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복수! (3) 227 >
익숙한 목소리들, 갑작스러운 외침에 고개를 돌리자 눈에 익은 강도단의 이동 가옥과 절친한 이웃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
폭발에 휘말린 사레나가 떨어진 곳은 성벽을 지척에 둔 농지 주변의 공터, 강도단의 이동 가옥이 억류된 곳이었다.
“사레나 선생님!”
애들까지 고개를 내밀자 오토마톤 사레나의 시선이 흔들린다.
갑자기 짧은 시간 사람들과 함께했던 추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강도단 주제에 친절했던 웃긴 사람들과 나쁘지 않은 사회성을 보여준 몬스터들, 그들과 함께한 유쾌하고 억척스러운 나날,
주마등, 주마등이 보인다.
내내 집 안에 숨어 있다가 소란에 놀라 고개를 내밀었던 사람들이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왈칵 눈물을 머금었다.
“사레나다! 사레나가 왔어!”
억류된 이동 가옥의 창문으로 사람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마도사의 모자를 눌러쓴 검정색 오토마톤이 팔 하나를 잃은 채 만신창이가 되어 서 있다. 처녀들이 울먹였다.
“우릴 구하러 온 거야? 그런 몸이 되어서······!”
안에서 그들을 감시 중이던 경비대원들이 롱소드를 뽑아 들고 웅성대는 사람들을 막아섰다.
“물러서시오! 위험하니 안쪽으로 들어가라고!”
“당신들이야말로 비켜요!”
“잠깐 밖에 내보내 줘!”
“집에 보내달라고!”
이동 가옥은 여러 집을 한데 묶어 놓은 연립 주택이라 거주하는 인원들이 꽤 많았다. 그 집 안에서 갑작스러운 고성과 몸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기들이 한때 자랑으로 여기던 인형 병기가 만신창이가 되어 찾아왔다. 이것을 희망으로 해석한 사람들의 행동력은 무서울 정도였다.
이 와중에 멍청히 서 있던 사레나가 기묘한 짓을 시작했다.
찌이익-! 퍼석! 뜨드득!
남아 있는 왼손으로 전투복 상의를 찢어낸 그는 가슴 장갑판마저 뜯어내고 내부에 팔을 집어넣어 휘저었다.
난데없는 자해의 이유는 그 손아귀에 쥐어져 나온 마력석 때문.
가슴속에서 푸른색으로 빛나는 구슬을 한 움큼 뽑아낸 사레나는 이제 그것을 엄지손가락으로 튕기기 시작했다.
타다다닥-!
날아간 구슬은 이동 가옥의 지붕과 벽에 박혀 들더니 삽시간에 뿌리를 내려 버렸다.
빠드드득!
남은 마력석을 바닥에 쫙 흩뿌려 버린 사레나는 하나 남은 손으로 수인을 긋더니 말했다.
“제가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 당신들의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로, 세이건 두목과 코볼트 요크에게 안부 전해 주십시오.”
딱-!
손가락을 튕긴 사레나가 말했다.
“워킹 캐슬, 사레나의 움직이는 성, 발진합니다.”
트드드드득-! 뜨드득! 콰지직!
노획한 이동 가옥은 3채, 그 3채의 이동 가옥을 이루고 있는 각종 잡동사니가 기괴하게 움직이더니 다리 같은 것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으아악?!”
“뭐야? 뭐야!”
“저 녀석이 뭔가 했다! 빨리 한곳으로 모여!”
기둥이 뽑히고 벽이 옮겨지는 놀라운 상황도 잠시, 이동 가옥은 마치 바다의 꽃게처럼 8개의 기괴한 다리가 생겨났다.
쿵, 쿠쿵, 쿠쿠쿵! 타다다닥!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이동 가옥의 다리는 바퀴를 매단 채로 지면을 미끄러지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집 안, 서둘러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사람들이 안타까움과 고마움을 담아 외쳤다.
“사레나-!”
홀로 남겨진 사레나는 머리에 쓴 모자를 벗어 손에 든 채 흔들고 있었다.
안녕히.
* * *
“으억?! 징그러! 저게 뭐야?!”
쿠콰콰콰콰!
맞은편에서 게처럼 마구 다리를 놀려서 달려오는 이동 가옥을 보고 캐롯이 기겁했다.
어찌나 빠른지 이내 그 집들은 캐롯이 있는 곳을 지나쳤다. 그리고 지나치는 순간 문이 벌컥 열리더니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몸을 내밀었다. 내기 때문에 포로 감시역으로 자원한 리모였다.
“아니 씨발-!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아아!”
집에 다리가 붙어 달리는 어이없는 상황, 어지간하면 놀라지 않는 리모도 버럭 화를 내며 욕을 해 버렸다.
캐롯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야! 바보야! 어디 가!”
