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동네 마실! 201 >
리리안느가 마시던 찻물을 코와 입으로 뿜어냈다.
맞은편에서 그걸 얻어맞은 쥬세페는 득도한 표정으로 힘없이 웃고 있다.
바깥에 서 있던 모험가 파티, 체리보이즈의 친구들이 신관 비타를 올려다본다.
“응? 당근 꼬마네 신관이잖아.”
“당신 여기서 뭐 해?”
“아르곤 스위츠 지부장님과의 세계 평화를 위한 초안을 짜고 있었어요. 냠냠. 체리보이즈는요?”
그녀의 헛소리를 들으며 얼굴을 찡그린 허쉬는 묵직한 돈주머니를 내밀고 스크롤 통을 받아 들면서 대꾸했다.
“보면 모르냐, 물건 사러 왔다.”
이제 점장의 뒤에서 고개를 내민 비타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다른 사람들이 안 보이네요?”
“애도 아니고 항상 다 같이 우르르 몰려다니진 않아. 우린 바빠서 이만 갈 거다.”
“앗! 잠시만요!”
마법 상점, 마녀 공방에서는 워낙 비싼 가격 때문에 물건이 잘 팔리지 않아서 그걸 사주는 고객에게 점장이 특별 서비스를 제공한다.
환상적인 꽃잎 차에서부터 체력 회복 쿠키나 진통제까지 아주 다양하게.
유리 주전자와 컵을 들고 밖으로 나온 점장이 차를 따라주자 꽃잎이 둥둥 떠다니는 찻물을 단숨에 들이킨 허쉬와 파핀, 로이는 숨 쉴 때마다 나는 꽃향기를 맡으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코를 킁킁거리던 파핀이 중얼거린다.
“나 이거 별로야. 코가 마비되어 버려. 온통 꽃향기밖에 안 나.”
“그래도 되게 좋다. 흠흠흠~!”
“다음은 수리 맡겨 놓은 칼이랑 갑옷을 찾으러 가야 해! 빨리 좀 걸어!”
바쁘게 사라지는 체리보이즈를 배웅한 점장이 땀을 닦는 시늉을 했다.
“휴우, 오늘도 매상 한 건 올렸네, 음? 왜 그래요?”
쫄딱 젖어 버린 쥬세페와 손수건으로 그걸 닦으려고 노력하는 리리안느를 보고 사정을 들은 두 사람이 깔깔 웃어 버렸다.
“하하하! 체리보이즈에 놀라셨나 봐요.”
“확실히 모험가 파티에는 웃긴 이름이 많긴 하죠.”
리리안느는 가증스러운 체리보이즈의 이름을 기억해 두기로 했다.
오후의 도시 맛집 탐험도 끝나고, 다음으로 공주가 발을 들이민 것은 모험가 길드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우연히 지나는 길에 건물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어서 무슨 일인가 싶어서 기웃거린 것이다.
팔짱을 하고 서 있는 푸른 망토의 하드 스킨 오토마톤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고, 환호와 고성이 오고 갔다.
“1억 8천!”
“1억 8천 200백!”
“1억 8천 500백!”
원피스를 입고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쓴 쥬세페 공주가 커다란 남자들의 뒤에서 발돋움한다.
미인이기도 했지만, 그 차림새가 소박한 여름과 참 잘 어울려서 보는 사람들이 다들 좋아했다.
“지금 무슨 일이지?”
“음?”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덩치 큰 사내가 웬 미인을 발견하고 히죽 웃더니 자리를 슬쩍 비켜주며 말했다.
“오토마톤 경매 중이야. 아스칸이라고, 전 주인이 은퇴하면서 길드에 맡겼는데 운영비가 비싸서 모험가에게 매각하게 됐지.”
“우와! 오토마톤 경매! 매각!”
어른들의 틈에서 캐롯이 깡충깡충 뛰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걸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들어 올린 사람은 단 한 사람.
“크랭크만큼 크지는 않지만, 어떠냐?”
“오오오오-! 잘 보여!”
여기사 아리에테의 목마를 탄 오토마톤이 아하하 웃고 있다.
의외로 튼튼한 몸과 체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캐롯 정도의 무게는 손쉬웠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경매보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기 시작한다.
“오, 여기사 님 힘이 좋으신데?”
“엄마랑 딸 같소. 잘 어울리는군.”
커다란 남자들이 흐뭇하게 웃는다.
쥬세페 왕녀마저도.
