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옛날에는! 198 >
그녀의 요청에 따라 동원된 2차 토벌대 소속의 오토마톤들이 앞으로 나섰다.
지스터 포함, 모두 13대.
벽을 쌓듯 나란히 늘어선 오토마톤의 등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제 천천히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마녀이면서 신께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짧은 기도문을 읊조린 그녀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중얼거린다.
“다들 눈 크게 떠, 너희들 오늘 정말 대단한 걸 보는 거야.”
별안간 두 팔을 머리 위로 든 그녀가 비녀를 뽑고 머리카락을 풀었다. 출렁이는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은 손에 들린 단검으로 순식간에 잘려서 손아귀에 쥐어졌다.
단발머리가 된 마녀가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뱃삯이 준비되었습니다. 검은 성녀의 초대를 받아주십시오.”
화르르륵!
손아귀에 쥐어져 늘어진 긴 머리채가 아래에서부터 확 불타오르더니 순식간에 재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재빨리 고개를 든 그녀는 이제 나란히 선 오토마톤을 향해 두 팔을 펼쳤다.
“인챈트 - 마신 강림.”
이변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찡-! 칭칭! 칭!
분명 산 아래 지하에 조성된 곳인데 천장에서부터 검붉은 빛이 차례차례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모두 도열한 오토마톤에게 각각 내리쬐었다.
놀라운 기적을 목격하고 고개를 든 사람들은, 경이에 앞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먼저 느꼈다.
“저게 뭐야?!”
츠츠츠-!
빛이 머무르고 사라진 오토마톤에게서 붉은색의 아지랑이가 무섭게 피어오른다.
표정이 없는 마스크의 유리구슬 눈동자에는 평소에는 찾아볼 수 없는 절대적인 오만과 악의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갑작스레 분위기가 바뀐 오토마톤들이 스르륵 몸을 돌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도무지 이 세상의 것으로 들리지 않는다.
-나를 부른 것은 누구인가? 소환자는 앞으로 나오라.
13개의 목소리가 하나처럼 울려 퍼진다. 이 놀라운 현상에 모험가들과 신관들이 기겁했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한다.
부름을 받은 마녀가 앞으로 나서자 마신이 깃든 인형들이 모두 그녀를 바라보았다.
-용무는?
마신을 소환한 마녀가 손가락을 들어 다가오는 인형 기사단을 가리켰다.
“적의 격퇴.”
적을 확인하기 위해 잠깐 뒤돌아본 붉은 마신의 인형들이 다시 그녀를 바라본다. 그리고 시선을 슬쩍 돌렸다. 그들은 이글이글 불타는 창과 도끼, 검을 들어 주변 모험가들을 가리켰다.
-이놈들은?
“허억?! 우, 우린 같은 편입니다!”
“마녀님 살려 주십쇼!”
주변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에 단발머리 마녀가 뒷짐을 지고 슬쩍 웃더니 손을 흔들었다.
“됐어요. 여기는 신경 쓰지 말고 저놈들만 쓰러뜨려 줘요. 어서 가요.”
계약한 마녀의 부름에 따라 정말 오랜만에 현세에 모습을 드러낸 마신은 순순히 그녀의 말을 따랐다.
몸을 돌린 오토마톤들은 다가오는 적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진한 핏빛으로 물든 그들의 그 무시무시한 행진은 두렵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웅장하고 위대해 보이기까지 하다.
다만 신관들은 정반대의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진심으로 놀라고, 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릇을 준비하라는 말이 이런 것이었나!”
“저 현상 자료에서 본 적 있어요. 마신, 마신 맞죠? 내가 잘 못 본 거라고 말해줘요!”
“신계의 마신을 지상에 강림시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저걸 뭘로 설명해요!”
“그보다 어서 검은 성녀의 존재를 종단에 보고 해야!”
난데없는 열띤 토론과 언쟁은 마녀의 차가운 한마디에 종식되었다.
“시끄러워.”
뚝,
그때 대표로 여성 신관 하나가 나섰다. 그녀는 교단에 몸담은 자라면 누구나 가지는 어떤 가능성을 확인받고자 했다.
현실에 모습을 드러낸 기적을 직접 목격한 신관들은 이제 절박함 마저 느끼고 있었다.
“저, 당신이 부른 것은 정말, 정말로 마신입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그분도···! 가능합니까?”
격돌 직전의 오토마톤들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던 마녀가 어이없는 질문에 웃음을 터트렸다. 좀 킥킥거린 그녀가 신관을 보며 말했다.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구나. 너희 선배들은 그게 가능했던 걸로 아는데?”
마신을 소환한 마녀가 그들의 가능성을 인정했다.
그저 전설 속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것인데!
“저, 정말로 그게 가능하단 말이야?”
“하지만 실제로는 커다란 결례가 아닌지···!”
