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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32화 (232/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불티! 232 >

이제 캐롯은 투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있지, 사실 너희들이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나를 알고 내가 아는 사람들이 없어지면 어쩐지 쓸쓸하잖아.”

“그, 그런 건 어, 얼마든지 새, 새로 만들면 되지.”

“그걸 누가 몰라서 그래?”

“우부부.”

앙증맞은 캐롯의 손바닥이 투나의 볼에 닿는다.

오리 입이 된 투나가 뿌뿌뿌 웃더니 캐롯을 그만 바닥에 내려주었다.

도도도 달려간 캐롯은 이번엔 아리에테의 침대로 기어들어 갔다. 수면제의 힘을 빌린 아리에테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캐롯의 인형을 끌어안고 있었다.

“어휴! 우리 딸. 오늘도 똥 씹은 얼굴이네. 무슨 꿈을 꾸고 있니?”

옆에 바싹 달라붙은 캐롯이 팔을 내밀고 그녀의 머리를 안아주자 아리에테의 얼굴이 서서히 편해지기 시작한다.

고개를 내민 투나가 흐흐 웃는다.

“호오, 호오오. 그, 그건 약보다 강한 효과네. 어떻게 된 거야?”

“그건 나도 모르겠네. 커튼 쳐 줘, 우리 딸 자게.”

캐롯의 손짓에 히히 웃음 지은 투나가 커튼을 쳐 줬다.

샤를이 다가왔다.

“캐롯이 돌아왔습니다. 공방의 분위기가 밝아졌습니다.”

“으, 음! 역시 캐롯은 저래야지. 나, 나도 멋진 죽음을 위해서 히, 힘내야지.”

연구실로 돌아가려던 투나였지만 메이드 오토마톤 샤를이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챘다.

“당신도 자야 합니다. 연속 활동 시간이 24시간을 넘었습니다.”

“조, 조금만 더 하면 되는······. 우호옥-!”

자기보다 큰 투나를 번쩍 들어 올린 샤를은 그녀를 침대로 옮기며 말했다.

“불규칙한 수면은 단명의 지름길이라고 합니다. 잠시 후 깨워드리겠습니다.”

“오, 오오우.”

어쩐지 샤를이 제멋대로 움직인다는 생각도 잠시 이불에 덮쳐진 투나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그렇게 어찌저찌 준비를 마치고, 이튿날 크랭크와 아리에테, 캐롯은 데리러 온 르클레르의 이동 차량에 가져갈 짐을 실었다.

여기서 아리에테는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짜 놓았다.

“왕복 이동 시간까지 합쳐서 대략 한 달 조금 넘는 일정이다. 내가 없는 동안 잘 부탁한다.”

리슐리에는 커다란 노트를 품에 안은 채 안경을 밀어 올렸다.

“안심하고 다녀오세요.”

“와아, 해외 여행이라니. 살짝 부러워요.”

작은 몸에 큼직한 배낭을 멘 캐롯이 여신관 비타에게 다가왔다.

“오하! 기념품 잔뜩 사 올게!”

“헤헤, 기다릴게요.”

“응!”

엄지를 세운 캐롯이 찡긋 윙크까지 더해 주자 참지 못한 비타가 조그만 캐롯을 덥석 끌어안았다.

“습하습하! 으음, 좋은 향기예요. 역시 1가정 1캐롯이 시급해요.”

“누가 저 변태 신관을 말려주지 않으려나.”

“비타, 출발해야 해.”

보리스의 투덜거림과 지오의 말에 베시시 웃은 비타가 그만 캐롯을 놓아주었다.

커다란 캐롯도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작은 몸의 캐롯이 더 좋다는 평가였다.

그렇게 모두와 인사를 나눈 다음, 차량이 출발했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몸을 내민 캐롯이 와하하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와이! 갔다 올게!”

“조심해요!”

골목길로 사라지는 차량을 마지막까지 배웅하던 보리스가 중얼거린다.

“이젠 진짜 떨거지만 남았네.”

파직!

“가끔 당신의 허를 찌르는 지적은 고착된 파티 운영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딱히 그만두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듣기 싫은 소리는 자의적 판단에 따라 지져 버리겠어요.”

눈썹을 세운 리슐리에가 그의 코앞에 손가락을 들이대자 끝에서 스파크가 파팍 튀긴다.

움찔한 그에게서 고개를 돌린 리슐리에가 중요 멤버들이 떠나 버려 어색한 공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현재 파티 리더 대행을 맡았다. 다름 아닌 지오의 추천으로.

그녀는 먼저 공터 저편에 세워진 파티 전용 장갑차량을 가리켰다.

