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성능 개량! (3) 222 >
크랭크도 저택으로 들어가고, 혼자남은 캐롯은 팔다리를 휘두르며 아침 체조를 시작했다.
“하나, 둘, 셋넷-!”
가볍게 전신 체조를 하던 캐롯은 문득 여전히 마녀의 저택을 지키고 서 있는 커다란 인형 기사를 발견하고 슬쩍 그들에게 다가갔다.
평소라면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존재들이라 거리를 두는 참이었지만, 지금은 알 수 없는 고양감이 샘솟는다.
“안녕?”
팔짱을 하고 있던 3미터짜리 인형 기사가 투구를 숙인다. 알몸에 뒷짐을 지고 으히히 웃으며 다가간 캐롯이 팔을 번쩍 들었다.
“네가 아메리, 그리고 네가 카노지?”
서로를 바라보던 인형 기사들이 투구를 흔들었다.
“틀렸다. 내가 카노, 이쪽이 아메리.”
“오오! 나, 나 기억해? 캐롯이야. 있잖아. 작은 오토마톤 꼬마.”
하지만 두 인형 기사는 그 이상의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지하 정원을 살필 뿐.
골이 난 캐롯이 주먹질을 해댔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퍽퍽!
“아파?”
퍽퍽!
“아파?”
연신 장갑판을 두들기며 아프냐고 물어보는 캐롯을 가만히 쳐다보던 카노가 드디어 대답했다.
“아프지 않다.”
입을 헤 벌리고 올려다보던 캐롯은 다시 퍽퍽 때리더니 말했다.
“화났어?”
“화나지 않았다.”
퍽퍽!
“어때? 화났어?”
“화나지 않았다.”
퍽퍽!
“화났어?”
같은 짓을 여러 차례 반복하자 무덤덤한 카노의 의식에 변화가 나타났다.
트드득, 끼릭.
몸을 숙이고 검을 뽑으려는 자세를 잡은 카노가 말했다.
“악의적 도발을 감지.”
“우와-!”
두 팔을 든 캐롯이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치자 카노는 다시 자세를 풀고 경계에 열중했고, 캐롯은 그게 재미있었던지 또 찾아와서는 시비를 걸었다.
퍽퍽! 퍽퍽!
“아파? 화났쪄? 화났쪄?”
투구 사이로 드러난 카노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잠시 후, 크랭크와 고르곤이 무장을 찾아 돌아왔을 때 캐롯과 카노는 저택을 빙글빙글 돌며 술래잡기를 벌이고 있었다.
“우와아아아!”
쿵쾅쿵쾅-!
“이 녀석들, 뭐 하는 거니?”
통통 튀어 다니던 캐롯이 외쳤다.
“저 괴물 좀 말려줘!”
고르곤의 명령은 절대적, 추적을 멈춘 카노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 경계를 시작했다.
고개를 숙인 크랭크는 바닥에 엎드려 지친 기색을 흉내 내는 캐롯을 내려다보았다.
방열 가발에서 후끈한 열기를 뿜어내는 캐롯이 히히히 웃으며 중얼거렸다.
“왜 그랬어?
“후우후후, 어어, 글쎄, 갑자기 알 수 없는 고양감과 옛날의 케케묵은 적개심이 버무려져서 말이지. 한 대 때려보고 싶었어.”
“바보들은 항상 신나서 좋겠구나.”
팔짱을 하고 있던 고르곤이 머리를 절절 흔들더니 크랭크가 챙겨 든 길쭉한 가방을 가리켰다.
“어쨌든 무장도 찾았으니 어서 돌아가렴. 너희 도시를 지켜야지.”
“알고 있어.”
옷 대신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마차에 오른 캐롯과 크랭크가 손을 흔들며 아르곤으로 복귀했다.
지하 정원에 나와서 그들을 배웅한 고르곤은 느긋하게 작업실로 향하더니 이제 눈을 감고 잠들어 있는 캐롯의 빈 몸체 앞에서 음후후 웃어댔다.
“이건 내가 고쳐서 좀 가지고 놀아도 상관없겠지?”
“본인이 싫어하지 않을까요?”
내내 조용히 있던 메이드 케이스의 대답이었다.
몸을 돌린 고르곤이 그녀를 향해 말했다.
“그걸 노린 거야. 싫은 사람에게 몸이 주물러지는 느낌. 요 살쾡이에게 느끼게 해줘야지. 하하하!”
