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탕진잼! 218 >
3발을 전부 챙겨 들고 다시 지붕 위로 올라간 캐롯은 전술 주머니가 매달린 복대에서 울파의 것과 같은 철제 슬링을 꺼내 들었다.
“장전!”
“제길-!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네!”
따라 올라온 보리스가 캐롯의 손에 들린 슬링에 수정구를 담았다.
그걸 머리 위로 휭휭 돌리던 캐롯은 차량에 묶여 줄다리기 중인 강도단의 이동 가옥을 노리고 수정구를 날려 보냈다.
하지만 기폭 스크롤은 찢지 않았다.
“다음!”
휭휭-! 탁!
두 번째 마력수정폭탄을 인근에 쓰러진 이동 가옥에 던져 넣은 캐롯은 마지막 3발째로 하늘에 뜬 채로 사방에 불의 비를 뿌려대는 저주받은 인형을 노렸다.
강도들이 저걸 뭐라고 불렀더라?
“사레나-!”
언제부터인가 그것을 자기 이름으로 인식한 마도사 오토마톤이 고개를 돌렸다.
저 아래, 장갑차량의 지붕에 오른 조그만 외팔이 인형이 슬링을 머리 위로 돌리고 있다.
손바닥을 펼친 사레나가 말했다.
“가소롭구나! 겨우 돌팔매질로 이 몸을 어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체인 라이트닝!”
빠자자자작!
슬링을 돌리는 조그만 캐롯의 앞으로 환한 번개의 빛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 앞으로 리프트를 타고 모습을 드러낸 사람이 있었으니, 벼락 전문 마법사 리슐리에였다.
“더블 체인 라이트닝!”
꽈르릉! 짜쟈쟈쟉!
힘껏 내민 양손에서 나무뿌리 같은 번개의 다발이 쏘아져 나갔다.
상공에서 마주한 번개 마법은 곧 서로의 파장으로 상쇄되었다.
“리슈! 엎드려!”
뭘 하려는지 눈치챈 리슐리에가 허리를 숙였다.
캐롯이 도움닫기까지 하면서 있는 힘껏 슬링을 던졌다.
짝-!
마력수정폭탄은 거의 직선으로 사레나에게 날아들었다.
손에 감아 쥔 슬링을 던진 캐롯이 핑거 스냅을 선 보였다.
“나는! 행운의 여신에게 사랑받는 작은 인형! 우리 누구의 운명이 더 질긴지 맞대어 보자!”
딱!
쩡-! 찌이잉! 쿠구구구궁-!
평소라면 동물도 얼씬하지 않는 황량한 벌판에 지금 무수한 사람들과 더불어 오늘만 벌써 3번째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콰아아아!
거대한 빛과 폭음은 엄청난 폭풍으로 뒤바뀌어 주변을 휩쓸었다.
덕분에 아무렇게나 지어져서 구조적으로 불안한 이동 가옥 몇 채는 아예 넘어져 버렸고, 몸을 숨기지 못한 사람들도 모두 공평하게 바람에 굴러다녔다.
“으아아! 날아간다!”
“아무거나 꽉 잡아!”
“저 미친 녀석이이이!”
영원토록 불어닥칠 것 같던 먼지 폭풍이 가라앉자 난장판이 된 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는 캐롯의 얼굴은 여전히 우거지상이었다.
“야! 어떻게! 대체 어떻게! 그걸 버틸 수가 있어! 우리 비장의 수인데! 크랭크가 모아놓은 전 재산인데!”
폭풍에 휘말려 쓰러진 로마니의 차량 운전석, 안전띠에 매달려 있던 크랭크가 투구를 번쩍 들었다.
내 재산?
마녀의 모자를 눌러쓴 검정색 마법사 인형은 여전히 하늘에 떠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적잖이 놀란 것인지, 어쨌든 캐롯의 의도대로 공격은 멈췄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캐롯은 이제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야! 거기 마녀 모자!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너희 애들을 폭사시켜 버리겠어!”
슬링의 탄환 장전을 도왔던 보리스가 기겁했다.
“애들을 인질로 잡은 거냐? 너 그래도 돼?”
확성기를 든 캐롯이 보리스를 쳐다보았다.
아랫입술을 내밀고 울상이 된 캐롯의 얼굴을 이날 처음 본 보리스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이변을 발견하고 외쳤다.
“조심해!”
번쩍!
치이이익!
“으억?!”
경고도 없이 날아든 빛은 캐롯의 왼쪽 다리를 태워 버리고 사선으로 관통해 차량에 구멍까지 내 버렸다.
“캐롯-!”