“나도 몰라-!”
거리가 벌어지면서 목소리도 멀어지고 있다. 손나팔을 만든 캐롯이 외쳤다.
“상황 봐서 탈출해!”
“······!”
쿵쾅쿵쾅-!
뭐라고 외치는데 이제 소리에 묻혀서 잘 들리지도 않는다.
“내 참! 이게 무슨 일이래?”
서둘러 몸을 돌린 캐롯은 저쪽에서 이미 전투 중인 울파를 도와 사레나의 요격에 참전했다.
챙챙!
“으랴! 캐롯 등장!”
훙훙훙-! 촤르르르르륵!
머리 위에서 돌리던 쇳덩이가 날아갔다.
쾅-! 퍼석!
여러 차례의 전투와 폭발을 버텨내느라 사레나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 날아오는 캐롯의 공격을 피하지도 않고 바로 몸으로 받아냈다.
날아온 철구가 오른쪽 가슴에 적중하자 장갑판이 다 깨져 날아가고 내부 기관이 훤히 모습을 드러냈다.
비틀거리던 사레나는 마도사의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크흐흐, 고맙구나. 한결 꺼내기 쉬워졌어.”
사레나가 남은 왼팔을 가슴 안으로 집어넣어 마력 엔진을 뽑아냈다.
뜨드드득-!
동력선에 연결되어 여전히 작동 중인 마력 엔진은 환한 푸른빛을 발했다.
그걸 본 캐롯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지 말고 항복해! 친구들 다 찾아서 돌려보냈으면 됐잖아! 자살이라도 할 셈이야?! 분풀이는 그 정도면 됐잖아요!”
“인형이 사람의 무엇을 알겠느냐, 이대로 너희들을 없애고 나도 죽겠다.”
찌이잉-!
사레나의 눈에서 빛이 번쩍이자 덩달아 손아귀에 쥐어진 마력 엔진도 빛을 발했다.
“아이언 샌드 캐슬.”
츠츠츠!
밤이지만 달이 떠서 꽤 밝았다.
마지막 주문을 외운 사레나의 주변으로 검은 구름 같은 것이 스멀스멀 솟아오르더니 곧 그를 삼켜 버리고 더욱 몸집을 키웠다.
점점 커지는 칠흑의 구름 덩어리를 올려다보던 캐롯의 얼굴은 엉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사람은 개뿔! 너는 그 모양을 한 몬스터야! 이 괴물아!”
휘리릭! 퉁-!
그때 하늘에서 붉은색 신호탄이 솟아오른다. 상황을 지켜보던 성벽에서 경고를 보낸 것이다.
울파가 외쳤다.
“철수!”
“불꽃 퇴근!”
캐롯과 울파가 와다다 도시 성벽으로 도망쳤다.
잠시 후 그 검은 그림자의 정수리로 2발째의 맥주통 미사일이 탑어택으로 떨어져 내렸다.
꽈으르르르릉! 쿠구구구구-!
성벽 인근에서 폭발한 마력수정폭탄의 위력은 가히 절륜했다. 검은 그림자가 모여드는 공터를 날려 버린 것도 모자라 주변 농작물도 다 휩쓸어 버렸다.
수확의 계절을 손꼽아 기다리던 영농조합 길드 사람들이 보았다면 기절할 모습이었다.
와다다다 달려서 성벽 위로 올라간 캐롯이 요철로 향했다.
“어때요? 으악! 아직 모여들잖아?!”
보고 있던 모험가가 외쳤다.
“마법사님! 저게 뭔 것 같습니까?”
“나도 모르겠어요! 엘프라면 아실지도!”
모두가 쳐다보는 가운데 붉은색 머리를 가진 엘프 여자 하나가 대표로 얼굴을 구겼다.
“너희들은 엘프를 대체 뭘로 보는 거냐! 우리도 몰라!”
뒤따라 올라온 울파가 말했다.
“주문명 아이언 샌드 캐슬을 확인.”
마법사들은 고개를 저었다.
“들어본 적 없어?”
“몰라! 나는 얼음 전문이라고!”
성벽 밖에서 계속 자라는 검은 그림자를 보고 잘생긴 얼굴을 마구 일그러뜨린 제3경비대장이 고개를 돌리고 외쳤다.
“대도시 방어 스크롤 준비! 그리고 비상사태에 따라 제3경비대장 권한으로 용사의 검 긴급 사용!”
용사의 검?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다만, 몇몇 사람이 그걸 알아듣고 설명했다.
“아르곤의 파수꾼 알지? 그 사람들이 몇 년 전에 마왕령에 들어갔다가 어떤 유적에서 찾아온 거래.”
“어이어이! 거시기한 단어가 속출하는데! 마왕령? 유적 탐사? 거기 출입 금지 구역이잖아!”