“그래도 성음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저마다 흥분한 신관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다시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온 마녀는 느긋하게 뒷짐을 지고 가공할 인형 병기들의 격돌을 구경했다.
쾅-! 카카칵!
마신이 깃든 오토마톤은 신관의 인챈트를 받은 것과 흡사했지만 그것보다 더 말도 안 되는 강도와 출력을 행사했다.
떵-!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전투 망치를 롱소드 하나로 막아낸 오토마톤이 상대의 가슴 장갑판을 발로 찼을 뿐인데 3미터에 달하는 덩치가 뒤로 쭉 밀려버린다.
망원경을 눈에 댄 채 작은 주먹으로 성벽 위의 요철을 내리친 고르곤이 입을 뜨악 벌렸다.
“이건 사기야! 전원 빛의 검 사용 허가! 있는 힘껏!”
쿵쾅거리며 서로 뒤엉켜 싸우는 인형들의 사이로 갑자기 번쩍이는 섬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멸종한 소드 마스터의 검기를 기술로 재현한 빛의 검을 뽑아 든 인형 기사들의 난투는 보기에는 멋졌지만, 토벌 대상인 고르곤으로서는 긴장되기 시작했다.
미, 밀리는 거 아냐?
고르곤이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에 대고 누군가와 연락을 취하는 사이, 탑의 뒤쪽으로 한 무리의 모험가들이 들이닥쳤다.
지형을 파악하고 전장을 우회한 헤리슨의 별동대였다.
7층 탑의 꼭대기에 있는 그녀를 향해 헤리슨이 외쳤다.
“전술 전략은 형편없구나! 마녀 모르카! 내 남편 어떻게 했어!”
“나는 모르카가 아니래도! 뒤에 배치한 서큐버스가 돌파 당했어! 플랜B 준비해! 플랜B!”
허둥지둥 진땀을 흘리며 소리를 지르는 고르곤이었지만 그 얼굴에는 신이 난 표정이 섞여 있었다.
두근두근하잖아! 심장이 뛰고 있어! 아하하하!
서둘러 탑을 내려가는 그녀의 앞으로 별안간 캐롯과 크랭크가 막아섰다.
“어디를 그리 급히 가십니까?”
땀을 찔끔 흘린 그녀가 말했다.
“마, 마법 풀어 줄 테니 모르는 척해주지 않을래?”
딸깍-!
캐롯의 턱이 열리고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으익-!”
질겁한 마녀가 미친 오토마톤을 앞에 두고 오금을 저리고 있는 사이 탑으로 돌입한 헤리슨의 별동대는 사로잡힌 동료 모험가들을 대부분 구출했다.
“오마르는? 내 남편은!”
프린트가 힘겹게 말했다.
“오, 오마르는 따로 끌려갔어. 위층으로.”
“제길! 쿠크! 탐색 마법 부탁해! 탐색에 필요한 촉매는···!”
평소 그들과 안면이 있던 마법사 쿠크는 급하게 주머니를 뒤적이는 헤리슨의 머리에 손을 턱 올리고 주문을 외웠다. 눈을 감은 그가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음, 찾았다. 6층, 마법을 못 쓰게 구속 결계를 두른 방에 감금 중이야. 좀 지친 것 말고는 별일 없어 보여.”
“가즈아!”
눈이 돌아간 나머지 냅다 고함을 지른 헤리슨이 1층 로비로 뛰어 올라갔다가 마침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에서 빠져나와 탑의 입구로 들어서는 붉은 오라의 오토마톤과 마주쳤다.
-이 인형은 다루기 힘들군.
샤아아···!
짧은 성음과 함께 붉은빛이 사그라지고 평소의 오토마톤 지스터가 돌아왔다.
“어디로 가십니까. 나는 마스터를 호위합니다.”
“나도다.”
언제 왔는지 지스터의 뒤에서 토벌단의 마녀도 모습을 드러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에 감정이 격해진 헤리슨이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지스터! 소프!”
마녀 소프, 이번 구출 작전을 위해 모험가 길드의 중계로 소개받은 그녀는 마녀이면서도 어려운 마녀 토벌이나 소탕 작전에 동원되는 마녀사냥 전문 마녀였다.
그런 소프가 예의 그 영혼 없는 눈으로 헤리슨을 쳐다보았다.
“내내 말하고 싶었던 건데, 너 남편 구하러 왔다면서? 입장이 좀 뒤바뀐 것 같지 않아? 원래 공주님을 구하러 가는 건 왕자님이잖아.”
“지금 그런 거 따질 때예요!?”
헤리슨의 고성에 싸늘하게 킥킥 웃은 그녀가 계단으로 몸을 돌렸다.
“너희들만으로는 그걸 상대할 수 없어. 마녀는 마녀만이 상대할 수 있지.”