털썩 쓰러진 캐롯을 보고 보리스가 달려와 그 몸을 바로 세웠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오토마톤 캐롯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다시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이제 이 꼬마 인형은 반쯤 정신줄을 놓은 듯 악랄한 표정으로 웃기 시작했다.
“케헤헤하하하! 어디 한 번 더 써봐! 이번엔 진짜로 너희 애들 그대로 터트려 버릴 거야! 진짜야!”
“아아앙! 으아아앙!”
어른들의 욕심과 자동 인형들의 사투 속에서 아스라이 들리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사람 인형 할 것 없이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사레나 역시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니 넘어진 이동 가옥에서 겁에 질린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비전투원으로 여기고 있던 강도단의, 개척민 마을 사람들의 가족이었다.
그중 울고 있는 아이의 손에 쥐어진 것이 있으니 바로 마력수정폭탄.
반짝이는 물건이 굴러다니면 누구든 그것에 손을 뻗는다.
애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캐롯은 그간 보아온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서 잔인한 함정을 판 것이다.
악마의 인형이 된 캐롯이 도끼눈을 뜨고 웃음 지었다.
기폭 스크롤은 어느새 그 작은 입에 물려 있다.
“하하하! 자! 찢는다? 찢을 거야? 으음?!”
오토마톤이 애들을 인질로 잡고 희대의 협박질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사자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나에게 그런 것은 통하지 않는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없는, 없는, 없는는느느느는?”
말을 더듬던 사레나가 갑자기 비틀거리더니 이윽고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있는 곳을 쳐다보며 혼자서 중얼대기 시작했다.
“아이, 아이, 아이들에게, 미, 미, 미래를, 미래를······! 이놈이? 주도권을 내게 넘겨라!”
2개의 자아가 뒤섞인 상태에서 마도사의 만행에 오토마톤이 반기를 들었다.
사레나는 비틀거리며 꼬마 아이가 울고 있는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으, 으어. 기기긱, 게게게.”
뜻하지 않은 이상 반응에 옳다구나 싶었던 캐롯이 계속해서 외쳤다.
“이걸 어째! 기폭 스크롤은 여기에 있어! 자! 찢는다? 이거 찢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다 죽는 거야! 전부! 미래고 뭐고 없어져! 하하하!”
그리고, 나의 미래 역시.
그 소리를 듣고 사레나가 멈칫하더니 서슬 퍼런 시선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거친 마도사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오토마톤의 중성적이 음성이 흘러나온다.
“지금 당신의 행동은 바르지 못합니다. 가짜 인형이 된 당신에게 기억의 삭제와 설정 초기화를 추천합니다.”
역으로 매도당한 캐롯이 충격을 받은 얼굴을 했다.
하지만 회복은 빨랐다.
으히히 웃음 지은 캐롯은 이제 마음에 담아둔 무서운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나는! 일면식도 없는! 저 애들보다! 내 주인님과! 그 동료들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야! 너는! 선택을 했고! 나도! 선택을 했을 뿐! 자! 이제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시간이야! 어쩔 거야! 나는 각오했어-!”
분노한 사레나가 몸을 완전히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모자의 챙으로 반쯤 가려진 도끼눈을 들었다.
“가짜 인형, 그걸 내놔라.”
모자를 눌러쓴 오토마톤이 다시 스르륵 떠오르자 캐롯이 고개를 돌리고 외쳤다.
“아리에테! 로시난테를 준비해!”
콰창-!
장갑차량의 창문을 깨고 뛰어내린 아리에테가 폭풍에 넘어진 로시난테를 괴력으로 일으켜 세우고 그 위에 올라탔다.
캐롯이 외쳤다.
“보리스! 날 던져줘!”
“망할-! 좀 느긋한 모험은 없는 거냐!”
캐롯을 들고 지붕 끝으로 향한 보리스가 밑의 아리에테에게 캐롯은 던졌다.
두 팔을 앞으로 내밀어 떨어지는 캐롯을 받아낸 그녀는 바로 자동 2륜 차량의 핸들을 잡고 악셀을 눌렀다.
기이이이잉-! 촤아아악!
바퀴가 미끄러지며 차체가 무서운 속도로 질주를 시작한다.
아리에테의 품에 안긴 캐롯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지금 뛸 수 없어. 그러니 네가 내 다리가 되어줘야 해.”
“알겠다!”
뒤돌아본 캐롯이 확성기를 들고 멀어지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지오! 시간을 끌 동안 사람들을 철수시켜! 지금으로는 저 괴물을 못 이겨! 재정비! 재정비를 해야 해! 연락은 신호탄으로 해!”
기이이이잉! 촤아악!
