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옛날에는! 188 >
오크 소굴은 멀지 않은 숲속의 동굴에 있었는데, 지금 때 아닌 쥐잡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쿠엑!”
“캭!”
오크들이 고함을 지르며 난데없이 뛰어든 커다란 들쥐를 잡기 위해 동굴 안을 뛰어다니고 있다.
“캬캬캬캬!”
위장용으로 비단털쥐의 가죽을 뒤집어쓴 캐롯은 정말 햄스터처럼 4발로 동굴을 뛰어다니며 망치와 손도끼를 휘둘렀다.
머리를 얻어맞고 쓰러지는 오크가 늘어갈 무렵, 동굴 입구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지더니 칼과 방패, 도끼로 무장한 인간 전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우와아아아!”
“오크 굴 토벌이다!”
“보너스! 보너스!”
“전리품! 전리품!
눈이 뒤집힌 모험가들이 병장기를 들고 미쳐 날뛴다.
더불어 들쥐를 쫓던 오크들이 밀려들어오는 모험가들을 보고 기겁했다.
곧이어 동굴 속에서 오크와 인간 모험가들의 대 난투가 시작되었다.
캉! 챙챙! 퍽퍽!
“쿠엑!”
“이 자식들아!”
“으악!”
하지만 싸움은 인간들이 우세했다. 이쪽에는 오토마톤이라는 듬직한 기계인형은 물론 신성 치료를 남발하는 신관도 하나씩 있었기 때문이다.
“부상자는 바로바로 치료받아라! 신관님 호위는 들어오지 마!”
“우리 꼬마가 선두다! 너무 안으로 들어가지마!”
30분이 지나자 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살아남은 오크들은 동굴 깊숙한 곳으로 도망쳐버렸고, 모험가들도 부상을 우려해 뒤쫓지 않았다.
“됐어! 이대로 굴을 무너뜨려서 파묻어 버리자!”
“대장! 이거 봐요!”
호위무사들이 가리킨 것은 동굴 안에 쌓여있는 물자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놀랍게도 사람도 몇 사로잡혀 있었다.
호위대장이 이빨을 드러냈다.
“이잇! 그동안 약탈한 상단의 물건이구나! 모두 옮겨라! 캐롯! 너는 그 앞에서 놈들이 못 올라오게 견제해라!”
눈에서 시뻘건 빛을 발하며 동굴 저편을 쏘아보고 있던 미친 햄스터가 고개를 돌리더니 재빠르게 끄덕끄덕 움직인다.
“무사한 녀석들은 이걸 전부 밖으로 옮겨! 추가 보너스에 잔업 수당을 지급하겠다!”
“아무렴 그래야지! 으쟈!”
돈에 환장한 모험가를 다루는 법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 호위대장의 외침에 신성 치료를 받고 달려온 사람들이 동굴 벽과 방에 쌓여있는 물자들을 모두 밖으로 꺼내 옮겼다.
치료하느라 신력을 너무 써 버려서 기진맥진한 신관이 기가 차서 소리를 빽 질렀다.
“당신들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요! 이 칼 맞은 사람들아!”
“걱정하지 마시오! 신관님! 당신 것도 충분히 챙겨 놓으리다!”
“아니! 그게 아니라!”
모험가들이 바쁘게 물자를 옮기는 동안 호위대장은 인질로 잡혀 있던 사람들의 사정을 듣고 있었다.
그들 말로는 오크들이 인간 도적단과 협력하여 강도질을 일삼았으며, 빼앗은 물건은 나눠 가졌다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붙잡혀 있느라 몰골이 말이 아닌 사람들이 인사를 했다. 몇몇은 실종된 동료를 알아보고 얼싸안고 기뻐했다.
“어쨌든 당신들이라도 살았으니 됐소. 갑시다. 그나저나 여길 무너뜨리고 싶은데 마법사나 스크롤도 없으니 안타깝군!”
크랭크가 슬쩍 손을 든다.
“참깨 기름이랑 올리브 기름통이 몇 개 있던데 아쉬운 대로 불이라도 질러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그거 멋진 생각이군!”
그의 의견은 모두의 찬성을 얻었다. 사람들은 또 우르르 뛰쳐나가 밤의 숲속을 돌아다니며 마른 장착을 잔뜩 해 와서 동굴 안에 채워놓고 기름통을 던져서 불을 질러버렸다.
푸화르르르륵!
거대한 불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분명히 도망칠 곳을 만들어 뒀을 겁니다.”
“알고 있다. 최소한 몇 놈은 죽어줬으면 좋겠군. 일단 돌아가면 탐색 의뢰를 내도록 하자.”
“저놈은 어떻게 할까요?”
짐마차에는 멍청한 얼굴로 불타는 둥지를 바라보는 오크가 있었다. 눈살을 찌푸린 그였지만 의외의 말이 나왔다.
“놔줘라.”
“예?”
“놔주라고, 뒤통수는 빌어먹을 악당이나 치는 거야. 그리고 저놈을 봐라. 배신자의 말로는 저런 것이다.”
