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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84화 (184/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마족! 184 >

그녀의 어머니도 보이드 자작과 함께 이젤리아에서 기술 인력으로 파견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물론입니다. 이참에 만나보고 가시죠.”

“됐습니다. 사실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소. 이것의 상세 스펙이나 들어봅시다. 하드 스킨보다 비싸면 안 됩니다.”

“듣고 놀라세요. 가격이 무려-!”

쾅-!

홀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비에 쫄딱 젖은 쥬세페가 들이닥쳤다.

“르클레르-읏!”

“전하, 늦으셨잖습니까?”

공주를 불러놓고 오히려 르클레르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안으로 들어선 쥬세페는 냅다 삿대질부터 했다.

“감히 내 여름휴가를 망치다니! 이 원한은 절대로 잊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남은 시간 착실히 보낼 거잖아요?”

“당연하지요! 나는 인생의 절반을 놀면서 보낼 생각입니다! 어? 제1궁성 마법사님이 아니십니까?”

기가 찬 표정을 지은 보이드 자작이 얼빠진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인생의 절반을 뭘 어쩌겠다고?”

한때 그녀들의 가정교사도 역임한 그였기에 쥬세페는 입을 꾹 닫고 시선을 피했다.

“그, 그래서 왜 부른 겁니까? 이 몸은 바쁩니다. 상경한 김에 왕성에 보고도 올리러 가야 합니다.”

탕탕!

커다란 갑옷을 손바닥으로 두들긴 그녀가 말했다.

“사실은 이걸 좀 유통해볼까 해서요.”

대략 이야기를 전해들은 쥬세페 공주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하드 스킨 오토마톤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들이 병사의 안전까지 보장해주진 않지요. 그리고 이쪽이 훨씬 더 저렴하고요.”

공주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 온 사촌 언니 르클레르를 쳐다보았다. 비슷한 구석이 있는 둘은 성격이 잘 맞아 근래까지 왕래를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종래의 체계에서 벗어나는 이런 듣보잡이라도 반길만한 곳이······ 아! 이젤리아!”

르클레르가 고개를 돌렸다.

“보셨죠? 위기는 기회라고요.”

짧은 한숨을 내쉰 보이드 자작이 물었다.

“그런데 대체 이런 건 어디서 찾아온 겁니까?”

“방주 도시 아르곤에 체류 중인 기사학교 동기를 만나러 갔다가 우연히 발견했어요. 안타깝게도 팔다리가 잘리는 사고를 당했는데 그 수족을 붙여준 장본인이 이것도 만들었지요.”

쥬세페 공주와 보이드 자작의 눈이 커졌다.

팔다리가 잘려?

“혹시 금발 여기사 아니오?”

“반 갑옷을 이렇게 두르고, 이름이 분명 아리에테로 기억합니다만.”

“예, 그래요. 잡지나 동화책에도 몇 번 언급 됐어요. 그걸 보고 찾아냈으니까. 혹시 아는 사람이세요?”

르클레르 보기에도 이들은 좀 더 자세히 아는 얼굴이었다.

보이드 자작이 허허 웃는다.

“수족을 붙여준 장본인이면, 그 커다란 친구겠군. 이름이 크랭크였나.”

“나 역시 만난 적 있습니다. 작년 청동문 조사와 얼마 전 극동 개척민 마을에서, 데리고 다니는 조그만 오토마톤과 참 사이가 좋아 보이더군요.”

“캐롯을 말하는 거군요.”

“캐롯, 그 꼬마와의 대국은 참 인상 깊었지. 잘 지내고 있습니까?”

커다란 자동 갑옷의 앞에 모인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다시 한번 얼빠진 표정을 했다.

“어엇?!”

보이드 자작이 클클 웃음 지었다.

“대 모험가라도 되는가. 여기저기서 입에 오르내리는군.”

“우리는 같은 사람을 알고 있군요! 이런 우연이! 티타임! 티타임을 요청합니다!”

이야기에 굶주린 쥬세페 공주가 흥분하자 르클레르가 테이블과 티 세트를 준비시켰다.

그리하여, 무릎을 꿇은 자동 갑옷의 앞에 테이블을 가져다 놓고 찻잔을 든 공주와 공작 영애, 제1궁정 마법사가 우아한 티타임을 가지며 각자의 썰을 풀기 시작했다.

* * *

“아아! 귀가 가려워어~!”

캐롯이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면서 외쳤다.

옆에서 쳐다보던 코비가 멍청한 얼굴을 했다.

“오토마톤도 귀가 가렵나?”

“그냥 해본 소리겠지.”

“아니야. 진짜 가려워, 꼭 이럴 땐 누가 내 이야기하더라.”

모험가 길드도 장마철엔 일거리가 줄어드는 편이다.

비 때문에 사람과 몬스터가 나다니질 않으니 서로 마주칠 일이 없고, 그래서 신고도 들어가지 않는다. 앞서 들어온 사냥이나 토벌의뢰는 거의 끝났고, 약초나 열매 채취 호위가 좀 있긴 했지만, 그것도 초보 모험가나 돈이 급한 사람들이 차지했다.

