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선물! 230 >
쿵쾅쿵쾅-!
사레나가 작동을 멈추었음에도 불구, 그의 마력석을 나눠 받은 이동 가옥은 다리가 달린 채 빠른 속도로 숲과 들판을 헤치고 지정된 장소를 향해 달렸다.
감시를 위해 집안에 머무르던 경비병들은 이동 가옥이 기괴한 도주를 시작할 때 일찌감치 뛰어내렸다. 게다가 그들이 무사히 복귀하자 아르곤 경비대에서는 추적을 포기해 버렸다.
이미 현지에 미행을 남겨두었으니 지금은 추적보다 복구와 재정비에 힘쓰자는 상층부의 판단 때문이었다.
쿵쾅쿵쾅-!
마구잡이로 쌓아 올린 엉망진창인 구조물에 장식도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이동 가옥에는 그 웅장함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바다 꽃게의 다리가 붙어서 두려움마저 느끼게 만드는 위용을 자랑했다.
하지만 이동성은 그야말로 발군, 이동 가옥이 아니라 기동 저택이라고 불러야 할 수준이었다.
쿵쾅쿵쾅-!
초원이든 습지든 여러 개 붙은 다리를 미친 듯이 휘저어 달리는데 아주 거침이 없다.
다만 그 승차감이 좋을 리 만무, 들썩이는 집안에서 수일간 시달린 사람들은 심한 멀미를 호소하며 이제 제발 멈춰줬으면 하는 강한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질린 얼굴로 창가에 기댄 사내가 눈을 크게 뜨고 밖을 내다보았다. 멀리 이동 중인 차량이 보인다.
“어이! 살려줘!”
“이걸 좀 멈춰줘요!”
사람들이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손을 마구 흔들어대자 느릿느릿 움직이던 차량이 갑자기 속도를 높여 뒤쫓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포로 협상차 아르곤으로 향하던 낭만 강도단의 친구들이었다.
레그와 그의 동료들은 무시무시한 위용을 자랑하며 달려가는 어디서 많이 본 집들과 거기서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보고 얼이 빠져 버렸다.
더구나 그 지붕과 벽에 그려진 빨간 페인트는 노획당한 기동 저택의 숫자, 한 사내가 팔을 들고 외쳤다.
“21호! 어억! 저거 우리 집이야!”
급하게 창문에 걸터앉아 지나쳐 달리는 기동 저택을 살피던 레그가 안에 대고 냅다 외쳤다.
“3채 전부 다 있어! 탈출했나 보다! 저것들을 어서 쫓아!”
“에라이!”
핸들을 휙휙 돌린 강도단, 아니, 이제는 마왕령 개척민 마을의 사절단은 기동 저택을 뒤쫓기 시작했다.
다들 어쩐지 신이 나서는 숨겨놓았던 유쾌함을 드러냈다.
“으하하! 거기 서라!”
“우와! 잘 달린다! 분명 사레나 녀석이 해놓은 짓일 거야!”
그렇게 내내 시무룩하던 사내들의 얼굴에 희열이 번지기 시작한다.
“작살! 작살 준비해! 저걸 잡자!”
“핫하! 어딜 그렇게 가는 거냐고!”
쿵쾅쿵쾅-!
기동 저택은 그대로 논스톱을 달려 세이건이 머무르고 있는 오아시스 2차 집결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겨우 멈췄다.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실신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어쨌든 가족을 다시 만나 반가워했고, 그들에게 상황을 전해 들은 세이건은 여전히 움직이는 사레나의 마지막 선물, 기동 저택을 올려다보며 진한 감동을 느꼈다.
그러더니 사이퍼즈 특유의 미청년이 활짝 웃으며 한마디 한다. 그 손가락은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기동 저택을 가리키고 있었다.
“와, 이거 돈 될 것 같지 않아요? 개념 자체는 정말 마음에 드는데.”
기동 저택을 타고 돌아온 귀환자 중에는 그 자동 2륜 차의 제작자인 사내도 있었다.
그는 토벌대 모험가의 어떤 꼬마 인형이 했던 것처럼 해적 모자를 만들어 쓴 채로 으하하 웃어댔다.
“오호이-! 우리는 초원의 해저-! 으억! 컥!”
퍽! 퍽퍽!
아직 멀미가 가시지 않았지만 젊은 아내는 밀가루 밀대를 들고 와서 두 손으로 휘둘러 댔다.
“그건 하지 말라고 그랬지!”
이 와중에 호기심이 생긴 사람들이 돌아온 기동 저택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사레나를 잘 따르던 코볼트 요크도 있었다.
