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전향! 211 >
차량의 변신은 안팎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샤워실에서 막 씻고 나온 보리스가 긴 머리를 닦다가 스르륵 올라가는 지붕을 보면서 당황했다.
“뭐야, 이거 열리는 거였어?”
좀 떨어진 곳의 작업실에서는 옷을 갈아입던 리슐리에와 신관 비타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
팬티만 입은 엉덩이를 쑥 내밀고 있던 신관을 보고 모험가들은 경건함이 담긴 비명을 질렀다.
“우효오-!”
“오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눈 감아요! 으아앙!”
상의로 속옷을 가리려 울상을 짓는 비타와는 반대로 리슐리에는 세상 끝의 버러지를 보는 시선을 하고 있었는데, 몇몇은 그만 그 눈빛에 팬이 되어 버렸다.
“저, 저 표정! 참을 수 없구만!”
“호오옥! 여, 여왕님이시다!”
“오늘부터 리슐리에 팬클럽을 결성한다! 내가 회장을 맡겠-! 끄으아아아악!”
파지지지지직!
팬클럽 회장 운운하던 모험가를 손가락에서 뿜어낸 번개로 지져 버린 리슐리에가 크랭크를 보면서 으르렁댔다.
손가락에서 푸르른 불꽃이 튀겨지는 것이 어쩐지 몰리가 떠오른다.
파지직! 지직!
“닫아요.”
“어, 음, 예.”
찔끔한 크랭크가 다시 레버를 조작하자 장갑차량의 기믹 문짝이 천천히 내려온다.
몹시 흥분한 사내들을 앞에 놓고 그는 딴소리를 시작했다.
“도구는 충분합니다. 이 노획 차량을 개조해서 교란 목적으로 사용해 봅시다. 테스트 라이더가 필요합니다만.”
기다렸다는 듯이 지원자가 속출했다.
“내가! 내가 하겠다!”
“나도 관심 있소!”
“생긴 건 다르지만 완전 말이잖아! 내게 맡겨줘!”
그중에서 아리에테가 워낙 열성적이라 다들 그녀에게 양보했다.
고개를 끄덕인 크랭크는 사로잡은 도적 정찰병 중에 한 사람을 가리켰다.
부서진 차량을 보는 시선이나 하는 말을 듣고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당신이 이 차 주인이지? 거드시오.”
지목당한 도적남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것들이 순순히 따라줬더니 막 부려 먹으려고 하네?
“흥! 그래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뭐요?”
좋은 구경을 같이하긴 했지만 그래도 적대 세력이다.
칼자루를 쥔 쪽의 손바닥은 언제든지 자기 마음대로 뒤집을 수 있다는 걸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도 그랬거든.
거기까지 생각하니 갑자기 기분이 더러워진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그때 누군가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마치 귀여운 새가 지저귀는 것 같은 목소리는, 그저 욕심껏 살기 위해 양심의 반 정도를 헐값에 내다 판 사내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바둑이라는 게임이 있대. 하얀 돌과 검은 돌의 싸움이지. 똑똑한 사람들이 하는 실수 중의 하나는 사람의 인생을 바둑판과 그 위를 수놓은 돌에 빗대는 거야. 멍청하기 짝이 없는 소리지. 사람은 두 가지 색만 있지 않아. 총천연색 무지개보다 많은 색을 가지고 있어.”
깜짝 놀란 사내가 뒤를 돌아보자 웬 금발 꼬마가 허리를 숙이고 소악마 같은 요염한 미소를 만면에 띄우고 웃고 있다.
범죄자 전향 전문가 캐롯의 속삭임은 계속되었다.
“지은 죄는 사라지지 않고, 그 과거는 바꿀 수가 없대. 그렇다면 오늘부터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을 마구 속이자. 그리고 언젠가 목숨이 다했을 때, 네게 속은 줄도 모르고 네 죽음을 슬퍼해 줄 바보들을 잔뜩 만들어 두는 거야. 그런 멋진 사기꾼이 되는 거야. 어때? 내가 도와줄게, 딜? 콜?”
보니까, 다들 그렇게 적당히 살더라구?
당신들은 그저 방법을 몰랐을 뿐인 거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듣기에만 좋은 이야기에 폭주하는 인생 기관차가 멈출 리가 없다.
다만, 그래도 그 방향을 바꿀 정도의 미약한 흔들림은 있었다.
여신의 인형의 속삭임을 들으며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도적 사내들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묶인 손을 들어서 얼굴을 덮었다.
거친 손가락 사이로 얼굴이 우는 것인지 가슴이 우는 것인지 모를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으흐흑! 이, 이게 뭐라고······!”
“제기럴-!”
말로 악당의 심금을 살짝 건드린 여신의 인형이 두 손가락을 V로 만들며 의기양양하게 허리춤에 남은 손을 올린다.
