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공성전! 214 >
투지를 끌어올리는 모험가들 사이로 로마니가 걸어 나왔다.
그는 엄청난 것을 내놓았다.
“파묻어서 함정으로 만들까 고민했는데, 역시 던져서 맞추는 게 좋겠지. 울파.”
꾸준한 연습으로 여러 가지 기술을 몸에 익힌 울파가 강철제 슬링을 꺼냈다.
휭휭휭-!
떠오르는 아침 태양을 향해 덤벼드는 낭만 강도단을 앞에 두고 마력수정폭탄을 담은 울파의 슬링이 매섭게 돌다가 펼쳐졌다.
짝!
풀린 쇠사슬이 공기를 때리는 소리가 날카롭다.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마력수정폭탄이 그들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모자를 꾹 누르고 팔을 내민 로마니가 멋지게 손가락을 튕겼다.
딱!
강제 기폭!
번쩍-! 쿠구구구구구······!
“이얏호우!”
“하하하하! 맛이 어떠냐!”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끔찍한 진동이 울리고, 모험가들이 환호성을 올렸다.
하지만 곧 그 얼굴은 질리기 시작했다.
폭발이 사라지고 드러난 잔해와 먼지구름 속에서 새까만 점들이 튀어나와 달려들고 있었다.
아침 햇살에 번쩍이는 롱소드가 예사롭지 않았다.
“위법 오토마톤이 온다! 대략 20기! 조심해! 저건 사람도 찔러!”
다급해진 게토가 먼저 외쳐 버렸다.
“아스칸-!”
쿵···! 쿵···!
먼지바람에 푸른 망토를 나부끼며 강철 고렘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하드 스킨 오토마톤 아스칸이 등에서 천천히 검을 뽑아 들며 걸어왔다.
손잡이에 동력선이 매달린 그것은 히트 소드, 마력 엔진에서 동력을 공급받아 닿는 모든 것을 불태우는 마도 공학의 산물이었다.
“드디어 이 몸이 나설 차례가 왔도다. 이 얼마나 긴 인고의 시간이었던가. 보라, 하늘에 떠오른 저 태양조차 지금은 나의 앞길을 비추는 도구에 불과하구나. 이 강하고 힘찬 아침의 발걸음을 가로막는 것은 어디의 누구인가. 내 그 누구라도 베어 넘기리라.”
감성적인 글을 좋아하는 레나에게서 고양이 귀가 번쩍 솟아올랐다. 곁에 선 애덤은 그 모습에 피식 웃어 버렸고.
멋진 시 한 수를 읊으며 앞으로 나온 아스칸이 자리를 잡자 펄렁이는 그의 망토 속에서 조그만 인형 소녀도 하나 걸어 나왔다.
허리에 두 주먹을 씩씩하게 올린 캐롯이 고함을 빽 질렀다.
“우리는 오토마톤! 가여운 사람을 돕기 위해 태어난 귀여운 자동 인형! 그것이 만들어진 감정이면 까짓 어때!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바로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야! 근데 씨부레, 그 사람을 다 찔러 죽이면 누가 우리를 다시 움직이게 할 건데! 안돼! 참을 수가 없어! 저 가짜 인형들을 박살 내자!”
철커덕, 찰칵, 끼릭.
캐롯의 목소리에 토벌대의 오토마톤들이 전부 모여든다.
모험가들이 데리고 다니는 오토마톤은 대체로 고성능이기 때문에 캐롯이 하는 말의 의미도 알아들었다.
그래서 그것은 고스란히 그들의 마력 엔진에 버프를 선사했다.
“사람을 죽이는 인형은.”
“가짜 인형.”
“그들의 존경과 사랑은.”
“전부 우리의 것.”
쿵-!
중앙에 선 커다란 아스칸이 발을 구르자 지진이 일어날 것 같다.
그도 투구를 들고 앞을 바라보았다.
“나를 이곳에서 움직이게 하는 것은, 그대들이 서로를 위하는 마음.”
끼릭, 찰칵.
아스칸의 투구 마스크가 열리더니 검은 구멍 같은 것이 드러났다.
완전 전투용으로 설계 제작된 하드 스킨 오토마톤에겐 전투 함성 기능이 있다.
“우오오오어어어으으으아아아아-!”
오른손에 히트 소드, 왼손의 커다란 주먹을 불끈 쥔 거인 기사가 커다란 소리를 지르더니 곧 망토를 펼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쾅쿵쾅쿵쾅-!
좌우로 늘어선 오토마톤들도 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뛰쳐나갔다.
하지만 최선두에 선 것은 아스칸이 아니라 한 손에 방패, 다른 손에 도끼를 든 조그만 자동 인형 캐롯이었다.
“이야아아아!”
거리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다급해진 게토가 외쳤다.
“애들 앞길 정도는 다져주자! 원거리 공격! 화살을 고각으로 쏴라! 마법사!”
투투투투투! 타타타타타!
