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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33화 (233/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황금알! 233 >

월터의 그윽한 배웅을 받으며 북서쪽 휴전선 마을로 달려간 장갑차량은 마을을 조금 남겨둔 시점에서 한적한 공터에 정차했다.

서쪽 들판으로 이미 해가 넘어가 버렸는데도 아직 낮의 여운이 진하게 남았다.

그래서 낮도 밤도 아닌 어색한 시간, 그들의 부름에 정말로 숲속에서 마족이 나타났다.

“여, 안녕.”

“모르핀!”

따라온 리슐리에와 트리스타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녀들도 마족을 처음 본 것이다.

“머리에 저 뿔 말고는 우리와 거의 똑같군요.”

붉은 휴전선 가까이 다가온 모르핀도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날카로운 이빨을 슬쩍 드러낸 그녀는 트리스타를 올려다보며 다시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게 엘프라는 종족이냐? 처음 본다.”

트리스타가 앞으로 나서더니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손을 내밀었다.

“저도 마족은 처음 봅니다. 트리스타예요.”

그 손을 물끄러미 보던 모르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함부로 손을 내미는 건 좋지 않아. 내가 널 끌고 들어가면 어떻게 할 거지?”

“그러면 도시 전체의 엘프 어르신들이 저를 구출하러 이 선을 뛰어넘으실 겁니다. 저는 나이가 어린 엘프거든요.”

“호오, 참고로 몇 살인데?”

사람들의 귀가 엄청나게 커지는 가운데 뒤를 슬쩍 살핀 트리스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여 버렸다.

눈을 부릅뜬 비타가 물었다.

“들려요? 들려요?”

“전혀 안 들리네. 어떻게 저렇게 작게 말하지?”

귀가 밝은 모르핀만은 하하 웃으며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그렇구나, 나는 127살이다. 너보다 한참 연상이니 잘 알아둬라.”

트리스타의 나이에 집중하던 비타가 헉 소리를 냈다.

“배배백스물일곱!”

“외모상으로는 112살쯤 빼야 하는 거 아뇨?”

보리스의 지적에 모르핀이 이빨을 세운다.

“시끄럽다. 가뜩이나 더 커지지 않아서 신경 쓰이거늘, 투나는 어디에 있나?”

부름을 받은 투나가 총총 다가오더니 잘록한 허리에 두 손을 올리고 고개를 척 들었는데 의기양양한 그 표정이 어쩐지 우스꽝스럽다.

자신 넘치는 얼굴에서 뭔가 희망을 느낀 모르핀이 밝아진다.

“오, 성공한 건가? 그런 건가?”

“모르지. 네, 네가 넘어와야 성공인 거지. 어, 어떻게 되나 보자고.”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한 쌍의 귀고리였다. 아주 작은 마력석이 박힌.

“자, 자료 수집하면서 들은 건데. 이, 이 선이 생기고 나서도 너, 너희들이 간혹 넘어와서 난리를 부렸다며? 부, 부작용 같은 거 전혀 없이.”

“그랬다더군.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대대로 수비대장만 알고 있어. 물론 가르쳐 주지 않아. 우린 명령에 따라 나가서 싸울 뿐이었고.”

투나의 입이 히죽 찢어진다.

“나, 나는 알아냈어. 후후후.”

“어떻게?”

안경 너머 눈을 가늘게 뜬 투나가 손가락을 들었다. 이것저것 손을 쓰는 일이 많다 보니 여자 손치고는 조금 거칠다.

그녀는 낮은 음성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그전에, 약속, 잊지 마, 평생 나를 따라준다는.”

“알고 있다. 다만, 어느 정도의 자유를 보장해 줬으면 좋겠어.”

투나가 팔짱을 끼었다. 그사이로 일행 중에서 가장 커다란 가슴이 넘쳐나고 있어서 모르핀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내, 내가 원하는 건, 저, 저쪽의 귀중한 약재를 채, 채집해 줄 전속 수집꾼이 피, 필요할 뿐이야. 따, 딱히 널 어떻게 하, 하겠다는 게 아니라.”

“좋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모르핀이 귀걸이를 박아 넣었다. 먼저 바늘로 귀를 뚫어야 했지만 그런 것 없이 바로 찔러 넣어서 걸었다. 그녀로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아으으.”

귀를 타고 흐르는 붉은 피를 보면서 비타의 얼굴이 질려 버렸다. 작업을 마친 모르핀은 곧바로 휴전선을 뛰어넘었다.

“으으읍-?!”

끔찍한 어지러움과 구토가 올라온다.

허리를 숙인 모르핀이 구역질을 해대는 것을 지켜보던 투나가 손짓했다.

