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197화 (197/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옛날에는! 197 >

“메이리? 메이리!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가출한 오빠를 욕하러 찾아왔구나. 어흐흑!”

“아, 아버지? 당신 죽었잖아! 왜 유령이 되어 나타나고 지랄이야!”

“조제! 너 이 자식! 살아있었구나!”

“누나!”

다들 가족과 친구의 이름을 부르면서 화를 내거나 울기 시작한다. 이 상황에 당황한 크랭크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울컥한 그가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아닙니다! 나는 크랭크입니다! 당신들과 함께 마녀를 잡으러 왔었던 크랭크라고요!”

하지만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크랭크와 마주한 사람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엉망인 얼굴로 흐느끼고 있다.

“으흐흑···! 메이리, 미안하다. 너만 고생시켜서 정말···!”

“이게 무슨···!”

아찔해진 크랭크가 주변 동료들을 얼굴을 살피다가 천천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이 뭔가 했군요.”

인기척에 반응한 캐롯이 재빠르게 통로 저편을 노려보았다.

랜턴을 손에 들고 나타난 고르곤이 히죽 웃고 있다가 그걸 얼굴 밑으로 가져와 비추었다.

빛에 물든 그녀의 얼굴만이 괴기스럽게 어둠 속에 두둥실 떠 있는 것 같다.

“쿠후후-! 봐버렸네, 봐버렸어~!”

“아하하!”

“이히히!”

“우후후!”

곧 그녀 주변의 어둠 속에서 같은 얼굴의 여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키득키득 장난스럽게 웃고 있다.

검은 연기를 드레스 삼아 휘감은 그녀들이 고르곤의 주변을 날아다니며 재잘거린다.

“언니, 저 사람이야?”

“우리 주는 거야?”

“나 한 입만 먹어봐도 돼?”

어디서 본 얼굴,

이야기만 전해들은 크랭크는 직접 보는 것이 처음이지만, 캐롯은 두 번째.

“서큐버스.”

캐롯이 장도리 망치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서큐버스들은 싸울 생각이 없는지 히히 웃기만 할 뿐 다가오지 않는다. 그때 고르곤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팡-!

실험체들의 휴식을 위해 꺼놓은 조명이 켜지자 넓은 지하실의 전모가 드러났다. 넓은 공간에 수십 개의 상자형 감옥이 쌓여있고 그 안에 각종 괴물체가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이미 오래전에 죽은 것들이었고, 산 건은 몇 되지 않았다.

밝은 조명 아래 모습을 드러낸 서큐버스들이 히죽히죽 웃으며 관심을 드러냈다.

“와! 저 남자 엄청 크다?”

“맛있겠네.”

고르곤의 얼굴이 딱딱해진다.

“씁! 안 돼. 저 애는 내 거야. 건드리면 너희들 전부 가만 안 둬.”

“으엥-! 언니만!”

“저기저기, 그럼 독방의 그 마법사 아저씨는요?”

고르곤이 인상을 더 찌푸리며 서큐버스를 쳐다본다. 내내 캐롯과 크랭크에게 방긋방긋 웃어주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안 돼, 마법사는 대부분 고지식한 놈들이라서 잘못 건드렸다가 자폭이라도 하면 여기 통째로 날아가 버리니 그만두는 게 좋아.”

“에에엥~!”

다들 애교 섞인 시무룩한 소리를 냈지만 몇몇은 여전히 싱글벙글한 얼굴로 감옥의 사내들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오크 같은 것보다야 훨씬 좋지. 츄릅~!”

가만히 그들을 노려보던 크랭크가 자기 얼굴을 가리키며 물었다.

“사람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데, 뭔가 했습니까?”

고르곤의 입이 죽 찢어지더니 음흉하게 웃기 시작한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마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모습이다.

“흐흐히히하하하! 네 몸이 전남편이랑 비슷해서 네 얼굴에다 저주를 걸었어! 그 누구든 보는 순간 최근까지 가장 마음에 담아 두었던 그리운 사람의 환상에 시달리게 되지!”

처음 저주라는 말에 오만상을 찡그리며 그녀를 쳐다보던 크랭크였지만 크게 분통을 터트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내 얼굴이 상대의 그리움을 채워준다면, 이건 정말로 저주인가?

