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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29화 (229/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협상! 229 >

다들 사레나의 활약이 인상 깊었던 탓인지 이후로 아르곤에서는 마도사의 삐죽 모자가 한동안 금지 품목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하얀 방열 가발을 소지한 오토마톤은 장난으로라도 그것을 쓰지 말 것.

혼자서 도시를 습격한 마도사 인형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뒤늦게 도착해 아르곤 영주 저택의 복도를 걷고 있던 필림 장로가 중얼거렸다.

“제재로 변변찮은 통신 수단도 가지지 못했을 텐데. 어찌 그리 빠를까?”

“입소문이죠. 청동문이 있잖습니까.”

필림 장로의 얼굴이 우거지상이 되었다.

“안타깝군. 나름대로 괜찮은 판단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잘못이야.”

“아닙니다. 중요한 고객들과 괜한 갈등을 빚는 것보다는 났습니다. 장로회에서도 별다른 말은 없었잖습니까.”

연락을 받고 방주 도시 아르곤에 내방 한 필림 장로는 짧은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회담장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아르곤 영주와 더불어 드워프 연합에서도 나와 있었다.

“쿠르프 님이 대리로 나오신 겁니까?”

“그래, 빨리 끝내자. 내가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신경이 날카롭다. 이봐, 처녀. 커피 좀 내려주시게.”

자리에 앉은 필림이 덧붙였다.

“당분이 떨어지면 신경이 곤두서기 마련이니 설탕을 충분히 타도록 부탁드리오.”

“뭐가 어째!”

엘프 장로의 주문에 메이드가 공손히 허리를 숙이더니 즉석에서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회의는 아르곤 영주의 주선으로 시작되었다.

먼저 대량의 사철.

달달한 커피를 후르릅 마시던 쿠르프는 짧게 말했다.

“전량 매입하고 싶다. 그리고 지질 조사도 같이 허가해 줬으면 좋겠군. 그렇게 많은 사철이라니, 분명 광맥이 있을 거야.”

“그래도 저희 땅에서 나온 거니 어느 정도는 남겨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좋아. 너희가 원하는 만큼 빼고, 나머지는 다 가져가고 싶다. 양질의 철 가루라서 제련할 필요도 없어. 바로 녹여서 두들기면 될 정도야. 매입 금액은 따로 다시 협상하지.”

드워프의 거래는 대체로 시원시원했기에 역시 며칠 동안 잠을 못 자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긴 영주도 기뻐했다.

“다음은 그 문제의 오토마톤입니다만.”

“그건 우리가 가져가고 싶소. 실물을 확보했다고 하던데. 어디에 있습니까?”

눈을 감은 영주가 박수를 쳤다.

짝짝.

그러자 커다란 수레에 실린 오토마톤의 잔해가 회담장으로 들어왔다.

“오오!”

“이게 그!”

엘프, 드워프 할 것 없이 기술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석에 앉은 데오 아르곤 영주가 깍지 낀 손에 피로에 지친 턱을 올렸다.

“우리 측 모험가에게 악감정을 가진 마도사가 만든 오토마톤이라고 하더군요. 대략적인 내용은 앞의 보고서를 참조해 주십시오.”

고르곤의 요청도 있었고, 사실 사레나의 몸체는 여기 오기 전에 철야로 조사가 끝난 참이었다.

다만, 해석 결과는 시원찮았다.

마녀는 제쳐 두고라도 방주 도시의 두뇌 집단이 잘 모르겠다고 할 정도면 결국 애물단지에 불과, 아르곤 영주는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얼른 팔아치우기로 했다.

직접 파손된 오토마톤의 실물을 살피던 필림 장로와는 별개로 준비한 보고서를 읽던 보좌진이 말했다.

“장로님, 목격자의 증언과 일치합니다. 이 자동 인형은 마력수정폭탄의 직격을 버텨냈습니다.”

인간들이 엘프의 마력수정석을 데드 카피하려다 만들어진 폭탄, 그 위력만큼은 엘프들도 인정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걸 버텼다고?

데오 영주의 눈빛이 빛난다.

“이것은 그 자체로 기술의 보고입니다. 이제 협상을 시작하시죠. 뭘 주시렵니까?”

고개를 든 필림 장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전에, 이 마도사 인형을 격퇴한 병기에 대한 이야기부터 좀 해봅시다. 그건 뭐요? 소형 마력포라는 정보가 있었습니다만.”

