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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87화 (187/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옛날에는! 187 >

“자, 아까 가르쳐 준 대로해 봐.”

“개새끼! 개새끼!”

머리에 방열 가발 대신 푸짐한 빵모자를 눌러쓴 조그만 오토마톤이 앵무새처럼 말을 따라 외치자 모닥불가에 모여 앉은 거친 모험가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이거 걸작이군!”

“낄낄낄!”

늦은 밤, 황량한 들판에 멈춰선 상단의 마차들이 둥그렇게 모여 방어진을 구축하고 야영을 하고 있다.

주변을 순찰하고 돌아온 모험가들이 마침 그 꼴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하여튼, 못 배운 것들이란.”

“저런 귀한 물건에 잘하는 짓이다.”

“주인은 어딜 갔어? 저 친구들 아니었잖아.”

주변에서 뭐라던 재미가 들린 남자들은 또 다른 욕지거리를 들려주고 대답을 기다리는데 어둠 속의 시커먼 그림자가 나타나 그 오토마톤의 목덜미를 잡아서 들어 올렸다.

대롱대롱 들려 올라간 오토마톤이 고개를 돌리더니 짧은 팔다리를 파닥거리며 반갑게 외쳤다.

“주인님! 주인님!”

키가 2미터쯤 될 것 같은 청년이 다른 손에 사냥해온 짐승의 다리를 잡고 있다.

그는 무시무시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마시오.”

“흐흐흐!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 자네도 한번 들어보지 않을래? 정말 웃기지도 않아.”

비굴하게 웃는 사내들을 굳은 얼굴로 내려다보던 크랭크는 그대로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분노한 모험가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 자식이 지금 생 까냐?!”

“새카만 애새끼가! 형님들이 말씀하시는데!”

이 당시 모험가는 폭력배와 다름없는 자들이 많았고, 그들의 행패와 다툼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닌지라 상단의 호위무사들도 일이 커지지만 않으면 그냥 내버려 두는 편이었다.

뒤를 힐끔 돌아보던 크랭크가 손에 든 조그만 오토마톤을 바닥에 내리고 돌아섰다.

“나를 지켜라.”

“주인님을 지킵니다.”

방금까지만 해도 앵무새처럼 욕설을 배워 떠들어대던 조그만 인형이 자켓의 품 안에서 대인 병기로 허락받은 쇠망치를 꺼내 들어 내민다.

장도리 망치를 움켜쥔 오토마톤,

칼이나 도끼 같은 본격적인 병장기로는 저런 기괴함을 뿜어내지 못한다.

“야 이 자식아! 거기 서지 못해!?”

빠각!

발을 내민 사내는 다음 발자국을 떼지 못했다.

번개같이 망치를 휘두른 오토마톤이 그 발 옆의 돌멩이를 망치로 깨놓았기 때문이다.

부스스,

돌가루가 흩날리는 망치를 들어 올린 표정 없는 오토마톤이 말했다.

모자의 챙에 가려진 눈빛이 마치 노려보는 것 같다.

“나의 주인님을 모욕하지 마십시오. 한 번 더 같은 행동을 실행에 옮긴다면 나는 당신들을 전부 망치로 때려죽이고 자폭하겠습니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 3원칙에 묶인 정상적인 오토마톤은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못한다.

이것은 크랭크가 미리 일러둔 협박조에 불과했다.

하지만 망치로 돌을 터트려버리는 위압적인 현실은 착각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이, 이 자식이···!”

다들 잔뜩 화가 난 얼굴이었지만 섣불리 나서지는 못한다.

그들도 고장 나서 미쳐 날뛰는 기계인형의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보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표정을 살핀 캐롯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더니 호다닥 몸을 돌리고 주인님에게로 달려갔다.

크랭크는 쥐도 도망갈 길을 열어두고 몰아세워야 한다고 배웠고, 그것을 그대로 오토마톤에게도 가르쳤다.

“이 자식들아! 두고 보자!”