이거지, 이런 게 휴가지.
나는 그저 소박한 삶의 드라마를 훔쳐보고 싶었거든?
스사사사사사삭!
좀 떨어진 골목길에 몸을 숨기고 있던 경호대에서 오토마톤 한 대가 화판에 불이 날 정도로 그림을 그려 대기 시작했다.
외인 경호대로 호위에 참여 중인, 길드 소속 모험가들이 깜짝 놀라서 쳐다보았다.
“어휴, 놀라라. 이 녀석 자꾸 왜 이러는 거야?”
“놔둬, 그림 될 만한 게 보이면 그려 놓으라고 명령받은 모양이니까.”
슬쩍 몸을 기울인 사내들이 화판에서 완성되어 가는 그림을 보고 눈을 크게 뜬다.
“휘익~! 좋네.”
“잘 그리는데? 하나 얻어가고 싶어.”
공주의 사물인지라 오토마톤 렌즈를 호위하는 왕성 경호대원이 한 소리 했다.
“경계를 늦추지 마시오.”
“어차차, 실례했습니다. 다들 그만 자리로 돌아가!”
눈치를 살핀 남자들이 서둘러 자리로 복귀했다.
한편, 임시 경매장에 모여 있던 한 무리의 모험가들이 진땀을 흘리는 리더를 보았다.
“게토 대장, 이동 수단부터 마련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그래야 하는데 말이다! 이런 좋은 상황을 놓칠 수야 없지 않냐?”
게토가 말하는데 상대 쪽에서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소리쳤다.
“1억 9천!”
“뭣?!”
팔짱을 한 리모가 고개를 돌렸다.
“저쪽도 필사적이네.”
박빙의 승부는 현재 두 그룹에서 나오고 있었다.
둘 다 대머리 남자들로, 하나는 대형 모험단 아르곤의 파수꾼 소속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 겨우 중형 파티, 몰리 마법사단이었다.
그 리더 대머리 게토는 분노했다.
최근 파티가 커지고 있어서 대형 의뢰를 주로 맡는 편인데, 아무래도 탱커가 부족하다.
레나가 있지만 그녀도 결국 사람이다. 지금은 괜찮다지만 과로로 쓰러진 적도 몇 번 있었고, 그간의 저축으로 오토마톤을 하나 섭외하려는 찰나 보란 듯이 경매가 열렸다.
“게다가 네임드! 푸른 망토의 아스칸이라니! 이걸 어떻게 참아! 에잇! 2억이다!”
손가락 두 개가 펼쳐지고 눈에 핏발이 돋은 게토가 외쳤다.
그러자 주변에서 애먼 소리가 쏟아진다.
“이봐! 게토! 그 돈에 조금만 더 보태면 어지간한 것 새 걸 살 수 있다고!”
“바보들아! 돈이 위명을 사주진 않아!”
흥분한 게토가 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관중들 사이로 상대 쪽이 찾아왔다.
커다란 근육질 대머리 남자가 게토를 보면서 인상을 구겼다.
“전 주인과의 인연도 있고, 저건 우리 모험단에서 매입하고 싶소만.”
“우리도 필요하오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게토도 지지 않고 매서운 시선을 들었다.
잠깐 시선을 교환한 커다란 대머리가 짧은 한숨을 내쉬더니 거칠고 큰 손을 내민다.
“알았소. 그만 손을 떼지. 다만, 힘에 부친다면 부디 우리에게 먼저 연락해 주시오. 다른 곳에 되팔이는 용서치 않겠소.”
게토가 얼빠진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다가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고는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양손으로 그의 손을 붙잡아 마구 흔들었다.
“으아아아!”
땡땡땡-!
상황을 지켜보던 모험가 길드 운영위원이 종을 울리면서 확성기에 대고 외쳤다.
“푸른 망토의 아스칸! 몰리 마법사단에 낙찰되었습니다!”
“아자! 해냈다! 아하하!”
기쁘게 웃고 있는 게토와는 반대로 그의 동료들은 머리를 절절 흔들었다.
“몰리가 여기 없는 게 아쉽네. 하여튼 형수님이랑 둘이서 가만있지 않을 텐데.”
“올리브는 좋아하지 않겠냐? 저거 걸어 다니는 놀이동산인데.”
모험가들의 응원과 야유를 받으며 길드에서 서류를 작성하는데 급하게 소식을 접한 몰리가 옷자락을 휘날리며 달려왔다.