오크는 이제 눈물을 질질 흘리며 울고 있었다.
“오크 우는 거 처음 보네.”
“그러게.”
호위무사들이라면 죽여 버릴 테니 모험가들이 나서서 결박을 풀고 풀숲으로 데려가 밀어 넣었다.
“가라. 고마웠어.”
“몸조심하고.”
의기소침한 오크는 불타오르는 하늘을 우러러보다가 그만 어두운 숲으로 몸을 숨겼다.
“저 자식 무슨 생각 할까? 넋 나간 표정이던데.”
“그러게, 오크도 사람하고 비슷하네.”
“칫, 기분 나쁜 소릴, 오크가 오크지.”
멀리서 팔짱을 하고 그걸 쳐다보던 호위대장은 이제 고개를 돌리고 여전히 햄스터 가죽을 뒤집어쓴 조그만 인형과 그 곁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얼굴의 피를 닦아주고 있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는 씩 웃었다.
“너희 덕이 컸다. 앞으로 상단 호위로 오토마톤 하나쯤 보급해달라고 상부에 건의해야겠어. 작지만 큰 도움이 되었다.”
“정말입니다. 작아서 별 쓸모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주변에 저런 게 뛰어다니니 든든하더라고요.”
모여든 모험가들도 두런두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피를 잔뜩 흘리고 있는 그 모습은 악마의 인형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모습이었건만 함께 싸운 사람들은 그 무시무시함에 오히려 든든함을 느끼고 있었다.
저 흉악한 병기가 다름 아닌 내 편,
이윽고 열려있는 턱이 스르륵 닫히자 날카로운 이빨이 모습을 싹 감춰버렸다. 다시 눈만 댕그랗게 뜬 오토마톤 인형으로 돌아온 캐롯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걸 본 사람들이 웃어버렸다.
“햄스터가 인사하는 것 같지 않아요?”
“그렇군. 너희 녀석들은 내 특별히 더 챙겨주마.”
주변 모험가들도 웃으면서 다가왔다.
한 사람은 귀엽다는 듯이 햄스터 가죽을 뒤집어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미친 햄스터 같이 잘 싸우더구나.”
“맞아! 광견병 걸린 햄스터 같았어!”
캐롯은 반응이 없었지만, 크랭크는 슬쩍 웃으면서 그들의 칭찬을 솔직히 받아들였다.
도중에 강도단을 만나긴 했지만 목적지까지 무사히 상단 호위를 마치고 돌아온 그들은 약탈당한 물자와 실종된 사람들을 되찾아 준 답례로 보너스를 더 받았다.
쩔그럭,
돈주머니가 창구 앞으로 내밀어지자 크랭크가 그걸 얼른 받아서 챙겼다. 곁에는 여전히 햄스터 가죽을 뒤집어쓴 캐롯이 발돋움해서 탁자에 턱을 올리고 접수처를 바라보고 있다.
“여! 크랭크! 돈 좀 벌었어? 한잔 사지?”
“그래, 이 친구야! 하하!”
항상 길드에 죽치고 앉아서 의뢰를 달성한 모험가들에게 빌붙어 술 한 잔 얻어 마시는 낙으로 사는 무리가 스리슬쩍 다가왔다.
그들을 힐끗 돌아온 크랭크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캐롯.”
딸깍,
턱이 열리고 피딱지가 눌어붙은 송곳 같은 이빨을 잔뜩 드러낸 오토마톤이 생물은 불가능한 각도로 목을 꺾어서 뒤를 돌아보았다.
“오크 피를 많이 마셔서 배가 부릅니다. 그러므로 사양하겠습니다.”
“으윽···!”
청년들의 얼굴로 핏기가 가셨다.
물러선 남자들이 툴툴거린다.
“잘도 저런 걸로 싸우는군.”
“조그만 게 엄청 빠르다던데?”
“그래도 전투용이 아닌 이상 한계가 있어. 두고 봐, 조만간 망가진다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입을 닫은 캐롯은 고개를 돌리고 크랭크를 올려다보았다.
“왼팔의 어깨 관절에 가동 오차가 한계치를 넘었습니다.”
“수리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낮게 중얼거린 크랭크는 길드 내 잡화점에서 비단털쥐의 가죽도 전부 처분했다.
잡화점 점주는 키는 작지만 근육질의 노인이었다. 그는 가죽을 세면서 말했다.
“이걸로 만든 겨울 방한 장갑은 꽤 인기거든, 애들이나 여자들은 다 하나씩 가지고 있는 편이라서 잘 팔리지. 보자, 열둘, 열세 장인가, 음? 저건?”
잡화점 주인이 굵은 손가락을 들어 햄스터 캐롯을 가리켰다. 슬쩍 시선을 돌린 크랭크는 고개를 저었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으니 당분간 그냥 두려고요. 위장용으로 잘 어울리기도 하고.”
낄낄 웃은 잡화점 주인이 가죽 값을 계산해서 내밀었다.
