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외나무다리! (1) 216 >
자켓에 매달린 리본을 잡아당겨 뜯어내자 트리거로 연결된 마법이 발동했다.
창가에 서 있다가 강렬한 섬광을 맞은 인간 몬스터 혼성 강도단은 눈을 감은 채 아무렇게나 자동 석궁을 난사했고, 그 틈에 창문으로 뛰어든 캐롯은 잠시 후 끔찍한 다듬이질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뚱땅뚱땅-!
더불어 방어가 뜸해지자 다른 오토마톤들도 창문이나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주인님들을 따라다니며 어디선가 한번쯤 보았던 장면을 마주했다.
잔뜩 겁을 집어먹고 방구석에 모여 앉은 여자와 아이들의 모습과 그들을 지키고 선 오크, 으레 보아왔던 사로잡힌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자동 인형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곧 구해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 저리 가!”
방 안에 몰려 앉은 여자들이 물건을 던지며 저항했다.
발걸음을 떼던 자동 인형은 이 알 수 없는 상황에 머리를 기울였다.
“퀘에에에!”
그때 문지기 오크가 커다란 도끼를 휘둘렀다.
그걸 재빠르게 피한 인형이 뒤로 물러서는데 이번엔 문이 열리면서 강도단의 위법 오토마톤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아아! 왔어!”
“다행이야! 빨리 저 녀석을 쫓아내!”
고개를 끄덕인 강도단의 전투용 오토마톤이 고개를 돌리고 검을 들었다.
그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커다란 안도감이 떠올랐다.
내가 아니라?
에밀이라는 이름의 모험가의 오토마톤은 이제 분노와 시기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검을 마주 들며 시선을 올려 떴다.
도전적인 시선이 드러난다.
“당신이 받는 관심과 사랑은 우리의 것입니다. 돌려주십시오. 가짜 인형.”
챙-!
좁은 공간에서 칼을 든 오토마톤끼리의 혈투가 시작되었다.
모험가 오토마톤들의 내부 진압이 차근차근 진행될 무렵, 이때쯤 캐롯은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면서 갖은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뚱! 땅! 뚱!
“커억!”
“으악!”
“누, 누가 좀 저걸! 악!”
조그만 꼬마가 벽과 천장을 박차고 뛰어다니며 방망이를 휘두르는데 도무지 잡을 수가 없다.
참다못한 사내가 자동 석궁을 주워 들었다.
“에라이!”
투투투투투퉁!
잠깐 천장에 달라붙은 캐롯이 고개를 들고 외쳤다.
“와! 돈 많은가 보다! 자동 석궁을 다 하나씩 가지고 있네?”
“이놈이!”
당황한 남자가 고개를 들고 위를 올려다보는데 캐롯의 정수리가 그의 안면을 향해 로켓처럼 떨어져 내렸다.
쾅-!
“쿠누욱?!”
캐롯의 수직 박치기에 그대로 안면을 강타당한 강도는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쓰러졌다.
머리에 큼직한 혹을 매단 사내들이 볼품없이 나뒹구는 곳에서 방망이를 들고 몸을 일으킨 캐롯은 마냥 신나게 웃어댔다.
“아악하하하! 신난다! 자! 다음 가자!”
덜컹거리며 달리는 건물을 한 바퀴 뛰어다닌 캐롯은 이제 다음 집으로 넘어가서 강도단을 패기 시작했다.
떵-!
“아이코! 머리야!”
“케엑헤헤헤!”
비명 소리를 듣고 잠깐 상황을 살피러 나간 남자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
그 머리에는 커다란 혹이 달라붙어 있었다.
여자들이 아이들의 입을 가로막았다.
“소, 소리 내지 마.”
집안에 모여 있던 비전투원들이 벽에 비친 그림자와 기괴한 웃음소리에 오금을 저렸으나, 정작 모습을 드러낸 것은 조그만 소녀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 아이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저 음흉한 웃음, 또래 아이들은 절대로 저렇게 웃지 않는다.
겁을 집어먹은 꼬마가 울음을 터트렸다.
“으앙! 엄마-!”
“엥? 뭐야? 여긴 애들이 참 많네?”
겁에 질린 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지.
이 사람들은 사로잡힌 사람들이 아니야.
