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아기! 209 >
토스트와 애덤이 밝게 웃는다.
“오오호호호! 이 녀석 말하는 것 좀 봐!”
“그래, 듣기 좋은 소리 해 주는 걸.”
모두가 입담이 좋은 하드 스킨 오토마톤을 신기하게 여기는 와중에 아스칸은 이제 구석진 곳에서 혼자 조용히 시집을 읽고 있던 레나에게 말을 걸었다.
정확히는 그녀가 들고 있는 시집에 관심이 생겼다.
“나도 그 작가의 시집을 좋아한다.”
“예?”
후드를 쓴 레나가 동그랗게 뜬 눈을 들었다.
커다란 기사가 투구를 돌리고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에는 저런 위압감 풍기는 모습이 두려웠지만, 크랭크라는 훌륭한 지인이 있어 요즘은 좀 덜한 편이다.
팔을 든 아스칸이 허리에 매달린 가방에서 유일하게 자기 소유의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작은 책, 시집이었다.
“나의 보물이다.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사람의 감수성을 배울 수 있었지.”
다시 머리를 돌린 아스칸은 조수석의 게토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사유물에 대한 소유의 허가에 감사한다.”
게토는 대답 대신 엄지손가락을 들면서 씩 웃었다.
아스칸은 다시 레나를 바라보았다.
“마음에 드는 글귀가 있어 들려주고 싶다. 내 마음은 유리와 같아서 당신의 목소리에 쉽게 상처받습니다.”
강화 인간 레나의 표정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집을 가슴에 안은 그녀가 반짝이는 눈으로 강철 거인을 우러러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 하지만 나는 결코 그대를 버,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함부로 대하지 말아주세요.”
들썩이는 이동 차량 안에서 난데없는 낭송회가 시작되었다.
모두가 갑자기 시를 읊어대는 두 사람을 보고 입을 헤 벌렸다.
“어? 이거 바딩? 바딩이야? 음유시인들의 그거?”
보통 사람이나 엘프 같은 자들이 저러고 있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흉악한 병기로 태어난 자들이 감수성 짙은 대사를 읊어대는 모습은 참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시집을 가슴에 안고 밝게 재잘대는 레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애덤의 얼굴 곁으로 익살스러운 표정의 토스트가 다가와 속삭였다.
“네 여친 뺏길라.”
예전 같으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 레슬링을 시작했을 테지만, 같은 파티로 활동하면서 하도 놀림을 많이 당하다 보니 이젠 좀 지겨워져 버렸다.
그래서 애덤은 어른스럽게 싱긋 웃기만 했다.
“너야말로.”
“엥?”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든 토스트였지만 저도 모르게 얌전히 자리에 앉아서 책을 펴 들고 있는 몰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요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예쁘게 차려입고 다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자기 생각과 행동에 소스라치게 놀라 버렸다.
“헉! 야! 너 애덤, 이 생퀴야! 누구 혼삿길 막으려고!”
자길 몰리와 엮으려고 한 것에 화가 난 토스트가 애덤에게 덤벼들었고, 곧 두 사람은 바닥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레슬링을 또 시작했다.
“너희는 20살 넘은 녀석들이 참 질리지도 않냐?”
“냅둬요. 애들이 어련하겠어요.”
몰리의 시큰둥한 말에 애덤을 깔아뭉개던 토스트가 외쳤다.
“이놈이 전기안마기랑 나를 엮으려고 했다고! 이걸 어떻게 참아!”
텁-!
책을 덮은 몰리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마법 능력은 화염계, 다른 마법도 어느 정도 쓸 수 있지만 불 마법에 특화되어 있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 번개 마법에도 상당한 능력치가 쌓여 가는 것 같다.
파지지직! 지직!
“그래서 불만이야!?”
“끄아아악!”
“으어더덧!”
번개에 감전되어 움찔거리는 두 사람을 보면서 레나가 울상을 지었다.
“아, 아아. 애, 애덤이······!”
“사이 좋은 모험가 파티의 소속이 된 것이 참으로 기쁘다. 그대들과 함께라면 드래곤도 잡을 수 있을 것 같구나.”
연신 번쩍이는 섬광과 더불어 말 잘하는 오토마톤의 즐거운 목소리를 들으며 게토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고, 운전대를 잡은 유리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로부터 3일 후, 그들은 곧 리즈넷 최고의 불모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리즈넷의 동북부와 동남부의 사이에는 황무지 대평원이 펼쳐져 있다.
비가 적게 오는 데다 식물도 잘 자라지 않은 불모지로 온전히 땅으로 이루어진 지평선이 보일 지경으로 평탄한 곳이다.
덕분에 각 도시의 상단은 이곳의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서 교역의 중요한 길목으로 사용했다.
이유는 별다른 것 없이, 방해물이 없어서 달리기 좋기 때문이다.