“게토 이 아저씨야-! 차를 사오라니까!”
“아, 아니! 내 말 좀 들어봐! 어더더덧! 끄어어어어?!”
파지직! 지지직!
“하-! 하하하하! 꼴 좋구만! 내 그럴 줄 알-?! 으더더! 끼약호우우우우우!”
지져지는 게토를 보면서 토스트가 웃다가 분노한 몰리에게 함께 지져졌다.
“넌 말리지 않고 뭘 했어!”
“미친 마법사다! 도망쳐!”
파지직! 지직!
손아귀에서 불타는 번개를 일으킨 몰리가 뒤를 돌아본다.
“2억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미치지 않고 배기겠어?! 당신들도 다 한패야!”
분노한 마법사가 난동을 부리는 통에 겁먹은 모험가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일반인으로 위장한 채 들어와 있던 공주와 리리안느가 그들의 콩트를 재미있게 지켜보는 가운데 캐롯은 한쪽에 서 있는 푸른 망토의 하드 스킨 오토마톤을 올려다보았다.
“안녕, 네임드 기사님.”
투구를 조금 숙여 캐롯을 내려다본 아스칸이 대답했다.
굵은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위명은 네가 더 많이 가진 것으로 아는데, 소문은 익히 들었다. 광견병 걸린 햄스터, 회전하는 오르골 인형, 안개 속 여신의 인형, 최근에는 하늘다람쥐라는 말도 들리더군.”
매끄러운 언어 능력, 캐롯의 눈이 커진다.
“호오옥! 하늘 끝의 부유섬에 올라선 다람쥐! 줄여서 하늘다람쥐! 하하하! 신기하네, 난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럴 수밖엔 없는 것이, 의뢰를 완수하면 길드 마스터에게 완료 보고도 해야 하고, 더구나 드워프 도시 켄투가에서는 아직도 그들의 위업이 상영 중에 있었다.
“소문이 퍼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지.”
“엣헴!”
캐롯의 잘난 척에 마법사의 난동을 구경하던 공주가 부릅뜬 눈을 돌렸다.
무어라? 내가 모르는 모험담이 또 있었다는 말인가! 도무지 용서할 수 없군!
지켜보던 리리안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저 애를 불러야겠네.
현재 공주의 호위 중이라 어쩐지 무시무시한 눈빛이 좀 신경 쓰였지만 캐롯의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물어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토마톤 경매는 처음 봤어. 그래서 어떠니?”
“뭐가 말인가?”
“네 지금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거야.”
뒷짐을 진 꼬마 인형이 고개를 갸웃하며 거대한 기사를 올려다본다.
날고 기어도 오토마톤은 애초에 물건,
언젠가 여기서 모험가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르곤에서 캐롯과 비슷한 정도의 자아를 가진 것이 아스칸이라고, 그래서 궁금했다.
흥미로운 모습인지 몇몇 사람들이 그들을 주목한다.
잠시 생각해 보던 아스칸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다지, 아무렇지도 않군. 주변인이 바뀐다고 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내가 태어난 목적을 알고 있고, 그것을 수행할 것이다. 새로운 인연과 함께.”
팔을 든 그는 손가락으로 바닥에서 움찔움찔거리는 남자들을 가리켰다.
“오오-! 멋진 대답이다.”
“저건 그냥 모범 답안일 뿐 아니요?”
“글쎄, 나는 머리가 나빠서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뭔가 느긋하게 한잔하면서 해보고 싶은 이야기야.”
함께 듣고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에는 쥬세페 왕녀도 함께 섞여 있었다.
반면 캐롯은 오히려 심각한 얼굴이 되어 바닥을 쏘아보았다.
고도의 사고 능력과 인식 능력은 항상 고민거리를 가져왔다.
인간이라면 이 경우 노예다. 분명 불합리한 상황에 먼저 세상을 저주할 것이다.
다만, 그 중간쯤에 있는 무언가인 나라면?
하지만 언제나 일이 먼저, 그만 환한 얼굴을 만들어서 고개를 든 캐롯이 말했다.
“사색할 거리가 늘었네. 자, 그래서 다음은 어디로 가지?”
맛집 탐색과 경매를 구경하는 것으로 일과를 마치고 저택으로 복귀한 쥬세페 공주는 그대로 캐롯을 납치하여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저녁 식사 전까지 돌려보내지 않겠다! 네가 가진 이야기보따리를 모두 풀어보거라.”
“으앙! 살려주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