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200화 (200/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동네 마실! 200 >

정규 일정을 모두 소화한 쥬세페 공주의 여름휴가는 조금 느긋하게 바뀌었다.

먼저 그녀는 그간 미뤄온 잠을 이 기회에 모두 보충하겠다는 듯이 항상 정오 무렵에 일어났다.

그래서 현지 안내역의 캐롯과 아리에테의 파티는 오전 중에 개인적인 용무나 할 일을 마치고 정오가 되기 전에 영주의 성으로 가서 그녀를 기다렸다.

“아아! 오늘도 바쁘네! 전투복 추가 발주! 방열 가발 제작 의뢰!”

이른 아침부터 심부름을 다녀온 캐롯이 수레에 실어 온 전투복을 공방으로 옮기기 바쁘다.

비가 잠깐 그친 사이 공터에서 아침 훈련 중이던 아리에테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다가왔다.

“여분의 전투복인가?”

“헤헤헤, 자주 찢어 먹어서 그런가 봐.”

검수를 위해 벽에 주르륵 매달린 전투복을 살펴보던 아리에테가 여전히 작업장에서 오토마톤을 수리하고 있는 크랭크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요즘 뭔가 대단히 바쁘지 않나?”

“그렇다. 매일매일 내가 살아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노력해야지. 봐라, 이 녀석들이 곧 네 전력이 될 거다.”

허리를 편 크랭크가 앞치마를 두른 채 공구를 쥔 팔을 좌우로 벌렸다.

그의 작업대의 오른쪽에는 부서진 오토마톤이 아직 잔뜩 쌓여 있고, 왼쪽에는 완성된 오토마톤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그걸 본 아리에테가 피식 웃는다.

“뭔가 너희들을 보고 있으면 즐겁다.”

“그러면 길 막지 말고 비켜주셈!”

“어엇! 그, 그래.”

깜짝 놀란 아리에테가 비켜서자 어디서 나무 상자를 잔뜩 안고 나타난 캐롯이 그걸 공방 구석의 선반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면 샤를이 그걸 차곡차곡 쌓아서 정리한다.

우연히 작업 중인 샤를을 보았다가 시선을 고정한 아리에테가 눈을 가늘게 뜨고 턱을 매만졌다.

지금 샤를은 영주의 성에서 일하는 사용인들의 메이드 복장을 차려입고 있다.

옷 사러 갔다가 우연히 매물로 나온 것을 투나가 그 자리에서 사서 입혀 놓은 것이다.

“호오!”

아리에테 역시 어린 시절에는 인형 옷 갈아입히는 놀이도 곧잘 했기 때문에 보고 있자니 일단 눈이 즐겁다.

오토마톤 메이드라는 이 고상스러운 취향에 감동한 여기사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멋지다. 투나, 네가 최고다.”

그러자 공방 구석의 연구실에 앉아 책을 쌓아 놓고 자료 정리에 열중이던 투나가 이히히 웃으며 얼굴을 돌렸다.

“샤, 샤를은 어차피 싸울 일도 없으니까.”

그때 마지막 상자를 안은 캐롯이 도도도 달려오더니 마침 발을 세우고 선반의 맨 꼭대기를 정리하는 샤를의 치마를 냅다 들쳤다.

“얍! 이참에 무슨 속옷을 입고 있나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

휙 들춰진 검은색 치마 속으로 하얀 스타킹을 신은 늘씬한 조형의 다리가 드러났지만 그뿐이었다.

몹시 중요한 것이 부재중,

“노! 노노노팬티잖아?! 투나! 이 매니악!”

“어? 소, 속옷 입혀야 해? 왜? 가릴 것도 없는데?”

분노한 캐롯이 그녀를 몰아붙였다.

“예의가 없네! 당연하지! 이건 교란 목적으로도 쓸 수 있다고? 무릇 사내들은 신관님들의 치마 속도 궁금해하는 족속들이란 말야!”

그러면서 캐롯이 자기 치마를 번쩍 들어 올린다.

푸짐한 호박 팬티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업장에서 듣고 있던 크랭크가 여전히 손을 멈추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나는 빼다오. 나는 안 궁금하다.”

“에에? 낭만을 즐길 줄 알아야 진정한 모험가라고 그랬어!”

“또 어디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왔나 보군. 치마 속에서 낭만을 찾다니 그건 어디의 변태인가.”

“그게 골목길을 빤스 한 장 입고 뛰어다니는 사람이 할 소리야?! 파하하!”

결국 웃음보가 터진 캐롯이 깔깔거리자 아리에테와 투나도 피식피식 웃는다.

“뭘 하는 거죠?”

때마침 공방에서 견습 수업 중인 엘프 트리스타가 상자를 안고 나타났다.

그녀는 현재 크랭크의 6번 공방과 이웃의 7번 공방을 오가며 작업을 돕고 있었다.