쓰러진 남자의 등에 다리를 척 걸쳐 올린 캐롯이 날카롭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 기분도 나쁘지 않은걸? 당신들 원래 개척민 마을 사람들이었다면서? 먹고살기 힘들지? 하지만 어쩌겠어. 선을 넘었으니 벌을 받아야지. 얍!”
캉-!
도끼날이 정확하게 위에서 떨어지는 롱소드를 막아냈다.
오토마톤은 리즈넷에서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품과 시간, 능력만 있다면 개인도 조립해 낼 수 있었고, 이런 위법 병기는 대부분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갑자기 나타난 오토마톤의 칼질에 어른과 아이의 싸움 같은 모습이 연출되었다.
“안녕? 나는 캐롯!”
양손으로 롱소드를 잡은 자동 인형이 그 상태로 말했다.
“나는 17호. 여기서 나가라.”
“응, 알았엉.”
몸을 빙글 돌린 캐롯은 창문으로 와다다 달려가더니 그걸 깨고 밖으로 몸을 던졌다.
이 괴상한 상황에 다들 어이없는 표정을 했다.
그때 머리를 얻어맞고 쓰러져 있던 사내가 끙끙거리며 몸을 세웠다.
찡그린 얼굴로 머리를 매만지던 그는 빈손으로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 혼자 힘들다. 같이 좀 있어다오.”
“알겠다.”
전투용 오토마톤이 많이 사용하는 방열 가발의 색은 하얀색이다. 이유는 가성비 때문인데, 방열 성능 자체는 같지만 가장 싸기 때문이다.
검은색 몸체에 역시 검은색 전투복을 입었지만 길게 늘어뜨린 방열 머리칼만은 하얀색인 오토마톤이 겁에 질린 여자와 아이들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밖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그걸 훔쳐보던 캐롯은 이히히 웃으며 다음 집으로 건너뛰기 시작했다.
“전격전! 전격전이야! 너희들은 이제 발이 묶여서 움직이질 못해! 오지 않는 적을 기다리면서 그렇게 너희들의 사람을 지키라고! 아하하!”
캐롯은 그런 식으로 길게 늘어선 이동 주택을 마구 뛰어다니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한참 그렇게 뛰어다니면서 깽판을 부리던 캐롯이 들어간 곳은 놀랍게도 마력 엔진이 잔뜩 매달린 기관실.
“뭐냐, 이 꼬마는?”
커다란 남자들이 나섰지만 캐롯은 매섭게 웃으며 방망이를 들어 올릴 뿐이었다.
뚱땅뚱땅!
미친 꼬마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사내 하나가 급하게 몸을 돌리고 통신관에 대고 외쳤다.
“여기는 기관실! 적이 들어왔습니다! 자동 인형으로 추정! 속히 지원을-! 으악!”
뚱땅뚱!
“휴우-!”
숨이 차기는커녕 땀도 나지 않는 주제에 손등으로 이마를 훔치는 시늉을 하던 캐롯이 다시 통신관에 대고 외쳤다.
“자! 다음은 당신들이야! 내가 갈 때까지 딱 기다리고 있어! 화장실 미리 갔다 오고! 신님에게 기도도 올리고! 아핰하하!”
그리고 몸을 돌리려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이봐, 금고 칸의 위치를 알려줄 테니 그냥 보내주지 않겠어?
금고! 돈 냄새를 맡고 호다닥 돌아온 캐롯이었지만 너무 본심을 드러내면 들킬 것 같아서 조금 둘러대기 시작했다.
“에, 싫은걸? 애초에 도둑질로 빼앗은 물건이잖아? 같은 편 되라는 거임?”
-아니야. 그냥 슬쩍 눈감아 달라는 거지. 우리는 필요악이란다. 사실이 그래, 현금화 시키려고 헐값에 풀어 버린 물건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서 요긴하게 쓰이고 있지. 크게 보면 무려 이 주변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야.
통신관 너머의 젊은 남자는 계속 말을 걸었다.
-그러니 가서 너희 마스터에게 협상을 원한다고 말해주지 않을래?
이야기를 전부 들은 캐롯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통신관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꿀만 빨면서 살다 보면 언젠가는 꿀 독에 빠져 죽······!”
철컥.
기관실 저편의 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커다란 마녀의 모자를 쓴 오토마톤이 걸어 들어왔다.
그걸 본 캐롯이 얼굴을 찡그리고 통신관을 다시 쳐다보았다.