이 와중에 전용 차량을 가진 파티 우선 의뢰가 있어서 그걸 맡을 수 있었다.

쏴아아아! 촤르륵! 콰콰콰콰!

빗길 속을 헤치고 나가는 차량은 좀 굼뜨긴 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달려 나갔다. 아예 전문 운전자가 되어버린 지오는 여전히 긴장한 채 운전석에 앉아있다.

“보급품은 평소에 마차로 옮기지만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말이 힘드니까 말이야.”

말끔하게 수리된 전투복을 차려입은 캐롯이 이번에 새로 올린 금발 머리를 쓰다듬으며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어때? 이번에 새로 했어. 예뻐?”

보리스가 얼굴을 구겼다.

“너, 오늘 그 소리만 몇 번 하는지 모르겠다.”

“으헤헤! 금발 안 어울린다고 한 녀석 누구야! 이렇게 잘 어울리는데!”

분명 크랭크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은데 다들 입을 다물었다.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그냥 내버려 두자.

“캐롯, 이리와라. 머리를 땋아주마.”

“와! 정말?”

아리에테 앞에 엉덩이를 걸치고 기대어 앉으니 그녀가 손가락을 놀려 머리를 땋아 파란 리본으로 마무리했다.

마치 동그란 빵이 머리 뒤에 붙은 것 같다.

비타가 손바닥을 부딪쳤다.

“오! 그거 브레이디드 번이라는 거죠? 예뻐요.”

“전에 남부 겨울 출장 때 만났던 판터라는 모험가의 오토마톤들은 다들 이렇게 머리를 땋았더군.”

거울로 머리를 비춰보던 캐롯이 말했다.

“에에, 그건 그 아저씨 취향인 듯? 싸울 때는 풀어야 해. 애초에 방열 가발이라고?”

“음, 그때까지는 하고 있자. 예쁘니까.”

“예쁜 거 인정!”

보리스가 두 사람을 지켜보다가 코비에게 중얼거렸다.

“······엄마랑 딸 같지 않냐?”

좀 킥킥거리던 코비가 보리스를 보았다.

“비슷해. 살짝 닮기도 했고.”

“다 들린다.”

잡담을 나누던 두 사람이 찔끔했다. 가만히 캐롯의 머리를 만져보던 아리에테가 물었다.

“이 머리는 누구 거지?”

새 가발을 만들려고 택배 상자를 뒤지다가 굉장한 금발을 발견한 캐롯은 안에서 편지도 한 장 찾아냈다.

“남서부의 방주 도시에 사는 브랑디라는 처녀의 머리카락이야. 부디 좋은 사람이 생기도록 해달라고 적혀 있었어. 아니? 마법 소녀 캐롯에게 머리카락을 주면 사랑이 이뤄진단다?”

캐롯이 내미는 편지를 받아서 읽어보던 아리에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답장을 보내야겠구나.”

“이미 보냈어. 용돈으로 받은 금화 한 닢과 함께, 이제 내가 답장을 기다려봐야지.”

캐롯의 말에 비타가 두근두근하는 얼굴로 다가왔다.

“제, 제 머리카락도 되나요?”

“오호우! 당연하지. 그런데 좀 더 길러야겠다. 허리까지 내려오면 더 좋겠네. 내 마법은 즉효야. 가발로 만들어지는 순간 남친이 뿅하고 생기지.”

다들 피식피식 웃기 바쁘다.

한참을 달리던 차량이 휴전선 마을에 도착했다.

“도착! 어서 짐 내리자! 아저씨들 경비대에서 정기 보급 왔어요! 어디에다 놓을까요?”

“저건 누구야?”

“악! 그때 그 오토마톤 꼬마잖아! 캐롯!”

보급차가 왔다는 말에 성벽에서 고개를 내민 경비병들이 캐롯을 알아보고 슬금슬금 걸어 나왔다.

“뭐냐. 그새 머리 바꿨어?”

“하하, 또 태워 먹었거든요.”

“막 구르는 녀석이네.”

커다란 경비병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있는 금발 인형의 모습을 보고 짐을 나르던 비타가 중얼거렸다.

“와아, 슈퍼 인싸 캐롯이에요. 정말 모르는 사람이 없네?”

“은거기인을 지향하는 주인님의 마음도 모르고 말이야.”

“아니지, 사실은 사교성 부족한 주인을 위해 일부러 저러고 다니는 것일 수도 있다.”

“오, 그건 기특하네.”

보리스와 아리에테의 대화에 곁에서 짐을 나르던 코비와 지오가 킥킥 웃었다.

때마침 빗줄기도 약해져 있어서 한가한 경비병들이 몰려나와 보급품 옮기는 걸 거들어 주었다.

“원, 차 한번 크기도 하다. 너희들 거냐?”

“돈 모아서 새로 뽑았어요! 호하하! 좋죠? 중고지만!”