무수한 화살의 비가 쏟아지고 주문을 외우던 마법사들도 마법을 난사했다.
쾅! 콰쾅! 퍼걱! 쿠르르릉!
불덩이와 번개, 얼음 덩어리가 쏟아지며 폭발을 일으켰지만 덤벼드는 적 오토마톤들은 그것들을 눈으로 보고 전부 피했다.
화살 역시 그들의 재빠른 몸놀림을 맞추진 못했다.
사로잡힌 강도 단원들이 와하하 웃기 시작한다.
“대당 4천 넘게 주고 맞춘 거다! 하하하! 맛 좀 봐라!”
“이 생퀴가! 너 얼굴 기억했어. 인마!”
그때 호크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손나팔을 하고 외쳤다.
“바닥에 납작 엎드리면 죽이지 않아! 살고 싶으면 그렇게 해!”
“야! 호크!”
“우리는 낭만 강도단! 은혜는 갚았다!”
투투투투퉁!
자동 석궁을 연사하던 사내들이 엉뚱한 소리를 지껄이는 강도 단원 호크를 보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눌고 있네! 그걸 어떻게 믿어!”
“개소리 지껄이지 마!”
호크를 포함한 도적들 몇몇이 키히히 웃는다.
“그렇지, 그게 난점이지. 사람이 서로를 믿는 것만큼 어려운 건 없거든.”
* * *
“두목! 큰일이오! 우리가 판 자동 2륜 차를 가진 놈들이 쳐들어왔어요!”
좁고 복잡한 건물의 내부, 다급한 얼굴의 중년 남자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갈색 피부의 젊은 청년이 하품을 하면서 나오고 있었다.
사이퍼즈 태생으로 어쩌다 보니 리즈넷까지 흘러들어 왔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황야의 낭만 강도단을 이끌게 되었다는 그의 이름은 세이건.
이 근방에서 유행하고 있는 자동 2륜 차도 그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최종적인 형태를 갖추고 판매까지 진행된 것이다.
제작자가 강도단이라서 좀 우스운 상황이긴 했으나 판매고 자체는 좋았다.
잠이 덜 깬 얼굴로 셔츠에 손을 집어넣어 가슴을 북북 긁던 세이건이 중얼거렸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그거 판 돈으로 오크들이랑 술판부터 벌인 사람이.”
“아,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소?”
그때 엄청난 폭발음이 들리더니 동쪽에서 눈부신 두 번째 아침 해가 떠오른다.
쿠구구구궁-!
그걸 바라본 사람들의 얼굴이 심상치 않다.
세이건의 눈빛도 가늘게 변했다.
“저거 그거죠? 마력수정폭탄.”
부두목으로 두고 있는 사내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주 도시 화이바에 들렀던 무장 상단이 있었습니다. 돌아간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봅니다.”
잠깐 생각하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추적 나간 사람들이 성하게 돌아올 것 같지 않네요. 그런데 궁금하네. 저런 병기가 있으면서 왜 직접 안 때리고 끌어내서 때렸을까?”
한쪽 눈에 안대를 쓴 부두목이 말했다.
“그 녀석 때문 아닐까요? 왜, 이전 토벌에서 꽤 활약했잖습니까. 오토마톤이 마법을 쓰는 게 좀 신기하겠소? 나도 그런 녀석 처음 봅니다.”
일리가 있다.
고개를 좀 끄덕이던 강도단의 두목 세이건이 지시를 내렸다.
“어쩔 수 없지. 이참에 이사합시다. 그리고 그 녀석 어디 있어요? 현재로선 우리 최대 전력이니 아끼지 말고 사용해야 하는데.”
부두목이 당황했다.
“이사요? 지금요? 전투원도 거의 다 나가 있는데 좀 더 버텨 보지 않고······.”
“부두목님, 우리의 신조가 뭐예요? 먹고 튀는 거잖아요. 마력수정폭탄까지 터트리는 미친놈들을 상대로 어떻게 버텨요? 빨리 도망갑시다. 그리고 애들도 아닌데 어련히 찾아와요.”
중년인 부두목에게 있어서 아들뻘인 두목은 이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 짝!
“자자! 철수 준비! 준비!”
갑작스레 강도단의 무법성에서 확성기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철수 준비! 철수 준비! 이사 간다! 10분 내로 준비 끝내!
“이사? 염병! 밖에 내놓은 것들이 얼만데!”
“애들 단속하고 물건 안으로 옮겨! 준비 끝나면 다들 집안에서 꼼짝 마!”
거친 강도단의 무법성에 어울리지 않는 구성원들이 있었다.
바로 소박한 아침을 준비하던 아낙들과 처녀들, 그녀들은 방송이 나오자마자 서둘러 가재도구를 집안으로 들였다.
동시에 몇몇 남자들은 뛰어다니며 레버를 잡아당기고 밀면서 무언가 손보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거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게다가 인간들뿐만 아니라 오크를 비롯해 어느 정도 지성을 가진 몬스터들도 바쁘게 뛰어다니며 물건과 가축을 옮기느라 분주했다.