치마를 번쩍 들고 있는 캐롯을 보고 트리스타가 코를 조금 벌렁거리더니 다가왔다.

“그건 함부로 들추지 마세요. 당신은 자신의 몸을 좀 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왜? 나는 오토마톤이야. 너는 내게 네 상식을 투영하고 있어.”

허리를 숙여 가만히 캐롯을 보던 트리스타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민다.

그녀는 캐롯의 붉은 눈동자 속에 뭐가 들어 있나 살펴보듯이 들여다보며 말했다.

“당연하죠.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을 강요하면서 살아갑니다. 세상의 톱니바퀴는 그렇게 서로의 이빨을 억지로 깎아서 맞춰가면서 마침내 돌아가는 거예요.”

캐롯은 물론 아리에테와 투나도 입을 헤 벌리고 엘프 트리스타를 바라본다.

현재 공방에서 가장 상식인을 꼽으라면 트리스타가 처음이고 끝이 되겠다.

그녀는 계속 말했다.

“일부 사람들은 좋아할지 몰라도 그다지 멋진 행동은 아니니 자제해 주세요. 그리고 크랭크, 인공 관절과 근육의 재고가 부족해요.”

“주문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트리스타는 이제 메이드 복장의 샤를을 보더니 작은 꾸러미를 내밀었다.

“그리고 당신에겐 이것을 드리겠어요. 끈으로 묶는 거니까 사이즈는 자유롭게 맞출 수 있을 겁니다.”

크랭크를 제외한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엘프의 속옷!”

“끈! 끈 팬티야?!”

투나마저 벌떡 일어났다.

아리에테는 날카로운 눈빛이 되었고, 캐롯도 호들갑을 떨었다.

“어서 입어봐! 어서!”

선물 주머니를 받아 든 샤를이 안을 살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앗, 가능하면 커튼 안쪽에서······!”

엘프 트리스타가 말릴 새도 없이 치마를 걷어 올린 샤를은 하반신의 다리 사이에 그것을 끼워 넣고 좌우의 끈을 묶기 시작했다.

여자들과 인형 소녀가 일련의 작업 중인 그 모습을 보고 말을 잇지 못한다. 그저 입만 벌리고 있을 뿐.

속옷의 장착이 끝난 샤를이 치마를 올린 채로 고개를 든다.

멋진 은발을 늘어뜨린 하녀 복장의 오토마톤이 치마를 들쳐 속옷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몸체가 하얀색이라서 유난히 검정색이 눈에 띄는 것 같다.

“어떻습니까? 제대로 되었습니까?”

여자들의 얼굴이 그만 벌게져 버렸다.

아리에테는 이 와중에 침을 꿀꺽 삼켜 버리는 짓을 하고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을 숙이고 두 손으로 덮어 버렸다.

“으아악! 내, 내가 무슨-!”

반면 투나와 캐롯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발광했다.

“끼이요오옵! 섹시비니키옆라인리본끈삼각팬티! 최고야! 나, 나는 삼 일은 눈을 씻지 않을 테야!”

“우효오오! 엄청 야하잖아?! 어째서지? 소프트 스킨도 없는 오토마톤인데!”

한숨을 내쉰 트리스타가 다가가 샤를의 손을 잡아 치마를 내렸다. 그리고 그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 진지한 엘프의 눈으로 말했다.

“나는 당신의 마스터가 아니지만, 그 속옷만큼은 내 것이니 함부로 남에게 보여서는 안됩니다. 알겠죠?”

“그렇군요. 유념하겠습니다.”

발광하는 둘을 내버려 둔 아리에테가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크랭크는 전혀 관심 없다는 듯이 작업장에서 오토마톤 수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애초에 수납장에 가려서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니 어느덧 정오가 다 되어 가고 있어서 그녀는 서둘러 땀에 젖은 몸을 씻고 무장을 준비했다.

그때쯤 공주님 호위 임무를 위해서 파티 멤버들이 공방으로 찾아왔다.

그들에게 얼음 커피를 돌리며 캐롯이 말했다.

“일찍 왔으면 좋은 구경을 했을 텐데 말이야.”

“뭘?”

트리스타가 무시무시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자 캐롯은 그저 히히 웃기만 한다.

“어, 아무것도 아님. 아리에테, 준비 끝나면 출발하자.”

촤르륵-!

커튼이 치워지고 세미 플레이트 메일의 갑옷 팔다리를 가진 여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 됐다. 가자.”

요 며칠 영주님의 성에 들락거리는 통에 경비병에서부터 사용인들까지 그들을 알아보게 되었다.

안경을 쓴 메이드 하나가 공손히 인사를 한다.

토스트의 누나라고 하던 사람이었다.

“공주님은 아직 취침 중이십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공주님은 잠꾸러기네.”