마을의 체류 중인 엘프들도 이번 전투에 많이 참여했기 때문에 당연히 전체 상황을 그 눈으로 지켜보았다.

영주는 그것도 이미 계산해 놓았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우리 모험가들이 찾아온 용사의 유산입니다. 정확히는 마왕에게 대적했던 용사 파티의 무장이지요. 거기 보고서에도 적혀 있습니다.”

몇 장의 보고서를 넘기던 보좌관이 거들었다.

“용사의 자동 인형, 오롤의 에너지 소드, 통칭 빛의 검. 하지만 이런 대출력 에너지 병기는 대량 살상 무기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제재 품목입니다.”

코앞에 두 손을 마주한 영주는 고개를 조금 숙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물건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갖고 싶다면 아르곤 왕성에 문의하십시오. 왕성의 허가가 있다면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

대단히 담담히 말하는 이유는 그가 이미 복제품을 완성해 놓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개 영주가 아니라 국왕과의 협상으로 용사의 무장을 양도받으려 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협상의 요지가 될 거다.

국왕님과 그 주변이 병신이 아니라면 괜찮은 대가를 끌어내겠지.

뭐가 좋을까, 통신?

어쩐지 신이 난 영주는 만면에 웃음꽃을 띄우며 엘프들을 바라보았다.

* * *

너구리와 구렁이의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시각, 성내의 마법 상점 마녀 공방에서는 경계 근무 교대를 마치고 복귀한 캐롯과 아리에테가 잠시 들러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후르릅.”

선 채로 찻잔을 든 여기사가 화사한 꽃향기를 음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좋군요. 찻집을 내십시오. 자주 들르겠습니다.”

케이스 점장이 후후 웃고 있다.

벽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있던 캐롯이 말했다.

“얼추 상황도 마무리된 것 같으니 이제 내 몸 돌려받아야겠어. 아직 거기 있지? 조만간 찾으러 갈 거야. 그 말하려고 왔어.”

“왜죠, 좀 더 쓰지 않고? 전투력만 놓고 보면 요즘 기성품 못지않을걸요?”

“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만 꼽으라면 이 몸은 역시 너무 커.”

갑자기 아리에테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습니다! 너무 커서 같이 자기 불편합니다. 게다가 어찌 된 일인지 안고 있어도 잠이 오질 않아요.”

사철 수거와 농지 복구 작업 때문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 아리에테의 불면증이 다시 나타났다.

그래서 요즘 그녀는 크랭크가 만들어 준 캐롯 인형과 투나의 수면제에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말을 하다 말고 뭔가를 알아차린 캐롯이 케이스를 보면서 물었다.

“케이스지? 고르곤은?”

“장시간 링크 상태로 계셔서 피곤하신가 봐요. 지금 주무세요.”

“잠자는 숲속의 마녀네.”

케이스는 싱긋 웃기만 했다. 아리에테의 찻잔을 슬쩍 확인한 캐롯이 몸을 돌렸다.

“이제 가볼게, 지금쯤 크랭크랑 투나도 깨어났을 테니까. 하여튼 말 좀 전해주삼.”

“살펴 가세요.”

손을 흔드는 메이드 아가씨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인 아리에테가 앞서가는 커다란 캐롯의 뒤를 따랐다.

키만 커졌을 뿐인데 분위기가 달라진 느낌이 강하게 든다.

내가 아는 캐롯이 아닌 것 같아.

고개를 들고 곁을 걷고 있던 아리에테가 캐롯을 보고 물었다.

“모자는? 로마니에게 받은.”

“그건 로나에게 줬어. 시장에서 산 같은 모양의 가품이거든, 가끔 꺼내 보면서 위대한 모험가와의 추억을 곱씹을 물건은 오래오래 보존해야지. 반대로 로나는 이제 그 모자로 나를 기억하겠지. 후흣!”

어른이 된 캐롯은 같은 여자가 봐도 반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갑자기 그윽한 얼굴이 된 아리에테가 캐롯의 옷깃을 붙잡았다.

“나는 너를 추억에 묻어두고 싶지 않다. 그러니 너는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다오.”

걷다 말고 멈춰 서 고개를 돌린 캐롯이 멍청한 얼굴을 했다가 버럭 도끼눈을 떴다.

“악! 그런 말하면 안돼! 사망 플래그야!”

“헉! 그런가? 어, 어떻게 해야 풀리지?”

둘은 호들갑을 떨면서 그렇게 공방으로 돌아갔다.

