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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93화 (193/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옛날에는! 193 >

이 현상은 모두에게 적용되었다. 다들 홀로 떨어져 주변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뭐야?! 여긴 어디야!”

“다들 어디에 있어!”

“제길! 마녀의 농간인가!”

반면 오토마톤들은 멀쩡했다. 지스터가 멍청한 눈을 하고 벽을 노려보고 있는 헤리슨의 어깨를 흔들고 눈앞에 손을 흔들어 봐도 전혀 반응이 없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주인님! 주인님!”

캐롯이 크랭크의 다리를 잡고 흔들어도 그는 꿈쩍하지 않았다.

“마녀가 무언가 수를 쓴 것 같습니다. 플루토.”

가장 뒤에서 일행들을 지키고 있던 하드 스킨 오토마톤 플루토가 투구를 든다. 지스터는 이제 고개를 숙이고 거인의 다리에 매달린 햄스터를 쳐다보았다.

“캐롯.”

캐롯이 뒤를 돌아본다.

“우리만 남았습니다. 마녀의 술수는 오토마톤에게 적용되지 않나 봅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플루토가 입을 열었다. 낮고 굵은 목소리였다.

“초기 목적은 마녀의 토벌. 이 현상은 마녀의 방어 수단으로 해석. 결론, 마녀사냥의 속행.”

“나는 주인님을 구해야 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지스터가 몸을 돌렸다. 화려한 금발이 캐롯의 눈앞에서 나부낀다.

“그렇다면 갑시다. 플루토는 남은 사람들의 보호를, 캐롯과 나는 전진하겠습니다.”

“그대들에게 행운을.”

플루토가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뒤를 돌아본 지스터도 주인님들이 하던 것을 따라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그에 반해 캐롯은 자기 손가락을 내려다보다가 앞서가는 지스터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분노한 오토마톤들이 도착한 동굴의 끝에는 놀랍게도 고풍스러운 현관문 같은 것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천연 동굴에 인위적인 문,

문고리를 잡은 지스터가 그것을 잡아당겼다.

화아악!

갑작스레 쏟아지는 빛과 바람에 지스터의 금발이 크게 나부낀다.

“여기가 마녀의···!”

호기심에 문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민 캐롯의 눈동자로, 푸르른 초원에 꽃과 나무가 가득 채워진 드넓은 정원이 떠올랐다.

들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어두컴컴한 지하실의 습기 찬 실험실 같을 거라고 모두가 떠들어 댔었는데.

더불어 그 환상적인 공간의 중앙에는 마녀의 탑이 오롯하게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며, 빛은 천장에 매달린 번쩍이는 수정체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이곳은 마녀의 지하 정원입니까.”

내부로 들어선 지스터가 주변을 살피고 있는데 뒤따라온 캐롯이 문을 닫았다.

쿵-!

문을 너무 세게 닫은 건가 하고 다시 열어보는데 쿵쿵거리는 소리는 문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초원의 저편에서 걸어오는 갑옷 기사의 발걸음에서 나는 소리였다.

펄럭이는 방열 망토, 옆으로 비켜 찬 대검, 거기에 전장이 3미터는 될 것 같다.

마녀의 기사, 하드 스킨 오토마톤의 등장이었다.

전투를 감지한 지스터가 고개를 숙였다.

“플루토를 데려올 것을 그랬습니다.”

“데려올까요?”

시간과 확률을 검토하는데 갑자기 문에서 찰칵하는 소리가 난다. 고개를 돌린 캐롯이 두 손으로 문고리를 잡아보았지만 단단하게 고정된 손잡이는 오토마톤의 힘으로도 돌아가지 않았다.

“잠겼습니다.”

“듣고 있나 보군요.”

쿵쿵쿵!

이제 마녀의 기사가 지척까지 달려왔다.

“협공을, 우리의 가능성을 실험해 봅시다.”

파박-!

검을 든 지스터가 먼저 달려 나가고, 햄스터 길리 슈트의 캐롯이 4발로 뒤따랐다.

타다다다닥!

챙-! 캉!