* * *
사람이나 동물들은 대부분 수목이 우거지고 수원지가 많은 초원을 선호하기 때문에, 황량한 벌판의 오아시스는 상단이나 여행자들만 가끔 들르는 곳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곳에 많은 수의 기괴한 이동 가옥들이 몰려들었다.
“인원 파악 서둘러라!”
토벌대에게서 겨우 도망치는 데 성공한 강도단이 집결지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
젊은 두목 세이건도 밖으로 나와 동료들을 살피고 사람들의 불평과 불만을 찾아 들었다.
그러다 뒤늦게 도착한 자들로부터 토벌대가 사로잡은 동료와 비전투원들을 데려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받아 온 명단에서 잃어버린 가족과 동료들을 확인한 사내들의 기쁨과 절규가 동시에 이어졌다.
“두목, 어떻게 할까요?”
정리 작업을 얼추 마무리하니 늦은 밤.
오아시스 근처의 큼직한 돌덩이에 걸터앉아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세이건이 물었다.
“그 녀석은요? 우리 마법사.”
“사레나는 실종 상태입니다. 전투 도중 어디론가로 날아갔다는 말밖에는.”
“상태가 좀 이상하긴 했어요. 철천지원수를 본 듯하던데요.”
“그 녀석은 처음부터 좀 이상했어. 사람도 막 패고.”
한 사내가 손을 든다.
“그래도 있으면 든든하잖습니까. 수색대를 조직할까요?”
“병력도 얼마 없는데 그러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네요.”
몸을 바로 한 세이건은 깍지를 낀 채 이제 자기만 보고 있는 동료들을 살펴보았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럴 때마다 기회를 노리고 자취를 감추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잘 따라오는 사람도 있었다.
이번에도 꽤 많은 인원이 빠졌다.
아마 다들 자기 인생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혹자는 딴마음을 품고 숨겨둔 보물 창고를 뒤지러 갔거나.
“그러고 보니 부두목님이 안 보이네.”
강도단원들이 각각 송구스러운 표정과 분노를 표출했다.
“난리통에 어찌 되셨는지······.”
“어찌 되긴! 숨겨둔 돈 쓸어 담아서 자기만 새 출발하려는 거 누가 모를 줄 알고?!”
벌렁 바위로 드러누운 세이건은 어쩐지 웃음이 나와 버렸다.
“하하!”
“두목, 뭐가 그리 웃깁니까?”
세이건은 누운 채로 대답했다.
“그냥요. 함정을 깔아 놓을 줄도 모르고 보물 털러 간 사람들이 웃기기도 하고.”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데려갈 사람을 채로 거르려고 한 나도 웃기고.
“끙차-!”
다시 몸을 일으킨 세이건은 남은 동료들을 살폈다.
눈여겨봐 둔 사람은 역시 대부분 빠졌다.
따라온 몬스터도 약삭빠른 녀석들은 난리통에 벌써 자취를 감춰 버렸고, 약간 모자란 친구들만 잔뜩 남았다.
그나저나 유사 이래 몬스터와 협력하는 인간들은 우리가 처음이지 않을까?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시무룩한 얼굴을 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세이건이 물었다.
“왜 다들 그런 표정하고 있어요? 우리가 쫓겨 다닌 게 어디 한두 번 있는 일입니까?”
“그래도 이제 이런 생활은 싫어요!”
가족을 따라 얼떨결에 강도단원이 된 어떤 처녀의 외침이었다.
두목 세이건도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떻게 할래요? 어디 적당한 곳 찾아서 정착이라도 할까요?”
사람들의 수근거림 속에서 누군가가 손을 든다.
오크였다.
“우리도?”
“오, 물론이지.”
동맹으로 와 있던 오크가 고개를 기울였다.
“어떻게?”
세이건이 대답하려는데 한 사내가 끼어들었다.
“아니! 그전에 잡혀간 사람들부터 구해내야죠!”
“맞소!”
세이건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탈환은 힘들어요. 우리 전력도 많이 소비되었고. 다만, 저쪽에서 협상안을 제시했으니 현재로선 그거 하나 믿고 찾아가는 수밖엔 없네요.”
가족과 동료를 빼앗긴 사람들이 분통을 터트리는 와중에 손을 든 사람이 있었으니 붙잡혀서 강도단의 위치를 술술 불어 버린 레그와 그의 친구였다.