그는 예의 바른 젊은이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곧잘 그들의 미래를 걱정해주곤 했다.
“적당히 한몫 벌면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 자네 목숨은 하나잖은가.”
“그럴 참입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마친 크랭크는 캐롯을 데리고 마리아의 여관으로 향했다.
대로를 걷고 있던 그는 곁을 쫄래쫄래 걷고 있는 햄스터를 쳐다보았다.
“팔의 가동 오차가 커지면 어떻게 되지?”
크랭크를 올려다본 캐롯이 두 팔을 들어서 앞으로나란히를 선보였다. 그런데 왼쪽 팔만 아래로 축 처진다.
“제 의지와 상관없는 곳에서 멈춥니다. 위치 결정에 오류.”
“원하는 곳을 때릴 수 없다는 말이구나. 위험한데, 역시 수리해야···.”
하는데 길드에 의뢰하자니 너무 비싸다. 실력도 들쭉날쭉 변변찮아 보이고,
차라리 내가 해볼까?
크랭크도 결국 모든 오토마톤의 주인이 한 번쯤 하게 되는 망상을 시작했다.
그 길로 발길을 돌린 그는 근처 정비 길드에 부품을 공급하는 오토마톤 부품점에 들렀다.
보기 드문 백발을 틀어 올린 여직원이 그를 맞이했다. 그녀는 선선히 초보 오토마톤 오너의 궁금증에 대답해 주었다.
“부품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는 않아요. 규격품을 어떻게 배치하고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능력과 수명이 결정되지요. 그게 기사들의 실력이기도 하고.”
“그럼 이 녀석의 금세 고장 난 관절도 기사의 실력입니까?”
여직원은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고개를 절절 흔든 크랭크는 결국 캐롯의 몸에 들어가는 부품과 필요한 기본 공구를 샀다.
그의 행동을 살피던 점원이 슬쩍 물었다.
“직접 고쳐보실 거라면 설명서도 같이 어떠실까요? 좀 비싸지만 도움이 될 겁니다.”
“잘됐군요. 그것도 주십시오.”
보너스를 받아서 자금에 조금 여유가 있었던 크랭크였지만 그 대부분을 부품과 공구를 사는데 써버렸다. 그걸 아까워하기는커녕 깎으려고도 않았다.
외로운 인간은 세상 모든 것에 감정 이입을 시도하지.
부품점에서 일하면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 본 백발의 점원은 문을 나서는 거인과 작은 오토마톤을 쳐다보며 음흉하게 웃기 시작한다.
“하지만 손님,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거든요.”
부품점의 사무직원 코코에게는 몹시 고상한 취미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자기 오토마톤을 직접 고쳐보려고 나서는 사람들을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도구와 설명서를 팔아 그들의 행운과 의지를 실험해 보는 것이었다.
손님을 보내고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가 두 팔을 벌리고 득도한 표정으로 외쳤다.
“잘되면 부품을 팔고 못되면 폐품을 헐값에 매입하면 되지! 이것이 일석이조!”
“코코 당신은 악마야.”
“장사는 모름지기 이렇게 하는 거다! 나는 희망을 팔았을 뿐이야. 결과는 저 사람이 내는 것일 뿐, 그게 뭐가 나쁘지? 하하하! 이번 달 판매왕도 내가 된다!”
두 팔을 벌리고 이제 마구 웃기 시작하는 그녀를 보고 동료 직원들이 끔찍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코코의 마수에 휘말린 것도 모르고 여관에 돌아오자마자 방에 틀어박힌 크랭크는 설명서를 보면서 한참 고군분투한 끝에 캐롯의 몸을 직접 여는 것에 성공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건가. 굉장하군.”
장갑판을 떼어내고 속살을 드러낸 캐롯의 내부는 복잡하긴 했지만 계속 살펴보니 대체로 간소했다. 인공 근육도 별로 없고,
내부 구조를 눈에 익히려는 듯 한참 들여다보던 크랭크가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어서 배낭을 끌어와 뒤지기 시작한다.
곧 그의 손아귀에 붉은빛을 발하는 동그란 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오크 소굴 토벌 때 하나 슬쩍해둔 것이었다.
“새것이니 이대로 팔면 300만은 받을 수 있을 거야.”
입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지만 손과 눈은 설명서의 한 구절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오토마톤은 출력이 상승하면 기억과 연산 회로의 동력 공급이 원활해져 해당 인공 지능이 다소 유연해지는 현상이 있습니다.
머리 뚜껑 안쪽에 반짝이는 연산 수정은 현재 2개, 가슴에 들어 있는 마력 엔진의 동력을 공급하는 마력석은 초록색,
잠깐 고민한 크랭크는 마력 엔진의 마력석을 붉은색으로 갈아 끼워버렸다.
방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은 크랭크가 팔짱을 하고 분해된 오토마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린다.
그 손에는 지금껏 노력한 초록색 마력석이 쥐어져 있다.
“솔직히 어찌 될지가 더 궁금해.”
이 호기심은, 앞으로 그의 미래를 결정하는 큰 사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