자기 얼굴에 크게 소중함을 느끼고 있지 않았던 지라 충격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보다 나쁘지 않겠다는 실용적인 발상이 더 크게 다가온다.

“어, 음?”

되려 고르곤이 당황했다. 내가 기대한 건 이런 게 아닌데?

턱을 매만지던 크랭크는 감옥 안의 사람들이 여전히 발광을 멈추지 않자 주변에 마침 굴러다니는 가죽 주머니를 주워서 그 자리에서 칼집을 내고 머리에 뒤집어썼다.

그러자 사람들을 추억을 헤집던 환상이 사라져버렸다.

그들의 눈앞에는 아무리 봐도 크랭크 같은 청년이 머리에 이상한 자루를 쓰고 서 있었다.

“크, 크랭크···?”

그 크랭크가 마녀 고르곤을 보면서 점잖게 말했다.

“탑의 청소가 끝났습니다. 퀘스트는 완수, 이제 돌려보내 주시죠.”

“아, 아니! 너는 무슨 반응이 그러니! 화를 마구 내면서 덤벼들어야지!”

“그러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뒤로 돌린 손에 드디어 인간용으로 만든 현실 왜곡 구속구를 준비했던 고르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고 크랭크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으히히 웃으며 곁눈질로 그를 바라본다.

“그러면 뭔가 재미난 일이 생기지 않을까나?”

쾅-!

쿠구구구궁-!

별안간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지면이 울린다.

동시에 고르곤의 손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인형 기사단의 굵은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적 침입.

-습격. 자동 방어 태세, 기사단 출격.

“어? 뭐야? 침입자라고? 아! 맞아! 일부러 놓아준 애들이 있었지!”

흔들리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당황하던 고르곤이 갑자기 안정을 되찾는다. 그녀의 얼굴은 곧 참을 수 없는 희열에 물들어갔다.

곁에 두둥실 떠다니던 서큐버스들이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흔든다.

“아아, 언니 또 시작이네.”

“그러게.”

“얼마나 오래 살면 그렇게 돼?”

“하하하! 필멸자가 불멸자의 가슴앓이를 어떻게 알겠니! 왔어! 생각보다 빨리! 아하하!”

목숨이 걸린 줄타기에 그저 신이 나버린 고르곤은 어디론가로 후다닥 달려가 버렸고, 서큐버스들도 서로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생각보다 많이 몰려온 모양이야. 우리도 가봐야겠지?”

“그렇네.”

츠팟!

다들 깜빡거리면서 사라졌지만 몇몇은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소리도 늘어놓았다.

“믿기지 않겠지만, 너희들은 돌려보낼 예정이었어. 우리 마녀님은 착한 마녀거든?”

다들 정말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녀의 시종마 서큐버스들이 좀 깔깔거리더니 손을 흔들었다.

“데리러 온 참에 돌아가도록 해, 기회가 되면 또 만나자. 보고 싶으면 가끔 찾아와도 되고.”

“재수 없는 소리 마!”

“난 네가 제일 좋았어. 프린트. 쪽~!”

엉망이 된 얼굴의 프린트가 바닥에 앉은 채 창살 앞에서 손 키스를 날리는 서큐버스를 쳐다보았다.

그는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꼭 돌아올 거다. 마력수정폭탄을 가지고, 그래서 너희들을 전부 태워 없애겠어.”

“응! 기다릴게!”

“아하하하!”

가벼운 웃음을 남기고 서큐버스들이 모두 모습을 감춰버렸다. 바깥에서는 싸움이라도 일어났는지 폭음과 소음이 끊이질 않는다.

쿵···! 쾅···!

모든 마녀의 손길이 거둬지자 짧은 한숨을 내쉰 크랭크가 말했다.

“캐롯, 부숴.”

몸을 돌린 캐롯이 쇠창살을 향해 망치를 들어 올린다.

같은 시간, 폭발과 함께 지하 정원의 출입구를 박살내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로브를 입은 여성이었다.

싸늘한 눈매와 머리카락을 틀어 올려서 비녀를 꽂아 고정한 것이 눈에 띄었다. 반면에 입술만큼은 화장했는지 새빨갛다.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정말로 지하 정원이잖아? 생각보다 잘해놓고 사는구나. 이런 건 좀 보고 배워야겠어.”