두 사람은 뻔뻔스럽게도 동료들과 합류한 상태에서 입을 싹 닦고 말했다.
“아르곤이라면 잠깐 일해본 적도 있고, 아는 녀석도 많습니다. 제가 협상하러 다녀오죠.”
“오오! 그래 주겠는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레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까 이야기 말인데, 우리 이제 해먹을 만큼 해 먹었으니 강도단은 그만두고 어디 정착해서 농사라도 짓는 게 어떻습니까? 다들 그렇게 살잖수.”
“어엉?!”
“이제 와 무슨 농사냐?! 그런 걸로 저런 돼지 새끼들을 먹여 살릴 수 있겠냐?”
듣고 있던 오크 쿠바가 일족을 대신에 분노했다.
“오크! 돼지! 아니다!”
강도단의 사내들이 당장 험악해져서 서로에게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세이건은 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가 호기심 돋는 얼굴로 말했다.
“농사 좋네요. 배는 곯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런 걸로는 우리 포함 개노답 종족을 뭉치게 할 수 없는데요.”
“사냥이라도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했던 것도 넓은 의미로는 사냥이었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떳떳한 것도 물건만 훔쳤지, 다른 건 안 훔쳤기 때문이잖아요.”
그건 그렇다. 모든 것은 오늘을 위해 깔아둔 밑밥이었다.
속이 시커먼 음흉한 세이건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잠시 입을 다물더니 묘한 표정으로 시선을 들었다.
그는 이제 두 팔을 벌리며 새 인생 판촉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여러분께 기회의 땅 북부 마왕령을 추천합니다. 그쪽 몬스터는 대부분 거칠고 흉악하지만 대신 핵석이 나옵니다. 그건 돈이 되지요. 이제 떠돌아다니는 건 그만두고 근처에 마을을 만들고 정착합시다. 듣기 좋지 않아요? 겉은 무섭지만 가슴만은 누구보다 따듯한 괴물들의 도시.”
듣기는 정말 좋았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모두가 경악했다.
하지만 오크들과 거친 상남자 몇은 오히려 좋아했다.
“기회의 땅! 거기서 마족을 사냥하는 거로군!”
“마족은 전부 여자들뿐이라면서? 오우예!”
“아니아니! 마족이 아니라 거기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거라고요!”
대형 수송 차량을 털던 자들이기 때문에 대형 몬스터 사냥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강한 난제 앞에서 모두는 어쩔 수 없이 협력한다.
세이건은 그 억지력을 기반으로 지금의 불안정한 종족 간의 협력을 계속 이어 볼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 방해 요소가 되는 건 다 쳐내 버렸다. 이런 난리를 통해서.
“시간은 많으니 다들 모일 동안 천천히 생각해 봅시다.”
“나는 좋아! 어디든 못 살겠어! 언제 칼 맞아 죽을지 모르는 떠돌이 강도단보단 좋지!”
“맞아요!”
내내 조용히 있던 여자들도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반응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세이건이 누군가에게 윙크를 찡긋했고, 레그와 그의 친구는 모르는 척 슬그머니 엄지를 들어 올렸다.
* * *
아르곤의 공방에 마차가 도착했다.
크랭크는 갑자기 기력이 다한 나머지 마차에서 비틀거리며 내렸고, 하얀 시트를 뒤집어쓴 여자는 고성을 지르며 그를 부축했다.
“어느새 쪽 빨린 거야! 어느새! 이 마녀가!”
그리고 그 모습을 공방에서 나와 지켜보던 여자들은 질투의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크랭크! 캐롯은 어쩌고 그 여자는 누구?”
“어, 어?”
투나가 먼저 반응했다.
트리스타도 눈을 크게 떴다.
“캐롯? 당신 캐롯인가요?”
머리까지 덮고 있던 시트를 내리자 파란색 방열 가발을 산발한 어른스러운 캐롯의 얼굴이 드러났다.
무표정한 얼굴의 입가가 스르륵 올라가더니 씩 웃음 짓는다.
“오우, 다들 안녕?”
“에에에?!”
공방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갑작스레 커진 키 때문에 아리에테가 고개를 들고 분노했다.
“나보다도 커지다니! 이럴 순 없다!”
반면 투나와 트리스타는 크랭크를 닦달했다.
“대체 어떻게 했어!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