캐롯의 작은 중얼거림에 예의상 그들을 안내하기 위해 앞장서서 걷던 메이드가 뒤를 돌아보며 빙긋 웃는다.

도착한 곳에서 1층 객실 하나를 빌려 임시 상황실을 구축한 경호팀을 만날 수 있었다.

브리핑은 경호 대장이 직접 했다.

그는 항상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오늘도 부디 공주님을 잘 붙잡아 매주시기 바랍니다.”

아리에테를 포함한 모두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최근 쥬세페 공주가 사복 차림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즐기는 편이어서 하는 말이었다.

이윽고 보좌관 리리안느가 나타나 공주가 기침했으며 곧 출발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경호팀 전개하라. 이쪽 모험가들도 지켜보고 있지만 주의 바란다.”

“예!”

사복 차림의 사내들이 우르르 일어나더니 먼저 밖으로 나갔다.

로비에서 한참 기다리자 수수한 원피스 차림의 공주가 커다란 밀짚모자를 손에 들고 나타났다.

“으아아암-!”

커다랗게 하품을 마치고 치켜든 눈빛은 몹시 흥미진진하다.

“자, 오늘은 어디로 가볼까? 백작 부인께 듣기로 상점가 로엔그린 부인의 디저트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아, 저, 제가 거기 알아요!”

놀랍게도 그곳은 비타의 단골이라고 했다.

이 생각도 못한 우연에 공주가 크게 기뻐했다.

길 안내를 맡은 신관 비타가 감동한 얼굴로 공주의 곁에서 재잘거렸다.

“솜씨가 정말 끝내주세요. 아! 그리고 근처에 마녀 공방이라는 스크롤 상점이 있는데, 거기 점장님의 꽃잎 차도 최고예요! 둘을 합하면 아르곤 상점가 최고의 스위츠라고요.”

“오호! 꼭 들러보고 싶구나.”

며칠 전에 들었던 캐롯의 이야기 덕분에 요즘 마녀에게 관심이 부쩍 많아진 공주였다.

“그래서 여기 온 거니?”

“에헤헤, 이번에 다른 도시에서 관광차 찾아온 저희 사촌 언니들인데 꼭 점장님의 차를 대접하고 싶어서요.”

판매 창으로 몸을 내민 안경 쓴 메이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요즘 자주 들르는 신관 처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들의 손에는 달콤한 향기가 풍기는 종이 가방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거기 내 것도 있어?”

“물론이죠. 그것이 우리의 계약! 로엔그린 부인의 산딸기 타르트입니다!”

자기가 마녀와 계약한 것도 모른 채 비타는 즐겁게 웃으며 종이 가방을 들어 올렸다.

딸랑-!

어느새 문이 열리더니 밖으로 나온 그녀가 음흉하게 웃으며 손짓한다.

“어서 이리로 들어오도록 하렴.”

설정상 공주의 언니가 된 리리안느는 그녀의 차림새가 내심 신경 쓰였다.

어째서 메이드?

그리고 좁은 탁자에 모여 앉은 그녀들은 드디어 마법 상점의 점장이 만든 꽃잎 차를 얻어 마시게 되었다.

산딸기 타르트와 꽃잎 차는 정말 잘 어울렸다.

공주가 그만 그 맛에 푹 빠질 정도로.

“으음?!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맛이!”

색색의 꽃잎이 잔뜩 들어 있는 유리 주전자를 든 고르곤이 방긋 웃는다.

자리에 앉은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도시 관광은 어떠세요들?”

곧 네 사람은 하하호호 웃으면서 느긋한 오후의 티타임을 즐겼다.

여기서는 비타와 사촌 언니들이라는 설정이라 다른 사람들은 숨어서 지켜보기만 했다.

점장 고르곤이 손으로 볼을 감싸면서 말한다.

“정말, 차라리 카페로 업종을 바꿀까 싶어요. 서비스 품목이 오히려 잘나갈 줄은 몰랐거든.”

유리잔을 내려다보며 리리안느는 정말 그래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마법 상점이라서 자연스레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 쥬세페 공주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가격이 하나같이 굉장한데요? 스크롤은 다 이렇게 비싸요?”

“고위력이라서 그래요. 출처는 알려드릴 수 없지만요.”

포크를 입에 문 비타가 물었다.

“요즘 매상은 어때요?”

“음, 그럭저럭 팔리고 있어. 우후훗.”

빙그레 웃고 있는데 판매 창으로 점장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계십니까!”

“네에~!”

호다닥 일어난 그녀가 싱글벙글 웃으며 판매 창 바깥의 모험가들을 내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스크롤을 찾아서 내민다.

호기심에 접시와 포크를 들고 일어선 비타가 슬금슬금 다가갔다가 아는 얼굴을 만났다.

“아! 체리보이즈!”

“풉-! 콜록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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