눈을 가늘게 뜬 그녀의 좌우로 무장한 모험가들과 오토마톤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뒤이어 나타난 것은 머리끝까지 화가 난 얼굴의 헤리슨이었다.

“내 남편 내놔-! 이 망할 년아!”

냅다 고함을 지르는 헤리슨의 곁에서 이번 복수전을 위해서 특별히 초빙된 마녀가 팔짱하고 낄낄 웃고 있다.

기세 좋게 몰려온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아는 얼굴이었다. 금색 방열 가발의 오토마톤 지스터가 허리춤에 나무 열매가 가득 들어있는 바구니를 안고 그들과 대치했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소속과 용건을 밝히십시오. 그리고 저 문은 변상해주셔야 합니다.”

“지스터!”

마스터 헤리슨을 정면으로 바라본 지스터가 들고 있던 과일 바구니를 떨어뜨렸다. 실물이 나타나자 구속구에게 현실 간섭당하고 있던 논리 회로가 오류를 일으킨 것이다.

“나나나나나나느느느느느기기기기게게게.”

덜덜 떨고 있는 오토마톤을 가만히 지켜보던 마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지금 그녀의 눈은 열화상을 보고 있었는데, 지스터는 머리와 목의 구속구에서 고열을 뿜어내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목의 저게 방해를 하나 본데?”

딱-!

퍼석-! 파직!

마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목에 걸려 있던 두툼한 구속구가 연기와 불꽃을 내면서 쪼개진다. 그 연기를 헤치고 지스터의 얼굴이 스르륵 드러나더니 그 초록색 눈알이 붉은빛을 드러냈다.

필터링이 사라져 갑작스레 쏟아져 들어오는 모든 기억 정보를 바탕으로 마녀에게 속았다는 것을 인지한 지스터가 캐롯이 했던 것처럼 인간 흉내를 내보려 시도했다.

자유로운 생각과 의지를 부정당한 사람들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항상, 어떤 방법으로든,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늘어뜨린 금발 사이로 붉은 눈을 드러낸 지스터가 말했다.

“마스터 헤리슨, 나는 지금껏 이렇게 강한 분노를 느낀 적이 없습니다.”

다시 돌아온 그를 보고 짧은 한숨을 내쉰 헤리슨이 분노하려고 노력하는 오토마톤에게 검을 풀어서 던졌다.

“화가 나는 이유야 당연하지, 네 사명이기도 하니까. 자, 이제 죽은 동료들의 복수를 하고 잡혀 있는 사람들을 구출하자. 네가 앞장서.”

착! 칼을 받아든 지스터가 몸을 돌려서 분노한 토벌단의 선두가 되었다.

멀리 탑의 상층부, 망원경을 통해 그걸 보고 있던 고르곤이 놀라움의 비명을 질렀다.

“어머나! 세상에, 저걸 저렇게 간단하게 풀 줄이야! 누구지? 마법사인가?”

때마침 그녀의 망원경에 지스터의 구속구를 풀어준 마녀가 정확하게 잡혔다.

상대도 그것을 아는지 손을 흔들며 씩 웃어준다. 방긋방긋 움직이는 그 빨간 입술을 읽던 고르곤이 찡그린 얼굴로 아하하 웃으며 허리를 폈다.

넌 이제 뒈졌어.

“핫하! 놀구있네! 서쪽의 마녀, 현자 고르곤 님을 뭘로 보고! 이쪽은 군단급 화력이라고! 전기 출격! 뭉개 버렷! 아! 잘생긴 남자는 살려놓고.”

트드드드-!

마녀의 7층 탑, 그 1층에는 사방으로 커다란 문이 여러 개 달려 있었는데, 지금 그 탑의 1층 문이 모두 열리고 거대한 기사단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보고서는 읽었지만 실제로 본 모험가들은 기겁했다.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거야!”

“3미터는 되겠네! 제길! 이대로 덤비라는 건 아니겠지? 엉?!”

쿵-! 쿵-!

걷는 것만으로도 위압적인 마녀의 기사단을 보고 토벌대의 모험가들이 주춤거리는데 그들 사이로 별안간 길이 만들어지며 올림머리에 비녀를 꽂은 여자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점점 다가오는 3미터짜리 파괴 병기를 바라본 채 허리에 손을 얹고 삐딱한 자세로 서 있던 그녀가 뒤를 향해 손짓했다.

“그릇을 준비해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