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212화 (212/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공성전! 212 >

오험! 헛기침하는 시늉으로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정리한 캐롯이 다시 활짝 웃으며 말했다.

“만약 새 인생을 살아 볼 것 같으면 개척민 마을 메크로를 추천하겠어. 거긴 감자 농사로 유명하니 배고플 일은 없을 거야. 아저씨 손재주 좀 있던데, 찾아가면 사랑받는 동네 마당쇠가 될 수 있을지도?”

쬐그만 인형 소녀의 추파를 들으며 짧은 한숨을 내쉰 레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당신들은 우리가 돌아가서 꼰지를 거라는 생각은 못하는 거야?”

“하겠다면 말리진 못하겠군. 하지만 그땐 이미 늦을 거요.”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왔기에 이리도 자신만만하냐?

레그는 그만 입을 다물었고, 대답을 마친 크랭크는 어둠이 깔린 지평선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때마침 불빛과 모터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기이이이이잉-! 촤아악!

화려하게 개조된 자동 2륜 차가 멋지게 정차하고, 한바탕 질주를 마친 여기사가 돌아왔다.

각성 효과를 가진 용기의 물약이라도 마신 것인지 그녀는 너무도 즐겁고 신난 표정이었다.

“멋지다! 최고다! 이 세상의 모든 찬사를 전부 너희에게 바치고 싶어!”

팔짱을 한 크랭크가 고개를 끄덕인다.

“됐구나. 준비가 끝났다. 이제 작전을 시작하자. 캐롯, 말 좀 전하고 와줘.”

“아니, 그건 내가 알리리다.”

고민에 빠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레그가 슬쩍 몸을 돌리고 사람들에게로 향하자 어둠 속에서 주변 경계 겸 그를 감시 중이던 오토마톤 하나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돌아보며 캐롯이 음흉하게 웃는다.

“메크로에는 우리 애들이 많으니 얼마든지 이렇게 감시를 붙일 수가 있거든? 으히히, 저 사람은 자기 인생이 내기의 대상이 되었다는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놓칠 수 없지. 이번에는 내가 이긴다.”

“으헤헤헤! 나도 아무한테나 걸지 않아! 답이 딱 나오는 것에만 걸지!”

무언가 시커먼 꿍꿍이가 있을 때 나오는 캐롯과 크랭크의 저 음흉한 표정(?)이 내심 신경 쓰였지만 아리에테는 따로 이유를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새로운 말을 얻은 이 기쁨에 최대한 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통통-!

몸체를 두드리던 아리에테의 눈이 문득 커졌다.

“그렇지! 이름을 새겨야겠다!”

“아니, 아직 네 것이라고 결정된 것은 아닌데.”

크랭크의 만류에도 불구, 아리에테는 차량의 작업실에서 페인트와 붓을 가져와 로시난테의 몸체에 자기 이름을 멋진 글씨체로 그려 넣기 시작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새벽이 밝았다.

마력석은 말 그대로 마력을 담아두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마도공학의 산물인 여러 가지 동력장치를 움직이는 데 사용되고 있다.

차량에 붙여서 빛을 뿜어내는 라이트 볼도 그중 하나.

습격 직전, 빛을 뿜어내는 토벌대 차량의 선두에 하얀 자동 2륜 차에 오른 금발의 여기사가 팔짱을 끼고 저 멀리 보이는 기괴한 방주 성을 바라보고 있다.

이때 차량의 확성기에서 짧은 목소리가 울린다.

“작전 개시.”

히죽 웃은 아리에테가 핸들을 잡았다. 동시에 그녀의 수족 시온이 자동으로 마스크를 전개하여 얼굴을 뒤덮었다.

철컥-! 착!

“가자!”

뒷자리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캐롯이 팔을 들고 외쳤다.

“달리셈-!”

기이이이잉! 이잉! 촤아아아악!

뒷바퀴가 마구 미끄러지며 아리에테의 로시난테가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에에에엥-! 에에에에에엥-!

“적습! 적습!”

돌진하는 적을 발견한 무법자들의 안식처에서 시끄러운 경보가 울리며 곳곳에서 조명이 마구 켜지기 시작한다.

기이이이잉!

“하하하! 머리 위에 혜성! 별똥별이 날아가!”

뒷자리에 앉혀 놓은 캐롯이 고개를 들고 검푸른 새벽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를 지른다.

앞서 돌격하는 아리에테를 지원하기 위해 지금 그녀의 머리 위로 수십 발의 불화살과 여러 발의 불덩이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투투투투퉁!

퍼퍼퍼퍽! 쿠쾅! 쾅-!

잡자재들이 뒤죽박죽 얽혀 있는 거대한 울타리를 향해 화공이 시작되었다.