오크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황야에서 죽어가던 것을 발견해서 구경거리로 데려온 것인데 어느덧 무법촌에 눌러앉아 충실한 일꾼이 되어 버렸다.
쁘띠 사이즈 늑대인간처럼 생긴 코볼트가 인간의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꼬리를 드러낸 채 무슨 바쁜 일이라도 있는지 네발로 타닥타닥 무법촌의 골목을 달리다가 레버 하나를 찾아내서는 힘껏 당기고 묵직한 걸쇠를 들어서 건물과 건물을 연결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쳐들고 외쳤다.
“컁컁! 거, 걸었다!”
층층이 쌓인 건물 위에서 창문이 열리더니 두건을 쓴 사내가 고개를 내밀고 외쳤다.
“몇 번이냐!”
고개를 돌리고 레버의 번호를 확인한 코볼트가 연신 숨을 고르며 손가락을 맞춰서 폈다.
“헥헥-! 8개!”
“8번! 잘했어! 이 근방은 다됐다! 빨리 올라와!”
팔짝 뛰어오른 코볼트는 배수로를 타고 지붕으로 기어오르더니 남자가 서 있는 창문으로 뛰어들었다.
그 아래 바쁘게 뛰어다니는 한 오크의 겨드랑이에는 절친한 강도단 가족의 아이가 들려 있었다.
밖에서 놀다가 붙잡혀 온 똘망똘망한 아이는 오크를 옆집 삼촌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참 놀라운 일이었다.
몬스터와 인간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돕기 시작하다니.
이것은 한정적인 공간과 제한적인 상황에서 일어난 몹시 기이한 협동이었다.
인류학자가 보았다면 눈물을 흘릴 광경일지도 몰랐으나 당사자들은 지금 그런 것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토벌대가 온다! 서둘러라!”
“사레나! 이 멍청한 인형은 또 어딜 갔어!”
조그만 코볼트 하나가 킁킁거리며 달려와서는 손을 들었다.
“캬캬! 사, 사레나! 탑! 탑!”
성내의 유일한 마법사를 찾고 있던 사내들이 고개를 쳐들었다.
무법성에는 커다란 망루가 하나 있는데 지금 그 꼭대기에 하얀 방열 가발에 마법사의 모자를 눌러쓴 오토마톤이 올라가 있었다.
“쯧! 제 잘난 맛에 사는 녀석이야! 됐어! 요크! 올라가서 말 좀 전해라! 이사 갈 거니 내려오라고.”
코볼트 요크가 헥헥 고개를 끄덕이더니 재빠르게 망루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위를 좀 올려다보던 사내는 곧 바쁘게 외쳤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들 빨리 집에 들어가라! 곧 이사 시작한다!”
망루에 매달린 코볼트 요크가 시원한 아침 바람에 방열 가발을 흩날리고 있는 마도사 인형을 바라보았다.
“사, 사레나. 이사, 이사 간다. 내려가자.”
오토마톤 사레나가 고개를 돌리고 요크를 바라보았다.
표정 없는 인형의 가면이 순진한 시골 잡종견같이 생긴 코볼트를 바라보았다.
뒷거래 중인 모험가 집단에게서 위법 오토마톤과 함께 받아 온 마법사 인형은 놀라운 가격과 위력을 자랑했다.
보통 같으면 가성비를 먼저 따지는 강도단 두목 세이건조차 파이어볼을 마구 쏴대는 그를 보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가 되어서 달라는 대로 가격을 지불했었다.
그렇게 들어온 마법사 인형은 마을의 인기인이 되었다.
무려 글을 알았기 때문에 개척민 마을에서 흘러들어 온 가족이 있는 사람들에게 아이들의 선생님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절대로 모자는 만지지 못하도록 했다.
어른에겐 주먹질을, 애들에겐 딱콩을 날렸는데 둘 다 기절할 정도의 위력을 자랑했다.
그리고 사레나라는 이름은 아이들이 붙여준 것으로 엉덩이까지 내려온 새하얀 머리카락이 전에 살던 마을에 자주 피던 흰 백합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전신의 몸체가 검정색인데다 특정 조건 만족시 가차 없이 주먹질을 휘두르기 때문에 어른들은 두려움을 담아 검은 사레나라고 불렀다.
그 사레나가 손가락을 튕기자 곧 그와 망루에 매달린 요크의 몸이 두둥실 떠오르더니 바닥으로 천천히 내려간다.
“헥헥-!”
공중에 뜬 코볼트 요크가 혀를 내밀고 웃는 것이 신나 하는 것 같다.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강도단의 남자들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사레나, 적습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성을 움직여서 이사할 건데, 가능한 주변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아. 좋은 방법 없겠냐?”
“투명 마법 같은 건 못 써?”
가만히 듣고 있던 사레나가 손을 들었다.
“질문이 있습니다. 성이 어떻게 움직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