고요한 지하 정원에서 오토마톤의 검투가 시작되었다. 화려한 금발 오토마톤이 롱소드를 휘두르며 뛰어들었지만 애초에 중장갑을 두르고 출력도 4배 이상인 상대로 유효타를 넣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스터는 혼자가 아니었다.

타탁타탁! 탓!

4발로 달리는 햄스터가 갑자기 뛰어올라 기사의 투구에 달라붙는다. 인간처럼 모든 감각기관이 얼굴에 집중되어 있기에 마녀의 기사가 주춤거리며 팔을 들어 시야를 가리고 있는 괴이한 짐승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쾅-!

오토마톤 햄스터는 이제 날다람쥐가 되어 하늘로 뛰어올랐다. 덕분에 마녀의 기사는 자신의 얼굴을 때려버렸다.

쿵! 쿠쿠쿵!

주춤하는 기사에게로 롱소드를 세운 지스터가 덤벼든다.

챙-! 채채채채챙! 쿵! 쾅!

칼날이 춤을 추자 사방으로 불꽃이 튀고 휘두른 대검에 얻어맞은 정원이 비명과 같은 진동을 울린다. 더불어 먼지 폭발이 연이어서 일어난다.

“어머나! 그래! 잘한다! 와와! 그래, 거기! 앗! 아까워라!”

탑의 최상층, 요철 위에 가슴을 걸쳐 올린 하얀 실험실 가운의 여자가 오페라 하우스에서 연극이라도 관람하는 것 인양 우아한 망원경을 눈에 대고 키득거리고 있다.

애초에 기계인형이 휘두르는 칼은 인간의 눈으로 뒤쫓을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 화려한 전투 장면만큼은 좋은 눈요깃거리였다.

“대단해! 요즘 애들은 저렇게 유연하게 움직이는구나. 검기만 재현하지 못할 뿐이지 아주 그냥 소드 마스터라도 한 수 접겠는데.”

망원경을 내린 마녀 고르곤이 밝게 웃는다.

“싸우는 건 무섭지만 구경만큼은 정말 재미있다니까! 아하하!”

챙챙! 퍽!

칼을 휘두르고 캐롯과 교대한 지스터가 고개를 들었다. 그 초록색 유리 눈동자에 탑 꼭대기의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보인다.

마녀의 소재 확인!

술자를 죽이면 대개 마법은 풀린다!

“캐롯! 시간을 끌어주세요. 지금부터 마녀를 요격하겠습니다.”

하지만 기사의 얼굴에 달라붙은 날다람쥐의 반응이 이상하다. 빨리 뛰어올라야 하는데,

캐롯이 덜덜 떨면서 경고음을 낸다.

“마력 엔진의 급격한 온도 상승, 10초 후 오버 히트합니다. 추가 방열 대책 필요.”

턱-!

우직한 손길이 햄스터 가죽을 움켜쥐더니 그걸 냅다 집어던져 버렸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한 행동이었건만 날아간 곳이 다름 아닌 마녀의 탑이었다.

쾅-!

날아와 벽에 부딪혀 대굴대굴 굴러버리는 걸 보고 마녀 고르곤이 주먹을 휘두르며 버럭 외쳤다.

“야! 여기다가 던지면 어떻게 해!”

치이이이이···!

“과열! 과열! 오버히트! 오버히트!”

바닥에 드러누워 경고음을 내던 캐롯의 눈에 탑 위에 고개를 내민 마녀의 얼굴이 들어왔다.

끼긱끼긱-!

힘겹게 팔다리를 움직이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캐롯이 몸에 걸치고 있던 햄스터 슈트를 벗어서 휙 내던졌다.

펄럭-!

빵모자를 눌러쓴 작은 소녀형 오토마톤이 고개를 든다.

찰칵-!

턱이 아래로 열리고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의도치 않게 그 안에서 화끈한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흐으으-! 마마마녀를 자자잡고 주주주인님을 구구구한다. 끼기, 끼이이이에에에!”

과열로 사고 회로에 오류가 생긴 캐롯은 작동 정지를 무시하고 엄청난 속도로 탑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작은 몸에서는 열기가 쌓여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지경이었다.

트타다다다다닥!

“캬아아악!”