“우와-! 온통 붉은 흙먼지뿐이잖아! 사이퍼즈 사막 같아!”
지붕에 올라가 있던 캐롯이 지평선을 바라보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차량 행렬의 맨 후미라서 먼지가 너무 날리는 통에 금세 안으로 끌려 들어왔다.
“콜록콜록! 빨리 창문도 닫아요!”
비타가 호들갑을 떨었다.
창밖을 내다보던 트리스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풍경이군요.”
“비행선이 보편화되면 인류는 참 멋진 문명을 이룩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크랭크의 중얼거림을 들은 트리스타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걸 막은 건 제가 아니거든요.”
“그냥 볼멘소리 같은 거다. 신경 쓰지 마라.”
피식 웃던 아리에테가 중재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운전대를 잡고 있던 지오가 말했다.
“노랑 깃발이 올라왔어요!”
“어어, 노랑노랑, 어! 전투 준비! 대비하시랍니다!”
지오의 보조로 앉은 코비가 깃발 신호표를 보면서 외쳤다.
그걸 보고 또 크랭크가 중얼거렸다.
“통신이 막혀 있어서 이런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안타깝군요. 통신만이라도 풀어주면 참 좋을 텐데 말이죠.”
“그것도 제가 막은 게 아니거든요?”
말하는 크랭크나 듣는 트리스타나 서로 혼잣말하는 느낌이었지만 아리에테는 트리스타를 위해 크랭크에게 주의를 주었다.
“크랭크, 적당히 해둬라.”
“음.”
어쨌든 선두 차량의 경고 신호에 다들 각자의 무장을 준비했다.
로테는 사주경계를 위해 지붕으로 올라갔다.
캐롯이 손을 들었다.
“에? 나는?”
“넌 키가 작아서 안돼.”
캐롯이 손가락을 입에 물고 계단을 통해 지붕으로 올라가는 로테를 바라보았다.
“있지, 가끔은 나도 저만큼 키가 커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해.”
“그건 안된다. 너무 커지면 안고 자기 불편해.”
아리에테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말하자 캐롯이 와하하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캐롯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래, 우리 딸.”
비타가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그럼요! 캐롯은 딱 이 사이즈여야 해요! 어서 빨리 1가정 1캐롯을 보급해야 한다고 저는 강력히 주장합니다!”
“1가정 1캐롯은 뭐야? 아하하!”
빠하하 웃던 캐롯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손을 번쩍 들었다.
“캐롯 시리즈가 보급되면 살 사람 손!”
놀랍게도, 파티 인원 전부가 손을 들었다.
시큰둥한 얼굴을 창밖으로 돌리고 있던 보리스마저도 손을 들고 있다.
“어, 뭐. 워낙 인상 깊어서 말이지.”
“와! 나 엄청 잘 팔리네! 아하하!”
캐롯의 즐거움과는 별개로 크랭크는 무언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전투 직전의 짜릿한 긴장감을 완화시켜 보려고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이후 몇 시간 동안 아무런 습격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토벌 상단의 긴 행렬은 황무지를 가로질러 인근의 방주 도시 화이바에 도착하고 말았다.
동시에 이곳이 상단의 최종 목적지였다.
이런 척박한 곳에 방주 도시가 들어선 이유는 화이바의 특산품이 천연 마력석이기 때문이다.
“마력석은 드워프가 생산하는 거 아니었어요?”
“생산량은 적지만 우리도 합니다. 마냥 주변에 기댈 수만은 없거든요.”
크랭크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트리스타만 빼고.
창문에 달라붙어 스쳐 지나가는 대로 주변의 동네 구경에 심취해 있던 캐롯이 말했다.
“어? 쟤들은 어딜 가?”
도시로 들어온 차량 행렬에서 몇 대가 따로 나와서 다른 길로 향하고 있다.
토벌 상단이지만 가져온 짐들은 진짜였기에 상회 소속의 화물 차량들은 하역하느라 상회 창고로 향했고, 모험가들은 마을에서 휴식을 취했다.
외딴곳에 위치한 방주 도시였지만 국가 차원의 지원을 받는 마력석 광산이 있는 곳이라 사람도 많고 건물도 높았다.
광장에 세운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이 하나같이 뻐근한 몸을 펴느라 바쁘다.
“으아-! 피곤해!”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이 저마다 비명을 질렀다.
“확실히 차 타고 와서 편하긴 한데, 피곤하다.”
“정보가 샜나? 짜식들이 코빼기도 안 보이네.”
“그럴 만도 해. 애초에 토벌 정보가 들리면 숨어 버려서 지금까지 세력을 키워온 녀석들이니까.”
모처럼 다른 도시의 모험가들이 찾아오자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말을 걸거나 상점가에서는 바구니에 물건을 담아 와 팔기 시작했다.