“저거 수리는 어떻게 됐죠?”

“엔진이랑 구동부는 멀쩡해요. 장갑이 좀 엉망이긴 하지만.”

지오가 대답했다.

오면서 내내 보수와 점검을 거들었던 지오와 보리스, 코비는 이제 약간이지만 기계를 보는 눈이 생겨 버렸다.

리슐리에는 계속 말했다.

“바로 외관을 보수하고 다음 퀘스트를 준비합시다. 아리에테도 다소 어렵지 않은 의뢰 위주로 일을 계속하라고 했어요.”

서로를 쳐다보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지오가 손을 들었다.

“파티 공용 저금으로 수리비를 충당하면 될까요?”

“당연합니다. 비용 처리에 필요하니 영수증 발급을 잊지 마세요. 움직입시다. 필요한 것부터 사 와요. 우리가 마냥 얹혀 다니는 게 아니라는 걸 한 달 뒤의 저 사람들에게 보여줍시다.”

이제 초보티를 벗은 모험가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다.

좀 떨어진 곳에서 그걸 쳐다보던 드워프 어르신 쿠르프가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물고 중얼거렸다.

“역시 젊으니 좋구나. 이봐, 자넨 어쩔 거지?”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는 오토마톤 기술 견습을 위해 체류 중인 트리스타였기에 해외까지 따라 나가지는 않았다.

동행하라는 지시나 요청도 없었고.

“그래서 당분간 저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견문을 넓혀볼 생각입니다. 그게 조건이었으니까요.”

“오, 잘됐군. 엘프가 하나 있으면 든든할 테니까.”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때 자다 나와서 배웅을 한 투나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흐흐 웃으며 말했다.

“어, 저, 나, 그, 첫 번째 일을 으, 의뢰하고 싶은데 되, 될까?”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 노트를 펴보고 있던 리슐리에가 번쩍이는 눈을 돌렸다. 공과 사를 철저하게 가르는 편인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말했다.

“같은 공방 식구지만 저희도 일이라서 의뢰비는 받아야 합니다만.”

“어, 응, 다, 당연하지. 돈 낼게.”

투나가 의뢰한 일은 다름 아닌 호위, 대장간과 목재소에서 자재를 수급해 온 일행들도 첫 일거리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기뻐했다.

어떤 기억을 떠올린 비타가 손바닥을 부딪치며 환하게 웃었다.

“와아! 그걸 완성했어요? 된 거예요?”

한여름, 붉은 선 너머의 세계를 동경한 어떤 마족의 퀘스트를 검은 마녀가 기어코 완수한 것이다.

수레에서 자재를 내리고 망치와 못을 챙기던 보리스가 중얼거렸다.

“모르핀이 좋아하겠네, 하여튼 여기 공방 사람들은 다들 굉장하다니까.”

“대단하세요.”

“멋져요! 투나 최고!”

주변 사람들의 솔직한 칭찬에 기분이 몹시 좋아진 투나는 수일간 감지 못해서 기름기에 떡 진 머리카락을 멋지게 쓸어 넘기며 곁눈질로 사람들을 쳐다보았는데 그 모습이 참 매력적으로 보였다.

“으후후, 조, 좀 더 칭찬해 줘. 기분 좋다.”

“으아! 머리가 이게 뭐예요! 번들번들! 나가기 전에 제대로 씻으세요! 이리 와욧!”

“호오옥!?”

그녀의 떡 진 머리카락은 기름기가 너무 많아서 윤기를 넘어서 광택이 흐를 정도였다.

분노한 여신관에게 끌려 들어가는 의뢰인을 쳐다보던 트리스타가 의문을 표현했다.

“모르핀이 누구죠?”

아!

잊고 있던 사실과 그것들의 상관관계도가 연속적으로 떠올라 버린 모두가 얼빠진 얼굴을 하고 엘프 트리스타를 쳐다보더니 못 들은 척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리슐리에도 다가왔다.

“나도 궁금합니다. 아는 사람이에요?”

자기 입을 저주하며 쯧! 하고 혀를 찬 보리스가 어깨에 톱을 걸치더니 허리를 폈다.

키가 살짝 큰 트리스타를 마주한 그가 입을 열었다.

“그전에, 당신은 누구 편이야?”

“누구 편이라니요?”

공방 안에서는 비타가 투나의 머리를 직접 감겨주는 것인지 기괴한 비명 소리가 마구 흘러나오고 있었다.

보리스는 이참에 그녀의 속을 좀 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크랭크 아저씨와 드워프 영감님의 감시로 와 있는 거지? 그러면, 우리가 당신들의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예를 들어, 마족과 내통을 한다든가.”