덕분에 사내들은 냅다 크게 소리만 지를 뿐 별다른 짓은 하지 않고 툴툴거리며 자리에 앉아버렸다.

일행들과 좀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크랭크는 사냥한 야생 동물의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캐롯은 곁에 쭈그려 앉아 그 작업을 구경하며 가끔 고개를 쳐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비단털쥐다. 현지 사람들은 햄스터라고도 부르더군.”

크랭크가 잡아 온 비단털쥐 햄스터는 어지간한 개 정도의 크기였다.

“무엇을 위해서 잡은 겁니까?”

“먹으려고.”

이즈음 크랭크는 수중에 돈이 별로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캐롯의 그 삐꺽거리는 몸을 정비 길드에 맡겨서 수리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금액이 청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랭크는 캐롯을 탓하지 않았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거지. 그리고 이 털도 꽤 고급이라서 팔면 돈이 된다.”

이미 배낭 안에는 그간 짬짬이 잡아 놓은 비단털쥐의 가죽으로 가득했다.

그 부드러운 털가죽을 쓰다듬던 캐롯이 맨얼굴을 들었다.

검은색 프레임에 빨갛고 커다란 유리구슬 두 개만 덩그러니 붙어 있는 모습은 목각인형 같았다.

캐롯은 크랭크가 한동안 잊고 있는 것을 지적했다.

“화폐의 단위를 알고 싶습니다. 문자도 알고 싶습니다.”

“어, 맞다. 이거 먹고 가르쳐 줄게.”

벗긴 가죽을 펼쳐서 말려놓고, 고기를 통째로 불에 구운 크랭크는 이제 그것을 먹으려는 참이었다.

땡땡땡-!

“습격이다! 오크 무리가 온다! 전원 방어 태세!”

입을 크게 벌린 크랭크가 아쉽다는 듯이 쥐 고기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근처의 캐롯은 먼저 발딱 일어나서 손도끼를 뽑아 들고 있었다.

“가자, 일이다.”

“예, 일입니다.”

“캬오오오오!”

길을 지나는 여행객이나 상단을 습격해서 빼앗은 물자로 꽤 그럴듯한 차림새를 갖춘 오크 떼가 덤벼들고 있다.

“제길! 너무 늦게 발견했어! 밖으로 나가! 백병전이다!”

“닥치는 대로 죽여!”

챙! 캉!

오크가 휘두르는 롱소드를 쳐낸 상단 정규 호위무사가 외쳤다.

“이 자식들 장비가 좋아! 호위 모험가는 어서···! 으억?!”

퍽!

뒤에서 휘둘러진 도끼에 등을 맞은 호위무사가 쓰러진다. 그의 위로 오크와 인간 모험가의 칼과 도끼가 쏟아졌다.

퍽퍽!

방금까지 같이 웃고 떠들던 사람에게 도끼를 마구 휘두른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오크에게 삿대질을 했다.

“토보! 이 자식아! 왜 이렇게 늦었어!”

“쿠에케케! 쿠에! 달! 하늘에! 솟은 시간! 맞다!”

“어휴! 등신! 말이나 못 하면!”

서로 툭탁거리던 덩치 큰 오크와 인간 모험가가 이제 서로 등을 맞대고 섰다.

“돼지 새끼야. 반반이다! 알았지?”

“쿠헬헬! 반반! 반반!”

이해가 일치하면 오크와 인간도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약탈이라는 것이 가슴 아플 따름이지만.

호위 모험가 일부가 도적으로 돌변하여 오크 무리와 협공을 시작하자 상단의 호위대장이 눈을 부릅떴다.

“이 개새끼들이!”

“대장님!”

마차 위에 올라가 롱보우를 들고 활을 쏘던 부하가 외치자 그는 모진 결심을 했다.

“덤비는 건 다 죽여라!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오토마톤을 가진 모험가는 어디 있냐!”

말을 하면서도 조금 간절했다.

