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199화 (199/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옛날에는! 199 >

쾅-! 뻐벙!

난데없이 탑의 6층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마녀에게 거대한 불기둥과 화살을 쏘아대는 모습을 올려다보며 계단을 뛰어내리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으억?!”

“마녀는 초인이냐?!”

“그런 거 아냐! 그저 좀 오래 살아남은 마도사에 불과해! 마법사인 내가 하는 말이니까 믿어! 드래곤도 아니고 저런 전투는 오래 끌 수 없어!”

마법사인 쿠크의 말대로 그들의 거창한 전투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크고 강렬한 마법을 몇 번 쓰고 난 뒤에는 주변 물건을 휘둘러 싸우는 근접전에 돌입해버렸다.

마녀식 캣파이트가 시작된 것이다.

롱소드와 자동 석궁에 맞서서 무너진 벽돌로 만든 스톤 고렘이 맞선다.

다 무너진 연구실에서 신이 난 고르곤이 외쳤다.

“아하하!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은 줄 아니? 이미 플랜B가 가동 중이란다!”

“나도 이 지긋지긋한 마녀사냥을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니다!”

쾅-! 쿠쾅!

벽이 무너지고 기자재가 폭발하며 사방으로 파편이 마구 날아다닌다.

그럴듯하게 싸우지만 애초에 마녀들은 전투에 소질이 없다. 그래서 싸움이 생기면 자기가 생각하는 가장 강한 기술부터 난사하고 보는 성향이 강하고,

무너진 탑의 첨단에 서서 씩씩거리며 서로를 노려보던 두 사람 역시 큰 틀인 이곳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숨을 몰아쉬며 상대를 관찰하던 고르곤이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방금 어쩐지 신경 쓰이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잠깐만, 혹시 너 말야···.”

팡-!

“으갹!?”

난데없이 눈앞에서 일어난 폭발에 고르곤이 주춤하자 소프가 고속으로 마법술식을 연산했다. 두통이 일어난 정도였지만 그것은 결국 성공했다.

칭-!

“아니, 씨발! 다 부술 참이야?”

하늘에 떠오른 마법진을 올려다보며 얼굴에 시커먼 검댕이를 잔뜩 바른 고르곤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다가 냅다 앞의 소프에게 삿대질을 했다.

“야! 너 이 자식! 네가 모르카지! 너 솔직히 말해! 네 신분 세탁에 날 끌어들인 거지?! 엉!”

“후후, 신세 좀 지겠습니다. 선배님.”

갑자기 피곤에 지친 얼굴을 한 소프가 슬그머니 웃는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녀가 눈을 감고 손가락을 튕기자 마법진이 발동했다.

번쩍-!

엄청난 빛과 함께 떨어진 마법진이 탑이 깔아뭉개기 시작한다.

쿠구구구구-!

거대한 무언가가 처참히 부서지는 모습은 보는 사람에게 압도적인 풍경을 선사했다.

마녀의 기사단을 모두 쓰러뜨리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오토마톤들이 멍하니 무너지는 탑을 올려다보았다.

탑의 아래에서는 앞서 돌입했던 사람들이 떨어지는 파편을 피해 급하게 도망쳐 나오기 바빴다.

“피해! 피해-!”

결국 탑은 완전히 무너져버렸고, 쏟아져 나온 먼지구름이 지하 정원을 가득 채워버렸다.

쿠우우우-!

“우와! 앞이 안 보여! 콜록콜록-!”

“콜록콜록-! 생존자는 구했다! 모두 철수! 일단 전부 밖으로 나가!”

천장의 광원은 그대로였지만 애초에 밀폐공간에서 일어난 붕괴 사고에 시야가 가로막혀 앞도 분간되지 않을 정도에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때문에 헤리슨은 모두의 철수를 서둘렀다. 물론 그 손은 오마르의 팔을 꽉 붙잡은 채였다.

“우오와아아! 밖이다!”

“콜록콜록-! 제길!”

먼지구름과 함께 동굴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을 환한 태양이 맞이한다.

엉망이 된 얼굴로 하늘을 우러러보던 헤리슨이 고개를 돌린다. 곁에선 지친 얼굴의 오마르가 여전히 웃고 있다.

“고마워, 구하러 와줘서.”

무사한 그의 얼굴을 보고 울컥한 헤리슨이 결국 그 가슴에 와락 안겨든다.

“으아앙-!”

둘의 정겨운 모습에 많은 사람이 흐뭇하게 웃음 지었다.

“저 철의 여인도 우는구나.”

“그런 거 아니거든요? 우리 헤리슨 대장이 얼마나 여린 사람인데요.”

“그런 건 됐어! 빨리 인원부터 파악하자!”

곧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고 숫자를 세는 등의 소란이 있었다.

“몇 사람 비어요!”

“크랭크랑 그 꼬마 누가 못 봤어!?”