“모험가들은 좋구나. 한방에 큰돈 만지고.”

“이 친구야, 그만큼 위험하다고? 목숨 걸어야 해.”

“상단에서 쓰는 수송차량을 개조했구만, 이렇게 크면 좁은 곳은 못 들어갈 텐데 말이야.”

비번인 경비병과 휴전선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모험가들의 개조 차량을 구경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응? 땅콩 아니냐? 오랜만에 보는걸.”

“헤리슨 사령관님!”

부관의 우산을 얻어 쓰고 나타난 헤리슨이 호다닥 달려오는 캐롯을 내려다보았다.

“머리 바꿨네?”

“잘 어울리죠? 어서 예쁘다고 해주세요!”

헤리슨이 피식 웃었다. 잠깐 동료들과 인사를 나눈 그녀는 손을 흔들며 성벽으로 걸어갔다.

“보급 고맙다. 조심해서 가라.”

“예!”

캐롯은 손을 흔들었고, 아리에테는 고개를 꾸벅 숙여 휴전선 마을의 총책임자인 그녀에게 예의를 표시했다.

“이제 집에 가자! 이거 완전 개꿀이네! 출발!”

차량에 올라 이제 복귀를 시작하는데 비타가 흔들리는 차 안에서 슬그머니 다가왔다.

캐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온 김에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마족?”

“어, 예. 한동안 꽤 못 봤거든요. 잠깐 괜찮을까요?”

캐롯이 아리에테를 보았다. 파티 리더인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 번도 마족을 본 적이 없다. 가능하면 만나두고 싶군.”

허가가 떨어지자 지오는 차량을 몰아 모르핀의 담당 구역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길 가장자리에 차를 세우고, 휴전선이 있는 곳으로 다가간 비타가 짧게 외쳤다.

“모르핀!”

잠시 후, 우의를 입은 사람이 숲을 헤치고 걸어 나온다.

후드 아래 날카로운 눈빛과 꾹 다문 입이 아리에테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머리 부분의 저게······ 뿔인가?

여전히 붉게 빛나고 있는 땅바닥의 휴전선을 신기하게 내려다보던 캐롯이 고개를 들었다가 건너편의 마족 여자를 알아보았다.

“어? 우리 전에 같이 와이번 소시지 만들지 않았어요?”

무뚝뚝한 그녀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날카로운 상어 이빨과 고양이 눈웃음이 드러나는데 아리에테가 그걸 보고 코를 벌렁거렸다.

“헉! 웃는 게 귀엽잖은가!”

“그쵸? 정말 최고라고요!”

비타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고개를 돌리고 있다.

하지만 모르핀의 그 귀여운 미소는 곧 사라졌다.

“이건 누구지? 모르는 사람인데.”

“오랜만이에요. 모르핀, 이쪽은 우리 파티 리더인 아리에테.”

모르핀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너희 파티 리더는 저기 지오가 아니었어?”

“그게 사정이 좀 있었어요.”

빨갛게 빛나는 선을 앞에 놓고 우산과 우의를 입은 사람들이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랬구나. 나쁘지 않은 선택이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빗속에 선 모르핀은 여상스럽게 대답했다.

“항상 그렇지. 이유도 모른 채로 여길 지키고 있지, 가끔 사냥도 하고. 맞아, 그 약사에게 내 이야기 전했어?”

“예, 이야기는 전했어요. 근데 따로 찾아오긴 힘드나 봐요. 기회가 되면 우리가 한번 데려올게요.”

“음, 오고 갈 수 없으니 불편한데.”

캐롯이 끼어들었다.

“남모르게 전할 말이 있으면 편지라도 하면 되잖아요?”

“우리는 쓰는 문자가 달라. 그 약사는 이쪽 글 읽을 수 있나?”

도리도리,

“모르겠는데요.”

“아니, 투나라면 알지도 모른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퍼즈 말도하고 그러니까.”

“음, 밑져야 본전이니 몇 글자 적어볼래요?”

조금 생각하던 모르핀이 주변의 돌멩이를 주워 들더니 나이프로 문자를 새겨서 휙 던졌다. 비타가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가져다줘. 운이 좋으면 자료를 찾아서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고개를 돌린 모르핀은 다시 히죽 웃더니 보리스를 보았다.

“보리스, 솜씨는 좀 나아졌나?”

“어, 한번 보여드릴까?”

보리스가 허리춤의 칼 손잡이를 잡고 휴전선을 슬쩍 뛰어넘었다. 그 행동을 보고 아리에테가 움찔했지만 캐롯이 설명했다.

“이거 직접 밟지만 않으면 반응하지 않아. 그래도 보리스! 막 넘어가면 어쩌려고 그래! 납치당한다. 너? 마족은 남자가 별로 없데!”

“나도 알고 있······!”

보리스와 마주 선 모르핀의 얼굴이 갑자기 잔인하게 웃더니 와락 덤벼들었다.

어찌나 빠른지 반응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당황한 아리에테가 외쳤다.

“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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