심심하면 뒤뜰에 밭뙈기도 좀 일구고.”
손가락을 꼽으며 대답하는 셀린을 보고 잔느는 빙긋 눈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내내 일만 하시던 분이 심심하실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