“킁킁킁!”
바닥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며 집안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머리 위로 뭔가가 툭 떨어진다.
또르르.
귀가 쫑긋 솟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요크가 뭔가 싶어 집어 드니 푸른색 구슬이다. 그리고 들리는 뭔가 속삭이는 소리.
코볼트의 청각은 거의 개 수준, 동네 강아지처럼 요크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켕켕! 사레나!”
털북숭이 작은 손에 쥐어진 푸른 구슬이 유난히 밝은 푸른빛을 발했다.
* * *
요즘 모험가 길드에서는 긴급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인원은 상시 모집 중, 임무는 다름 아닌 성문 근처에서 사철 수거 작업 중인 작업자를 보호하는 것.
도시 근처라서 몬스터는 드문 편이지만 그래도 성 밖이니 경계는 필요했다.
하지만 보수가 짜서 다들 꺼렸기 때문에 초보들이나 몇몇 인물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형편이었다.
캐롯의 겨울 기사단과 게토의 몰리 마법사단도 거기에 속했다.
해가 떨어질 때쯤 작업이 마무리되자 경계도 끝났다.
성내로 돌아온 일행 중 토스트가 기지개를 켜며 길을 걸었다.
“으어아아! 뻐근하다! 오늘도 끝났네. 하루 종일 서서 뭐 하는 건지 모르겠어.”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가고 너희들만 나왔어? 우리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게토의 몰리 마법사단에서 나온 것은 토스트와 애덤, 레나, 신관 에리스뿐이다.
“어, 차가 고장 나서 나머지는 거기 붙어 있어. 추가로 개조도 좀 하고.”
“오호.”
창대를 짚은 채 걷고 있던 캐롯이 고개를 끄덕이자 토스트가 빤히 쳐다본다. 그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내내 흥미롭다는 시선이다.
그걸 캐롯도 알고 있다.
헤벌쭉 웃음 지은 캐롯이 말했다.
“뭐? 왜?”
“아니, 그냥. 갑자기 모습이 바뀐 걸 보고 있자니 시간 참 빠르다 싶어서.”
캐롯이 걷다가 말고 배를 잡고 웃어댔다.
“으악하하하! 나는 오토마톤이거든? 이거 자라서 된 몸이 아니거든?”
“그렇지.”
평소의 장난기가 싹 사라진 토스트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캐롯의 그 조그만 얼굴은 나이를 먹으면 이렇게 되는구나. 우리는 어떻게 되지?”
“그게 그런 의미였어? 걱정 마! 네가 늙어도 나는 늙지 않아. 네 추억은 온전히 보전될 거야. 이 몸도 원래대로 되돌릴 거고.”
캐롯의 파티도 전부 나온 건 아니었다. 아리에테는 수도에서 온 사람을 만나러 갔고, 리슐리에도 그녀를 따라갔다. 크랭크는 공방에 남았고, 그래서 남은 것은 초보 모험가 멤버들.
코비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몸을 원래대로 만든다고요?”
“맞아, 코비는 이런 몸매가 취향이라지?”
윙크를 찡긋한 캐롯이 엉덩이를 쑥 내밀며 손바닥 키스를 날리자 코비가 코를 벌렁거리며 히죽 웃는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신관 에리스와 레나가 빤히 쳐다보고 있다.
특히나 레나는 애덤의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지금의 캐롯과 가장 비슷한 체형이었기 때문이다.
확 달아오른 코비는 후다닥 도망쳐 버렸다. 그래 봐야 먼저 돌아간 것일 뿐이지만.
“으아아아! 그게 아니에요! 하지만 나도 20살이고! 한창이잖아요! 아아아!”
그의 뒷모습을 한심한 듯 쳐다보던 보리스가 캐롯을 탓했다.
“넌 왜 우리 요리사를 울리고 그래.”
“으히히, 미안미안.”
그 어른스러운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양이 웃음으로 캐롯이 손사래를 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길가를 걷는데 레나가 부쩍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걸 눈치챈 지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말했다.
“퇴근 시간이긴 해도 주변에 사람이 좀 많은 것 같지 않아요?”
그의 말대로 도시 주변을 거니는 사람이 꽤나 많다. 대체로 여행복 차림의 외지인이 많이 보인다.
“그거 마도사 오토마톤이 쳐들어와서 사철을 잔뜩 남겼다는 소문이 퍼져서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라더라. 청동문을 가진 도시끼리는 연결되어 있으니까.”