길쭉한 막대기를 뽑아낸 샤를이 팔을 뒤로 당겼다.

휙! 퍽!

날아간 막대기는 휴전선 너머의 땅에 박혔다. 그러자 그 끝에 달린 마력석이 미미한 빛을 발한다.

속았구나! 싶었던 모르핀이 구토물로 더러워진 입가를 닦으며 고개를 든다.

“어어? 어!”

주저앉은 흙바닥은 인간 세상의 것, 하늘에 떠오른 저 달도 더 이상 마왕령에서 보던 것이 아니었다.

전투 상황을 제외하고 마족이 휴전선을 넘은 최초의 순간이었다. 그것도 아무런 패널티 없이.

“크으으윽! 됐어, 좋았어!”

잔뜩 웅크린 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느라 일그러진 고양이 눈매와 삐죽삐죽 돋아난 이빨이 크게 도드라졌다.

소리를 지르지 않은 까닭은 인근의 마족 수비대원들이 들을까 봐.

감정을 추스른 모르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그들은 서로를 제대로 마주 보게 되었다.

“어떻게 한 거지?”

“저, 저 막대기로 저쪽 땅의 마력을 주, 중계하고 있어. 네 귀걸이가 그걸 바, 받아서 공급하는 거지. 으히히.”

투나를 보는 모르핀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그녀가 진심으로 놀라는 얼굴을 처음 본 사람들은 넋을 잃고 쳐다보기 바빴다.

귀여워!

투나는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마, 마족이랑 싸웠던 사람들에게 드, 들었는데. 너희들이 나타날 때면 하, 항상 수, 숨쉬기가 힘들었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저, 저 선은 강한 마력이 이쪽으로 너, 넘지 못하게 하는 차단막 여, 역할이라는 것까지 알아냈어.”

실험이 보기 좋게 성공하고 의기양양해진 투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거, 거기까지 알면 쉽지. 주, 중계기를 박아서 저쪽의 마력을 모아 네, 네게 넘겨보면 되는 거야. 이, 이건 어려운 게 아니야. 으히히.”

내내 쌓아온 의문까지 모두 풀린 모르핀이 입가를 슥슥 문질러 닦으며 말했다.

“그럼 저건 안 보이는 곳에 숨겨놔야겠군.”

“응, 땅속에 묻어도 사, 상관없으니 알아서 숨기도록 해.”

짧은 한숨을 내쉰 그녀가 말했다.

“알겠다. 나는 이 시간부로 네 수집꾼, 원하는 게 뭐냐? 전부 찾아다 주마.”

“으히히! 이히히!”

자신만만했던 얼굴은 어디로 가고 손을 삭삭 비비며 군침을 흘리기 시작한 투나는 바로 이것저것 말했다.

“스, 스승님이랑 지낼 때 썼던 건데, 버섯이야. 밤에도 빛나는.”

“야광 광대버섯인가? 그거라면 좀 떨어진 곳에 자생하고 있어. 따다 줄게.”

모르핀은 바로 반대편으로 훌쩍 뛰어넘어 갔다.

팔짱을 하고 있던 보리스가 물었다.

“날짜 잡아야죠. 언제쯤 올까요?”

뒤를 돌아보는 작은 체구의 마족 여자가 히죽 웃는다.

“그럴 필요 없다. 네가 너희들을 찾으러 갈 것이다. 아르곤의 크랭크 공방이지? 딱 기다리고 있어라. 나는 오늘부터 탈영병이며 동시에 자유의 몸이다.”

추가 중계기가 잔뜩 들어 있는 가방을 건네받은 모르핀은 빠른 속도로 숲을 헤치고 사라졌다.

곧 다시 만날 것이기에 작별 인사 같은 건 없었다.

대신해서 투나가 기괴한 함성을 내질렀다.

“우효! 마족을 얻었다제!”

보리스가 얼굴을 찡그렸다.

“저러지 않으면 안되는 병이라도 걸린 건가.”

“응, 그건 신경 쓰지 말자. 그보다 우린 다른 신경 쓸 사람이 하나 있잖아?”

다들 엘프 트리스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이명은 엘프 밀고자, 크랭크의 기행을 감시하기 위해 온 사람이라고 다들 넘겨짚고 있었다.

고개를 돌린 투나가 두 손을 마구 꿈틀거리며 엘프에게 다가간다.

“에, 어, 트, 트리스타. 이, 입 다물고 있어 주면 조, 좋겠는데. 호, 혹시 알아? 저, 저 마족 친구가 언젠가 네게 도움이 될지도?”