썩어도 준치, 작아도 오토마톤이다. 제발 그 녀석은 우리 쪽이기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그만 인형이 그들의 앞을 도도도 달려가더니 휙 뛰어올라 망치를 휘두른다.

빠각!

“케엑!”

머리가 깨긴 오크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보고 있던 호위대장의 입가가 씩 올라갔다.

바닥에 착지한 오토마톤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 곁으로 판초를 두른 커다란 전사가 달려왔다.

그러더니 냅다 고함을 질렀다.

“너희들에게 승산은 없다! 우리는 강력한 전투용 오토마톤을 가지고 있다! 너희들을 모두 죽일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의 간과 심장을 꺼내 씹어 먹을 것이다!”

동시에 양손에 손도끼와 망치를 든 캐롯이 앞으로 나서더니 입을 열었다.

딸까닥,

턱을 열리고 드러난 것은 날카로운 강철 이빨이었다.

“끼이이에에에에엑!”

귀를 찢는 파열음이 주변으로 울려 퍼진다. 미칠 듯한 소리를 지르며 달려간 조그만 인형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오크에게 덤벼들었다.

퍽!

“쿠헬헬!”

날아오는 도끼를 나무 방패로 막고 회심을 미소를 짓고 있는데 뒤이어 커다란 곰 같은 그림자가 덮쳐들더니 어깨로 들이 받아버린다.

쾅-!

“쿠엑!”

저만치 튕겨 나가 바닥에 쓰러진 오크의 위로 조그만 인형이 날아들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카득카득! 까드드득!

“꾸우에에에엑?!”

산채로 물어뜯기다가 결국 목이 뜯겨나간 오크가 절명하자 한참 싸움 중이던 일당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온몸에 붉은 피를 처바르고 일어선 조그만 오토마톤의 그 커다란 입에서는 뜨거운 핏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캬르르륵-! 끼이이이에에에엑!”

다시 울려 퍼지는 귀를 찢은 기계음, 오토마톤은 사람 목소리를 포기하면 이런 소리도 낼 수 있었다.

“너희들은 졌다! 곧 엘프 지원군이 도착한다! 그들의 화살받이가 될 것이다!”

옆으로 달려온 크랭크가 또 허풍을 늘어놓고 있다.

엘프 지원군이라는 말에 오크들과 배신한 모험가들이 허둥거리기 시작한다.

“쿠엑! 엘프? 엘프!”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상식적으로 생각해라! 이 돼지야!”

흔들린다. 흔들려, 이거 효과가 있어.

얼마 전 함께 일했던 모험가가 잘하던 짓인데 크랭크가 그걸 인상 깊게 본 탓인지 최근 자주 써먹고 있었다.

활을 쏘다 말고 그의 허풍에 기가 찬 호위무사가 중얼거렸다.

“저걸 기만전술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싸움이 한창인 주변을 살피던 호위대장이 외쳤다.

“나쁘지 않아! 소리를 질러! 소리! 으아아아아! 엘프님! 여기요! 너희들도 어서 소리 질러! 아아아! 여깁니다!”

머뭇대던 사내들이 칼을 꼬나쥐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으아아아! 엘프님!”

“오오오! 아름다우신 엘프님!”

“정령으로 저놈들을 혼내주세요!”

퉁퉁퉁!

급기야 활을 쏘던 궁수들까지도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오오! 봐라! 엘프가 활을 쏜다! 지원이 도착했어!”

“이 놈들아! 내가 사실 엘프의 밀정이다!”

보름달이 뜬 밤, 난데없이 솟아오른 새빨간 거짓말이 밤하늘 높이 울려 퍼진다.

근방을 지나던 진짜 엘프들의 귀가 마구 가려울 상황이었다.

“끼이이이이이이익!”

이때를 놓치지 않고 상단에 하나뿐인 오토마톤이 날카로운 기계음을 내면서 날뛰기 시작한다. 날카로운 이빨에는 그간 물어뜯은 오크의 살점이 달라붙어 있고 그 입가에는 아직도 피가 줄줄 흐르고 있다.

“구에에에엑!”