그들은 다른 층은 무시하고 바로 6층으로 뛰어올랐다. 층 하나하나의 넓이가 상당해서 한참 수색하여 겨우 좁은 방에 갇혀 있던 오마르를 구출했다.
“사, 살았다. 구하러 와줬구나.”
“으앙-! 오마르!”
힘없이 웃는 그를 부둥켜안고 헤리슨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는 중에 층계참으로 누군가가 내려온다.
“야! 남의 집에 쳐들어 와 놓고는 선물 하나 없니!”
마녀의 탑, 그 주인의 등장에 모두가 긴장했다.
외모는 예쁘장한 편이지만 크게 주목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차림새도 마녀라기보다는 뭔가 마도공학자처럼 보였다.
헤리슨을 따라온 모험가 하나가 긴장한 표정으로 자동 석궁을 겨눴다.
“저, 저게 마녀 모르카야? 그냥 평범한데?”
“내가 마녀라고 하기 전까지 너희들도 나를 마을 처녀쯤으로 대했잖느냐.”
팔짱을 푼 소프가 앞으로 나서자 남자들이 찔끔한다.
“안녕하신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고르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손가락을 들고 사나운 표정으로 웃는다.
“마녀라는 것들은 어떻게 보자마자 알아보겠다니까? 너 독사 같이 생겼어. 쥐 잡아 먹었니? 왜 입에만 립을 발랐어?”
“그러는 당신은 너구리같은 걸.”
날카로운 지적에 고르곤이 두 팔을 번쩍 들고 화를 낸다.
“뭣! 내가 수백 년에 걸쳐서 마련해 놓은 비밀 기지에 마구 쳐들어와서는 냅다 행패부터 부린 주제에!”
독사와 너구리의 신경전이 시작되자 모두가 긴장했다.
독사녀가 말했다.
“그건 그쪽이 사람을 잡아먹어서 그래. 마녀 모르카.”
“나는 모르카가 아냐! 나는-!”
딱-!
고르곤이 자기 이름을 밝히려는 찰나 소프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주변 남자들이 들고 있던 자동 석궁이 멋대로 발사를 시작한다.
투투투투투투투투투퉁!
“아악-!”
고슴도치가 된 그녀가 비명을 질렀지만 어째서인지 쓰러지지 않는다. 그저 뒤로 허리를 꺾은 채 고정되었다.
이 틈에 소프가 손짓했다.
“들고 온 무기를 내려놓고 빨리 철수해라. 여기는 내가 맡겠다.”
“···감사합니다.”
헤리슨은 짧게 말하고 오마르를 부축해서 몸을 돌렸다. 모험가들도 기민하게 움직여 자동 석궁과 롱소드를 뽑아 바닥에 내리더니 후다닥 달아나기 시작했다.
“마녀님! 행운을!”
뜻밖의 응원을 듣고 슬쩍 뒤를 돌아본 차가운 마녀의 얼굴로 슬쩍 미소가 번진다.
그걸 본 모험가가 얼굴을 붉혀버렸다.
길은 마법사 쿠크가 만들었다.
“디그!”
쾅-! 와르르륵!
벽돌 바닥에 대고 굴착 마법을 사용하자 흙먼지가 폭발하며 바닥이 무너지고 아래층이 드러났다.
사람들이 서둘러 그리로 몸을 던지고 이윽고 모두가 사라진 공간,
두 마녀가 서로를 마주했다.
“다 갔어?”
“음, 모두 갔어.”
깔깔 웃음 지은 고슴도치가 허리를 숙이더니 고개를 든다.
“아야야. 이거 아프네.”
“신기하네. 왜 안 죽지?”
“왜냐하면 너보다 오래 살았거든? 그나저나 넌 뭐야? 뭔데 있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씌우는 거야? 나 사람에게 지은 죄라면 남자 정기 좀 빨고 놓아준 것밖에는 없는데. 그리고 그만큼 돌려주기도 했어. 오죽하면 서쪽의 마녀, 현자 고르곤이라고 불렀겠니.”
“정기를 빨아서 생명력을 늘리나 보군? 배워보고 싶은데.”
고르곤이 방긋 웃는다.
“그래볼래? 서큐버스가 자동으로 사역마가 되는 단점이 있지만.”
“그건 싫은데, 나는 반려동물은 안 키우는 주의라서!”
트타타타타타!
자동 석궁의 화살이 무섭게 날아든다. 하지만 고르곤 손바닥 앞에서 모두 가로막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그러자 이번엔 바닥의 롱소드가 스스로 일어나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기 시작했다.
캉캉-!
몸에 박힌 화살까지 전부 뽑아 날린 고르곤은 구멍이 숭숭 뚫린 흰 가운의 안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멋지게 다리를 펴서 얼굴에 쓰더니 이맛살을 구겼다.
잔뜩 화가 난 얼굴의 고르곤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겨우 그런 실력으로 싸움을 건 거라면 이 언니는 슬플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