그때 아직 먼지구름이 가득한 동굴에서 부족한 인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장선 빵모자의 조그만 인형을 알아본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들은 나머지 사람들의 귀환에 반가워하면서도 한 사람을 도무지 알아보지 못했다.

머리에 봉투를 뒤집어쓴 거인이었다.

“이건 대체 누구야?”

“크랭크입니다. 저의 주인님입니다.”

“머리에 그건 뭐지?”

마녀에게 잡혀 있다가 돌아온 크랭크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고개를 숙였다. 캐롯이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마녀에게 저주받았습니다.”

모두가 당황했다. 함께 구출된 모험가들이 그것을 증명했기에 크랭크는 순식간에 안타까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 * *

쏴아아아아-!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캐롯의 이야기가 끝났다.

시간은 어느새 꽤 늦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 덕분에 모두의 시선이 뜨거웠다. 안 그런 사람이 둘 있었는데, 사건의 경위를 대부분 알고 있는 전, 현직 영주들이었다.

부자지간인 둘은 서로의 시선을 교환했다.

저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군.

적당히 각색했으니 그냥 넘어가지요. 문제 될 만한 건 없습니다.

짧은 한숨을 내쉰 영주의 아버지 이온 백작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현재 연락 수단으로 와 있는 마녀의 메이드, 케이스가 다소곳이 대기하고 있다가 그의 시선을 알아보고 찡긋 윙크한다.

꽤 재미있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쥬세페 공주가 콧김을 뿜으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래서? 뒷이야기는 어떻게 됐지? 마녀의 유체는 확인했나?”

캐롯이 대답했다.

“음, 먼지가 줄어들고 다시 들어가서 무너진 잔해를 전부 치워봤지만 결국 둘 다 찾지 못했어요. 나온 건 대량의 보물뿐.”

크랭크를 제외하고 그의 파티도 처음 듣는 이야기 인지라 호기심이 잔뜩 피어난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보물?”

아리에테의 작은 중얼거림에 캐롯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정말이지 엄청났다니까? 갖은 잡동사니가 쏟아지니까 계속해서 파다가 지하 금고를 발견하고 거기서 쏟아진 대량의 금은보화에 다들 눈이 돌아가서 마녀고 뭐고 보물 챙기기에만 급급했지. 나중엔 마력수정폭탄으로 지하 정원을 무너뜨리고 철수하는 걸로 이야기는 마무리되었어.”

당시 책임자였던 전 영주 이온 백작이 이상한 낌새에 슬쩍 고개를 돌리니 메이드 케이스가 이번엔 무언가 억울한 심정이라도 느끼는 듯 앞치마를 입으로 물어뜯고 있었다.

하지만 홀에 모인 모두의 시선이 캐롯과 크랭크에게 몰려 있어서 그녀의 기행을 알아챈 것은 오로지 그 말고는 없었다.

헛기침을 조금 하면서 다시 고개를 돌리는데 쥬세페 공주가 이번엔 크랭크를 바라보았다.

“경들에게 이런 멋진 모험담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군! 내 측근 중의 마법사 한 분도 그대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며칠 지켜봤는데, 그 친구는 좀 재미있는 구석이 있더군요. 아마 그 저주도 일부러 풀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일 겁니다.

쥬세페 공주의 입을 빌린 보이드 자작의 말에 크랭크가 손가락으로 투구를 좀 긁었다.

모두의 시선을 피하려고 투구를 이리저리 돌리던 그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그분과 아는 사이실 줄은···. 예, 사실입니다.”

방 안의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놀라움을 외쳤다. 하물며 사용인들까지도,

“예에-?!”

“뭐라! 이 변태 같은! 헙! 공주님 앞에서 이런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눈썹을 세우고 버럭 외쳤다가 깜짝 놀란 여기사 아리에테가 머리를 조아리자 쥬세페 공주가 즐겁게 웃으며 그녀의 허물을 용서했다.

크랭크가 마저 대답했다.

“처음엔 풀어보려고 했습니다만, 자금 문제도 있었고, 한번은 이걸로 무장 강도단을 사로잡은 적이 있어서 그냥 두고 있습니다. 이온 백작님께서는 보신 적이 있어서 아실 겁니다.”

이제 모두의 시선이 현 영주의 아버지, 이온 백작에게 옮겨갔다.

내내 궁금하게 여겼던 저주의 체험자가 바로 옆에 있어서 공주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설마, 보셨습니까? 어땠습니까?”

“그랬습니다. 공주님, 내 어찌 되나 궁금해서 억지로 벗겨보았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이온 백작이 눈썹 사이를 문지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나타나시더군. 놀라우면서도 끔찍했소. 어째서인지 그리움이 사무치더이다. 두 번은 보고 싶지 않더군.”

경험자의 말에 쥬세페 공주의 호기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하지만 주변 보좌진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어서, 그녀의 호기심은 다른 쪽으로 터져버렸다.

“맨얼굴은 괜찮지 않나? 나는 경의 맨얼굴을 한번 보고 싶군.”