아무래도 단순 거래가 아니라 마족을 밖으로 끄집어내 버린 것이라서 한 번 더 물어보는 참이었다.

모두의 걱정과는 다르게 엘프 트리스타는 아주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여러분은 뭔가 착각하고 있어요. 감시와 밀고는 제 임무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문명의 선구자에 대한 보조와 견습을 위해 체류 중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해요.”

잠깐 숨을 고른 트리스타는 이걸로는 부족하겠다 싶었는지 말을 좀 덧붙였다.

“인간이 낳은 훌륭한 문학 중에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도 참 많지요. 그중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동화, 기억하시나요? 저도 그걸 보았어요. 감상은 가히 충격이었습니다.”

사람들을 바라본 트리스타는 엘프 식으로 대단히 에둘러서 한 번 더 말했다.

“세상에 황금알을 낳는, 세상에 하나뿐인 거위의 배를 가르다니, 저는 그 동화로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서움을 배웠어요. 엘프라면 절대로 그러지 않아요.”

“푸히흐히히! 으히하하하!”

갑자기 나온 뚱딴지같은 이야기에 투나가 기괴한 폭소를 터트렸다.

어리둥절한 다른 친구들의 얼굴도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그건 욕심부리면 본전도 못 찾는다는 훌륭한 교훈을 담은 이야기거든! 확대해석에 바보 취급도 유분수지!”

울컥한 보리스의 외침과 억울하다는 친구들의 시선에 엘프 트리스타가 빙긋 웃는다.

지금으로서는 무엇 하나 확실히 부정하거나 긍정할 수 없기에.

다만 못 박았다.

적어도 당신들의 배를 가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마치고 갑자기 눈을 반짝인 트리스타가 귀를 파닥거리며 투나에게 다가갔다.

“그보다 저는 투나 당신에게 관심이 생겼습니다. 마력 중계기라니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에요. 관련 정보를 가르쳐 줄 수 있나요?”

“오, 오오, 어려운 거 아니니 알려줄게.”

흐흐 웃음 지은 투나였지만 야간 운행으로 아르곤으로 돌아오자마자 공방의 잡동사니 속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왔다.

“이, 이거 중계기 설계안, 그리고 이건 선물이야. 가지고 있으면 조,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상자의 뚜껑을 열자 안에서 나온 것은 마치 진주 같은 광택을 가진 구슬이었다.

처음엔 정말 진주인 줄 알았던 트리스타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곁에서 구경하던 리슐리에도 마찬가지.

다만, 아무것도 모르는 비타는 방긋 웃기만 했다.

“와, 꽤 큰 진주네요? 내륙에서는 보기 드문데.”

“그게 아니야. 핵석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안경을 벗은 리슐리에의 말이었다.

마왕령에 사는 거칠고 흉폭한 몬스터 중에서는 몸속에 마력이 결정화된 핵석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마법사가 가지게 되면 엄청난 기적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횟수 제한이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최고의 마력 증강 아이템인 것이다.

“수도 최고급 마법 상점에서 본 것도 이것보다 작았는데! 당신은 어디서 이런 보물을-!”

맨눈으로 상자 속의 핵석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리슐리에는 곧바로 투나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언젠가 반드시 손에 넣으리라 마음먹었던 것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지금 눈앞에!

리슐리에가 얼굴을 바싹 들이대자 투나가 우부부 하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돌렸다.

“어디서! 어디서 얻은 거예욧!?”

“우, 우연히 트, 트롤 마켓에 나왔기에 사뒀어. 어, 얼굴 가깝다. 가까워.”

트롤 마켓? 암시장!

리슐리에가 다시 투나를 고문(?)하려는데 트리스타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이걸 제게 주신다고요?”

“그, 그렇지. 교, 교환 조건이지. 그거라도 받아줘야 이, 이쪽의 마음이 놓이는 거지. 으히히.”

의자에 거꾸로 앉아 있던 보리스가 저녁 식사 준비 중인 샤를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아니, 대체 어떤 생활을 해왔기에 교환 조건이라는 말이 나와요?”

“흐흐흐, 애, 애들은 몰라도 돼.”

“에엥? 애들이라뇨! 공방 최고 연장자인 트리스타를 앞에 두시고! 투나보다 나이가 많은 건 확정이에요! 어쩌면 이웃의 쿠르프 아저씨보다 많을지도?”

캐롯이 평소에 하는 짓은 주변 사람들의 인상에 깊이 파고들었다.

장난기가 돋은 비타가 버럭 외치며 끼어들자 볼을 부풀린 트리스타가 고개를 돌린다.

“그렇게까지 많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 많이 어린 나이입니다.”

“그래서 몇 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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