“뭐야, 지금 이거 시간 끈 거였어?”
통신관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한바탕 욕이라도 해주려고 하는데 들어온 오토마톤의 상태가 이상하다.
한참 멍청하게 서 있던 사레나가 덜덜 떨리는 팔을 들어 캐롯을 가리켰다.
“너, 너는, 너는, 너는, 너는, 너는······!”
“잉?”
캐롯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음, 누구지? 너님 나 알아?”
조그만 인형 소녀를 바라보는 마도사 인형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콰쾅-! 쿠오오오오!
기관실의 지붕이 박살 나며 불기둥이 솟아오른다.
차량 행렬의 선두 운전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계기판의 바늘을 보면서 당황했다.
“엔진 출력 저하!”
“기관실 화재 발생!”
“사레나 녀석!”
그 사레나는 어느새 천장에 올라가서 철천지원수를 맞이하고 있었다.
“너이꼬마인형!!!!”
짝-!
두 손바닥을 마주치자 일순간 팔에 그려진 마법 문자가 빛을 발했다.
찌이잉!
“파이어 볼!”
날아오는 불덩이를 휙 피하자 그것은 뒤따르는 건물의 지붕에 적중하여 폭발을 일으켰다.
콰쾅!
뚜껑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올려다보던 캐롯이 삿대질을 하려고 팔을 들었다. 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어?”
오른팔이 거의 떨어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걸 보고 캐롯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내, 내 팔이! 내 팔이잇! 야 너어!”
평소 캐롯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주변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 인간과 다름없어진 자기 몸이었다.
뜨득-!
오른팔을 떼어내 손에 쥔 캐롯이 엄청난 속도로 덤벼들었다.
상대가 마법사의 능력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면 그 약점 또한 그대로일 것이다.
캉!
다음 마법 연산을 끝마치기 전에 눈앞에 번쩍 나타나 뜯어낸 팔을 휘두르자 그걸 얻어맞은 사레나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역시! 접근전에는 약해!
“구조 해석이야 까짓 잔해만 있어도 충분하지!”
키이이이잉! 촤아악!
캐롯은 이제 자기 몸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치마가 들려 올라가고 숨겨진 칼날이 튀어나왔다.
카가각! 가가각!
하지만 어찌 된 것인지 절단되지 않는다.
빛이 나는 손바닥으로 치마의 칼날을 막아낸 사레나는 남은 주먹을 뒤로 당기더니 빙글빙글 도는 캐롯의 얼굴을 겨냥했다.
꽝-!
거의 최대 출력으로 후려친 주먹질에 작은 몸이 회전을 멈추고 뒤로 휙 날아가더니 거센 바람이 부는 지붕 위를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한다.
바닥에 쓰러져 눈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캐롯의 벌어진 입에서는 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게게게, 기기기.”
연산 능력이 높아서 사람 비슷한 짓을 잘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캐롯은 소녀형 오토마톤에 불과했다.
그것도 가사용.
상대가 일반 전투용이라면 허를 찌르는 방법과 한계까지 개조된 스펙으로 밀어붙일 수 있지만, 위력적인 마법과 자동 인형 특유의 강인함을 제한 없이 사용하는 괴물에겐 전투력에서 밀려 버렸다.
척!
쓰러진 캐롯의 앞에 고급 전술 부츠가 내밀어졌다. 더불어 화려한 오렌지색 방열 가발이 바람에 휘날린다.
매서운 인상이 된 오토마톤 울파가 고개를 들었다.
“캐롯 반파, 가해자는 누구인가.”
부들부들 떨면서 몸을 일으킨 캐롯이 남은 손으로 삐뚤어진 턱을 매만져 원래 위치로 돌리더니 울상을 지으며 남은 손으로 가리켰다.
“쟤요! 쟤가 그랬쪄요!”
다음 순간, 울파가 사라졌다.
캉! 찌이잉-!
마주 선 울파와 사레나의 사이에 반투명한 육각형 방어벽이 나타났다. 때문에 칼이 들지 않는다.
다만 사레나의 경우 앞에 서 있는 자동 인형이 너무 낯이 익었다. 저 꼬마 인형과는 다르게 이 녀석은 이름도 기억난다.
눈에서 빛이 터져 나온 사레나가 노성을 질렀다. 갈라진 목소리에서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우우우울파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