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여름휴가! 185 >
“으이익! 어엉?”
“킁킁, 킁킁킁, 습하습하-! 프흐하하하!”
보리스의 가슴에 파고들어서 개처럼 킁킁 냄새를 맡던 모르핀이 갑자기 폭소를 터트리더니 그를 밀어내고 떨어졌다.
당황한 보리스를 가리키며 배를 잡고 깔깔거린 그녀가 손사래를 쳤다.
“장난이야. 장난, 바보들아. 내 발정기는 가을이거든? 남자가 적다고 해서 아무한테나 욕정을 품진 않아.”
“바바바바발정기요!? 요요욕정!?”
비타와 아리에테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팔짱을 한 모르핀이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너희들은 1년 내내 그 상태라며? 인간 남친 있는 애들이 귀찮아하면서도 좋아하더라고.”
“호옥! 호오옥! 가가가갑자기 덥네요! 여름이네요! 응! 여름이에요!”
비타가 손부채를 휘두르는 동안 지오와 코비는 뒤로 돌아서 하늘을 쏘아보기 바빴다. 보리스는 또 당했다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고,
여기서 아리에테가 고개를 갸웃했다.
“인간 남친?”
“당신은 이쪽을 잘 모르나? 비타가 설명해줘. 나 슬슬 교대 시간이라서 가봐야 해. 또 보자. 그거 꼭 전하고.”
“어, 음, 예! 또 봐요!”
뒤 돈 채로 손을 흔든 모르핀이 부슬비 내리는 숲속으로 자박자박 걸어 들어갔다.
잔뜩 굳은 얼굴로 나뭇가지를 헤치고 안으로 들어가던 모르핀이 손등으로 입가의 침을 슥 문지른다.
“츄릅! 좀 위험했네. 자식이 좋은 냄새 막 풍기고 말이야.”
그녀가 숲을 헤치고 돌아가는 동안 보리스는 품 안에 파고든 모르핀의 감촉을 설명했다.
“뭐랄까. 작고 말랑말랑했어. 작은 여자애 같은 느낌이려나?”
“그리고?!”
신나게 이동 중인 차량 안, 비타와 아리에테가 보리스를 심문했다.
“음, 딸을 안으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정도? 모르핀은 체구가 작으니까.”
“체취는? 마족의 체취는 어땠나?”
눈을 크게 뜬 아리에테의 물음에 진짜 못 말리겠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린 보리스가 고개를 숙이고 가슴팍을 킁킁거리다가 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거? 무슨 좋은 냄새가 나는데? 향수인가?”
“좋은 냄새?”
“내가 맡아볼래! 킁카쿵카!”
“으억! 얌마!”
캐롯이 와락 안겨들자 보리스가 기겁했다. 가슴에 코를 박은 캐롯이 잠시 후 보리스에게 목덜미를 붙들려 나오더니 몹시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와, 마족 여자는 진짜 냄새도 좋은걸? 다음에는 직접 맡아보고 싶다.”
남은 잔향이라도 맡아보고 싶었지만 차마 보리스의 품에 코를 댈 자신이 없었던 비타와 아리에테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여기 파티에는 변태들뿐이냐!”
“순수한 호기심이라고 해줘요!”
* * *
일을 마친 겨울 기사단이 복귀를 서두르고 있을 때.
비가 쏟아지는 아르곤의 중앙 광장 청동문 앞으로 경비대원들이 도열 했다. 긴장한 병사들이 묵직한 문을 열자 화려한 우산이 펼쳐지고 하얀 제복을 차려입은 금발 여성이 발을 내디뎠다.
그 얼굴은 회심의 미소로 차올라 있었다.
“후후후, 내가 안 돌아올 줄 알았겠지?”
3일에 걸쳐서 회의와 보고를 완료하고 다시 여름휴가로 복귀한 쥬세페 제3왕녀였다.
곧바로 영주의 저택으로 입성하자 접대를 맞은 백작부인과 집사장, 메이드들이 만면에 화사한 미소로 왕녀를 맞이했다.
속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다시 돌아와서 기쁩니다.”
“여러분들을 기다리게 했군요.”
히죽 웃음 지은 쥬세페 공주는 바로 방으로 향했다. 그녀가 젖은 옷을 갈아입는 동안 보좌관 리리안느가 집사장과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왕녀께서는 격무에 시달린 직후라서 휴식을 필요로 하십니다. 아마 오늘 하루는 밖으로 나올 일이 없으실 겁니다. 식사도 방에서 따로 할 예정이고요.”
고개를 꾸벅인 집사장은 메이드장과 함께 자리를 피했다.