근처에서 빵집을 운영한다는 마을 아낙의 바구니에서 쿠키를 골라보던 아리에테가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저게 뭐지?”
이이이잉-!
광장 주변 대로를 이상하게 생긴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간다.
바퀴는 두 개뿐이고, 말처럼 사람이 그 등에 올라타고 있었다.
쿠키를 팔던 아낙이 말했다.
“아, 자동 2륜차라고 하는 건데, 얼마 전부터 보이고 있다오. 말 대신 타고 다니지.”
“자동 2륜차? 바퀴 2개로 움직인다는 말입니까?”
어느새 다가온 크랭크가 말하자 아낙의 등에 업힌 아기가 곰 같은 그를 보고 울음보를 터트렸다.
“으에에엥!”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주인이나 파티 멤버를 따라 주변을 서성이던 전투용 오토마톤들이 다들 고개를 돌린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의식의 가장 밑바닥에 깔린 강제 명령 때문이지. 사람으로 치면 본능인 거다.”
그때 가사와 육아 전문 오토마톤 캐롯이 팔짱을 끼고 나타났다.
“아이참! 너 왜 또 애를 울리고 그래?”
“아, 아니, 나는 그저······.”
아이를 어려워하는 크랭크가 버벅대기 시작한다.
근처에서 보고 있던 모험가들이 그를 놀려대는 와중에 캐롯이 대뜸 두 손을 내밀었다.
오토마톤을 처음 만든 사람은 더불어 그들이 자신들의 자손까지 소중히 여겨줬으면 했다. 설령 악의 없는 돌팔매질을 당하더라도.
“제가 달랠게요. 아줌마는 그거 마저 파세요.”
“오, 그럴래? 손녀인데, 다들 광산에 일하러 가 버려서.”
모험가를 따라다니는 모양인지 입고 있는 옷은 험악했으나 얼굴은 예쁘장한 소녀라서 동네 아낙은 아무런 의심 없이 포대기를 풀어서 아기를 내밀었다.
그걸 가만히 쳐다보던 엘프 트리스타가 크랭크에게 슬쩍 다가갔다.
“이건 제 가설입니다만, 캐롯의 저 작은 몸집과 어린아이 같은 얼굴에 사람들이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것 같군요.”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애를 울려 버린 크랭크가 투구를 끄덕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정말 그랬습니다.”
동시에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은 아기를 품에 안고 으히히 혀를 날름거리는 조그만 인형 소녀를 바라보았다.
우물쭈물 보고 있던 아리에테가 다가왔다.
“나, 나도 한번 안아 볼 수 있을까?”
“오, 그럴래?”
캐롯이 선선히 내밀긴 했지만 거칠고 딱딱한 그녀의 가슴 장갑판과 차가운 갑옷 팔은 아기를 금세 다시 울게 했고, 아리에테를 좌절시켰다.
꾹 다문 입술을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녀의 등을 비타가 다독였다.
“괜찮아요. 아기는 엄마 품이 제일 익숙하거든요. 아리에테의 아기는 안 울 거예요.”
“정말인가?”
“그럼요. 우리도 언젠가는 엄마가 됩니다!”
팔다리가 잘리고 전신 의수를 단 여기사 아리에테가 신관 비타의 다독임에 용기를 얻었다.
그런데 너무 얻어 버렸다.
아리에테는 갑작스레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흐읍! 내 아기는 파, 팔다리가 전부 달려 있을까? 나를 닮아서 없이 태어나면 어쩌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란 무서운 것이다.
방금 전까지 멀쩡하던 아리에테가 엉망으로 훌쩍이기 시작하자 크랭크가 움직였다.
그리고 곁에 있던 캐롯도 빽 외쳤다.
“걱정 마! 정말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그러면! 또 우리가 팔다리를 달아줄게!”
“비타, 이 울보 여기사에게 상태 이상 해제를.”
“네, 예!”
놀란 비타가 상태 이상 해제를 걸었다.
잠깐 푸른빛이 머물자 좀 진정됐는지 훌쩍이던 아리에테가 콧물을 흡 들이키더니 크랭크를 올려다보고 캐롯을 내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나는 너희들 덕에 살아 있는 것 같아. 고마워.”
“고마우면 밥이라도 한 끼 사라.”
아리에테가 버럭 외쳤다.
“겨우 밥으로 이 은혜를 갚을 수 있겠나! 뭔가, 뭔가 좀 더 큰-!”
쿠키를 다 팔고 돌아온 아낙에게 아기를 돌려준 캐롯이 말했다.
“됐고, 밥이나 먹고 이야기하자. 아줌마 여기 뭐가 제일 맛있어요?”
“외지인들에겐 별로겠지만 이 근처에는 대왕 전갈이 많아서, 그거 튀김이 별미란다.”
쿠키를 와구와구 씹고 있던 코비가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앗싸! 튀김-! 튀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