강도단의 무법성이 주변 잡동사니를 주워서 만든 것이라 화재에 취약하다는 정보에 착안에서 벌어진 공격이었다.

“습격이다!”

“불을 꺼!”

“비전투원은 대피해!”

울타리 사이로 고개를 쑥 내민 사내가 다시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화살에 기름병이 묶여 있어! 외장을 떼어내! 제어반! 23번 구역 외장 퍼지!”

갑작스러운 공격에 무법성은 아비규환이었다. 놀란 사람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거나 귀중품을 챙기기 바쁘다.

토벌대 차량의 지붕에서 망원경으로 상황을 살피던 경비대원들이 중얼거린다.

“오, 잘 타는데?”

“정보는 사실이었군요.”

터터텅! 쿵! 쿠쿵-!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커다란 무법성의 외곽을 장식하던 불붙은 나무 목책이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보고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감탄을 내놓았다.

“도마뱀 꼬리 자르기야? 저러면 불이 옮겨붙질 못해!”

“용케도 저런 장치를 해놓았구만. 어쨌든 미끼를 물었다. 준비해.”

이제 무법성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성문 역할을 하던 차량이 길을 비키자 분기탱천한 도적떼의 자동 2륜 차와 엉망진창으로 개조된 무법 차량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기이이잉! 기이잉! 촤아악!

옷도 제대로 챙겨입지 못한 분노한 사내들이 운전대를 잡은 차량에 중무장한 오크들이 올라타서는 손에 쥔 병장기를 마구 흔들어댔다. 벌써부터 자동 석궁을 마구 쏴대는 녀석도 있었다.

“이 망할 모험가 놈들아! 잠도 없냐! 낮에 오라고! 낮에!”

“퀘에에에에-! 오크는 밤이! 낮이다!”

“싸움! 싸움-!”

투투투퉁! 투퉁!

날아간 화살은 주의를 끌기 위해 무법성 주변을 오락가락하고 있던 흰색 자동 2륜 차로 쏟아졌다.

“으랴차-! 이건 못 뚫을걸?”

카캉! 탱-!

뒷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드래곤 스케일 방패로 화살을 막아내던 캐롯이 이마에 손을 올리고는 쫓아오는 녀석들을 보면서 외쳤다.

“와와! 온다! 온다! 세상에! 오크랑 코볼트도 있잖아? 쟤네들은 아주 감초네! 안 끼이는 데가 없어!”

“후하하! 속도는 이쪽이 더 빠르단다! 달려라, 나의 로시난테!”

극장의 무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배우에겐 항상 밝은 스포트라이트가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그것이 메마른 황야의 적진 앞이라도.

어느새 운전이 익숙해진 아리에테는 무법성에서 비춰주는 서치라이트의 불빛을 받으며 주변을 맴돌아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면에 무수한 바퀴 자국을 수놓으며 달리는 거대한 군체의 모습은 마치 여왕벌을 따르는 꿀벌의 비행 같았다.

“거기 서라!”

“퀘에에에에!”

투투투투투퉁! 투투퉁!

그 멋진 솜씨에 새벽 꿀잠을 방해당한 도적 떼들과 그저 싸움에 신이 난 오크들이 우레와 같은 갈채의 화살을 퍼부었다.

하지만 등을 노린 화살은 조그만 오토마톤이 다 막아냈고, 앞에서 날아오는 것도 여기사 본인이 어디서 뽑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롱소드를 휘둘러 쳐낼 뿐이다.

캉-!

“흥! 이런 느려터진 화살에 맞을 까보냐!”

촹!

달리는 차량에 앉은 채 칼을 휘두른 아리에테는 펼쳐진 무장창에 다시 롱소드를 집어넣은 다음 핸들을 잡고 재빠른 가속으로 뒤쫓는 적 기병들을 유인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됐어! 거의 다 나온 것 같다! 캐롯, 신호탄!”

“오홋! 기다렸습니다!”

퉁-! 휘리릭! 뻥-!

유인이 성공했다는 뜻의 초록색 섬광이 솟아오른다.

황무지 들판에 갑자기 생겨났던 흙더미며 풀더미에서 동시에 라이트가 켜지더니 위장을 매단 채로 냅다 무도회장으로 쏟아져 들어와 거슬리는 것을 모조리 치어 버리며 그들의 여왕을 납치해 새벽 들판을 달리기 시작했다.

곧이어서 분노한 황야의 무법자가 벌떼 처럼 따라붙었다.

“이 자식들이!”

“어딜 도망가냐! 거기 서라!”

투투투투퉁!

뒤쫓는 차량의 오크며 코볼트들이 자동 석궁을 마구 쏴댔으나 상대는 장갑차량, 느리지만 그만큼 단단하다. 게다가 한둘이 아니었다.