짧은 한숨을 쉰 리리안느가 노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자 쥬세페 공주는 속이 다 비치는 시스루를 입고 화려한 침대에 엎어져 있었다.
성큼성큼 다가온 그녀가 감히 왕녀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마찬가지로 어릴 때부터 함께 해온지라 아무도 없을 때는 스스럼없이 대하는 사이였다.
나이도 리리안느가 연상이고.
“목욕하고 쉬세요!”
“······이대로 자면 알 될까?”
“안 됩니다! 뭣들 하세요. 왕녀님을 일으켜 세우세요.”
보좌 겸 시녀인 여성들이 왕녀를 질질 끌고 준비된 욕실로 끌고 가서 옷을 벗기고 집어넣었다.
욕조에 등을 보이고 기댄 리리안느가 일정을 설명했다.
“오늘은 완전히 비웠어요. 내일 저녁엔 영주님 일가족과의 식사가 있고요. 그리고 비 오는데 꼭 동네 구경 나가실 거예요?”
“물론, 맑은 날도 흐린 날도 모두 그 도시의 모습이니까. 하나도 놓칠 수 없지. 성벽에도 올라가고 싶으니 잊지 말아줘. 그리고 저녁 일정이 가장 중요해, 잊지 않았겠지?”
리리안느가 찌푸린 이마를 짚었다.
“천일야화라도 되는 줄 아시나 봐요. 왜 그렇게 이야기를 좋아하세요?”
“간접 경험이지. 나는 모험에 뛰어들 수 없으니까. 천 하루 동안 이야기를 들었다는 고대의 어떤 왕도 그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고개를 흔들면서도 리리안느는 수첩에 메모를 잊지 않았다.
* * *
쥬세페 공주가 도착한 당일, 크랭크의 공방으로 말끔한 제복의 집사가 찾아왔다.
막 복귀해서 뜨거운 물로 샤워 중이던 아리에테가 고개를 내민다.
“뭐라고?”
“으악! 마저 씻고 나와! 이 조심성 없는 것아!”
캐롯이 호들갑을 떨었고, 찾아온 사람도 깜짝 놀라서 뒤로 돌아섰다. 제임스의 모험가 기숙사에 머무르라고 했지만 아리에테는 그곳을 사무실 정도로 여기고 있어서 항상 공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편이었다.
“공방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보다 못한 크랭크의 중얼거림과 함께 씻고 제대로 챙겨 입은 아리에테가 머리에 수건을 감은 채 나타났다.
집사가 공손히 내미는 편지를 받아든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뭣! 공주님 현지 호위?”
“집사장님이 여러분을 지목하셨습니다.”
캐롯이 하하 웃었다.
“집사장님이 노린 거네?”
“이런 건 위험부담이 커서 지원자가 적다고 들었다. 그때 한마디 했다고 우리에게 떠넘기시는 건가.”
크랭크의 중얼거림을 찾아온 집사는 못 들은 척했다.
아리에테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이건 좀 무리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공주님의 호위라니. 왕족이라고? 실수라도 하는 날엔······!”
찾아온 집사가 끼어들었다.
“거기 보시면 요청이 아니라. 지목입니다. 강제 지정이죠.”
“거부권이 없다고? 이것은 횡포다!”
다시 편지를 든 아리에테가 내용을 살피며 소리를 질렀다. 할 일을 마친 집사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저는 전했습니다. 그럼 이만.”
“이봐!”
우산을 쓰고 후다닥 달아나는 그에게 안타까운 듯 손을 내미는 아리에테를 보고 캐롯이 말했다.
“잘됐네. 이런 장마에는 할 일이 별로 없으니까.”
“그래도 왕족이랑 연관되는 건 꺼림칙한데.”
“물러서지 마라. 네 미래와 출세가 걸렸다.”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 아리에테가 크랭크를 보았다.
“지금이라면 왜 네가 그런 것에 흥미를 가지지 않는지 알 것 같다. 이거 부담되는군.”
크랭크가 팔짱을 낀다. 아마 저 투구 속의 얼굴을 웃고 있을 것이다.
아리에테의 손에서 편지를 빼앗은 캐롯이 내용을 읽으며 말했다.
“음, 내일 아침에 영주님의 저택으로 집합이네. 애들 불러서 바로 준비하자. 따로 경호대도 있겠지만 우리도 구색은 맞춰야지.”
“그래. 다들 쉬고 있을 테니 숙소로 찾아가자.”
무장을 차려입은 아리에테는 캐롯과 함께 제임스의 여관으로 달려갔다.
크랭크가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는데 택배가 왔다.
“배달 왔습니다!”