그걸 보고 모여 있던 모험가들과 상단 관계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메모를 남기는 자들도 있었다.
“와아, 이야기는 들었는데······ 거참.”
“얼떨떨하네. 난 흉내도 못 내겠다.”
하지만 이런 걸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자들도 분명 있었다.
근처에 모여 있던 사나운 인상의 사내들이 툴툴거린다.
경비대에서 지원 나온 대원들이었다.
“흥! 나는 악어의 눈물에 속지 않아. 내기를 해도 좋다. 10만 리즈 걸지.”
“저도 10만 걸겠습니다.”
인간 불신에 빠진 크랭크가 같이 손을 들자 경비대원들이 인상을 구겼다.
“뭐야, 당신은 같은 편 아니야?”
“오토마톤과 마스터의 생각이 꼭 같으라는 법은 없잖습니까?”
“반대쪽에 건 사람도 없는데 무슨.”
캐롯이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요! 주인님에게 받은 용돈 다 걸게요! 내기는 성립되었습니다! 기한은 이 사람의 남은 인생! 뽀하하!”
캐롯의 상쾌한 웃음소리에는 분위기를 마구 흔드는 신기한 재주가 있었다.
구체적인 내용보다 주인님의 용돈 운운하자 모두가 크랭크를 이상하게 보기 시작했다.
“뭐야? 오토마톤에게 용돈도 줘?”
“별난 친구로군. 하여튼 모여! 작전 설명한다!”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모험가들과 경비대에서 차출된 인원들이기 때문에 복잡한 작전은 애초에 무리, 그래서 입안된 것이 조금 전과 같은 낚시의 발전형이었다.
먼저 정찰, 사로잡은 도적남의 말대로 그들의 본거지는 황야 한복판에 있었는데 굴러다니는 온갖 잡동사니를 주워서 쌓아 만든 덕분에 얼핏 쓰레기로 만들어진 산을 연상케 했다.
둔덕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강도단의 본거지를 살피던 모험가들이 저마다 감평을 내놓았다.
“위장은 둘째치고 방어진지로서는 최악이구만. 왜 이런 평야 한복판에 지었대? 물이라도 나오나?”
“좀처럼 사람이 안 와서 그런 거겠지. 우리야 차량을 이용했지만 정말 이런 곳에서 조난이라도 하면 꼼짝없이 죽어.”
위치를 제대로 확인 다음에는 미끼로 뽑힌 선발대가 그들을 자극해서 병력을 불러낸다.
그리고 함정 지역으로 끌어들여 발을 묶은 다음 각개 격파, 더불어 이 작전은 3차 공격까지 예상한 장기전이었다.
습격 시간은 당장 내일 새벽녘.
그동안 사람들은 꼬박 밤을 새워 함정을 설치하고 쪽잠을 자두는 등의 준비를 서둘렀다.
망가진 자동 2륜 차량은 크랭크의 손에 수리되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준비되었다.
전장이 길어지고, 앞쪽 바퀴와 그 지지대 주변으로는 무장창이 새로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색깔은 테스트 라이더 아리에테의 강력한 호소로 하얀색으로 도장 되었다.
“아아! 고맙다! 이렇게 멋지게 완성되다니! 돌아왔구나! 나의 로시난테!”
만신창이가 되고도 두 발로 일어선 여기사와 비슷한 지경으로 망가졌지만 역시 말끔하게 고쳐진 자동 2륜차를 바라보며 아리에테는 정말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반짝이는 눈을 한 아리에테 옆에는 커다란 투구 머리가 와서 설명을 덧붙였다.
“여기 레버를 당기면 앞쪽 무장창이 열린다. 검을 수납할 수 있어.”
철컹! 촹-!
앞바퀴 주변을 감싼 장갑판이 좌우로 벌어지며 미리 수납된 롱소드가 손잡이를 들어 올렸다.
“다만, 자동 석궁의 경우엔 폭이 넓어서 뒤쪽 가방에 수납······ 왜 그러냐?”
죽은 말이 다시 돌아온 기분에 흥분하고 감격한 아리에테가 크랭크를 덥썩 끌어안았다.
보고 있던 사내들이 휘파람을 불었지만, 거목에 매미가 붙은 꼴이라 그다지 잘 어울리지는 않았다.
크랭크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떨어져라. 설명이 먼저다.”
“하지만 먼저 들어다오! 나는 말하고 싶다! 너희들을 만난 것은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이라고!”
팔짱을 하고 있던 캐롯이 고개를 갸웃한다.
“에에? 그 말 전에도 하지 않았어?”
“한 번으로 족하겠나! 수십! 수백 번 할 거다! 생각날 때마다 하고 싶다! 아아! 로시난테! 번쩍이는 몸으로 다시 돌아왔구나.”
이제 무릎을 꿇은 아리에테는 번쩍이는 차체에 얼굴을 막 부비기 시작했다.