토스트의 말에 애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확실히 청동문 설치 전에 비해서 사람들끼리 왕래가 잦아진 것 같아. 레나는 싫어하지만.”
“시, 싫은 건 아니야······.”
커다란 몸에 비해 조그만 레나의 목소리가 오랜만에 사람들의 귓가에 울린다.
하하 웃음 지은 캐롯이 고개를 돌렸다.
“그렇네, 사람들이 많이 오가면 좋지. 그러고 보니 크랭크는 내내 통신이 어쩌고 하던데.”
“맞다. 봤어? 엘프들은 개인 통신 장비를 가지고 다니더라고. 파티와 공여해서 요긴하게 쓰는 모양이야.”
토스트의 이야기에 캐롯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 정말? 우리도 엘프가 있는데 물어봐야겠다!”
공방으로 돌아온 캐롯은 당장 트리스타를 찾아서 통신 장비에 관해 물어보았다.
“있습니다.”
“억! 정말? 그런데 왜 보여주지 않았어?”
“제가 가진 것은 상부와 연락을 취하기 위한 것이지 개인 이동 통신용이 아니에요.”
“음? 그럼 다른 엘프들이 들고 다닌다는 건?”
요즘 공방 생활에 꽤 익숙해졌는지 트리스타는 작업용 앞치마와 여러 개의 주머니가 매달린 벨트를 허리에 매단 채 작업대의 서랍을 뒤적였다.
“그건 엄밀히 말하면 위법입니다. 귀가 어두운 인간 동료들을 위해서 어르신들이 몰래 가지고 나가시는 거죠. 편리하거든요.”
먼저 돌아와 검을 손질하고 있던 아리에테가 번쩍 고개를 든다.
“종족을 불문하고 나이가 들면 다 그렇게 애들처럼 억지를 쓰게 되는 건가?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누가 뭐래? 갔던 일은 어떻게 됐어? 무슨 용사 훈련소에 대한 거였지?”
아리에테는 전에 수도에 보낸 편지의 답장으로 사람이 찾아와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고 온 참이다.
그녀는 숫돌로 갈아 날을 세운 칼날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접수와 인성 평가, 뒷조사까지 아이베크 가문에서, 우리는 그쪽에서 보내주는 말썽꾸러기들을 교화시키면 된다. 당장은 이 정도다. 문제점은 일을 진행하면서 그때그때 수정할 생각이다.”
“오호, 일하면서 그거까지 괜찮겠어?”
손을 멈춘 아리에테가 짧은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많이 기댈 것 같아. 부탁할게.”
“오! 콱! 맡겨주셈!”
슬쩍 웃어준 아리에테는 다시 물었다. 이번엔 꽤 심각하다.
“그래서, 네 몸은 언제쯤?”
“그건 크랭크가 알아서 할 일이지. 크랭크 어디 갔어? 누구 본 사람?”
다들 고개를 저었다.
“저는 방금 왔어요.”
“내가 왔을 때는 없었다.”
“얼래? 투나도 없네?”
캐롯의 말에 아리에테가 대답했다.
“투나와 샤를은 외출했다. 만날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요즘 바쁜 것 같더군.”
“오오! 사회성 갑! 투나!”
그런데 아무도 크랭크의 소재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또 주인님 찾아 삼만리 해야 하나 싶을 때쯤 그가 돌아왔다.
투구에 팬티만 입은 알몸으로.
“후우우우!”
긴 한숨과 땀으로 번들번들한 울퉁불퉁한 몸에서는 하얀 증기가 무럭무럭 솟고 있었다.
그 꼴을 본 공방의 여자들이 기겁했다. 이미 몇 번 본 엘프 트리스타도 도무지 저건 익숙해지지 않았다.
“으악! 너는 수치심도 없느냐!”
“읍!”
대답 대신 우람한 포징, 움찔거리는 대흉근을 보고 소름이 돋아 버리는 여자들이었다.
더 놀라운 건 그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피부가 하얀 근육 덩이가 머리에 구멍 뚫린 밀가루 주머니를 뒤집어쓰고 뒤따라 공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으악! 하나 더 늘어났어!”
부엌에서 큼직한 전용 물통을 꺼낸 양철 거인이 말했다.
“오랜만의 운동이었어. 기분 좋은 땀이다. 어서 수분을 보충하자.”
“흐흐흐! 후후후!”
여자들의 끔찍한 시선에도 불구, 덩달아 들어온 그의 친구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실실 웃고 있다.
캐롯이 그를 가리키며 물었다.
“주인님 운동하고 왔구나. 저건 누구야?”
“아, 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