“예. 저쪽 7번 창고 앞으로 갑시다.”
“비는 오지만 그래도 일거리가 있어서 좋네요!”
“맞아! 오늘도 공칠 줄 알았는데!”
쏟아지는 빗속에서 남자들이 바쁘게 움직여 상자와 자재를 옮기기 시작했고, 크랭크와 쿠르프, 투나는 으히히 웃으면서 내용물을 확인했다.
“에, 엘프들의 지원은 차, 참 편리하네. 이런 것도 보내주고.”
“처음엔 꺼림칙했는데 말이지.”
수첩을 든 트리스타가 바닥에 깔린 상자와 자재를 살피면서 말했다.
“말씀하신 것은 대부분 수용했습니다. 그런데 이걸로 뭘 하시려는 거죠?”
상자를 열고 바닥에 쭈그려 앉거나 무릎을 꿇은 사람들이 고개를 돌린다.
때마침 번개가 번쩍이는 바람에 그들의 얼굴이 한층 괴기스러워졌다.
번쩍-! 쿠르르릉!
“뭐, 별거 아니야. 보면 알 거다! 흐흐흣!”
“오늘 할당량을 채우지 않으면 재우지 않겠습니다. 트리스타.”
“이히히! 트리스타 내, 내가 도와줄까?”
갑자기 우울해진 엘프 트리스타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트리스타의 우울로 빗줄기가 더 거세질 무렵, 제임스의 모험가 기숙사에 들른 아리에테는 파티 멤버를 홀에 모아놓고 그림을 그려가며 경호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정보 공개는 없지만 우리 말고도 경호대가 움직일 거다.”
“그럼 우리는 뭐예요?”
“무려 공주님과 안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현지 안내 겸 호위지. 여기 적혀 있어.”
캐롯이 내민 것은 집사장이 작성해서 보내준 요청서였다. 그걸 살펴보고 있는데 보리스가 말했다.
"다른 경호대에 얕보이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네. 공주님 기분도 신경 쓰고.”
“그렇다. 무장도 제한적인 만큼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덜컹-!
꽈르르릉!
문이 벌컥 열리더니 누군가가 들어섰다. 등 뒤로 번쩍이는 벼락이 떨어지면서 문 앞에 선 사람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고개를 돌린 캐롯이 반색했다.
“어어? 리슐리에다! 번개의 마법사!”
“으악! 다 젖었잖아요!”
깜짝 놀란 비타가 일어나서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오락가락하던 빗줄기는 번개를 동반한 폭우로 변해 있었다.
“푸후······!”
수건을 뒤집어쓰고 얼굴로 흐르는 빗물을 뿜어낸 그녀는 그걸로 머리와 얼굴을 닦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아리에테의 앞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쏟아진 머리카락이 얼굴을 숨겨주었지만 목소리는 어떻게 하지 못했다.
콧물을 좀 훌쩍인 리슐리에가 추위에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기··· 역시··· 그, 그쪽 파티 멤버로 받아주면 안 될까······.”
“어? 응?”
자신만만하게 떠났던 모습과는 상반된 저자세,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얼떨떨한 사람들 사이로 캐롯이 벌떡 일어나 두 팔을 든다.
“격하게 환영!”
좀 진정한 뒤 목에 수건을 걸고 자리에 앉은 리슐리에는 뜨거운 머그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당신들이 잘못했어. 내게 그런 모험의 가장 달콤한 부분만 보여줘 버렸잖아.”
턱을 괴고 있던 보리스가 한심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야. 어디 파티에 따라 나갔다가 험한 꼴이라도 당했냐?”
“보리스!”
“아니, 온몸에서 전기가 흐르는 마법사를 누가 건드려?”
“그래도요! 당신은 배려가 부족해요. 배려가!”
비타가 콧김을 뿜뿜 불어 냈다.
피식 웃음 지은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동안 파티 몇 군데를 소개받아 다니면서 알게 된 건 이 일이 별로 즐겁지 않다는 거야. 돈 말고는 남는 게 없었어.”
입을 다문 그녀가 추위로 떨리는 입술을 다시 열었다.
“끔찍했어. 대우도, 환경도, 일하는 방법도, 그 뒤처리도 전부. 비슷한 일을 해도 역시 마음이 편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
“오오, 그래서 돌아온 거야?”
캐롯의 말에 머그컵을 단숨에 기울인 리슐리에가 뜨거운 증기를 입에서 뿜어내며 말했다.
“후욱-! 문화를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야. 그러니 다시 받아주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초보 마법사를 보고 팔짱을 낀 아리에테가 버럭 외쳤다.
“전격 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