철야를 마치고 기절해 있던 크랭크는 깨어 있었고, 투나는 아직도 한밤중이었다.

“뻐근하군.”

낭만 강도단과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습격의 긴장 속에서 복귀, 도착해서는 요격 준비까지 하느라 수일간 쉬지 못했던 요 며칠간의 상황을 크랭크는 그렇게 피력했다.

의자를 하나 끌어와 침대 곁에 앉은 캐롯이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딴에는 게으름을 피우는 중인지 여전히 침대에 앉아 있던 거인이 고개를 돌렸다.

머리에는 투구 대신 잘 때 쓰는 수면 주머니를 뒤집어쓰고 있다. 더불어 거기에 매달린 리본과 각종 자수, 꽃 장식은 캐롯의 솜씨.

“왜?”

“왜긴! 사레나 뜯어보고 온 이야기해 줘야지! 궁금하잖아!”

사레나의 조사에 고르곤은 조수로 크랭크와 투나를 불렀다. 그래서 철야로 붙들려 있었던 거고.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크랭크가 눈을 가늘게 떴다.

“트리스타는?”

“어, 필림 장로님한테 인사하러 가서는 아직 안 왔어.”

수면 주머니를 뒤집어쓴 머리를 끄덕인 크랭크는 공방의 문까지 닫으라 말하고는 보고 온 것을 들려주었다.

다리를 꼰 채 의자에 앉아 팔짱까지 한 캐롯이 얼굴을 쑥 내민다.

“리치? 그 언데드 마법사 리치?”

“맞다. 고르곤의 말로는 리치가 되는 방법을 응용해서 영혼과 마력, 생명력을 전부 뽑아서 오토마톤에게 심은 거라고 하더군. 이런 방법이 있는 줄은 몰랐다며 아주 좋아하던데.”

같이 듣고 있던 아리에테가 끼어들었다.

“마법은? 그건 어떻게 쓴 거지? 아예 다른 몸이잖은가.”

“몸체에 마법 주문이 잔뜩 새겨져 있었다. 다른 나라 마법사 중에는 몸에 문신을 새겨서 마치 스크롤처럼 사용하는 자들이 있다고 해. 그걸 응용한 거 같아.”

캐롯이 눈을 땡그랗게 떴다.

“오오? 그럼 나 같은 오토마톤도 그렇게 하면 마법 펑펑 쓸 수 있는 거 아냐?”

“나도 같은 걸 물었지. 결론은 영혼이 없어서 안된다고 하더라.”

캐롯은 실망했다.

“엥, 좋다가 말았네.”

아리에테는 자기 얼굴을 가리켰다.

“잠깐만, 문신만 새기면 아무나 마법사가 될 수 있는 건가?”

“바보도 안된다고 하더군.”

“크으으래에에엥크으으읏!”

눈썹을 세우고 분노한 아리에테가 크랭크의 등짝을 철썩철썩 때리는 소리에 투나가 잠에서 깼다.

“으아암······.”

“오! 투나 깼드랬어?”

“우, 음.”

잠에서 깬 투나가 입을 우물거리자 이제 완전 전용 메이드가 된 샤를이 뜨거운 밀크티를 만들어서 가져다준다.

크랭크도 같은 것을 받았다.

머리에 쓴 수면 주머니의 입 부분에는 지퍼가 달려 있다. 그걸 열고 후르릅 밀크티를 마신 크랭크가 마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력수정폭탄의 위력마저 버텨내는 그 방어막은 어떻게 한 것인지 알아냈어.”

캐롯과 아리에테의 얼굴이 환해졌다.

“오오! 정말?”

“음, 다음에 실증을 거쳐서 너희들에게 적용해 보자.”

으헤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캐롯이 손을 번쩍 들었다.

“맞다! 그전에 내 몸, 원래대로 갈아 끼우고 싶은데.”

“왜? 기왕 한 것이니 조금 더 있지.”

캐롯이 커다란 손바닥을 쥐었다 펴더니 말했다.

“크랭크, 나는 네 기분을 알 것 같아. 이렇게 큰 게 마냥 좋은 건 아니더라.”

“크, 크고 아름다운 으음······.”

잠이 덜 깨 이야기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한 투나의 중얼거림에 캐롯이 킥킥 웃는다.

크랭크도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차피 빌려 온 것이니까. 알았다. 다음 주쯤 원래 몸으로 바꾸도록 하자.”

“오우!”

캐롯이 신나게 손을 들었고, 드디어 불면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아리에테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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