마스터의 신변에 위협을 감지한 마녀의 기사가 고개를 돌리자 그 앞을 금발의 오토마톤 지스터가 가로막았다.

“못갑니다.”

쿠웅!

화가 난 듯이 발을 구른 마녀의 기사가 다시 탑을 쳐다보았다. 투구 속의 붉은 눈이 가늘게 일그러진다.

시건방진 노멀 오토마톤 주제에 속도를 앞세운 견제가 만만치 않다. 전선은 고착 상태, 마스터는 위험, 나는 현 상황을 개척해야 한다.

탑을 기어오르는 조그만 오토마톤을 내려다보면서 와하하하 웃고 있던 고르곤의 손목에서 굵은 목소리가 울린다.

-빛의 검 발동 요청.

“등신아! 연구실 무너뜨림 셈이니! 안 돼! 쉽게 해치울 생각 말고 실력으로 대응하라고!”

이제 고개를 숙인 고르곤이 아래를 보면서 외쳤다.

“네 하는 짓이 참 멋지구나! 그 절박함, 마음에 들어!”

무엇이 너를 그렇게 움직이게 하고 있지?

짐승처럼 네 발로 벽을 타고 기어오르던 캐롯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비명을 질렀다.

“키이에에에에엑!”

고르곤은 그녀대로 자길 노리는 외침에 웃음으로 대답했다.

“아하하하! 나는 여기란다! 올라오렴!”

쾅-! 와르륵-!

캐롯이 기어오르던 탑이 갑작스레 폭발하더니 벽돌이 사방으로 날리고 갑옷을 두른 굵은 팔이 튀어나왔다.

그 커다란 손아귀는 캐롯의 작은 동체를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캭! 캬악!”

퍼석-!

발버둥 치던 캐롯이 그대로 안쪽으로 끌려들어 갔다. 그리고 곧 그 옆의 벽을 뚫고 다시 날아오른다.

안쪽의 무엇인가에게 도로 집어 던져진 것이다.

쾅-!

“아하하! 으하하! 최고야! 요즘 심심했거든! 그래서 일부러 기다린 거거든! 하-! 하하하!”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닌 표정의 고르곤이 허리를 꺾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폭소를 터트렸다.

먼지와 함께 날아간 캐롯은 바닥에 떨어져서는 공처럼 대굴대굴 굴렀다.

턱!

긴 다리를 내밀어 굴러오는 캐롯의 몸을 멈춰 세운 지스터가 고개를 숙였다.

“당신, 방열 대책이 없군요.”

“기기기게게게···!”

퉁!

축구공을 다루듯 캐롯의 몸을 걸어서 띄워 올린 지스터가 그 몸을 안고 옆으로 피했다. 그들이 있던 자리로 마녀의 기사가 휘두른 대검이 떨어져 흙먼지 폭발을 일으켰다.

쾅-!

먼지구름 속에서 빛나는 것은 마녀의 기사의 붉은 눈빛이었다. 지스터가 품에 안은 캐롯에게 중얼거렸다.

“나는 당신이라는 돌에 남은 운을 걸어 던져보겠습니다.”

사라락···!

자신의 방열 가발을 벗어서 캐롯의 머리에 씌우고 허리에 찬 수통을 풀어서 같이 부었다.

치이이이이익-!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증기는 마치 연막을 터트린 것 같다.

그리고 다시 한번, 캐롯이 날아오른다. 이번엔 금발을 휘날리며,

방열 가발과 이곳으로 온 목적을 캐롯에게 맡긴 지스터는 남은 수통의 물을 캐롯의 빵모자에 부은 다음 그것을 뒤집어쓰면서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치이이···!

모자의 챙 아래로 지스터의 초록색 유리 눈동자가 도끼눈이 되었다.

그 눈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을 도전적인 시선으로 올려다보았다.

“이길 수 없다는 걸 나도 압니다. 하지만 3분, 당신의 시간을 빼앗아보겠습니다.”

트드득···!

기사형인 하드 스킨 오토마톤에겐 묘한 구석이 있다. 그것은 진심인 상대에게 무인의 예의를 갖춘다는 것, 그것은 마녀의 기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끼릭, 척!