결국 겁을 먹은 오크 하나가 뒤로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뿔싸 싶은 남자가 외쳤다.

“안 돼! 저놈 잡아! 머릿수로 밀어붙이면 충분히 발라먹을 수 있다고! 크억?!”

우두머리로 보이는 배신자의 가슴에 화살이 박히자 그는 허무하게 쓰러졌다. 마차의 위에서 매서운 얼굴을 한 사내가 롱보우를 내리자 그 아래에 있던 호위대장이 낮게 중얼거렸다.

“잘했다.”

오크들이 도망치기 시작하자 도적 떼로 전향한 모험가들도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제길!”

“이 망할 자식들아! 얼굴 봐놨어! 도시 들릴 생각일랑 마라! 현상범 수배를 때려주마!”

“요즘 이 부근에서 약탈을 일삼는 놈들이 인간 도적들과 작당했었다니. 믿을 수 없군.”

혼성 도적 떼가 물러나자 호위대장은 가장 먼저 부상자와 상품이 실린 마차를 살폈다.

“주변 경계! 피해 상황 보고해라!”

조사를 마친 호위무사가 와서 보고했다.

“상품은 이상 없습니다. 부상자도 신관님이 전부 치료했습니다만, 조제, 신디, 두 녀석이 죽었습니다.”

“제길!”

몇 되지도 않는 정규 호위무사가 동료의 배신으로 사망하자 호위대장은 눈이 돌아갈 판이었다.

“대장님!”

“또 뭐냐!”

달려온 부하는 사로잡은 오크에 대해서 알렸고, 그는 직접 오크를 심문했다.

“크에엑! 아프다! 나, 아프다!”

“망할 자식이!”

퍽퍽!

발길질을 날린 호위대장이 좀 씩씩거리다가 말했다.

“운송이고 뭐고 이놈들을 조져버리지 않으면 분해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동료가 죽는 바람에 눈이 돌아간 호위 단을 보고 모험가들은 좀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았다. 호위대장이 충혈된 눈으로 오크를 노려보았다.

녀석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칼에 찔린 배를 부여잡고 있었다.

“신관님, 이 자식을 치료하시오.”

“예에?”

여 신관을 포함해서 모두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호위대장은 강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이걸 치료하라고.”

분노로 눈빛이 위험해진 그를 보고 고개를 흔든 신관은 푸르른 빛이 나는 손으로 오크의 상처를 치료했다.

피가 멎고 배에 난 구멍이 사라지자 오크가 커다란 코를 벌렁거리며 놀라워했다.

호위대장이 다시 물었다.

“자, 너희 둥지는 어디냐? 사실을 알려주면 너만은 꼭 살려주마. 약속하지. 아니면 산 채로 기계 인형에게 물어 뜯기도록 만들겠다.”

딱!

손가락을 튕기자 몰려든 어른들의 사이로 조그만 꼬마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족을 끔찍하게 물어 죽인 괴물 같은 인형이 날카로운 이빨과 핏자국을 드러낸 채 웃고 있다.

“캬캬캬캭!”

기겁한 오크는 결국 입을 열고 말았다.

소굴의 위치를 전해들은 호위대장은 오크를 결박시키도록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크랭크! 시원찮긴 하지만 그래도 이놈이 우리 최대 전력이다. 좀 빌려다오.”

“물론입니다.”

몸을 돌린 호위대장은 뜨거운 콧김을 뿜으며 주먹을 치켜들었다.

“복수다! 반격이다! 따라와라 이놈들아!”

전투 직후 아드레날린에 뇌가 절여진 사람들의 눈이 단숨에 뒤집혔다.

“으아아아! 피를! 우리는 오크의 피를 원한다!”

“망할 돼지를 때려잡으러 가자!”

항상 그렇지만 사람의 광기는 주변으로 전염된다. 그것이 생물이든 기계든 가리지 않고,

미쳐 날뛰는 사람들의 사이에서 오토마톤 캐롯도 함께 괴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끼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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