놀랍게도 보좌관 리리안느가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는다. 물론 속내를 알아채지 못한 크랭크는 여전히 어이없어했고,

다만 눈을 커다랗게 뜨고 쳐다보는 이 공주님이 지금 완전 진심이라는 것만은 쉽게 알 수 있었다.

“크랭크,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한 번쯤 그대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겠나?”

어떻게?

왕족의 앞에서 팔짱을 함으로써 현재의 기분을 어필하고 있던 그가 잠시 공주를 바라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어렵지 않습니다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하지만 크랭크의 생각과는 반대로 리리안느가 그를 옆방으로 데려갔다. 뒤를 이어 공주의 오토마톤 렌즈도 나타나 그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여러 장의 종이를 나눠 받게 되었다.

주변 사용인들마저도 슬쩍 발돋움하거나 시선을 돌려 그림을 훔쳐보았다.

그림에는 두 인물이 그려져 있었는데, 하나는 투구를 쓴 크랭크, 나머지 하나가 바로 맨얼굴의 크랭크였다.

“그다지 잘생기지도 못생기지도 않았어. 그냥 평범?”

“어디 동네에 하나둘씩 있는 과묵한 형 같지 않아?”

“딸 가진 아줌마들이 좋아할 우직한 사윗감 같은 얼굴이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감평에 크랭크가 두 손으로 투구의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캐롯이 하하 웃어댔다.

“와하하! 부끄러운가 봐요.”

“으흠, 사람 얼굴을 구설수에 올렸군.”

쥬세페 공주는 헛기침을 하면서도 인물화와 눈앞의 실물을 대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온 전 영주는 보던 그림을 호기심 가득한 나이의 메이드들에게 넘겼다. 그녀들이 감사히 그걸 받아 들여다보는데 이온 백작의 시선은 메이드 케이스에게 머물렀다.

그가 그림을 가리키자, 모두에게서 슬쩍 떨어진 메이드 케이스는 귀엽게 윙크를 찡긋하면서 엄지손가락도 치켜세웠다.

옆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소통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쥬세페 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봐두도록, 이 시간 이후로는 모두 수거하여 폐기하겠다. 그리고 크랭크 경, 나의 억지를 받아주어 고맙다.”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쥬세페는 힐끔 시계를 보더니 자신은 먼저 일어날 것을 선언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전에, 캐롯에게 한마디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토마톤 캐롯, 오늘의 이야기 참 흥미로웠다. 그리고 나는 그대가 지금의 모습을 갖기까지의 이야기도 궁금하구나.”

그대,

호칭에 변화를 느낀 캐롯이 에헤헤 웃으며 부끄러워했다.

“아이, 별거 아닌걸요. 기회가 된다면 다음 이야기도 들려드릴게요.”

“음.”

공주가 먼저 일어나자 자연스레 자리도 그만 정리되었다.

* * *

돌아오는 길, 이동 차량을 얻어 타고 쏟아지는 빗속을 달려오는데 아리에테가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어? 그거 수거해서 폐기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슬쩍해왔다.”

보리스가 외쳤다.

“이봐요! 생각보다 막 나가는 사람이네!”

여기서 아리에테가 폭탄 발언을 했다.

“장차 신부가 될 사람의 얼굴을 간직하는 것이 무엇이 나쁘-! 우부부붑!”

번개처럼 몸을 돌린 크랭크가 아리에테의 얼굴을 쥐어짜면서 으르렁댔다.

“그 얼굴로 내 혼삿길을 막으려 하다니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너야말로 이 얼굴에 나 정도면 차고 넘치지 않으냐? 으악! 잘못했다! 멈춰라!”

차량 안에서 그림을 뺏기 위한 난동이 좀 있은 다음 아리에테는 잉잉거리며 그림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외쳤다.

“투나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다!”

“환상은 깨지지 않은 편이 좋다. 누구에게나 상자 속의 양이 필요해.”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대긴 했지만 결국 크랭크는 자기의 행동이 바보스러워졌는지 그만두고 자리에 앉았다.

“됐다. 알아서들 해라. 딱히 숨기고 싶은 것도 아니니.”

“오오!”

결국 공방으로 돌아온 아리에테는 아직 연구실에 불을 켜놓고 뭔가 큼직한 책을 뒤적이던 투나에게 그 그림을 보여주었다.

“투나! 이걸 봐라! 크랭크의 맨얼굴이다!”

그림을 받아든 투나의 눈이 점점 크게 변한다. 좀 무서울 정도로,

“어, 우, 으, 어, 으쿄오오오오옥!”

곧 이상한 비명소리와 함께 투나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크랭크는 다시 두 손으로 투구를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후, 훈훈해! 이 정도면 충분히 훈남이야!”

“역시 보여주는 편이 좋았다. 이렇게 좋아하잖아.”

“잘됐구나.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부끄러운 거냐.”

세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캐롯은 배를 잡고 연신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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