“놀구 있네!”

“짜식들아! 선물이다!”

가장 후미를 달리던 차량의 좌우 창문이 열리더니 모험가들이 자동 석궁을 내밀고 쏴대기 시작한다.

놀란 도적단의 2륜 기병들이 차체를 휘저으며 그것을 피했다. 현장 리더 격인 인물이 외쳤다.

“좌우 전개! 앞질러서 선두 차량을 넘어뜨려! 너! 돌아가서 상황을 보고하고 오토마톤을 준비해서 보내라! 백병전으로 끝내자!”

그의 지시에 무장차량 곁을 달리던 2륜 차 한 대가 크게 돌아 무법성으로 돌아갔다.

뒤를 이어 숨을 크게 들이마신 사내가 확성기에 대고 외쳤다.

“이놈들아! 오늘 아침은 잔업으로 시작하자!”

오크, 인간, 코볼트를 비롯해 말을 조금 알아듣는 인류 후보 지성체들이 함께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

“캬어어아아아!”

하나의 목적, 약탈이라는 그 숭고한 목적 아래,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경쟁자들의 협동이 시작되었다.

원했던 것은 이런 게 아니라며 신은 이를 몹시 개탄스럽게 여겼으리라.

이이이이잉! 이이이잉!

좌우로 전개한 도적 기병단이 급가속하여 앞으로 달려 나간다.

하지만 모험가들은 쉽사리 앞을 내주지 않았다.

일렬 무리 주행 중인 토벌대의 차량에서 창문과 지붕이 열리고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파이어볼!”

“휘몰아쳐라! 폭풍!”

“매직-! 미사일-!”

쾅쾅-! 콰아아아아! 치이이잉! 치잉!

폭발과 바람에 먼지구름이 만들어지고 눈부신 빛화살이 그것을 어지럽게 가른다. 이 덕분에 시야가 가로막혀 서로 부딪혀 쓰러지는 자들이 속출했다.

대미를 장식한 것은 크랭크 파티의 마법사였다.

철컥, 지이이잉-!

쓸모는 모르겠지만 만들어 두면 분명 멋질 거라는 아리에테와 리슐리에의 강력한 주장에 힘입어 그들의 차량에는 자동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지붕을 통해 서서히 전신이 올라오고 있는 도도하고 차가운 인상의 여성을 보고 근처를 달리던 폭주 도적단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차 지붕에 무슨 무대 장치야? 춤이라도 춰?”

거친 폭풍에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여자는 고급 가죽 여행복에 하얀 브라우스, 안경까지 쓰고 있어서 어딘가의 가정교사처럼 보였다.

손가락의 반지를 조금 매만진 그녀가 의지를 집중하자 벼락이 온몸을 휘감는다.

번쩍-! 빠지지직!

역광 때문에 리슐리에의 얼굴에는 안경만이 빛났다.

“트윈 라이트닝!”

빠자자자자자자작!

좌우로 펼친 두 팔에서 뻗어 나온 그녀의 번개는 그물처럼 퍼져 나가 강력한 범위 공격을 형성했다.

덕분에 그들 주변으로 앞지르기를 시도하던 무수한 2륜 차량이 감전되거나 작동 불능을 일으켜 뒤로 날아가 버렸다.

지지직! 지직!

“끄아아아악!”

“으악! 이거 왜 이래!?”

“제길!”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사내가 나가떨어지는 도적단을 보면서 그윽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으으음! 고소해! 네놈들에게서 아주 고소한 냄새가 풀풀 나고 있구나! 흐하하!”

반대로 토벌대의 차량만이 무사한 이유는 시전자인 리슐리에가 미리 대전 방지 처리를 해두었기 때문이다.

지이잉!

주저앉은 채 리프트를 타고 다시 내려온 리슐리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덜덜 떨어댔다.

솔직히 난생처음 몬스터가 아닌 사람에게 강력한 공격 마법을 사용한 덕분에 두려움과 공포가 파도처럼 밀려온 것이다.

내 마법에 사람이 죽었으면 어쩌지?

“리슐리에!”

비타의 부름에도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무릎을 꿇은 리슐리에의 안경 너머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전투 상황이라 운전석에 앉은 크랭크가 거울로 그걸 보더니 말했다.

“리슐리에, 안심하십시오.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비타, 상태이상 해제를.”

“예!”

아리에테의 경우처럼, 상태이상 해제는 패닉 상태에 빠진 사람에게도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의지가 강한 리슐리에는 자신의 힘으로 그걸 극복하고 일어섰다.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 사람은 다치지 않았어!

“후우웁!! 나는 괜찮아요. 다음, 오토마톤 파상 공격 준비.”

검과 신형 전투복으로 무장한 로테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