멍청한 얼굴의 사람들을 내버려 두고 로시난테가 벌판을 질주했다.
자리를 바꿔 아리에테의 등에 달라붙은 캐롯이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사레나는 조금 느리지만 착실히 따라오고 있었다.
“좋아, 유인 성공.”
“임시방편이다. 이게 최선인가?”
“내 다리 봐봐, 울파도 한 방에 녹아 버렸어. 정면으로 덤벼선 아스칸도 저걸 못 버텨. 부디 다른 사람들이 대응책을 생각해 내길 바라자. 우리는 혼자서 사는 게 아니니까.”
이야기를 듣던 아리에테가 힐끗 캐롯을 돌아보았다.
팔과 다리를 잃었지만, 희망까지 버리지 않은 사람이 만든 자동 인형이 눈을 깜빡이고 있다.
“그렇군, 알았다.”
아리에테는 사레나를 유인해 황야 벌판을 크게 돌기 시작했다.
한동안 날아서 따라오던 사레나는 2시간쯤 지나자 추적을 멈추고 갑자기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아예 뒤로 돌아앉은 채 내내 감시하던 캐롯이 화들짝 놀라서 다시 확성기를 들었다.
“야! 어디 가!”
뒤를 힐끔 돌아본 아리에테가 차량을 세우더니 나침반을 살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우리 왔던 곳과는 다른 방향이다.”
기폭 스크롤을 꺼낸 캐롯이 그걸 팔랑팔랑 흔들며 말했다.
“애들 목숨이 걸린 일보다 중요한 건 뭐지?”
“나는 마법은 잘 모르겠지만 해를 지우고 파괴 광선을 쏴대는 데다 하늘까지 날아다니는데 연비가 그리 좋을 것 같지는 않아. 리슐리에도 범위 공격 한 번 쓰면 기진맥진하잖아.”
“말 되네. 혹시 모르니 어서 돌아가 보자.”
고개를 끄덕인 아리에테는 자동 2륜차를 돌리더니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한참 후 다시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정리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부서진 잔해에서 사람들을 구출하고 부상자를 치료하는 한편 부서진 차량의 수리도 서둘렀다.
여기는 황야 한복판, 이동 수단이 없으면 정말로 조난이다.
이 와중에 마법사들은 한목소리로 대토론 중이었다.
“그 광선 공격은 듣도 보도 못한 거예요!”
“본 적은 없지만 디스인터그레이트가 아닐까요?”
“아냐! 그건 태양 빛을 매개로 사용하지 않아.”
보다 못한 모험가가 외쳤다.
“이봐! 지금 그런 거 따질 땐가!?”
“아니! 뭔지 알아야 대비책을 세우죠!”
맞는 말이었기에 사내는 쯧 소리를 내면서 팻말을 두들겨 박기 시작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글을 본 토벌단 소속 오토마톤은 반드시 아르곤 모험가 길드로 돌아올 것.
귀중한 장비를 잃어버린 것 때문에 남자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뭘 하고 계십니까?”
“보면 모르냐? 애들이 이거 보고 찾아오라고 그러는 거······.”
문득 고개를 돌린 곳에는 그의 오토마톤 에밀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망치를 휙 던지고 와락 껴안은 사내가 펑펑 울어댔다.
“에밀! 돌아왔구나! 으엉엉!”
“왜 우십니까?”
“네 할부금 때문에 그런다! 크흑!”
주인에게 안긴 오토마톤 에밀은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돌아왔구나!”
고장 난 차량을 고치고 있던 동료들이 복귀한 아리에테와 캐롯을 반겼다.
그들의 귀환에 크랭크는 물론 책임자들이 대부분 몰려들었다.
로마니도 있었다.
마법사 오토마톤이 추적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는 말을 듣고 이런저런 가설을 내놓다가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 건 돌아가면서 얼마든지 생각해 볼 수 있어. 일단 차량의 수리가 급하다. 차 못 고치면 여기서 못 나가! 못 나가면 죽어!”
고개를 끄덕인 사람들이 다들 수리 중인 각자의 차량으로 향했다.
크랭크는 자신의 공구와 장비를 전부 개방해서 작업을 도왔다.
캐롯이 돌아가는 로마니를 불러 세웠다.
“로마니 아저씨.”
“음?”
“울파는요?”
로마니는 대답 대신 등에 멘 가방을 두드렸다.
고개를 끄덕인 캐롯이 다시 물었다.
지금 캐롯은 팔과 다리가 하나씩 없어서 제대로 서지도 못했기 때문에 아리에테에게 안겨 있었다.
“그 녀석 어떻게 생각해요? 우리를 아는 사람 같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