트리스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르핀은 마족의 이름인가요?”

“아니, 의미가 전달되지 않은 거야? 나는 어디까지나 예를 들었을 뿐이거든?”

캐롯의 능청스러운 처세술을 옆에서 보고 배운 보리스는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엘프라고 해서 속마음까지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드래곤도 그게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 세계의 분란이 끊이지 않는 거고.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보고할 거야?”

“보리스, 그래도 반말은 좀 너무하지 않아?”

지오의 말에 보리스는 피식 웃었다.

“사는 시간대가 다른데 반말 좀 하면 어때? 저 사람에게 우리는 모닥불의 불티 같은 존재야. 100년 뒤에는 누구였는지도 기억하지 못할걸?”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던 트리스타가 대답했다.

“당신이 뭘 말하고 싶은 것인지 압니다. 상황에 따라 나는 그런 사항도 보고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제 자의적 판단에 따라 고려합니다.”

숨을 좀 고른 트리스타는 계속 말했다.

“저는 도시의 엘프 커뮤니티에서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중에는 휴전선 마을의 마족들과 몰래 물물교환을 하는 내용도 있었지요. 그런 거라면 안심하셔도 됩니다. 왜냐하면 저희 어르신들도 거기에 한몫 끼어 용돈벌이를 하고 계시거든요.”

보리스를 포함한 남자들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어 버렸다.

“뭐야, 같이 해 먹고 있었던 거야? 공범이네.”

“그래서 곤란한 상황입니다. 아무리 말씀드려도 어르신들은 저같이 어린 엘프의 말은 듣질 않으세요.”

트리스타가 손가락을 들어 그들을 가리켰다.

“그리고 지금의 대화, 참 인상 깊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몇 백 년 동안은 당신들을 잊지 못할 거예요.”

“오오, 그거 기쁜걸?”

“잘됐네.”

팔짱을 끼고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리슐리에가 끼어들었다.

“빙 에둘러서 말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아요. 그래서 모르핀이 누구죠? 확실히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지오에게 모르핀과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리슐리에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돌렸다.

“잘됐군요. 사실 마족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조금 기대됩니다. 어쨌든 이것도 의뢰이니 등록하러 길드에 다녀올게요. 로테는 나를 따라오도록.”

크랭크의 언질이 있었기 때문에 로테는 선선히 그녀의 호위로 따라나섰다.

이야기도 얼추 마무리되었고, 웃통을 벗어 던진 코비가 톱과 망치를 챙겨 든다.

“자! 시작하자!”

“그거 웃통은 꼭 벗어야 해?”

“솔직히 자랑하고 싶어서 그래! 이 근육!”

“음, 솔직하네. 좋아.”

담배 파이프를 들고 청년들의 실없는 대화를 주워 듣던 드워프 어르신도 프허허 웃더니 그들의 뒤를 따랐다.

“어디 좀 거들어 줄까?”

뚝딱뚝딱!

의욕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젊은이들과 베테랑 드워프가 만나자 수리는 금세 끝났다.

그리고 오랜만의 목욕으로 말끔해진 투나를 데리고 바로 휴전선 마을로 달려갔다.

원래는 내일 가려고 했지만 투나가 억지를 부려서다.

그전에 성문을 지나치며 경비병 월터를 만났다.

“좀 있으면 해가 질 것 같은데 어딜 가냐?”

운전석에 앉은 지오가 길드에 의뢰를 보고하고 받아 온 통행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호위로 휴전선 마을에요.”

통행증에 도장을 찍어준 월터가 그들의 장갑차량을 살펴보았다.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이런 걸 타고 나간다면 허가할 수밖에는 없지.

파손된 부분의 보수를 완료한 차량에는 지오의 제안으로 여차하면 들이받을 수 있도록 전투 범퍼까지 새로 달아 놓았다.

얼마 전까지 어디서 공짜로 얻은 마차 하나만으로도 좋아하던 녀석들이 이제는 이런 무지막지한 장갑차량이라니.

통행증을 돌려준 월터가 흐뭇하게 웃는다.

“빨리 가면 해지기 전에 도착하겠다. 어서 가.”

“고마워요! 월터 아저씨!”

여신관 비타가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활짝 웃는다.

어릴 때부터 골목길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아왔던 월터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석양을 향해 신나게 달려가는 그들의 장갑차량을 보면서 성문 경비병 월터가 중얼거린다.

“음, 보기 좋구나. 나이를 먹는다는 게 참 맛깔나는구나. 코흘리개가 어른이 되는 것도 보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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