대검을 바로 세운 마녀의 기사가 목적을 위해 방열 가발을 포기하고 그를 가로막은 이 나약한 인형과 정면으로 마주 섰다.

“오요요요! 저 모자 쓴 아이 멋지잖아! 가진 걸 넘기고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다니! 최고야!”

멀리서 고르곤이 망원경을 눈에 대고 둘의 격돌을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보는데 탑의 꼭대기 층으로 또 다른 하드 스킨 오토마톤이 뛰어 올라왔다.

쿵쾅쿵쾅-!

아까 탑 안에서 캐롯을 붙잡아 집어던진 녀석이었다.

와락!

“어라라라?!”

주인을 껴안고 고개를 든 그가 방어를 위해서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하얀 증기를 흩뿌리며 날아온 꼬꼬마 오토마톤에겐 매우 무서운 이빨이 드러나 있었다.

긴 방열 가발이 제공하는 냉각기능으로 잠깐 제정신을 차린 캐롯이 외쳤다.

“마녀! 나의 주인님을 풀어주세요!”

캉-!

카득카득!

기사의 팔에 달라붙어 그 팔뚝 갑옷을 물어 씹던 캐롯이 뒤로 뛰어올라 탑의 꼭대기 층에 안착했다. 다시 일어난 그 모습은 최종 보스 입장의 고르곤을 흥분시켰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그녀가 호들갑을 떤다.

“엄머머! 멋지다! 애! 완전 악마의 인형 같잖아!”

길어서 바닥에 끌리는 젖은 금발, 얼굴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열기에 그로 인한 새하얀 증기,

그리고 벌어진 입에는 날카로운 이빨마저 드러나 있다.

위험을 감지한 또 다른 마녀의 기사가 견제했다.

“주의! 당신은 위험하다. 현재 적의 급습!”

“하하하! 아하하!”

신나게 웃음을 터트린 고르곤이 외쳤다.

그리고 두 팔로 가슴을 짚으며 앞으로 나선다.

“나는 여기에 있어! 나를 잡으면 네 주인님을 구해줄게! 어때? 어때!”

도끼눈을 한 금발의 오토마톤이 조그만 손아귀를 펼치고 뛰어든다. 하지만 그 전에 자기보다 3배 이상 큰 마녀의 기사를 돌파해야 했다.

퍽!

대굴대굴-!

강하고 억센 주먹을 얻어맞고 뒤로 굴러간 캐롯이 요철에 등을 기대고 멈춰버렸다.

“어라? 애 왜 이러니?”

“위험하다. 주의 바람.”

기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얀 실험 가운에 두 손을 집어넣은 고르곤이 쫄래쫄래 달려가 쓰러진 캐롯을 살폈다.

“으앗! 뜨거! 뭐야. 오버 히트야? 강제 종료? 에이, 재미있다 말았네.”

무릎을 꿇고 캐롯을 살피던 고르곤이 팔짱을 하더니 뚱한 표정을 했다. 그리고는 늘어진 앞 머리카락을 후하고 불어 올리더니 왼팔을 올리고 중얼거렸다.

그녀의 양팔에는 연락용 팔찌가 달려있었다.

“아메리, 빛의 검 최소 출력으로 사용 허가. 공방에 구멍 내지 마.”

-확인.

정원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던 두 오토마톤 중에서 마녀의 기사가 무거운 대검을 버리고 몸을 숙이더니 허리춤에서 짧은 원형 막대를 뽑아 들었다.

지스터가 전투 중 그의 기행에 주춤하는 사이, 먼지구름 사이로 붉은 눈을 뜬 기사의 손아귀에서 정말로 새하얀 빛의 검이 솟아오른다.

치이잉-!

촤악!

마녀의 기사가 그것을 휘두르자 충분히 거리를 두고 있던 지스터는 적잖이 당황했다.

“놀랍군요. 분명 닿지 않는 거리였는데.”

티딕-!

전투복이 사선으로 잘려 나가고 상 하반신이 분리되어 쓰러진다. 볼품없이 바닥에 나뒹군 지스터의 몸과 함께 푸르게 빛나던 그 눈빛도 점차 사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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