가만히 두면 맛이라도 볼 기세라서 크랭크는 빠르게 설명을 마쳤다.
“구조는 단순해. 고출력 마력 모터에 기어 뭉치를 조합해서 고속으로 바퀴를 돌리는 거다. 우리 장갑차량과 원리는 같아. 더구나 가벼워서 마력 소비가 적고 대단히 빠르다. 타봐라.”
크랭크의 지시에 아리에테가 멋진 다리를 쭉 올리고 좌석에 앉았다.
이제 그의 곁에는 전향을 결심한 청년이 다가와 조작 방법을 설명했다.
“오른쪽의 손잡이 아래 레버를 밀면 전진합니다. 제동은 오른쪽 앞 레버와 왼쪽 페달이고, 일단 속도가 붙으면 몸으로 차체를 직접 기울여야 합니다.”
“알겠다!”
흥분한 아리에테가 핸들을 잡고 오른쪽의 레버를 엄지손가락으로 밀었다.
키이이이잉-!
촤아아악!
여기사를 태운 자동 2륜 차는 뒷바퀴를 미끄러뜨리며 잠깐 휘청거리더니 곧 어마무시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밤이지만 이마에 손을 올린 캐롯이 말했다.
“와, 앞바퀴가 막 들리는데?”
“어쨌든 다시 달리는 걸 보고 있으니 기분은 좋네.”
결국 차량을 고치는데 협력한 도적남은 어쩐지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별빛 가득한 벌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캐롯이 음흉하게 웃으며 물었다.
“입장이 뒤바뀌니 기분이 어때?”
부서진 차량을 고치면서 그새 좀 친해진 도적남은 얼굴을 찌푸리며 킥킥 웃었다.
“항상 그렇지만 이 느낌 정말 엿 같아. 그래도 뭐, 저런 미인이 사용해 주신다면야 기쁘게 바칠 수 있지. 다른 녀석들 걸 또 훔치면 그만이니까.”
캐롯이 프하하 웃는다.
“대놓고 절도 예고라니! 아저씨! 전향하기로 한 거 아님?”
“왜? 나쁜 놈들 건 상관없지 않냐? 어차피 돌고 도는 거라고, 모험가들도 전리품 챙기잖아요?”
팔짱을 한 크랭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도끼눈을 뜨고 케케케 웃음 지은 캐롯이 손가락을 세우고 그를 바라보았다.
“빈말이라도 마냥 착하게만 살지 않겠다는 그 억지, 마음에 들어. 그래서 아저씨 이름은 뭐야?”
“어, 레그.”
캐롯이 배시시 웃더니 자신들을 소개했다.
“여기는 크랭크, 나는 캐롯, 저기 여기사는 아리에테.”
갑작스러운 통성명에 좀 얼떨떨해진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크랭크가 위협적인 투구를 들이댔다.
“저 자동 2륜 차를 만든 건 누구요? 당신인가?”
“재주 있는 녀석들이 모여서 반쯤 재미로 만들어 본 장난감에 불과했는데, 재료도 덜 들고 생각보다 괜찮아서 많이 만들어서 일할 때 사용했지요. 남는 건 주변에 팔기도 했고.”
그의 이야기는 처음 심문할 때 들었던 내용이다.
당시 누군가가 그 정도의 기술과 생산능력이 있다면 약탈은 그만둬야 하지 않았냐고 쏘아붙이자 두 도적은 그저 실실 웃기만 했다.
레그가 웃으며 말했다.
“조직의 방침 따위 우리 같은 말단은 몰라, 관심도 없고. 하지만 몇 년 지나면 꽤 볼 만한 모양이 되었을 거야. 인근의 오크 부족과도 동맹을 맺을 정도였거든. 우리 기술과 오크들의 노동력, 좋은 협업이었지.”
“그렇네, 강도질이라는 목적으로 의기투합했네. 그거 그만두고 소박하게 농사라도 지으면서 정착했으면 유사 이래 최초의 몬스터와 공생하는 마을이 만들어졌을 텐데. 좀 아까운걸?”
캐롯의 지적에 레그가 피식 웃는다.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하고 현실은 멀어.”
오토마톤과 강도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크랭크가 낮게 중얼거렸다.
“습격이 시작되면 근처에 내려줄 테니 본거지로 돌아가시오. 그리고 틈을 노려 적당히 챙겨서 달아나시오. 뭣하면 우리에게 맞서 싸워도 상관은 없소. 죽여드리지.”
무시무시한 깡통 거인의 말에 식은땀을 흘리는 그를 보고 캐롯이 크랭크의 엉덩이를 철썩철썩 때렸다.
“넌 왜 자꾸 사람 기를 죽이고 그래!”
“강도나 도적은 주의의 대상이다. 아야, 아프다. 그만 때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