“허가받은 대형 파티는 가끔 들어가곤 해! 그만 따져!”
모험가들이 논쟁을 벌이는 사이 경비병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급히 큼직한 상자를 옮겨오고 성문 개폐에 사용하는 동력선도 끌어왔다.
“칼날이 없잖아? 손잡이만 있어.”
열린 상자 주변으로 모여들어 내용물을 들여다보던 모험가 중 한 사람이 뭔가를 알아챘다.
“칼날이 없는, 칼날이 없는? 엇! 이거 설마 오롤의 에너지 소드 아냐?”
“비키시오!”
묵직한 동력선을 끌고 기진맥진한 채 성벽으로 올라온 경비병이 사람들을 물리고 손잡이와 가드만 있는 용사의 검에 동력선을 연결했다.
“이봐, 에너지 소드가 뭐야? 오롤은 또 누구고?”
“책 좀 봐라, 용사전기에 나오잖아. 용사에겐 오토마톤이 있었어. 오롤이라는, 이거 아무래도 그 녀석 칼 같은데.”
몰려든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아니, 그래서 칼날은?”
“거기까지는 나도 몰라! 이봐요! 바이슨 경비대장! 저거 누가 들게 할 거요? 기록에 따르면 오롤은 하드 스킨이잖아. 지금 하드 스킨은 다 나가 있다고!”
“튼튼한 녀석 2대 정도가 동시에 들면 어떻게든!”
바이슨 경비대장은 성벽 위에 올라와 있는 많은 사람과 그들의 자동 인형을 살펴보다가 긴 파란 머리카락에 카우보이 모자를 쓴 오토마톤과 눈이 마주쳤다.
캐롯이 유리구슬 눈동자를 몹시 반짝거리며 두 손을 번쩍 들고 있었다.
“내가요! 내가 할게요! 세상에 용사의 검이라니 이걸 어떻게 참아!”
낮의 브리핑 때 지인에게 특주품 몸체를 받아 와서 이식했다는 캐롯의 이야기를 들었던 바이슨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급하니 어쩔 수 없군. 크랭크, 당신 자동 인형 좀 빌리지.”
아리에테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했지만 크랭크는 선선히 투구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켰다.
“저게 이제 움직이고 있거든요.”
요철 밖에 상체를 내밀고 있던 빨간 머리 엘프 여자가 찡그린 얼굴을 했다.
“아이언 샌드 캐슬이라고? 제기! 마도사 개인이 일궈낸 고유 마법쯤 되나? 저런 건 듣도 보도 못했어, 인간들아! 해치울 수 있겠냐? 뭣하면 지원군 좀 불러 주랴?”
“이거 써보고 안되면 부탁합시다. 캐롯 준비해라!”
“끙차-!”
캐롯이 커다란 칼 손잡이를 붙잡고 들어 올렸다. 과연 하드 스킨 오토마톤용이라서 사이즈가 특대형이었다.
그것을 어깨에 걸쳐 맨 캐롯이 엄지손가락을 든다.
“으헤헤헤! 준비 완료! 매운맛을 보여줍시다!”
요철을 밟고 칼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은 캐롯이 으히히 웃고 있다.
커다란 키, 휘날리는 푸른 방열 가발, 카우보이 모자, 익살스럽게 일그러진 얼굴, 다들 그 모습에 묘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이렇게 보니 땅콩도 좀 멋진데.”
“음, 사람이었으면 반했을지도.”
사람들의 수근거림과는 별개로 캐롯은 앞에서 밀려드는 검은 파도를 쳐다보고 있었다. 중심부쯤에 파란 불빛이 희미하게 비쳐 보인다.
캐롯의 눈이 가늘어졌다.
“에헤, 거기 있구나?”
제3경비대장 바이슨이 외쳤다.
“가격 후 바로 방어벽을 친다! 마력 공급!”
입과 입으로 전해진 명령은 지하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의 팔뚝에 핏줄이 돋게 했다.
철커덩!
묵직한 레버를 밀어 올리자 동력선을 통해 당장 캐롯이 들고 있던 손잡이에서 거대한 황금빛 칼날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높이만 무려 120m
용사의 오토마톤 오롤의 에너지 소드는 대마왕성 격파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공급되는 마력만 충분하다면 무제한에 가까운 블레이드를 뽑아낼 수 있었다.
지금 그 에너지 소드에 연결된 것은 아르곤 마력 발전소의 거의 전체 용량,
찌이잉! 콰아아아!
“호와아아!”
엄청나게 밝은 황금빛 검신이 하늘로 솟아오른 모습을 보던 캐롯은 곧 일그러뜨린 시선을 성 밖으로 돌리고 그걸 뒤로 당겼다. 그러자 방주 도시 위로 솟아오른 빛의 기둥이 크게 뒤로 기울어진다.
“으랴차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